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95화 (95/183)

95

장군

유달은 펜션 주인이 사는 집으로 향했다.

그는 벨을 누르지 않고 노크를 했다.

똑똑.

“형님, 접니다.”

주인 남자는 조용한 밤에 글을 쓴다고 했다.

언제라도 술 생각나면 찾아와서 노크하라는 언질이 있었다.

끼익.

주인 남자는 문을 열고 반색했다.

“드디어 왔군. 어서 들어오게. 그러지 않아도 글이 꽉꽉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어. 안은 좀 덥나? 안줏거리와 술을 챙겨서 시원하게 밖에서 먹자고.”

“저는 조용히 형님과 커피나 한잔하려고요.”

“커피라… 뭐, 그러지. 어서 들어오게.”

유달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먹고 수다를 떨었을 때의 활기찬 분위기가 아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듯 적막감이 들 정도로 조용했다.

어두컴컴한 조종 아래, 글 쓰는 작업을 위한 노트북만 켜져 있었다.

“사모님은요?”

주인 남자는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며 대답했다.

“마누라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 민식이와 같이 위층에서 자고 있어.”

“글은 잘 써지십니까?”

“억지로라도 써야지. 처자식 먹여 살리려면…….”

“따님분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아직은 잘 견디고 있어.”

지금은 나빠진 상태라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여기가 따님이 지내는 방인가요?”

유달은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방 앞에서 물었다.

병원에서 쓰는 침대와 장비들이 보였다.

“응, 맞아… 내가 글 쓸 때는 일부러 열어 둬. 일종의 자극제라고나 할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딴짓하지 않고, 글만 쓰게 하는 효과가 있지.”

“그렇군요.”

곧이어 주인 남자가 믹스커피 두 잔을 가져왔다.

“얼음 타 줄까?”

“그냥 뜨거운 것도 괜찮습니다.”

둘은 환하게 불을 켠 식탁에 앉아 담소를 나눴다.

유달은 주인 남자의 말에 반사적으로 대꾸하며, 방문이 열린 쪽으로 계속 눈길을 주는 때다.

“우와!”

주인 남자가 갑자기 소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왜요? 형님.”

“글 쓰다가 막혔던 부분이 생각났어. 아우님, 미안. 이때 재빨리 쓰지 않으면 평생 안 풀릴 것 같아.”

“저는 괜찮습니다.”

주인 남자는 황급히 컴퓨터가 켜진 책상으로 뛰어갔다.

이는 유달도 원하는 바다.

그 역시 생각나는 게 있었다.

악령 여인과 최후의 대결을 펼치기 직전, 갑자기 마음을 바꿨을 때의 기억이다.

그때 유달은 그녀를 소멸시키려 단단히 작정했었다.

송보름의 몸을 강탈하여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상태에서, 술기운까지 보태졌다.

유달의 몸신이 악령 여인을 덮치면 끝나는 상황.

그의 머릿속에 울리는 듯한 음성이 들렸다.

-아저씨, 그 아줌마를 죽이면 안 돼요.

술 먹어서 환청까지 들리나 했는데, 아니다.

-무당 아저씨, 그 아줌마를 승천시켜 주세요.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 확실하게 유달에게만 들렸다.

그는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야?’

유달은 정신을 집중하고 주변을 살폈다.

괴이한 기운에 휩싸인 악령 여인 뒤쪽.

주인 식구들이 사는 집, 1층 창문 안쪽에 누군가 보였다.

산 사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1·2학년 정도의 남자아이 영혼이 창문에 바싹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너무도 순순한 기운이 느껴지는 선령이다.

유달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악령이 지배하는 땅에 선령이 있다니?’

거기에 더해 꼬마 선령은 악령을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무당 아저씨, 악령 아줌마를 꼭 승천시켜 주세요. 절대 죽이면 안 돼요.

유달은 선령을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는 송보름의 말처럼 절대적인 게 아니다.

그의 능력을 벗어난,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는 들어줄 수 없었다.

유달은 단호히 고개 저었다.

그러자 꼬마 신령이 태도를 바꿨다.

-만약 제 말을 듣지 않으면, 이 펜션에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돼요. 그리고 아저씨의 휴가는 최악으로 끝나게 되고, 다시는 휴가 떠날 엄두도 내지 못할 거예요.

‘저것이 어디서 악담을!’

유달은 꿀밤을 먹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술기운 때문에 잠시 본분을 망각했는데, 선령들이 하는 행동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타임!”

