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90화 (90/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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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내기

유달은 주인 남자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여기 왜 쓰러져 계신 겁니까?”

“물라… 자네하고 술 내기 한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뒤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이렇게까지 필름 끊긴 적은 없었는데…….”

유달하고 똑같은 현상이다.

그 역시 아무리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소용없었다.

기분 좋게 연거푸 술잔을 들이키다가 완전히 뚝 끊겼다.

주인 남자가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며 물었다.

“그나저나 물 없나? 물… 머리는 깨질 것 같고, 속에서는 용암이 끓어올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복분자주는 숙취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세상에 숙취 없는 술이 어디 있어? 다른 술보다 낫다는 건데, 과음에는 다 소용없는 거지.”

둘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 남자는 유달에게 생수를 꺼내 오라 손짓하고, 가게 주인을 불었다.

“박 영감님? 박 영감님?”

유달이 생수 두 병을 냉장고에서 꺼내 왔다.

“주인 할아버지는 안 계세요?”

“일단 마셔, 내가 박 영감님하고 친하니까 괜찮아.”

둘은 생수병을 따고, 갈증부터 해결했다.

그러고는 가게 안팎을 돌아다니며 주인을 찾았다.

유달이 가게와 이어진 집 마당에 쓰러져 있는 박 영감을 발견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어이구… 내가 왜 여기에 누워 있지?”

다행히 박 영감은 바로 의식을 찾았다.

유달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형님, 여깁니다!”

그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주인 남자가 들어왔다.

“영감님,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지, 그럼. 나는 멀쩡해.”

정말 괜찮은 모양이다.

박 영감은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일으켰다.

유달이 물었다.

“왜 여기에 쓰러져 계신 겁니까?”

“나도 몰라,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영감님도 아무것도 기억이 못하시는 겁니까? 저희도 왜 여기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순간, 박 영감의 눈빛이 바뀌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자네 둘이 우리 가게 술을 몽땅 비운 건 똑똑히 기억하고 있네.”

“저희가 이 가게에서 또 술을 마셨다고요?”

“미친 듯이 마실 때 알아봤지. 이럴 줄 알고 내가 다 적어 뒀어. 따라오게.”

그들은 박 영감을 따라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박 영감은 텅 빈 주류 냉장고부터 보여 주었다.

“여기 있던 소주, 맥주, 막걸리, 청하, 청주, 팩 소주… 술이란 술은 모두 가져다가 밖에서 마셨어.”

주인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정확히 얼마나 마신 겁니까?”

“내가 장부에 잘 적어 뒀지.”

박 영감은 담배가 진열된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어제 마신 것을 기록한 장부를 펼쳐 보여 주었다.

“이만큼 먹고 마셨다네. 왼쪽이 술, 오른쪽이 안주, 맨 아래 네모 친 것은 총금액이지.”

순간, 유달은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형님하고 저하고 100병 가까이 마셨다고요? 이 정도 마시면 사람이 죽지, 어떻게 살아 있습니까?”

“자네 둘만 마신 건 아니지.”

“또 누가 있었습니까?”

“허허, 참… 정말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모양이네? 영화 찍는 사람들하고 같이 마셨잖아.”

“영화요?”

“그래, 6.25 전쟁 때 인민군하고 국군 복장 한 사람들. 내가 누구냐고 하니까, 자네가 영화 찍는 배우들이라고 했잖아?”

박 영감은 유달을 콕 집어서 대답했다.

기억이 전혀 없는 유달은 미칠 노릇이다.

“제가요?”

“그래, 자네가. 우리 가게에서 술과 안주 다 꺼내서 승천하라 소리치며, 미친 듯이 마셨지.”

“헐… 간밤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유달이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할 때다.

“박 영감 있나?”

마을 주민 한 명이 가게로 들어왔다.

박 영감과 비슷한 나이대의 할아버지다.

“뭐 사러 왔어? 술은 다 떨어졌는데…….”

박 영감은 유달은 눈치 주며 물었다.

손님 할아버지가 돈을 내밀며 대답했다.

“오늘은 술 안 마셔, 사이다 한 병 줘.”

“해가 서쪽으로 뜨겠네? 송 영감 자네가 웬일로 술을 안 마셔. 혹시 암이래?”

“그게 아니라 첫째 아들놈을 만났어. 제발 하루만이라도 술 좀 마시지 말라고 사정하더라고.”

“자네 치매고만? 첫째 놈은 사고당해서 펜션이 있는 산에 묻었잖아?”

송 영감은 사이다 한 병을 꺼내 와 말했다.

