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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해결
백시연은 사진을 들고 제단 뒤쪽으로 걸어갔다.
“일단은 이것으로 의식을 진행할게요.”
돌로 만든 제단과 기괴한 모양이 그려져 있는 벽 사이에 절구통 같은 것이 있다.
나무로 만든 것인데, 안쪽이 깊게 파였다.
백시연은 그 안에 사진을 넣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둠을 지배하는 존재시여 신성한 제물을 바치오니…….”
유달은 삐딱하니 짝다리를 짚고 서서 그녀의 의식을 지켜보았다.
“첫 구절 빼놓고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백시연은 유달의 중얼거림에 신경 쓰지 않고, 의식을 계속 진행했다.
한참이나 이어지는 주문.
집중하는 시간이 짧은 유달이 흥미를 잃어 가는 때다.
주르르.
붉은 피가 줄기가 되어 떨어졌다.
백시연의 손엔 날카로운 단검이 주어져 있다.
의식을 위해 자신의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낸 것이다.
“왜 이리 원시적이야? 피가 필요하면, 주사기 같은 것으로 뽑아도 되잖아? 무식하게 시리…….”
유달은 징그러워 못 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게 손바닥에 난 상처의 피를 닦아 냈다.
“이제 진짜 영혼이 필요해요.”
“알았으니, 기다려 봐.”
유달은 휴대폰으로 장미란과 통화했다.
“아직도 중앙 지검입니까?”
-네, 저도 휴가 떠나기 전에 루시퍼 사건 정리하려고요. 박광훈이 자백하지 않아 수사 기간이 길어질 것 같아요. 기존 수사관들이 잘하고 있으니, 저는 손 떼도 될 것 같아요. 내부 리모델링 끝나면 카페 운영에 집중해야죠.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제가 부탁한 것은요?”
-구태진은 지금 서울 구치소에 있어요. 이동욱 검사가 말해 놔서 언제라도 면담 가능해요.
“정신과 의사 놈은 어디 있습니까?”
-성심 종합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요. 면회가 가능할지는 담당 의사 소견에 달려 있어요. 누구부터 만나려고요?
유달은 망설임 없이 즉각 대답했다.
“구태진부터 만나겠습니다.”
-제가 데리러 갈까요? 서울 구치소에서 만날래요?
“구태진은 저 혼자 만나겠습니다. 저녁때 박광훈이 입원한 병원에서 만나지요.”
-알았어요. 도착할 때쯤 문자 줘요.
통화를 마친 유달이 검을 집어 들었다.
“마음 편히 휴가 가기 힘드네. 정신없이 움직여야겠어.”
“장검 들고 구치소 가려고요?”
“그럴 리가… 그쪽 영기가 약해서 보태 주려고.”
스릉.
유다른 검을 빼 들고, 사진이 담긴 나무통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나무통 끝단에 검을 꽂았다.
푹.
순간, 나무통 전체가 울리면서 희미하게 피어오르던 괴기한 기운이 짙어졌다.
“이쯤은 되어야 악마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겠어?”
“잘난 체 좀 그만하고, 영혼이나 빨리 잡아 와요. 저도 할 일이 많은 몸이라고요.”
“잡아 오는 건 문제 없는데, 혹시 영혼들의 상태가 의식이 성공에 영향을 끼치나?”
“무슨 소리예요?”
“아마도… 아니, 백 퍼센트 확실하게 그놈들을 너덜너덜, 소멸 직전의 상태로 데려올 것 같거든.”
“제물의 상태는 큰 영향 없어요.”
“오케이, 최대한 빨리 잡아 올 테니까, 확실하게 마무리하라고.”
유달은 서둘러 그녀의 신당을 나섰다.
* * *
늦은 오후 굿 카페.
송보름은 쉬지 않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휴대폰에 열이 나서 손에 땀이 날 정도다.
눈에 불을 켜고 찾고 또 찾았지만, 지금은 한창 휴가철.
괜찮은 곳은 이미 예약이 끝났다.
어쩌다 남아 있는 경우엔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고, 예약 취소된 것이 있는지 일일이 전화해도 아무 소득이 없었다.
‘기대할게~ 기대할게~ 기대할게~.’
그녀의 환청은 계속되고, 휴대폰 화면을 만지는 손길도 점점 느려지는 그때.
“이건 뭐지?”
‘펜션’이란 검색어를 치고, 이것저것 뒤지다가 눈에 확 뜨이는 걸 발견했다.
“강원도 효민 펜션… 1박 하면 2박이 무료!”
그렇다고 1박 요금이 비싼 것도 아니다.
송보름은 재빨리 효민 펜션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시설도 괜찮고, 언제라도 예약 가능!”
그녀는 서둘러 전화를 했다.
펜션 주인의 핸드폰이 아닌 홈페이지에 나온 일반 전화.
뚜우~ 뚜우~ 뚜어~.
“제발, 제발, 제발…….”
