소설리스트

굿 카페-99화 (99/183)

99.

훠이

유달이 신소미에게 물었다.

“일본어 할 줄 알아?”

“약간 알아듣는 정도… 아니, 아주 조금… 아니, 아니, 전혀 못 해요.”

그녀의 자신감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나는 애니메이션 보며 얻은 지식이 전분데. 대화가 돼야지 저놈들을 추궁하지.”

“번역기 어플 한번 깔아 볼까요?”

“그게 뭔데?”

“어플 켜고 상대가 외국어로 말하면 자동으로…….”

그들은 괜한 걱정을 했다.

검은 양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사내는 두 명.

비슷한 차림에 비슷한 나이였지만, 그중 키가 큰 사람은 통역으로 고용된 한국인이었다.

“비켜라, 방해된다.”

무례하고 일방적인 명령조였다.

이에 유달도 곱지 않게 쳐다보며 대꾸했다.

“이 새끼들이 예의를 쌈 싸 먹었나… 어디서 초면에 반말질이야?”

그도 그럴 것이, 유달은 그들보다 나이가 많고, 신소미는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다.

통역하는 한국인은 아바타나 다름없었다.

옆에 있는 일본인이 말하는 걸 가감 없이 직역했다.

“이놈의 나라는 뭐든 짜증이 나는군. 너희들도 영을 볼 수 있는 존재라면 나에게 복종함이 마땅하다.”

유달은 화를 참는 음성으로 물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미천한 무당이 신력 높은 퇴마사에게 고개를 숙이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닌가?”

“여기가 무슨 무협 세계인 줄 아나? 공력이 높으면 아무거나 다 할 수 있게? 그런 논리면, 내가 세계 짱이야.”

“역시 말이 통하지 않는 조선의 무당이군.”

“누가 할 소리를 하고 있는데? 내가 지금 꾹 참고 있는 건 확인할 게 있기 때문이야.”

유달은 중요한 내용이기 잠시 말을 끊고 물었다.

“네놈들이 이 근처의 영혼들을 학살하고 다녔니?”

일본 퇴마사는 바로 대답했다.

“그렇다.”

“대체 왜~.”

길게 늘어지는 유달의 목소리는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미였다.

이를 알 리 없는 일본 퇴마사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대마신의 재림을 막으러 왔다. 그렇지 않다면 이 지저분한 땅에 발을 디딜 리도 없었지. 역시나 미천한 조선의 길거리는 온통 악령 천지가 아니더냐? 그러니까 대마신의 재림이 조선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네놈들을 위해 악령을 처단하는 것뿐이다.”

“응, 그렇구나… 너 이름이 뭐야?”

이는 한국인 통역사가 직접 대답했다.

“미천한 조선의 무당이라도 일본을 대표하는 ‘사대신가(四大神家)’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유달은 못 들어봤지만, 가만히 참고 들었다.

“여기 계신 분은 신풍(神風) 코야마가(家)의 차기 주인이 되실 ‘히테유키’ 님이시다.”

“응~ 히데유키. 아주 싸가지가 바가지야.”

유달은 히데유키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너 방금 대 끊어질 헛소리를 했어. 악령을 처단했다고? 영혼이 이승을 떠도는 건 자연의 이치 중 하나야. 미련의 무게 때문에 잠시 머무는 것일 뿐, 망각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승천하게 된다고. 내 말이 틀렸나?”

히데유키는 유달을 무시하듯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너는 악령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불쌍한 영혼들을 소멸시켰어. 신력 높은 퇴마사란 놈이 악령과 보통 영혼도 구분하지 못했을까? 네놈도 일본에서는 아무 영혼이나 무조건 소멸시키진 않았을 거야. 그렇지?”

“…….”

“그럼 그냥 만만했구나? 미개한 조선이니까, 무슨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 거네. 내 말이 맞지?”

씨익.

히데유키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곧이어 그는 진한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그래서 어쩔 건데?”

유달은 순간적으로 욱하지 않았다.

그는 만만히 쳐다보는 히데유키의 눈빛을 외면하며 신소미와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의 일본 사람이 저렇지는 않지?”

“그렇죠. 아무리 양국 관계가 안 좋다고 해도요, 저렇게 대놓고 깽판 부리지는 않죠.”

“내가 재수가 없는 거야. 꼭 저런 놈들만 걸려. 진짜로 대를 끊어 놓을지 심각하게 고민되는데…….”

신소미가 펄쩍 뛰며 만류했다.

“안 돼요! 저는 경찰이에요. 위원님이 폭력 쓰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요. 이건 심각한 외교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고요.”

