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89화 (89/183)

89

대마신급 재앙

강원도의 경치 좋은 산길.

굿 카페 식구가 탄 차량이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기분 좋게 차량이 흔들리고, 산새 소리와 물소리가 잔잔히 들려왔다.

지이잉.

유달이 창문을 내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음~ 이번에는 제대로네. 대책 없이 남발했던 영기가 급속도로 회복되는 것 같아. 저는 이제 일상 탈출 모드로 변환하겠습니다.”

운전하는 장미란이 물었다.

“그건 또 뭔가요?”

“보름아, 설명해 드려라. 나는 이미 일상 탈출 모드로 접어들어서 말이야.”

유달은 송보름에게 대답을 떠넘겼다.

뒷자리의 그녀는 장미란과 강성호가 잘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

“방금 사장님께서는 부지런한 삶과의 단절을 선언하셨습니다. 휴가 기간 동안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건 절대 안 할 예정입니다.”

운전하는 장미란이 바로 반박했다.

“유달 씨는 부지런함과 거리가 멀지 않았나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그동안 제가 적성에도 맞지 않는 정의로운 짓을 위해 얼마나 부지런히 돌아다녔는데요?”

“그건 인정해요.”

“하늘이 보상하지 않으니, 스스로 상을 줘야죠. 약간의 방탕함과 극단적 귀차니즘으로 이번 휴가를 보낼 겁니다. 우하하하하!”

유달이 호기로운 웃을 터트릴 때였다.

쿵.

무언가 자동차 앞 유리에 부딪쳤고, 장미란은 다급히 차를 세웠다.

끼이익.

식겁한 유달이 몸을 움츠리며 물었다.

“뭐, 뭐, 뭐, 뭡니까?”

장미란이 차 문을 열고 내려서 말했다.

“까마귀가 부딪혔네요.”

“허이, 재수 없게 시리… 죽었습니까?”

“아니요.”

파드드득.

바닥에 떨어졌던 까마귀가 날갯짓하며 하늘로 올랐다.

장미란은 다시 운전하여 차를 몰았고, 유달은 찜찜한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이거 뭐가 불안한데요? 공포 영화에 보면 이런 장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차에 뛰어들어 사망한 동물의 사체, 똑같은 신세가 될 것이란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죠.”

“까마귀는 죽지 않고 다시 날아갔잖아요.”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휴가를 원합니다. 감히 까마귀 놈이 초를 치다니…….”

유달의 뒷자리의 송보름에게 물었다.

“혹여 문제 있는 펜션은 아니지?”

“그, 그런 거 없어요. 홈페이지 보니까 펜션도 좋고, 이벤트 기간이라 값도 싸고, 우리가 운이 좋은 거죠.”

“그렇지? 우리가 운이 좋은 거지?”

“그럼요.”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을 제대로 찾았다는 표시가 보였다.

굵은 나뭇가지에 아크릴 표지판이 걸려 있다.

-효민 펜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르막길 모퉁이를 돌자 마침내 펜션의 모습이 보였다.

탁 트인 경관에 북유럽 산장처럼 평화롭고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였다.

유달의 입에선 기대 이상이란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좋은데!”

펜션 주인 부부가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고, 그 옆에는 8살 정도의 남자아이도 서 있었다.

굿 카페 식구들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들을 행해 다가갔다.

주인 남자가 유달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 환영해 주셔 감사합니다.”

이에 주인 여자가 꼬마에게 눈짓했다.

꼬마는 손에 들고 있던 꽃목걸이를 유달에게 걸어 주었다.

“환영합니다.”

“우와, 이거 정말 나 주는 거야?”

유달은 매우 흡족한 표정이다.

“진짜 생화네? 하와이가 부럽지 않아!”

펜션 부부는 오랜만에 찾는 손님을 지극정성으로 맞이했다.

아침부터 직접 꽃을 따서 만든 꽃목걸이를 모두에게 걸어 주었다.

“과분한 응대 감사합니다. 저희는 어디를 쓰면 되지요?”

효민 펜션에는 3채의 가옥이 있다.

그들이 서 있는 간판 달린 집은 펜션 주인 식구가 생활하는 곳이고, 입구를 기준으로 좌우 끝에 있는 2층짜리 집이 손님을 위한 방이다.

주인 남자는 입구 왼편 집으로 굿 카페 식구를 안내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목조 주택처럼 보이는 벽돌집이다.

새집이나 다름없이 깨끗했고 넓은 테라스도 있다.

철컥.

주인 남자가 1층 문을 열었다.

“여기가 A동 특실, 가장 넓은 방입니다.”

짐을 들고 안으로 들어간 굿 카페 식구는 매우 만족하는 반응을 보였다.

거실도 넓고, 방이 3개에 청소도 깨끗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보통의 펜션과 다른 점도 있었다.