전화를 받지 않고 통화 발신음만 이어지자 송보름의 속은 타들어 갔는데,
-여보세요?
전화를 받긴 했는데, 어린아이 목소리다.
“거기 효민 펜션 맞아?”
-네, 맞아요.
“혹시 방 있니?”
-널널해요.
“그래! 옆에 어른 있으면 바꿔 줄래?”
전화를 받는 아이는 매우 솔직한 아이였다.
-엄마 아빠 지금 싸워요. 엄마는 왜 이런 펜션 사 가지고 온 가족 고생시키냐고 소리치고요. 아빠는 누가 이럴 줄 알았냐며 더 크게 소리쳐요. 이러다 엄마는 울고, 아빠는 소주 까야 싸움이 끝나요.
표현도 매우 직설적인 아이였다.
“그러면 예약이라도 우선 걸어 줄래?”
-정말 오게요?
송보름이 수상함을 느끼고 물었다.
“무슨 문제 있니?”
-곤란한 질문이네요. 엄마 아빠가 혹시 손님한테 전화 오면 아무 문제 없다고 하랬어요.
“잠잘 수 있는 방은 있는 거지?”
-네, 널널해요.
“1박 하면, 2박 무료도 맞고?”
-네, 맞는데요. 2박 무료 하는 사람 한 명도 없었어요.
“왜?”
아이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우리 펜션에 귀신 나와요. 앗, 엄마 아빠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못 들은 걸고 해 주세요.
보통 사람이라면 모를까, 굿 카페 식구들에게는 아무런 문젯거리도 되지 않았다.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정말 귀신밖에 안 나와? 다른 건 없고? 홈페이지에 있는 것처럼 경치고 좋고, 방도 깨끗하고, 수영장도 있는 거지?”
-귀신 빼놓고는 아무 문제 없어요. 정말 올 거예요?
“응, 내일 당장 갈 거야. 부모님 싸움 끝나면 이 번호로 곡 전화 달라고 해. 알았지?”
-네, 꼭 오세요. 안 그러면 엄마 아빠 또 싸워요.
“걱정하지 말고, 끊어도 돼. 내일 보자 꼬마야.”
큰 고민거리가 해결된 송보름은 번쩍 손을 들고 소리쳤다.
“만세!”
뭔가 하는 손님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 * *
진료가 끝난 성심 종합 병원.
드르륵.
유달과 장미란은 박광훈이 입원한 병실로 들어갔다.
호텔 객실 같은 VIP 전용 고급 병실이다.
박광훈은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 있다.
그는 원혼들의 집요한 괴롭힘 때문에, 몰라볼 정도로 야위고 기운 없는 모습이다.
유달은 특유의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야~ 이거 상이라도 줘야겠어? 악령들의 고문에서 이리 버티는 건 정말 흔치 않거든. 오늘은 아무렇지 않아서 괜찮았을 거야? 미안하지만 고통 끝 아니야. 담당 의사가 네놈 상태 봐서 면담을 허락한다고 했기에 원혼들에게 쉬라고 했어.”
박광훈의 눈에 독기가 엿보이기 시작했다.
“네놈의 정체가 뭐지…….”
“무당. 영혼과 소통하는 존재라서 네놈이 원혼들을 만들면 내가 골치 아파진다고.”
“헛소리 집어치워. 내가 정신과 의사로 몇 년을 일했는지 알아? 자신이 영혼을 볼 수 있다는 하는 놈들은 둘 중에 하나야. 사기꾼이나 미친놈. 내가 그런 말에 현혹될 정도로 멍청한 줄 알아?”
“아주 똑똑하고 공부 잘했으니 의사를 하고 있겠지. 하지만 내신 1등급이면 뭘 해? 인간성이 등급을 벗어났는데.”
박광훈이 인상 구기며 대답했다.
“말장난하러 온 것이면 꺼져. 나한테는 어떤 수사 기법이나 속임수는 안 통해.”
“나는 오늘 끝장을 보러왔거든? 마지막으로 네놈한테 기회를 주지. 씁! 짜증 나는 얼굴 하지 말고?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야. 여태껏 기회를 줬어도 단 한 놈도 들어먹진 않았지만, 일종의 의식 같은 거라서 말이야.”
유달은 박광훈이 반응과 상관없이 말을 이었다.
“만약 네놈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잘못을 빌면, 영혼의 소멸만은 면해 주지. 어때? 당연히 거부할 거지? 그렇지?”
“진심으로 뉘우칠 만큼 잘못하게 없으니까.”
“고마워, 넌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어.”
박광훈은 엷은 미소까지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어떡할 건데?”
“어쩌긴? 나는 그냥 빠질 거야. 네놈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존재가 있거든.”
곧이어 유달의 표정과 목소리가 바뀌었다.
“썩을 놈…….”
“!”
박광훈은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유달의 살기 어린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오그라드는 공포심을 느꼈다.