“걱정하지 마. 나는 물리적인 폭력은 안 써. 영적인 능력을 지닌 놈이라 신력으로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을 수 있지.”

이어 유달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다가갔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소멸시킨 영을 위해 10년간 반성하며 위령제를 지낼 거냐, 나한테 무자비한 영적인 폭력을 당하고 대가 끊길 거냐?”

“미친 새끼…….”

“오케이, 마지막 기회 차 버리고… 이제 본격적인 실력 행사만 남은 거네.”

히데유키는 마음대로 되겠냐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유달은 건들건들 걷다가 두 발짝 정도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날 원망하지 마라. 네놈이 자초한 일이니까.”

“미개한 조센징 새끼…….”

“이제 선까지 넘으시고, 이래서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수전증으로 만들었구나.”

유달은 살짝 얼굴을 내밀며 짧게 말했다.

“훠이.”

순간, 히데유키는 벌러덩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는 왜 자신이 넘어져 있는지 이해를 못 하는 표정이다.

꼴불견을 보인 민망함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으로 유달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시작인데 쫄기는… 훠이!”

파다다닥.

히데유키는 엉덩방아를 찧은 상태로, 네발로 기어 뒤로 물러났다.

그 속도가 엄청났다.

“훠이~.”

유달이 부드럽게 말해도 마찬가지.

파다다다다닥.

미친 듯이 네발로 기어 뒷걸음치다가 전봇대에 뒤통수가 부딪히고 말았다.

빡!

“크악! 아타마가…….”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하지만 유달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훠이, 훠이.”

“으아아아악~!”

히데유키는 괴성을 지르며 난리를 쳤다.

엄청난 공포를 감당하지 못하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었다.

처절한 비명에도 유달의 연속적인 공격은 계속되었다.

“훠이, 훠이, 훠이, 훠이, 훠이…….”

“크아아악! 야메떼~ 야메떼 구다사이~.”

신소미가 유달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만하라는 뜻이에요.”

“이건 나도 알아.”

“그런데 위원님이 ‘훠이’도 안 하는데, 왜 계속 아프다고 소리치며 난리죠?”

“내가 훠이 몇 번 했지?”

“5번?”

“정답! 내가 입 다물고 딴짓해도, 연달아 공격이 들어가는 거라고”

“어머, 저축도 돼요?”

“나니까 가능하지. 너는 지금 인류 최강의 무당이 신력 대결을 하는 걸 보고 있는 거야. 상대가 너무 약하기는 하지만, 봐두면 도움이 될 거야. 조금 있으면 똥오줌 질질… 잠시만, 훠이, 훠이, 훠이, 훠이…….”

저축한 것이 떨어지자 유달은 바로 공격을 이어 갔다.

“크아아악~ 다스케테 구다사이!”

“이건 무슨 뜻이야?”

“글쎄요? 살려 달려는 뜻 같은데요?”

“헐, 미개한 조센징 어쩌구 하더니, 꿈도 야무지네?”

유달은 대충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히데유키가 거품 물고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다.

보다 못한 통역사가 끼어들었다.

“히데유키 사마!”

그는 몸으로 유달의 앞을 가로막았다.

뜻밖의 방해를 받은 유달이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떨어져… 이건 정당한 대결이야.”

“히데유키 사마는 신풍 코야마가의 주인이 되실 분이다. 이렇게 고통당하는 모습은 내가 용납 못 한다.”

“마지막 경고다. 어서 떨어져.”

“그렇게는 못 한다. 내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히데유키 사마를 보호할 것이다.”

“그래? 알았어…….”

유달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이쯤에서 대결을 끝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갑자기 끼어든 방해꾼을 처리하려는 게 분명했다.

스윽.

유달이 손을 들자, 통역사가 크게 긴장하는 모습이다.

곧이어 유달은 가벼운 손짓과 함께 길게 소리쳤다.

“훠어이~!”

“…….”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긴장했던 통역사는 자신이 온몸을 매만지며 무사함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곧장 뒤돌아 바닥에 쓰려져 있는 히데유키에게 달려갔다.

“히데유키 사마!”

통역사는 정신을 잃은 히데유키의 몸을 흔들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뜨며 의식을 차렸다.

“히데유끼 사마…….”

통역사는 안도하며 깨어나는 그의 얼굴을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바케모노!”

히데유키가 화들짝 놀라 소리치며 통역사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

안면을 강타당한 통역사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히데유키는 벌떡 몸을 일으켜 쓰러진 통역사를 짓밟기 시작했다.

“바케모노! 바케모노! 바케모노!”

팍! 팍! 팍!

통역사는 고통을 참으며 일본어로 소리쳤다.

“히데유키 사마! 저는 괴물이 아닙니다. 제발 진정하십시오. 히데유키 사마!”

