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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떠나자
유달은 출연 대기실 텐트로 들어갔다.
헤드셋을 쓴 젊은 남자 조연출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영희와 녹음실의 유령들 맞지요?”
“응, 맞아.”
“그런데 왜 혼자입니까? 메인 가수하고, 다른 댄서들은 어디 있지요?”
“우리가 추구하는 게 극단적인 신비주의거든. 내가 무대에 오르고 나서 마법처럼 등장할 거야.”
“아무리 극단적이 신비주의라도 어디서 어떻게 등장하는지 기본적인 동선은 알려 줘야죠? 스텝하고 경호원들이 무대 주위를 지키고 있어요. 허락받지 않은 사람들은 무조건 제지당한다고요”
“그건 걱정은 하지 말라니까? 마법처럼 등장한다고.”
“하, 미치겠네…….”
조연출이 난처한 반응을 보일 때다.
다음 출연자 준비됐냐는 총괄 연출의 무전이 왔다.
조연출은 즉각 대답하지 못하고 유달에게 확인을 구했다.
“정말 이상 없이 등장하는 거 맞지요?”
“응, 확실하다니까.”
조연출이 총괄 연출에게 무전을 했다.
“모두 준비됐습니다.”
이어 그는 유달에게 애원조로 말했다.
“만약 사고 나면, 저 진짜 쫓겨나요. 이전에도 경고 한번 먹었다고요.”
“걱정하지 말라고. 아주 서프라이즈 한 무대가 될 거야.”
“정말 믿어요. 실수나 사고 절대 안 돼요.”
“알았다니까. 죽어도 실수는 안 해.”
“여기 대기하고 있다가, 앞 순서 끝나면 밖으로 나갈 겁니다. 화장실 가고 싶으면 지금 갔다 오세요.”
“안 마려워.”
정규 공연의 마지막 순서가 끝나 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걸그룹이 분위기를 열광적으로 띄워 놓았다.
유달은 슬슬 부담되기 시작했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계속 이어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실수해서 공연을 망친다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초조함을 느끼는 유달에게 조연출이 물었다.
“가수 영희는 예뻐요? 노래는 정말 잘하는 것 같은데.”
“노래도 잘하고 얼굴 예쁘지. 하지만 춤은 기대하지 마.”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었다.
오영희의 어설픈 몸짓은 막춤을 벗어나지 못했다.
조연출은 유달의 장검에 관심을 보였다.
“소품이 죽여요. 제가 옛날 무기에 관심이 많거든요. 한번 만져 봐도 돼요.”
“안 돼!”
유달은 재빨리 검을 끌어당겼다.
조연출은 몹시 섭섭하고 민망한 표정이다.
유달은 그를 실망하게 해서 좋을 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만 봐.”
스릉.
유달은 검집에서 한 뼘 정도 검을 빼냈다.
“우와~.”
조연출은 푸른 빛이 감도는 검날을 보고 탄성이 터트렸다.
그는 귀신에게 홀린 듯 검을 향해 손을 뻗었고,
탁.
유달이 잽싸게 검을 도로 집어넣는 때다.
와아아아아~.
무대가 떠나갈 것 같은 함성이 터졌다.
최정상 인기 걸그룹 화려한 공연이 끝난 것이다.
이제 유달과 영혼들이 나설 차례다.
조연출이 손짓하며 말했다.
“따라오세요.”
유달과 조연출은 텐트에서 나와서 무대에 오르는 계단 앞에 멈춰 섰다.
“MC들의 멘트 끝나면 무대에 오를 겁니다. 제 신호 기다리세요. 조명 꺼지면 어두우니까 계단 오를 때 조심하시고요.”
“알았어.”
음악 전문 채널의 남자 아이돌 진행자들이 이번 행사의 MC도 맡았다.
“여러분,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극단의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가수 영희의 특별 무대가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TV에서와 똑같이 번갈아 가며 멘트를 했다.
