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93화 (93/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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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의 경고

끼익.

바로 문이 열리고,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유달이 방문을 예상했는지, 들어오라는 고갯짓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A동과 거의 흡사한 구조다.

유달은 자기 숙소처럼 편하게 소파에 앉았다.

“누굴 꼬시려고 그리 예쁘게 현신하셨나?”

악령 여인은 거실 중앙에 선 상태로 대답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다른 사람들이 호감을 느낄 수 있는 외모가 낫겠다고 생각했지.”

송보름은 이곳을 찾아온 목적을 잃지 않았다.

그들 역시 악령 여인의 호감을 사는 게 가장 중요했다.

“너무 잘 어울려요, 언니. 요즘은 그렇게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느낌이 걸크러쉬로 인정받아요.”

“어제 그 여학생이네? 강제로 몸을 차지했던 건 미안해. 영기가 너무 강해서 퇴마사로 착각했어.”

“무작정 쳐들어간 저에게도 잘못이 있지요. 저는 송보름이라고 해요.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어떻게 불러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잠시 멍한 기색을 보이다가 대답했다.

“진주…….”

“예?”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던 것 같아.”

“저도 진주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요. 그래도 되나요?”

“응, 괜찮아.”

진주라고 불렸던 여인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받은 만큼 그대로 되돌려 주는 성격이다.

상대가 상냥하면 그녀 역시 상냥하게 대했고, 상대가 까칠하게 굴면 그녀 역시 똑같이 행동했다.

진주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유달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찾아왔지?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니… 내기를 취소라도 하고 싶은 건가?”

“그럴 리가 있나? 남아일언은 중천금, 나는 한번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무당이야.”

그는 하려 했던 말과 전혀 다른 대답이 튀어나왔다.

송보름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찾아온 목적은 그쪽이 승천 준비를 잘 하고 있나 확인하기 위함이지. 그쪽이 승천하기 싫다고 해도 내가 안 받아 줄 거야.”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인데, 무슨 이유로 나를 승천시키겠다는 것이지? 네놈에게 이득이 되는 게 전혀 없을 텐데.”

그건 유달 자신이 제일 궁금해했다.

무슨 이유로 그런 일방적으로 손해나는 내기를 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승에 남겠다는 악령을 승천시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설사 고생하여 성공한다고 해도 아무 득이 되는 게 없었다.

유달은 최대한 좋게 꾸며서 대답했다.

“내가 원래 마음이 태평양 같은 무당이야. 악령이면서도 사납지 않고, 승천의 기회가 남았기에 선심 쓰는 것이지. 나를 만난 걸 일생일대의 행운인지 알라고. 할 말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지.”

“잘 있어요, 진주 언니.”

유달과 송보름이 그녀의 숙소에 머문 시간은 짧았다.

그들은 아무 소득 없이 B동 건물을 벗어났다.

송보름은 아쉬움에 유달을 책망하여 말했다.

“그 성질머리 좀 죽이면 안 돼요? 누구는 좋아서 언니, 언니 하고 살랑거리는 줄 알아요? 승천을 시키려면 여자 악령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하잖아요?”

“천성이야…… 죽어도 못 고쳐.”

“얻은 소득이라고는 고작 진주라는 이름뿐이네요. 이를 가지고 파고들면 뭔가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미치겠네, 어쩌다가 내 휴가가 추리 극장이 되었냐고? 이게 다 누구 때문일까?”

송보름은 유달의 따가운 시선을 외면했다.

“사장님이 술만 안 먹었어도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다고요. 그런데 말이죠, 어떻게 저 언니는 악령인데 선령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신령(神靈)처럼 현신까지 할 수 있는 거죠?”

“매우 뛰어난 영적 능력을 지닌 무당이 죽으면 그럴 수도 있어. 내가 마을에서 얻게 된 정본데, 펜션이 들어서기 전에 이곳엔 무당이 살았었데.”

“대박 정보! 우린 이제 그녀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어요.”

“어떻게?”

“사장님의 이모님께 물어보면 되잖아요? 신령화 될 정도로 영기가 뛰어났던 무당이 흔하겠어요?”

유달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난 지금 휴가 중이야? 언제 이모가 있는 신당까지 갔다 오라는 거냐고?”

“휴대폰 하면 되잖아요?”

“휴대폰?”

“저번에 이모님께 휴대폰 사 드렸잖아요? 그것도 기억 안 나요?”

유달은 이제야 생각난 듯했다.