그의 간절함 외침에도 히데유키는 광적인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크윽, 제발 히데유키 사마…….”

통역사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반격할 수 없었다.

그는 처절하게 짓밟히며 유달에게 소리쳤다.

“사악한 무당 놈아, 장차 신풍 코야마의 주인이 되실 분께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무슨 짓은 네놈들이 먼저 했지? 그러게 내가 떨어지라고 경고했잖아. 죽고 못 사는 히데유키 사마한테 맞으면 조금 덜 아프지 않아?”

“바케모노! 바케모노! 바케모노~.”

히데유키는 미친 듯이 통역사를 밟아대고,

퍽퍽퍽퍽퍽퍽.

통역사는 악에 받쳐 유달에게 소리쳤다.

“이 조센징 새끼야! 신풍 코야마가를 적으로 두고 무사할 것 같더냐! 언젠가 네놈을 찾아내서 반드시 요절낼 것이다.”

“응~ 나는 명동 번화가 사거리 굿 카페에 항상 있어, 언제라도 찾아와. 뒈지고 싶으면…….”

이어 그는 신소미에게 말했다.

“저 사마라는 놈 아직 벌을 덜 받았지? 내가 열나게 빨리 말할 테니까, 40번 되면 스톱시켜. 훠이, 훠이, 훠이, 훠이, 훠이…….”

얼추 유달이 말한 숫자가 되었을 때다.

“스톱! 죄송해요, 40번이 넘은 것 같은데요.”

“괜찮아, 모자라지만 않으면. 이제 볼일 끝났으니 가자고. 방황하는 영혼도 챙기고.”

그들이 으슥한 골목길을 완전히 벗어났을 때다.

“크아아악! 야메떼~ 야메떼 구다사이~.”

히데유키의 처절한 비명이 또다시 들렸다.

잠시 발길을 멈춘 신소미가 유달에게 크게 허리 숙여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위원님 덕분에 모든 게 잘 해결된 것 같아요. 아주 시원한 복수였고요. 저는 지구대로 돌아갈게요.”

“어딜 가려고?”

덥석.

유달은 그녀의 손목을 강하게 잡았다.

“왜, 왜요?”

“카페에서 무료 봉사해야지? 나하고 보름이가 개고생한 건 해결되지 않았다고.”

“어, 억울해요? 저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시끄러! 노예처럼 부려 줄 테다. 탈출했다가는 훠이가 100번이야.”

“아, 알았어요. 간다고요, 가요. 위원님! 제발 옷이라도 좀 갈아입고요!”

행인들은 유달의 손에 끌려가는 경찰을 이상하게 쳐다봤다.

* * *

이른 저녁 시간.

광진구 쇼핑몰 지하 푸드 코트.

송보름과 장미란 그리고 장미란의 옛 동료였던 강세훈이 한자리에 앉아 있다.

장미란과 송보름은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보름아, 정말 이곳에 리조트 예약 사기범이 있어?”

“저를 믿으세요. 확실히 이곳에 있어요.”

“언제 그놈들을 추적한 거야?”

송보름은 이를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기당한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계속이요.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나 봐요. 돈이 떼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혈압이 극도로 상승하고 밤에 잠도 오지 않더라고요. 아빠가 왜 그렇게 자비 없이 행동했는지 이해하게 되었죠.”

“어떻게 알아낸 거지? 우리는 계속 휴가를 보내고 있었잖아. 어제는 개업 행사 때문에 정신없었고.”

“인터넷에서 사기를 쳤던 놈들이니, 인터넷을 조사해서 알아냈죠. 저한테 영적으로 그런 재주가 있거든요.”

강세훈은 시원한 냉면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아우, 잘 먹었다.”

송보름이 손에 든 햄버거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이제 범인 잡아도 돼요?”

“응, 그러자고.”

강세훈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 반응이다.

인터넷에서 활개 치는 사기꾼을 잡는 건 쉬운 게 아니다.

장미란의 부탁 때문에 억지로 나온 자리였다.

송보름이 휴대폰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범인은 확실히 이 푸드 코트 안에 있어요.”

강세훈이 이빨을 쑤시며 물었다.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고?”

“지금 찾고 있어요. 제가 최후의 터치를 하는 순간, 핸드폰을 보고 엄청나게 놀라는 놈이 있을 거예요. 그놈이 바로 사기꾼이에요.”

“응~ 그렇구나.”

강세훈은 그냥 분위기만 맞춰 주는 수준이다.

“거의 다 됐어요, 거의… 오케이, 내 돈을 사기 친 범인은 과연 누굴까요!”

툭.

마침내 송보름이 최후의 터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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