“살려 달라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면서 우월감에 빠졌고, 사람의 생명을 끊어 놓으며 전율 같은 희열을 느꼈구나? 그렇다면 네놈도 똑같이 당해야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주마. 이놈~!”
순간, 유달의 얼굴이 한을 품은 여인의 모습으로 변하며 박광훈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악!”
그는 어찌나 놀라고 무서웠던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뒷걸음쳤다.
“휴~.”
박광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착각이었다.
유달의 얼굴은 재수 없는 모습 그대로였는데…….
“!”
박광훈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신의 뒷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손을 뻗어 보았는데,
스윽.
허공에 손을 젓듯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충격에 빠진 박광훈, 그의 뒤쪽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서, 선생님… 살려 주세요. 제발~.”
구치소에 있어야 할 구태진이다.
그는 피범벅인 존재들에게 물리고 뜨기며 애처로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박광훈이 자세히 살피니 물고 뜯는 존재는 그들에게 희생당했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공포에 질린 그에게 유달이 말했다.
“너도 이제 영혼이 보이지?”
“내, 내가 죽은 거야?”
“뭐, 비슷한 거야. 아니, 그보다 더 심한가?”
이어 유달이 장미란에게 말했다.
“핸드폰 영상 준비하십시오. 이제 저놈이 자백할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피해자 진술이 되겠군요.”
유달의 말이 끝나자마자, 병실에 있던 원혼들이 휠체어 쪽으로 몰려들었다.
그러고는 박광훈의 몸을 빌려 자신이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 상세히 이야기했다.
박광훈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아니야!”
“시끄러! 지금 그렇게 편안히 소리칠 때가 아니라고? 영적인 상태가 되었으니, 내 뒤에 누가 있는지도 보일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널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났다고.”
“!”
박광훈은 그대로 몸이 굳었다.
거대한 날개를 가진 무시무시한 존재가 철천지원수는 대하듯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우, 나는 잔인해서 못 보겠어.”
유달이 자리는 뜨는 순간,
화악~.
“으아악!”
“크아악!”
기다렸다는 듯 유달의 몸신이 박광훈과 구진태를 덮쳤다.
* * *
강원도 고지대 비포장도로.
굿 카페 식구들은 장미란의 차를 타고 휴가를 떠났다.
운전은 장미란, 조수석엔 유달.
뒷자리에는 강성호와 송보름이 나란히 앉았다.
출발 직후엔 기분에 들떠 노래도 부르며 흥겨운 여정을 이어 갔다.
하지만 5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이동하자, 지나쳤던 흥겨움이 한풀 꺾인 모습이다.
지이잉~.
선글라스를 쓴 유달이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음~ 소똥 냄새…….”
지이잉~.
유달은 이내 창문을 도로 닫았다.
그러고는 내비게이션을 살피며 장미란에게 물었다.
“목적지에 거의 다 오지 않았습니까?”
“저도 그런 것 같은데…….”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이상하네? 왜 계속 경로 이탈이라고 하지?”
추르르르.
장미란은 급히 차를 세웠다.
계속 직진 중이라 이탈할 길도 없었다.
유달이 말했다.
“아까 지나쳤던 마을에서 물어보는 게 낫겠습니다.”
“그래야겠네요.”
장미란은 차를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갔다.
커다란 돌에 ‘안개 마을’이라 쓰인 표지석이 있다.
장미란은 그 뒤에 있는 구멍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뒷자리의 강성호가 재빨리 내렸다.
“제가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그는 옛 정취가 물씬 풍기를 가게 안을 들어갔다.
80이 훨씬 넘어보는 할아버지가 TV를 보고 있었다.
“죄송한데요. 길 좀 묻겠습니다.”
“그러시우.”
주인 할아버지는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효민 펜션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계속 경로 이탈이라고 뜨네요.”
“!”
순간, 주인 할아버지의 표정이 굳었다.
“방금 어디라고 그랬나?”
“효민 펜션이요.”
“그냥 돌아가.”
주인 할아버지는 매정하게 등 돌리며 말했다.
“왜 그러시지요? 저희는 휴가 때문에…….”
“어허, 돌아가라면 그냥 돌아가라고!”
잠시 후.
강성호가 구멍가게에서 나와 자동차로 돌아왔다.
연신 고개를 갸웃하는 그에게 유달이 물었다.
“어느 쪽이래?”
“제가 효민 펜션 물어봤더니, 주인 할아버지가 무작정 돌아가라고 역정 내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길인지 안 가르쳐 줬어?”
“아니요. 우리가 갔던 길로 그냥 직진하며 된대요. 어떤 내비들은 그렇게 뜨는 경우가 있다네요. 가게에서 이것저것 사니까, 친절히 알려 주시더라고요.”
강성호가 묵직한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헐, 예상치 못한 지출이네. 얼른 타.”
강성호가 뒷자리에 오르자 차는 다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