유달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친척분 중에 무당이 계십니까? 무슨 부적이 이리도 많지요. 대부분이 악령을 쫓는 것이네요.”

출입문과 창문 위에는 어김없이 부적이 붙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벽에서 십자가와 달마의 그림이 걸려 있고, 장식장과 선반에는 성모 마리아와 부처님상이 놓여 있었다.

주인 남자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제가 이 펜션을 인수하기 전부터 있던 것입니다. 버리는 게 찝찝하여 계속 두고 있는 것이죠.”

“그래요.”

남자 주인이 유달에게 열쇠를 전해 주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저한테 말하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리 좋은 방도 주시고요.”

“외려 제가 감사하지요. 저녁 식사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저희가 특별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특별 만찬! 거듭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차 타고 오시느라 힘드셨을 겁니다. 저녁때까지 푹 쉬십시오. 준비되면 아들 놈을 보내겠습니다.”

“그럼, 저는 무한 휴식 돌입하겠습니다.”

유달은 흡족하여 침대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주인 남자도 밖으로 나가는데, 송보름과 눈이 마주치자 남몰래 고갯짓으로 인사를 나눴다.

* * *

해가 일찍 떨어진 산속.

북적거리는 펜션 앞마당 야외 탁자.

굿 카페와 펜션 식구가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했다.

얼추 식사가 끝나고,

주인 남자가 도자기 술 주전자를 들고 왔다.

“만찬에 술이 빠지면 섭섭하지요. 제가 직접 담은 복분자주입니다.”

“이 귀한 것을!”

유달은 벌써 군침을 흘렸다.

그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휴가 동안엔 방탕해지기로 마음먹은 상태다.

주인 남자는 장미란에게 먼저 권했다.

“한 잔 드셔 보십시오.”

장미란은 정중히 사양했다.

“죄송해요, 저는 원래 술을 먹지 않아요. 그리고 운전을 오래 했더니 피곤하네요. 먼저 들어가서 쉴게요.”

“그러시지요. 미란 씨.”

유달은 섭섭하다며 잡지 않았다.

외려 더 잘됐다는 분위기다.

유달인 얼른 잔을 내밀었다.

“미란 씨 몫까지 제가 마시겠습니다. 술이 부족하다 싶었는데, 다행히 한 명 줄었습니다.”

주인 남자가 잔을 채워주며 물었다.

“술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원래 잘 마시지 않는데, 오늘은 방탕이 허락된 날이라 괜찮습니다. 마음껏 마셔도 됩니다.”

“잘됐군요. 만날 혼자 술 마셔서 적적했는데, 오늘은 좋은 술친구가 생겼습니다. 어서 드셔 보세요.”

둘은 가볍게 건배하고 술잔을 단번에 비웠다.

“크아~ 좋군요. 또다시 건배.”

유달은 주인 남자가 따라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둘은 순식간에 복분자 한 주전자를 다 비웠고, 곧이어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형님은 정말 좋겠습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이렇게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빛 좋은 개살구야.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현실은 다르더라고. 딸 아이가 아파서 요양이 필요했고, 나는 직업이 글 쓰는 것이라, 공기 좋은 곳에 펜션을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지.”

“작가 형님이셨군요! 저는 글 쓰는 분들을 매우 존경합니다. 뭔가 자유롭고 멋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멋은 개뿔… 세상에서 가장 골치 아픈 직업이 작가야. 유달 아우님처럼 카페 사장님이 낫지.”

그들 옆에서 조용히 과자 먹던 꼬마 아이가 반박했다.

“아빠, 이 아저씨는 사장님 아니고 마법사예요.”

주인 남자가 유달을 쳐다보며 말했다.

“마법사? 정말인가?”

자기 아들이 거짓말할 리 없기에 확인을 구하는 것이다.

유달은 절레절레 고개 저으며 꼬마를 보며 물었다.

“내가 왜 마법사야?”

“얼만 전에 TV에 나왔잖아요? 칼 들고 춤추고, 사람들 몽땅 사라지게 했잖아요? 승천하라~.”

주인 남자도 기억 나는 모양이다.

“맞다! 어째 낯익은 얼굴이 했어… 카페도 하고, 마술사도 하고 자네도 투잡인가?”

“아빠, 마술사 아니고 마법사. 내 친구들은 다 마법사래요.”

유달이 꼬마를 보며 기분 좋게 말했다.

“역시 예리하군. 이 아저씨는 세계 최고의 마법사란다. ‘유달프’라 불러 다오. 우하하하하!”

세 남자의 웃음소리가 커지고,

야외 탁자 한편에서는 주인 여자와 송보름이 따로 이야기를 나눴다.

하소연에 가까운 말이었다.

