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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확인
숙소 거실엔 장미란과 송보름이 보였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장미란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우리 위에 있는 손님들 말입니다… 아무래도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휴대폰을 쥐고 있던 송보름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정말이에요?”
“B동 그 여자가 나한테 경고해 줬다고. 악령은 암울한 기운을 잘 느끼니,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지.”
송보름이 장미란에게 물었다.
“어쩌지요?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요?”
“어떻게 알았냐고 하면 뭐라고 그럴 건데?”
“2층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 들었다고, 대충 둘러대면 되잖아요? 일단 경찰이 나와서 조사하면 오늘 벌어질 극단적 선택은 포기할 거 아니에요?”
“일시적인 충동이었다면 그냥 포기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단단히 마음먹고 작정한 것이라면, 다른 곳으로 가서 실행할 수 있어. 그들의 잘못된 마음을 돌려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유달은 몹시 화가 나는 모양이다.
“하이, 새끼들… 왜 하필 여기서 죽으려고 그래? 지들이야 목숨 끊으면 끝이지만 펜션 주인은 무슨 죈데? 아주머니가 손님 3팀이나 받았다고 얼마나 좋아하는데, 내가 악령을 쫓아내도 결국엔 문 닫게 되는 거잖아?”
장미란이 질책하듯 말했다.
“유달 씨, 극한의 상황까지 몰린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죄송합니다. 제가 감정이 격해져 험한 소리가 나온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할 것 같습니까? 천만에요! 살아서든 죽어서든 민폐를 끼치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유달 씨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작가 형님에게 말해서 멱살 잡고 쫓아내고 싶지만… 제가 또 마음이 약하지 않습니까? 2층에 올라가서 말로 조용히 해결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하려고요?”
“일단 믿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제가 실패하면 미란 씨가 나서십시오. 그런데 성호는 어디 갔지요?”
송보름이 대답했다.
“성호 오빠는 피곤하다고 먼저 자러 들어갔어요.”
“지금이 몇 신데 벌써 자? 후딱 깨워. 극단적 선택을 막는 데 쓰일 첫 번째 카드니까.”
“알았어요.”
송보름은 서둘러 강성호가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잘 자고 있던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와야 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사장님…….”
“요리 잘하지? 맛있는 것 좀 만들어 봐.”
“네, 사장님.”
강성호는 불평하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냉장고 문을 열어 재료를 살피며 물었다.
“특별히 드시고 싶으신 거 있습니까?”
“가장 자신 있는 요리로 만들어. 죽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질 정도로 맛있게.”
강성호는 방에서 자던 중이라 거실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듣지 못했다.
“제가 그 정도 뛰어난 요리사는 아니고요. 최대한 맛있게는 만들어 보겠습니다.”
통통통통통통.
그는 능숙한 칼질로 음식 재료를 썰기 시작했다.
* * *
달무리 진 여름 밤하늘.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효민 펜션 A동 2층.
딩동, 딩동.
유달은 초인종을 누르고, 대꾸가 있기를 기다렸다.
그의 옆에는 강성호가 음식이 담긴 그릇을 들고 나란히 서 있었다.
“사장님, 자고 있는데 괜히 찾아온 건 아닐까요?”
“이놈들 지금 자면 영원히 못 일어나.”
“예?”
유달은 일부러 사실을 숨겼다.
강성호는 남을 속이는 성격이 못되어 계획을 망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런 게 있어. 너는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예, 사장님. 저는 그게 제일 편합니다.”
방문은 열리지 않고,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렸다.
경계심이 느껴지는 젊은 여자의 음성이다.
-누구… 세요?
유달이 초인종 카메라를 보며 대답했다.
“아래층에서 왔습니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야식을 만들었는데, 너무 양이 많아서 나눠 드리려고 왔습니다.”
툭.
유달이 강성호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에 강성호는 손에 들고 있는 음식 그릇이 잘 보이게 번쩍 들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지금 막 잠들려는 참이거든요. 성의는 감사하지만 도로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잠시만요!”
유달은 황급히 대화가 끊기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는 곤란한 상황에 빠진 듯 머리를 긁적이면 말했다.
“실은 말이지요, 휴가 온 제 직원 중 하나가 염려증이 심합니다. 안에 계신 분들이 현상 수배범과 똑같다고 해서요.”
-예~?
안에서만 어이없는 게 아니다.
강성호 역시 그게 무슨 막말이냐는 표정이다.
유달은 시치미 뚝 떼고 말을 이었다.
“저도 참 난감한데요. 그 직원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걸 말류하고 올라왔습니다. 제가 그냥 내려가면 바로 신고할 게 뻔합니다. 그러면 경찰 출동하고, 서로 얼굴 붉히며 좋을 게 없겠지요. 죄송하지만, 문을 열어 주시고 얼굴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정말 어이가 없네요.
