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98화 (98/183)

98

딱 걸렸어

성황리에 끝난 굿 카페의 오픈 행사.

직원 모두가 지친 모습이다.

유달은 마라톤 풀 코스를 완주한 것처럼 녹초가 되었지만, 뿌듯함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그는 엉금엉금 쓰러질 듯 계산대로 다가왔다.

벌컥벌컥.

차가운 물부터 시원하게 들이켜고, 방금 매출 마감한 장미란에게 물었다.

“어때요? 당연히 최고 기록이지요?”

“네, 굿 카페 역사상 유례없는 매상을 기록했어요.”

“다행이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유달은 모든 걸 다 이루었다는 표정이다.

계산대에 등을 기댄 상태로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임무를 완수하고 장렬히 최후를 마치는 장수의 모습과도 흡사했다.

강성호가 퇴근 준비를 마치고 주방에서 나왔다.

“사장님, 매니저님,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유달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수고했어… 늦었으니까, 택시 타고 가… 미란 씨가 경비 처리해 줄 거야.”

“괜찮습니다, 사장님. 그냥 걸어가도 됩니다.”

유달이 벌떡 몸을 바로 세웠다.

“미쳤어! 집에까지 언제 걸어가려고 그래? 내일도 무지하게 바쁠 거니까, 택시 타고 가라고.”

“사장님, 혹시 저 이사한 거 모르십니까?”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저, 명동 근처 고시원으로 옮겼습니다.”

“언제?”

“한 달 조금 안 됐는데요.”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이사비는 보태 주지 못해도, 작은 집들이 선물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다고. 졸지에 내가 악덕 고용주가 되었잖아?”

장미란이 혀를 차며 나섰다.

“성호 씨가 몇 번이나 말하는 걸 저도 들었거든요. 유달 씨가 습관적으로 까먹은 거죠.”

이어 그녀는 강성호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성호 씨, 오늘 수고 많았어. 그리고 아르바이트는 내일까지 쓸 거야. 퇴근하고 푹 쉬어.”

“알겠습니다. 매니저님.”

강성호는 유달에게 크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제가 마음 편히 직장 다니는 건 여기가 처음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얘가 왜 이래? 부담스럽게… 어서 퇴근해.”

“편히 쉬십시오, 사장님.”

딸랑딸랑.

유달은 문을 열고 나가는 강성호의 뒷모습을 진중히 바라보았다.

“이런 기분은 처음인데요. 이 카페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굉장히 낯선 느낌입니다. 보름이하고만 있을 때는 안 되면 접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이런 게 바로 오너로서의 책임감 같습니다.”

“아주 바람직한 마음가짐이네요. 여기에 쏟아부은 저의 투자금에 대한 책임감도 느껴 주셨으면 좋겠고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솔직히 유달 씨를 처음 봤을 때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어요. 다행히도 제 모험적인 판단이 옳았던 것 같네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좋은 파트너가 되었어요.”

“앞으로도 좋은 파트너로 길이길이 남겠습니다. 어서 들어가 쉬십시오. 여러모로 애 많이 쓰셨습니다.”

“유달 씨도 점 보느라 수고하셨어요. 내일 봐요.”

장미란이 핸드백을 들고 출입문으로 향하려는 때다.

딸랑딸랑.

방울 소리는 들리는데, 문은 열리지 않았다.

순간, 유달의 인상은 구겨지며 한숨 섞인 푸념을 내뱉었다.

“돌아 버리겠네… 영업시간 끝났다고~.”

장미란이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물었다.

“무슨 일 있죠? 오늘 방울 소리만 울리고, 손님이 안 들어온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영혼들이 카페에 들어오는 건가요?”

“별일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가 보기엔 별일이 된 것 같은데요. 보름이는 VIP 룸에서 나오지도 않잖아요?”

“…….”

“얼마나 많은 영혼이 도움을 부탁하는 거예요? 유달 씨도 쉬어야 하니, 저도 힘을 보탤게요.”

유달이 고개 저으며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린 상호 간의 불문율이 있지 않습니까? 이건 영적인 문제입니다. 전적으로 제가 해결할 일이지요. 미란 씨는 퇴근해서 푹 쉬십시오.”