“누가 진짜 만났다고 했나? 꿈에서… 그런데 진짜 꿈인가? 한밤중에 갑자기 찾아와 밥 달라고 했던 게 너무 생생하더라고. 오늘은 늦잠을 자서 깼는데, 방 안에 밥상 차린 게 그대로 있더라고?”

“이상하네…….”

톡.

박 영감이 사이다 병뚜껑을 따 주며 말을 이었다.

“나도 작년에 죽은 마누라를 꿈에서 만났어. 매상 확실히 올려 줄 테니까 장부에 빼놓지 말고 기록하라고…….”

“정말 이상하네? 옆집에 있는 파주댁도 옛날에 죽은 남편을 꿈에서 만났다네? 파주댁도 우리처럼 펜션이 있는 산에 무덤을 썼지…….”

“듣고 보니, 정말 이상하네?”

유달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이 갔다.

‘내가 무덤이 있는 영혼을 모두 끌고 온 거야!’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군복을 입은 영화배우들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술을 처마셨기에 아무런 기억도 없는 거냐고!’

유달이 가게 구석으로 걸어가 미친 듯이 괴로워할 때다.

사이다를 마시던 송 영감이 주인 남자를 알아봤다.

“자네는 글 쓴다는 펜션 주인 아닌가?”

“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송 영감은 혀끝을 차며 고개를 저었다.

“쯧쯧쯧, 자네가 처음 펜션 보러 왔을 때, 내가 말렸던 거 기억나나?”

“네, 기억합니다.”

박 영감도 동조하며 말했다.

“나도 은근히 말렸는데, 말을 듣지 않더라고. 우리가 괜한 텃세 부린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한번 보고 바로 계약했지?”

무안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송 영감이 말했다.

“자네, 그 펜션 터가 얼마나 안 좋은지 알고나 있나?”

“예? 무엇 때문에 안 좋은데요?”

주인 남자는 처음 듣는 반응이다.

이에 송 영감은 컵에 따른 사이다를 모두 마시고 말했다.

“옛날부터 거기는 전쟁터였어. 특히나 6.25 때는 말이지, 북한군이 내려왔을 때는 국군들이 전멸했고, 국군이 치고 올라갔을 때는 인민군이 전멸했어.”

박 영감이 말을 받아 말했다.

“비극이야, 비극. 한때는 같은 마을 사람들이었는데, 서로 죽이고 난리를 쳤으니… 전쟁 끝나고 거기에 무당이 터를 잡았지? 마을 사람들이 무서워서 접근을 못 하는 아주 무시무시한 여자였잖아.”

송 영감이 말했다.

“난 지금도 기억하는데, 그 눈빛이 산 사람 같지 않더라고. 그 무당 죽고 나서 거기에 펜션이 들어섰지. 우리가 그리 반대했는데, 옆 마을 이장 아들 놈은 미신이라며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

“그러다 펜션 완성되고, 이상한 일이 벌어지니까 날름 팔아먹고 튀었지.”

주인 남자가 억울함에 사무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걸 왜 지금 말해 주십니까? 처음에 그렇게 말씀해 주셨으면, 제가 펜션을 인수했겠습니까?”

가게 주인 박 영감이 말했다.

“옆 마을 이장이 통 사정했다고.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얼마나 신신당부했는데.”

“맞아, 그 이장이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엄청 잘해 줬지. 신세를 진 게 많은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었겠나.”

유달은 영화배우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펜션 주변에 떠돌던 군인들의 영혼을 모두 끌고 내려와 승천시켰던 것이다.

‘사고 친 게 아니라 천만다행이야!’

하지만 안도하는 마음은 잠시.

‘송보름, 이것이 문제 있는 곳인 줄 알면서 나를 데려왔단 말이야!’

원한이 사무치는 곳이 아니라면 이런 사태가 발생할 리도 없었다.

유달이 주인 남자에게 말했다.

“형님, 서둘러 펜션으로 돌아가지요. 이 사태의 원흉을 찾아서 철저히 책임을 묻겠습니다.”

“그, 그러자고…….”

둘이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가려는 때다.

“어디 가나?”

박 영감이 부르자, 주인 남자가 대답했다.

“펜션으로 돌아가려고요. 저희가 먹은 술값은 나중에 갚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자동차 키는 가져가야지.”

유달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주인 남자를 바라봤다.

“형님, 음주 운전하셨어요? 세상에, 저를 죽이려고 작정하신 겁니까!”

“그, 그럴 리 없는데? 내가 술을 좋아해도 음주 운전은 절대 안 해. 그랬다가는 당장 이혼이라고.”