유달은 어쩔 수 없이 대결을 중단해야 했다.

* * *

타닥, 타닥, 타닥, 타닥…….

주인 남자는 머릿속에 떠오른 내용이 사라질까,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스윽.

유달이 식탁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열린 문을 향해 다가가며 조용히 말했다.

“다 기억났으니까, 어서 나와.”

꼬마 선령이 주인 부부의 딸 방에서 조심스럽게 나왔다.

“악령 아줌마는 없지요?”

“엄청 겁이 많은 선령이네?”

유달은 놀리듯 말했지만, 실상은 아니다.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는 악령을 피해 도망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저 그렇게 겁쟁이 아니에요. 제 별명이 장군이었다고요. 권 장군… 그런데 악령 아줌마는 솔직히 너무 무서워요.”

유달은 활짝 열린 방문 옆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여기엔 왜 있는 거지?”

“저는 친구 만나러 왔었어요. 효주요. 못된 병과 싸워서 지지 말라고요.”

“효주는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잖아? 너는 왜 따라가지 않고, 그 애 방에 숨어 있는 거냐?”

“저는 효주를 지켜 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효주가 돌아왔을 때 안전해야 하잖아요. 악령 아줌마를 물리치려 했는데… 진짜 너무 무서워요. 그렇다고 도망치면 안 되는 거죠. 남아 일언은 중천금이잖아요. 여기에 숨어서 저를 도와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유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꼬마 선령의 무모함이 예전 자신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우리 용감한 꼬마 선령 이름은 뭐지?”

“제 이름은 권누리예요.”

“권누리, 좋은 이름이네.”

유달이 중얼거리는 것을 주인 남자가 들었다.

“권누리? 아우님이 그 아이를 어떻게 알아?”

그는 목이 말랐는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며 물었다.

“저는 옆집에 살던 꼬마가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아주 말썽꾸러기였지요. 형님이 아는 권누리는 누굽니까?”

“응… 효주가 입원했던 병원에서 만났던 아이야. 치료받는 게 힘들었을 텐데도, 무한 긍정 에너지가 뿜어지는 아이였다고. 못 된 병과 싸워서 이겨 낼 수 있다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용기를 북돋아 주었지. 병원 사람들이 그 아이를 권 장군이라고 불렸었어.”

“그렇군요…….”

“우리 효주하고도 아주 친하게 지냈었지. 그렇게 갈 아이가 아니었는데… 효주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 뻥뻥 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그 아이 생각하니까 갑자기 또 술 당기네… 아니, 아니, 막힌 부분부터 얼른 해결해야지.”

주인 남자는 다시 컴퓨터 책상에 앉았다.

유달이 권누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훌륭한데. 진짜 장군이야.”

권누리는 이런 유달이 칭찬이 부담스러운 반응이다.

“아니요, 사실 마지막에 좀 쿨하지 못했어요. 의사 선생님에게 살려 달라고 막 울었어요.”

“너무 당연한 거야. 그런데 왜 악령 아줌마의 승천을 부탁했어? 효주를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없애 버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 아줌마가 무서운데, 불쌍하기도 해요. 아들을 잃고 우는 모습이 보였어요. 꼭 우리 엄마처럼 울었어요. 그리고 효주네 가족을 괴롭히지도 않았고요.”

유달이 의아한 듯 말했다.

“정말 악령의 과거 모습이 보였어?”

“네, 저는 보였어요. 왜요?”

“일반적인 선령은 그런 능력이 없거든. 나도 가능하긴 한데, 원혼이 간절히 그걸 보여 주고 싶을 때만 가능하다고. 마기가 가득한 악령의 경우엔 누구도 불가능한데…….”

이어 유달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혹시 신령(神靈)이니?”

“신령이 뭐예요?”

“선령 중에는 영적으로 특출난 존재들이 있지. 자세한 설명은 복잡해서 생략. 영혼의 과거를 보는 거 말고, 또 다른 능력도 있지?”

“예… 저는 동물들과 교감할 수 있어요. 여기에 숨어 있으면서 저를 도와줄 무당을 찾아 달라고 까마귀에게 부탁했어요. 그런데 아직 안 돌아왔어요.”

유달은 즉각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그놈은 교통사고 당했어.”

“예?”

“까마귀는 신경 쓰지 말고… 너 미래도 볼 수 있는 거지? 악령 여자를 살려야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고, 그래야 효주의 펜션도 문 안 닫게 되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잖아?”