장미란은 남겠다고 고집부리지 않았다.

유달의 표정이 어울리지 않게 진중했기 때문이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파이팅.”

장미란은 나름 귀엽게 인사하고 카페를 나섰다.

“휴~.”

유달의 입에선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이내 그는 미소 짓는 얼굴로 방금 들어온 영혼에게 말했다.

“두리번거릴 필요 없습니다. 아무 자리나 앉으시면 됩니다.”

-여기가 굿 카페 맞지요?

“네, 정확히 찾아오셨습니다. 아주 널찍하지요.”

곧이어 유달이 VIP 룸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나와!”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VIP 룸에 있던 영혼들이 한꺼번에 벽을 통과하여 나왔다.

“소파 하나에 두 명씩, 자리 채워 앉으세요.”

각양각색의 영혼들이 굿 카페를 점령했다.

그 엄청난 수는 넓은 홀을 거의 채울 정도였다.

곧이어 VIP 룸의 열리고,

송보름이 비틀비틀 걸어 나왔다.

그녀는 유달보다도 더 기진맥진한 모습이다.

“이건 미친 짓이에요…….”

“나도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이라고.”

둘은 털썩 빈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약간의 기력을 회복하고, 다시 긴급회의 열었다.

“사장님, 내일도 이러면 우리 죽어요.”

“대체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거냐고?”

“그동안 사장님이 너무 게을렀기 때문이 아닐까요? 미제 사건 해결한다고 싸돌아다녀서, 승천 못 한 영혼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죠.”

“말도 안 되는 소리! 세상에 무당이 나뿐이야? 그리고 여기 있는 대부분의 영혼은 내 도움이 필요 없어? 망각의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승천했을 거야. 그게 가장 이상적인 승천의 방법이라고.”

송보름이 억울한 듯 대꾸했다.

“그러면 힘들게 원혼들의 부탁을 들어줄 필요가 없잖아요. 각자 알아서 승천하라고 모두 내보내면 되겠네요?”

“내가 말했잖아. 굿 카페를 스스로 찾아왔다고! 날 찾아온 영혼들을 어떻게 내쳐? 이건 누군가 나를 골탕 먹이려는 수작이야. 아니, 나를 꼼짝 못 하게 하려는 검은 세력 있을지도 몰라. 내일 나와 함께 수사해 보자고.”

“사장님, 저 내일 약속 있어요.”

유달은 정말인지 의심하는 반응이다.

“무슨 약속?”

“비밀이에요. 매니저 언니도 함께 가야 해요.”

“그걸 왜 지금 말해?”

“비밀을 요하는 거니까, 말 안 했죠? 절대 늦으면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약속이에요. 그러니까 사장님은 내일 재빨리 수사 마치고, 3시까지 돌아오세요.”

“헐… 중요한 약속이라니 어쩔 수 없지. 서둘러 영혼 손님들의 부탁이나 들어주자고. 이제 기운 좀 차렸지?”

“네,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돼요.”

기력을 충전한 유달과 송보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 유달은 팔을 뻗어 카페 전체를 양분했다.

“너는 왼쪽, 나는 오른쪽.”

“알았어요!”

그들은 재빨리 맡은바 구역으로 움직였다.

* * *

정오가 가까워지는 시간.

남산 인근의 으슥한 골목길.

목적 없이 방황하는 영혼의 모습이 보였다.

교통사고를 당한 중년의 회사원인 듯 피 묻은 와이셔츠를 입고, 손에는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는 로봇 청소기처럼 움직였다.

막다른 골목 벽에 부딪히자 바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다 전봇대에 부딪혀 방향을 또 틀고, 맞은편 담장에 부딪혀서 또 방향을 틀면, 다시 막다른 골목과 부딪혔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반복적으로 사각형 모양을 그리며 방황하고 있는 그때.

뚜벅뚜벅.

누군가 그를 향해 다가갔다.

검정 구두에 단정한 제복을 입은 여인이다.

그녀는 영과의 소통이 가능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방황하는 영혼을 불렀다.

“아저씨, 여기서 뭐 하세요?”