“그럼, 면허도 없는 제가 운전했겠습니까?”

“미, 미안해. 내가 술 먹고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

“음주 운전은 명백한 범죄라고요, 범죄! 형님한테 정말 실망했습니다.”

유달이 주인 남자를 심하게 다그치는 그때.

박 영감이 유달을 꼭 집어 말했다.

“운전은 자네가 했어.”

“예~?”

유달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저는 운전 면허도 없는데요?”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운전석에선 분명 자네가 내렸다고. 나는 자네가 또 술 먹고 운전할까 봐, 차 키를 숨겨 뒀지.”

드륵.

박 영감은 서랍 속에 넣어둔 차 키를 전해 주었다.

“어서 받게.”

“네…….”

유달은 주인 남자의 따가운 눈총 속에 차 키를 받았다.

음주 운전은 범죄라며 닦달했는데, 자신은 무면허에 음주 운전이니 더 큰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이를 부인할 수 없는 또 다른 증거.

박 영감이 전해 준 차 열쇠는 장미란의 것이었다.

유달은 한없이 면목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차는 어디에…….”

“가게 뒤쪽 공터로 가 보게. 자네가 열쇠 훔쳐서 운전할까 봐 옮겨 두었어. 내가 예전에 택시도 좀 했거든.”

“감사합니다…….”

유달은 아주 조용히 가게에서 나왔다.

* * *

펜션으로 가는 길.

주인 남자가 차를 운전하고, 유달은 조수석에서 블랙박스 화면을 살폈다.

장미란의 블랙박스는 차량 내부까지 기록되었다.

“제가 완전히 미쳤었군요.”

주인 남자는 완전히 뻗어서 운전할 상태가 아니었다.

유달에게 납치당하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킬칼칼칼! 오늘 끝장을 보는 겁니다. 마을에 있는 술까지 모두 오링시키는 거지요.

무면허에 음주 상태인 유달만 신나게 떠들었다.

-형님, 형님! 보십시오. 제가 운전대에서 손을 뗐는데도 차는 잘 굴러가지요? 운전병 영혼이 운전하는데, 기가 막힙니다. 칼칼칼칼…….

뚝.

유달은 블랙박스 화면을 껐다.

“이게 다 보름이, 고것 때문이야. 감히 내 신성한 휴가에 초를 치다니, 내 이것을 보면……!”

순간, 펜션에서 있던 그녀와의 기억이 떠올랐다.

유달은 매우 화가 난 상태였었다.

‘감히 나한테 대드는 것이냐!’

짝!

유달은 송보름의 얼굴을 손으로 후려쳤었다.

“으아아악~!”

유달의 괴성에 놀란 주인 남자가 차를 세웠다.

끼이익.

“무슨 일이야?”

“제, 제가 보름을 때렸어요! 내가 술 먹고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도끼 주세요, 도끼! 이놈의 손목 확 잘라 버리게!”

“아우님, 진정하라고?”

“제가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내가 아무라 화가 났어도 보름이를 때리다니요! 이건 절대 용서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팔 하나로는 모자라요. 아니, 조만간 보름이 아버지가 킬러를 보낼지도 몰라요. 아니, 아니, 그보다 나한테 상처 입은 보름이의 마음은 어떻게 하지요? 빨리 출발하세요. 빨리! 엄청난 충격 받고 보름이가 누웠을 겁니다!”

유달은 진짜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부르릉~.

주인 남자는 속도를 높여 차를 몰았다.

펜션에 도착해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A동 앞에 급히 차를 세웠다.

덜컥.

유달은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반쯤 열려 있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보름아~!”

그는 신발을 신은 상태로 거실을 두리번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침대방에 누워 있는 송보름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으아악! 미안하다, 미만해! 내가 미친놈이야!”

유달은 격하게 그녀를 끌어안고 소리쳤다.

반면 송보름은 유달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사장님… 이러지 마요. 그러지 않아도 무안해 죽겠다고요. 설마, 내가 더 미안해하라고 이러는 거예요?”

“무슨 소리야? 내가 널 때린 게 기억났다고! 못난 나를 용서해 줘 제발…….”

“사장님이야말로 무슨 소리예요? 저한테 손을 댄 것 어쩔 수 없었어요. 제가 악령에 씌워서 날뛰는 걸 사장님이 구해 준 거라고요?”

“잠깐, 악령이라니?”

송모름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정말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거예요?”

“응, 내게 남은 건 숙취밖에 없어.”

“악령들하고 내기한 것도요?”

“내기~?”

유달은 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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