“저도 어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 직원이 병적으로 염려증이 심해서요. 가게 건물주 딸이라 자르지도 못하고, 오죽하면 제가 음식까지 만들어서 올라왔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안에서 자기들끼리 의논하는지 한동안 응답이 없다.
강성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그냥 내 말만 따라. 나도 이렇게 무리수를 두고 싶진 않았다고. 나중에 자세히 말해 줄게.”
“알겠습니다. 사장님.”
잠시 후, 2층 문이 열렸다.
그들 역시 경찰이 오는 걸 원치 않는 모양이다.
끼이익.
스피커 목소리의 여자가 반쯤 문을 열고 말했다.
20대 후반의 서구적인 미인형 얼굴이다.
“제가 현상 수배범하고 똑같이 생겼다고요?”
“당연히 화낼 만도 하신데, 제가 아니라 제 여직원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두 분 더 계시지 않나요?”
유달은 문 안쪽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수영하다가 그들이 펜션에 도착하는 걸 얼핏 봤는데, 여자 둘에 남자 한 명이었다.
서구적인 미인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우리 일행이 현상 수배범을 닮았다고 주장하는 여직원은 어디 있지요?”
“밑에요. 무서워서 올라오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확인하게요? 현상 수배범들의 사진이라도 가지고 오셨어요?”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아주 용한 무당이라 척 보면 범죄자인지 아닌지 바로 확인이 가능하지요.”
“뭐라고요?”
그녀는 현상 수배범으로 의심받을 때보다 더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이에 유달은 실력으로 자신의 말을 입증했다.
“우와, 부모 덕과는 완전히 담쌓은 상이네? 나처럼 남의 손에 키워졌을 거야. 가까운 인척일 수도 있고, 보육원일 수도 있고.”
“!”
“물장사로 돈 좀 벌겠지만, 인정이 너무 많은 게 탈이야. 주변 사람들에게 금전적으로 떼이기 쉽지. 안타깝게도 남자 복은 별로… 천상 배필은 서른 이후에나 만나겠네. 이제 들어가도 되겠는지?”
그녀는 귀신에 홀린 듯 대답했다.
“네, 들어오세요…….”
“아가씨 이름이?”
“현주요. 공현주…….”
“고마워요, 현주 씨.”
유달과 강성호가 들어서자 거실에 있던 남녀가 흠칫했다.
그들은 왜 들어오게 허락했는지, 공현주를 노려보며 눈으로 핀잔 주었다.
유달은 깜짝 놀란 듯 과장되게 소리쳤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럴 수가!”
공현주도 덩달아 놀라며 물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유달은 그녀의 일행 남자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만약 저 남자와 애인 사이라면 당장 헤어져! 둘은 천하의 악연이야. 옷깃만 스쳐도, 둘 다 객사할 상이라고!”
30대의 회사원처럼 보이는 남자는 상당히 당황했다.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희 둘은 아무런 사이도 아닙니다. 그냥 SNS 소모임에서 알게 된 사이지요.”
“다시는 소모임도 하지 마. 서로에게 안 좋은 기운만 끼칠 뿐이니까… 으악! 또 이건 뭐야?”
유달은 나머지 한 여자를 보고도 기겁하는 반응을 보였다.
40대 초반의 평범한 주부로 보이는 여자였다.
“왜, 왜요?”
“아주 뒤늦게 고진감래, 구국의 영광을 얻을 상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아주 귀한 손자를 얻을 겁니다. 삐뚤어지지 않게 잘 키우면, 세계 위인전에 실릴 수도 있지요.”
이어 유달은 문제의 3인을 향해 말했다.
“일단 앉으시지요. 이것도 인연이니 제가 여러분들의 운명을 상세히 봐 드리지요.”
유달이 먼저 앉자, 강성호는 손에 든 음식 그릇을 거실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주방에서 숟가락과 젓가락까지 챙겨, 곧바로 먹을 수 있게 세팅을 끝냈다.
유달은 어정쩡히 서 있는 3인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매우 운이 좋으십니다. 제가 상세히 운명을 봐 주는 경우는 결단코 흔치 않습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들이 돈다발을 싸 들고 와도, 제가 싫다고 합니다. 전혀 안 믿는 눈치네요?”
당연히 3인은 허풍이 너무 심하다는 반응이다.
이에 유달은 회사원에게 물었다.
“보아하니 금융 쪽에 있을 것 같은데, 골라 봐?”
“뭘 고르라는 것인지…….”
“태황 그룹과 IT 기업으로 유명한 해피넷. 둘 다 대한민국 굴지의 그룹이지? 내가 누구와 통화했으면 좋겠어?”
“정말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일단은 골라 보라고.”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태황 그룹이 좋겠군요.”
“헐, 나는 그쪽 싫어하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내가 바로 태황가 사모와 연락할 수 있지만, 그러면 뻥이라고 의심할 것 아니야? 혹시 태황가의 사택 번호를 알 수 있나?”