“남편 직업이 자유로우니까 펜션 얻어서 투잡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 평소에는 남편이 경치 좋은 곳에서 글 쓰고, 주말에는 손님 받아서 돈 벌고.”

“괜찮은 생각 같았는데요. 문제는 귀신인가요?”

“왜 이리 좋은 펜션이 그리 싸게 나왔는지 의심했어야 했는데… 남편과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지. 장밋빛 예상과는 정반대가 되더라고. 펜션 운영 안 되니까 남편 글도 안 써지고, 거기다가 딸아이 몸도 점점 악화하고 말이야.”

송보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펜션 팔고, 이사 가면 되잖아요?”

“남편이 워낙 고집불통이라 남을 속이지 못해. 귀신 나온다고 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더라고. 팔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있는 거지.”

“그 귀신들이 가족들은 안 괴롭혀요?”

“응, 우리가 사는 집에는 얼씬하지 않아.”

“이상하네요?”

“뭐가?”

“원혼들은 사람 가리지 않아요. 자기 영역을 침범한 이들은 무조건 쫓아내요. 손님이라 괴롭히고, 집주인이라 봐주는 거 없거든요.”

“우리가 사는 집엔 아주 용한 무당이 써 준 부적을 붙여 놓아서 그런가?”

이에 송보름이 결연한 음성으로 말했다.

“상관없어요. 제가 그 귀신들을 쫓아낼 거니까,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정말 그럴 수 있겠어?”

“사장님보다는 못하지만, 저도 꽤 유능한 무당이라 할 수 있지요. 마신급만 아니면 쉽게 처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주인 여자는 근심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안전하게 사장님께 부탁하면 어때?”

“절대 안 돼요. 사장님은 자기 휴가 망치는 거 엄청나게 싫어해요. 귀신 나오는 펜션인 줄 알고 왔다면, 두고두고 저를 구박할 거예요. 게다가 지금 저 상태는 매우 위험해요.”

유달과 주인 남자는 둘 다 취했다.

“작가 형님, 도전입니까? 제 주량을 그리 얕보시면 큰일 납니다.”

“마법사 아우, 현실은 냉정한 것이야.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마나님의 엄청난 구박에도 꼬박꼬박 술을 마셨어. 자네는 평소 술도 안 마시는데, 나 같은 주당을 당해 낼 수 있겠나?”

“그게 바로 형님의 약점입니다. 계속되는 음주에 간 기능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지요. 반면 저는 누구보다 청정한 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다 먼저 쓰러지는 사람은 형님이 될 겁니다.”

이어 그들은 부어라 마셔라,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술내기까지 했다.

송보름이 설레설레 고개 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사장님이 음주 상태로 영기를 남발하면 정말 위험해져요.”

“어떻게 되는데?”

“천기가 엉망이 돼서 대마신급 재앙이 닥칠 수도 있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엄청 위험하게 느껴지네.”

송보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장님 모르게 깔끔하게 끝낼 수 있어요. 귀신들이 주로 나오는 데가 어디예요?”

“저기 B동에서 많이 나오지.”

“랜턴 들고 따라오세요.”

주인 여자는 불안한 마음으로 송보름의 뒤를 따랐다.

“정말 괜찮을까?”

“저를 믿으세요. 이런 곳에서 나타나는 건 지박령일 게 뻔하니까, 금방 끝날 거예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

철컥.

주인 여자가 문을 여는 순간,

송보름은 그대로 몸이 굳어서 중얼거렸다.

“어머, 어떡해… 나 사장님 닮아 가나 봐.”

일이 예상치 못하게 커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잠시 후.

“까아악~!”

“뭐야?”

송보름의 비명에 유달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다음 날 정오 무렵.

유달은 머리가 깨질 듯한 상태에서 눈을 떴다.

“누가 쇠망치로 내 뒤통수를 계속 후려치는 것 같아…….”

그는 차디찬 바닥에서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펜션이 아니다.

“여기는 어디지?”

선반 위에 진열된 과자와 생활용품들이 보였다.

유달은 숙취의 고통을 참으며 입구 쪽으로 나갔다.

-안개 마을.

커다란 돌이 세워져 있는 표지석이 보였다.

어제 잠시 멈춰서 길을 물었던 그 구멍가게였다.

“내가 여기 왜 있는 거지?”

간밤의 일을 곰곰이 생각하는 그때.

구멍가게 옆에 쓰러져 있는 주인 남자가 보였다.

“작가 형님, 괜찮으세요?”

유달은 엎드려 쓰려져 있는 그를 흔들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주인 남자는 세상 괴로운 표정으로 눈을 떴다.

“크윽… 누가 내 머리를 쇠망치로 후려치는 것 같아. 마법사 아우… 내가 왜 여기 있지?”

그건 유달이 물어보고 싶은 말이다.

술 내기를 한 것까지는 생각나는데, 그 뒤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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