“아닌데요? 저는 그냥 악령 아줌마가 불쌍해서…….”

“어허, 아저씨한테는 사실대로 말해도 괜찮아. 혹시 6자리 번호 안 보이니? 탁구공 같은 거에 쓰인 건데 말이야.”

유달이 집요하게 캐묻는 그때.

권누리가 창문 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으악, 악령 아줌마요!”

유달이 방 안을 쳐다보니 진짜다.

B동 여인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달이 창가로 걸어가서 그녀에게 물었다.

“왜 훔쳐보는 거지?”

“얼마 전부터 이곳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어. 무언가 했더니 꼬마 선령이었네.”

“언제부터 보고 있으셨나?”

“처음부터.”

유달은 차라리 잘됐다는 반응이다.

“그럼 우리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다 들었겠네. 여기 있는 꼬마 선령의 마음이 너무 감동적이지 않아? 그쪽이 자발적으로 승천만 해 주면 모두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데?”

“나는 그럴 마음 없어.”

“매정하네…….”

이내 그녀는 뒤돌아서며 말했다.

“날로 먹으려는 심보 고쳐. 약속은 약속이니까, 네놈 능력으로 나를 승천시켜.”

그녀의 마음은 확고한 듯,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 * *

유달과 송보름은 해가 뜨자마자 수영장을 독차지했다.

강성호는 위층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고, 장미란은 휴가 중에도 자신의 미제 사건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

유달과 송보름은 동그란 튜브에 엉덩이를 넣고 떠다니며 대화를 나눴다.

송보름이 고개 돌리며 물었다.

“진주 언니는 언제 승천시킬 거예요?”

“그게 쉬운 게 아니다. 자식 잃은 아픔만 위로해 주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B동 여자는 인생 자체가 한이야. 남편에게 버림받고, 무당이라 천대받고, 오랫동안 쌓였던 한이 한꺼번에 풀릴 리 없지. 내 능력으로는 부족해.”

“그럼 항복을 선언하는 거예요?”

“무슨 소리! 허이쿠…….”

유달은 강력히 반발하다, 하마터면 물에 빠질 뻔했다.

그는 재빨리 몸 중심을 잡고 말했다.

“내기 조건이 있잖아? 휴가 기간 안에 그녀를 승천시켜야 한다고. 반대로 해석하면 말이지, 내 휴가가 끝나지 않으면, 내기도 끝나지 않는 거야.”

“진주 언니를 승천시킬 때까지 휴가를 즐기겠다고요?”

“어차피 이 펜션은 손님도 없고, 나 없이 카페도 잘 돌아가잖아. 무엇보다 내 인생에 패배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송보름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완전히 인디언 기우제네요?”

“그게 뭔데?”

“인디언이 기후제를 드리면 100% 비가 내린대요.”

“말도 안 되지! 세상에 그렇게 기우제가 어디 있어? 아무리 뛰어난 주술사도 그건 불가능하다고.”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죠. 기후제를 해서 비가 내리는 게 아니라, 비가 올 때까지 기후제를 드린다고요.”

유달은 이제야 그녀의 말뜻을 이해했다.

“아, 그런 의미였어? 꾸준히 학원 다니더니, 나보다 더 유식해졌네?”

“그런데 사장님은 인디언 기후제보다 더 가능성 없어요. 휴가를 아무리 연장한다고, 사장님의 영적인 능력이 늘어날 리 없잖아요.”

“걱정하지 마. 나도 기다리는 게 있단 말이지.”

유달이 태평하게 물장구치는 때다.

부르르릉.

펜션 안으로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섰다.

곧이어 차가 멈추고, 제일 먼저 내리는 이는 뒷자리의 조금순이었다.

“아이고, 조용해서 좋네.”

덜컹, 덜컹.

운전석과 조수석에선 무속계의 군기반장 양순자와 별신굿의 대가 박명자가 동시에 내렸다.

무속계의 원로 3인방이 효민 펜션을 찾은 것이다.

유달과 송보름은 인사를 하기 위해 튜브 위에서 황급히 손을 저었다.

“사장님이 오시라고 했어요?”

“응, 어젯밤 B동 여자는 만났는데, 내 능력으로 승천시키라고 깔보듯이 말하더라고. 섭외도 능력이지. 안 그래?”

“그렇지요.”

유달과 송보름은 열심히 손을 저어 수영장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서둘러 비치 타월을 걸치고, 원로 3인방이 있는 차량 쪽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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