“그 정도 능력은 됩니다.”
회사원 남자는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태황가의 사택 전화번호가 쓰인 메시지 답장을 유달에게 내밀었다.
“여기로 하면 됩니다.”
“이 전화로 바로 걸면 되겠네.”
유달은 답장의 번호를 터치하여 통화를 시도했다.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스피커 모드로 바꾼 상태.
-여보세요? 한남동입니다.
태황가에서 일하는 도우미 아줌마의 목소리였다.
“사주 카페 사장 유달입니다. 사모님 계십니까?”
-네, 계십니다.
“제가 통화를 원한다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니요, 바로 전화를 받는다고 하십니다.
곧이어 배연주의 도도한 음성이 들렸다.
-어쩐 일로 전화를 했지?
“아드님의 옥바라지는 잘 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그런 안부 주고받을 사이는 아닐 텐데.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제가 만약 진심으로 사모님의 운명을 봐 드린다면, 얼마를 주시겠습니까?”
배연주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얼마를 원해? 말하는 금액의 두 배를 주지.
“역시 배포가 크시군요.”
-그런데 정말 그럴 마음은 있나?
“당연히 전혀 없지요. 심심해서 농담한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유달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놀라움과 황당함이 뒤섞인 표정을 짓는 3인을 보며 말했다.
“어때? 이 정도면 내가 얼마나 대단한 무당인지 증명되었나? 누구부터 봐주지…… 빨리 앉는 순서대로 봐 줄까?”
파다닥.
그들은 경쟁하듯 동시에 유달 주변에 앉았다.
“공현주 1등.”
“앗싸!”
“아줌마 2등, 회사원 3등,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음식 먹으면서 하자고.”
이어 유달은 메모지를 그들에게 나눠 주었다.
“여기다 이름하고, 생년월일 적어. 가능하면 태어난 시간까지. 자세히 적을수록 사주팔자도 정확히 잘 나와.”
유달은 휴가 때도 사주를 적는 종이를 다녔다.
* * *
숙연해진 2층 분위기.
유달은 순서대로 그들의 사주 관상을 보았다.
당연히 좋은 팔자는 아니다.
암울한 기운에 유달의 마음도 답답해질 정도였다.
이에 그는 한 가지 게임을 제안했다.
“누가 제일 불쌍해, 게임이야. 자기 처지를 솔직히 털어놓고 말해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1등 하는 거야.”
극단적 상황에 몰린 셋은 모두 자신(?) 있는 표정이다.
하지만 게임의 우승자는 강성호였다.
공현주가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어떻게 그러고 살아요? 우울증 같은 거 걸리지 않았어요?”
“저는 그런 거 걸릴 시간도 없이 열심히 살았습니다.”
“타임!”
유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잠시 볼일 보고 올 테니까. 이야기 나누고 있어.”
유달은 밖으로 나와 1층으로 내려왔다.
장미란과 송보름이 테라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의자에서 일어난 장미란이 물었다.
“어때요?”
“글쎄요, 자신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다면 미치도록 죽고 싶은 건 아닌 모양입니다. 오늘은 괜찮을 것 같은데, 내일은 또 모르죠. 여기, 위에 있는 세 명의 생년월일과 이름입니다. 이제부턴 미란 씨가 알아서 하십시오.”
유달은 그들의 사주와 이름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고마워요. 제 후배가 자살 예방 센터에 있어요. 그쪽에 전달해서 조언을 구할게요.”
“그렇죠. 뭐든 전문가를 통하는 게 낫죠.”
송보름의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장님, 저 방금 소름 돋았어요.”
“쓸데없이 왜 그런 게 돋아?”
“만약 사장님이 취했을 때 악령을 소멸시켰으면,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없었잖아요? 그러면 이 펜션도 문 닫고, 사장님 휴가도 최악으로 끝나는 거였죠. 결국은 사장님이 악령을 살려 둬서 이 엄청난 액운을 막은 거 아니에요.”
장미란이 말했다.
“유달 씨가 이를 예측하고 살려 준 거 아닌가요?”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 저는 앞날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운이 좋았던 건가요?”
“당연히 저는 운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게 말이지요. 술까지 먹고, 열까지 받은 상태에서 내가 먼저 꼬랑지를 내렸다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이성적인 놈이 아니거든요?”
이어 그는 송보름에게 물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일단은 저지르고 후회하는 성격인데? 누가 말린다고 들을 내가 아니었다고.”
“그렇다면 한 가지밖에 없지 않아요?”
“뭐?”
“사장님은 선령의 부탁을 거절 못 하잖아요. 아무리 술에 취해 정신이 없어도 말이지요.”
“선령이라……!”
갑자기 유달이 테라스 계단을 내려가 앞마당으로 걸어갔다.
“어디 가요?”
“긴급히 확인해 볼 게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