“맞다! 이모한테는 휴대폰이 있어. 간단히 전화 한 통이면 끝나는 거야?”

“우와~ 정말 불효자다. 휴대폰만 사 드리면 뭐 해요. 그동안 안부 전화 한 통도 안 했어요?”

“무슨 소리! 이모가 통화료 많아 나온다고 아주 특별한 일 아니면 전화하지 말했단 말이야.”

“음성 무제한이잖아요.”

“시끄러! 이럴 것은 예측하고, 과거의 내가 이모한테 휴대폰을 떠안겼던 거야. 우하하하하.”

“점심 먹고, 바로 통화해 봐요.”

“그래야지. 이제야 좀 일이 풀리네.”

유달과 송보름이 흐뭇한 반응을 보이는 때다.

펜션 부부의 아들이 밖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송보름이 그 아이를 불렀다.

“민식아, 어디 가니?”

효민 펜션은 주인 부부의 딸과 아들, 효주와 민식이의 이름에서 따왔다.

“손님이 또 온다고 해서 꽃 따러 가요.”

“그렇구나?”

“엄마 아빠가 너무 좋아해요. 하루 자고 도망치지 않은 손님은 누나네가 처음이에요. 아주 예쁜 누나도 손님으로 들어왔고요. 지금 예약한 손님까지 오면요, 방이 세 개나 나가는 거예요. 엄마는 너무 좋아서 아빠한테 뽀뽀까지 했어요.”

“그래……!”

생각 없이 대답했던 송보름의 눈이 커졌다.

뭔가 중요한 게 생각난 듯한 반응이다.

유달도 마찬가지.

“보름아, 방금 방이 세 개 나갔다고 했지?”

“맞아요.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오, 세 개의 방이 나가야 열리는 궁극의 시설. 그것은 바로…….”

송보름은 뒷말을 길게 늘였고,

눈이 마주친 둘이 동시에 대답했다.

“수영장!”

“수영장!”

효민 펜션에는 괜찮은 야외 수영장이 있다.

그러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펜션 손님이 3팀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유달은 어린아이처럼 들뜬 모습이다.

“드디어 네가 사 준 수영복을 입을 수 있게 됐어! 멋진 폼으로 수영장 물살을 갈라 줘야, 진정으로 여름 휴가를 보냈다고 할 수 있는 거야.”

“동감이에요!”

* * *

늦은 오후에도 강렬히 내리쬐는 태양 빛.

수영복을 입은 유달이 체조 선수처럼 손을 번쩍 들었다.

“간다~!”

이어 그는 도움닫기 하듯 힘차게 내달렸다.

부웅~.

직사각형 야외 수영장 끝단에서 높이 점프.

풍덩~!

강렬한 햇살에 반짝이는 수영장 중앙에 체조 선수의 착지처럼 멋지게 떨어졌다.

“우와, 너무 좋아!”

유달은 어린아이보다 더 신난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물귀신이 무서워 수영과는 담쌓고 살았기 때문이다.

첨벙첨벙첨벙…….

수영장 물살을 가르며 물장구치는 유달은 ‘멋진 폼’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영할 줄 모르니 개헤엄보다 못한 실력이다.

곧이어 수영장에서 나온 유달은 파라솔이 설치된 비치 의자에 벌러덩 누웠다.

“와~ 수영이 엄청 힘든 운동이구나…….”

바로 옆 의자에 누워 있는 송보름이 말했다.

펜션에는 3팀의 손님이 있지만, 수영을 즐기는 건 유달과 송보름뿐이다.

“아무도 없는데 쉬엄쉬엄하세요. 그러다 쓰러지겠어요.”

“쓰러져도 좋아. 그동안 못 놀았던 것까지 추가해서 놀 거야. 물놀이가 이렇게 재미있는 건지 몰랐단 말이야.”

“쓰러지기 전에 이모님께 전화는 해야지요?”

“맞다, 또 깜박했네…….”

유달은 하나에 몰두하면 나머지는 안중에도 없는 성격이다.

그는 생각난 김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파라솔 옆 탁자에 놓인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누르고, 스피커 모드로 전환했다.

통화가 연결되고, 조금순의 자상한 음성이 들렸다.

-달이냐?

“응, 이모. 그동안 잘 있었지? 아픈 데는 없고?”

-나야 늘 그렇지…….

그런데 조금순은 혼자가 아닌 듯,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섞여 들렸다.

“누구 왔어?”

-휴가 때라고… 순자하고 명자가 놀러 왔네.