그녀의 부름을 듣고 방황하는 영혼이 멈춰 섰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저씨,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그녀가 재차 묻자 방황하는 영혼이 대답했다.

-도망쳐야 해요.

“왜 도망치시는데요?”

-여기는 위험해요, 빨리 도망쳐야 해요.

방황하는 영혼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삼각형을 그리며 같은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저씨, 제가 어디로 갈지 알려 드릴게요.”

방황하는 영혼이 발길을 멈추고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혹시 명동 아세요?”

-알아요.

“명동 번화가 사거리에 굿 카페가 있어요. 거기 가면 카페 사장님이 아저씨를 잘 돌봐줄 거예요. 그리고 장애물에 부딪힐 때마다 방향 바꾸면 안 돼요. 아저씨는 영혼이라 그냥 통과할 수 있어요.”

-맞아요, 저는 죽었어요.

방황하는 영혼은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이에 제복을 입은 여인은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우선 저를 따라오세요. 이 골목을 벗어나서 어떻게 갈지 알려 드릴게요. 제가 가르쳐 주는 방향으로 쭉 직진하면 돼요. 혹시 모르면 다른 영혼에게 물어보고요.”

-고맙습니다.

“사거리 코너 건물 3층이네요. 제가 어디 찾으라고 했죠?”

-굿 카페요.

“맞아요, 굿 카페. 혹시 모르니까, 제가 보냈다는 말은 하지 말고요.”

-알겠습니다.

그들이 골목 입구에 다다랐을 때다.

기다렸다는 듯 유달이 튀어나와 골목을 막아섰다.

“딱 걸렸어… 독학 무당.”

“헉!”

놀란 신소미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반응이다.

유달이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거리를 좁혔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냐? 근본 없는 무당은 상대하는 게 아니었어.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개고생했는지 알아? 내 눈에 다크서클 보이지.”

“저, 저는 불쌍한 영혼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나한테 떠넘기는 게 돕는 거냐? 불쌍한 영혼들 승천시키고 싶으면, 네가 직접 하란 말이다.”

“그, 그게 아니고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떤 경우도 민폐를 끼치면 안 되는 거다. 네가 보낸 결정 장애 영혼은 아직도 승천 못 하고 있어. 혹시 내 영적인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시샘하는 거냐? 지구정복도 가능할 것 같은 능력이 미치도록 얄미웠던 거지.”

“정말 그게 아니에요. 제가 어떤 사정인지 설명할게요.”

“필요 없어!”

유달은 신소미의 손을 잡고 거칠게 잡아끌었다.

“너도 내가 당한 만큼 고생 좀 해야 할 거다.”

신소미는 끌려가지 않으려 애쓰며 물었다.

“위원님, 어디로 데려가게요?”

“당연히 굿 카페지~ 나하고 보름이가 고생한 시간만큼 열심히 일해. 마침 잘됐네? 오늘 보름이와 미란 씨가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했거든. 입에 단내가 나도록 부려먹어 주마.”

신소미는 더욱 강렬히 저항했다.

“위원님, 저는 경찰이에요. 국가공무원법 제64조, 공무원은 공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한다. 잘못하면 저 잘린단 말이에요.”

“영리 목적? 누가 돈 준대? 결자해지 차원에서 무료 봉사하라고.”

“위원님, 정말 어쩔 수 없었어요. 어떤 놈들이 영혼들이 무자비하게 소멸시키고 있다니까요!”

순간, 유달이 멈칫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남산 주변의 혼령들이 학살당하고 있어요. 제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요. 그래서 이 주위의 영혼들을 가장 안전한 위원님의 카페로 보낸 거예요.”

유달의 언성이 극렬하게 높아졌다.

“어떤 미친 새끼들이 그런 짓을 벌여!”

“제가 지금 조사 중이에요. 그들의 정체를 확인하고 장 팀장님께 도움을 청하려고 했어요.”

“어떻게 생긴 놈들이야?”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둘인데요… 지금 위원님 뒤에 있어요.”

“!”

바로 유달이 고개를 돌렸다.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쓴 30대 남자 둘이다.

그들은 골목 안을 턱짓하며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데, 한국말이 아니었다.

이에 유달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니혼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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