양순자는 무속계의 군기반장이며, 태황 그룹에서 내쳐졌다가 다시 불려 들어갔다.

그리고 박명자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별신굿 무당이며, 이 셋은 누구보다 친분이 두터운 무속계의 원로들이다.

유달이 의심스럽게 물었다.

“뭐 하고 있어?”

-뭐 하긴, 그냥 과일 먹으며 이야기나 나누고 있지?

“아닌 것 같은데…….”

유달의 청력은 뛰어났다.

-딱, 딱!

네모난 플라스틱 조각이 찰지게 부딪히는 소리가 분명히 났다.

“이모, 화투 쳐?”

이를 확실케 하는 양순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순이 언니, 그러다 피박 써요.

조금순은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심심하니까…….

“이모, 이모, 이모, 이모! 순자 아줌마와 명자 아줌마는 거의 타짜 수준이야. 이모 실력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니까? 저번처럼 돈 잃었다고 새벽에 일어나 한숨 쉬는 꼴, 나는 보기 싫다니까?”

-안 그래, 지금 따고 있어. 내가 순자하고 명자 돈 다 따서, 우리 달이 맛있는 거 사 줄게.

“헐…….”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순자, 명자 아줌마들도 있으니 잘됐네. 내가 물어볼 게 있으니까 스피커 모드로 돌려 봐.”

-그게 뭐냐?

“그냥, 순자 아줌마한테 해 달래.”

잠시 후.

스피커 폰 통화가 이어졌다.

유달이 하는 질문을, 화투 치는 무속계의 원로들은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이모, 혹시 진주라는 이름 들어 봤어? 이모 때 활동했던, 영적인 능력이 아주 탁월했던 무당 같아.”

-진주?

조금순은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양순자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적손님 이전에 가장 빼어났던 무당은 혜인이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고도리 비상이네요.

“우리 엄마 빼고요.”

박명자의 음성이 들렸다.

-금순이 언니, 절대 8짜리 내지 마요. 혜인이와 견줄 수 있는 무당이 있었나? 내 기억엔 아무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데…….

조금순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여 그 젊은 무당 말하는 거 아닐까?

“누구요? 이모.”

-영적인 능력이 탁월하다 소문난 무당이 있었지. 이름은 모르겠고, 마신에 빠져서 신적(神籍)을 박탈당했던 무당이 있었는데…….

양순자도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맞아요,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소문은 대단했어요. 그런데 딸아이 죽고 나서 이상해졌죠.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다는 망상에 빠졌잖아요.

“순자 아줌마, 자세히 좀 말해 줄래요?”

-잠시만… 고도리! 저 5점 났습니다. 스톱!

-금순이 언니, 내가 8짜리 내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니, 그게 빼면 나머지 2장이 광인데, 어떻게 광을 버려? 그렇게는 못 해.

“순자 아줌마, 고스톱 끝나고, 전화 주세요.”

-알겠습니다, 적손님.

뚝.

양순자는 기다렸다는 듯 통화를 끊었다.

* * *

달빛 고요한 밤.

유달은 펜션 부부와 늦게까지 담소를 나눴다.

하도 수영을 오랫동안 하여 온몸이 뻐근했다.

그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 위해 펜션 부부가 사는 집에서 나왔다.

앞마당을 가로질러 숙소로 가는데, 자신의 A동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 진주가 보였다.

유달은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달밤의 산책이신가?”

“이미 죽은 몸이 그런 것을 뭐 하러…….”

“하면, 무엇 때문에 여기서 기웃거리는 거지?”

진주는 A동 건물을 향한 시선을 서두지 않고 말했다.

“네놈에게 경고해 주려고?”

“무슨 경고?”

“내일 송장 치울 준비 해…….”

그녀는 여전히 숙소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다.

유달의 반응이 좋을 리 만무했다.

“이제 대놓고 협박이시네? 나도 경고하겠는데, 내 카페 식구 건드리면…….”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하는 거 아니야.”

“그럼?”

“오늘 새로 왔다는 손님들, 저 건물 2층에 있지?”

그녀의 시선은 굿 카페 식구들이 있는 1층이 아닌, 2층에 고정되어 있었다.

“내가 수영할 수 있게 해 준 복덩이들인데 왜?”

“살고 싶은 마음 없는 사람들이야. 나는 분명 경고했어.”

그녀는 이내 몸을 돌려 사라졌다.

순간, 유달은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헐!”

유달은 다급히 자신의 숙소로 뛰어들어 가 소리쳤다.

“비상이야,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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