“오늘은 특별히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 보낼 무시무시한 백댄서들 불렀다고 합니다.”
“이름만으로도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가수 영희와 녹음실의 유령들이 함께합니다.”
“모두 즐겁게!”
MC들이 퇴장하는 순간, 무대 위의 조명이 꺼졌다.
곧이어 조연출이 유달의 손짓하며 말했다.
“어서 올라가세요. 무대 중앙은 야광으로 표시되어 있어요.”
“오케이… 나는 할 수 있다. 무대 체질이다. 화면이 실물보다 멋있게 나온다. 파이팅!”
유달이 무대 위로 오르자, 스텝들이 조연출 주위로 모여들었다.
“가수 영희는 어디 있데요?”
“몰라, 마법처럼 나타난다고 하더라고.”
그들도 가수 영희의 정체가 궁금하여 무대가 잘 보이는 쪽으로 이동했다.
짙은 어둠 속.
유달은 야광으로 표시된 무대 중앙에 멈춰 섰다.
팟!
스포트라이트 하나가 밝혀지며 유달을 비췄다.
스릉!
유달은 크게 반원을 그리며 검을 뽑았다.
검의 궤적을 따라 선홍빛 광채가 길게 이어지다 사라졌다.
곧이어 유달은 검을 붓 삼아 무대 바닥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쏴아아~.
검끝이 바닥을 긁는 소리는 고요한 밤바다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에 가까웠다.
쏴아아~ 쏴아아~!
검을 휘두르는 유달은 전설의 무림 고수 같다.
날렵한 칼 놀림, 화려한 동작을 거듭하며 무대 주위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조연출 주위의 스텝들이 탄성을 질렀다.
“우와, 사운드 죽이네요? 검에다 마이크 달았어요?”
“아니?”
유달은 그냥 검만 가지고 올라갔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달은 검 끝이 아래로 향하게 검을 고쳐잡았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무대 바닥에 검을 박는 순간.
화앙아~.
돌풍이 부는 듯한 바람 소리가 울리고,
유달에 바닥에 썼던 글씨가 붉은 광채를 발하며 동시에 번뜩였다.
그 모습은 도형도 아니요, 글씨도 아니요, 신비롭고, 기괴하기까지 한데, 마치 거대한 부적을 보는 듯했다.
“언제 특수 효과를 설치한 거야?”
무대 주위의 스텝들이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는 그때.
딩, 딩, 딩, 딩…….
잔잔한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왔다.
관객들은 어디서 가수 영희가 나올지 목을 빼고 지켜봤는데, 그녀가 등장한 곳은 허공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오영희는 보이지 않는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듯, 번쩍 팔은 든 유달의 손을 잡고 내려왔다.
곧이어 마이크 앞에 선 그녀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무엇을 준비할까…….”
“우와아아~.”
감미로운 그녀의 목소리에 관객들의 탄성이 터졌다.
“진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야…….”
탄성이 잦아들고, 축제에 참여한 모두가 그녀의 노랫소리에 넋을 잃고 빠져드는 그때.
누구보다 격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오명근 회장 부부였다.
유달에게 미리 말을 들었던 오명근도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몸을 떠는 상황이다.
하물며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왔던 그의 부인은 어떻겠는가.
“여, 영희야… 우리 영희가 틀림없어요!”
무대로 뛰어가려는 그녀를 장미란이 진정시켰다.
다행히 그녀의 위로가 통하여 오명근 부부는 빠르게 마음을 추스르고 딸의 공연을 지켜보았다.
띠리리링!
조용하게 이어지던 멜로디가 끝나고, 디스코 풍이 경쾌한 박자로 바뀌었다,
순간, 녹음실의 유령들이 땅에서 솟아나듯 튀어나왔다.
“우와~.”
또다시 터지는 관객들의 함성.
앞쪽에 앉아 있는 관객부터 어깨를 들썩들썩, 흥겨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유달도 녹음실의 유령들과 어울려 클럽에서 다진 멋진 춤을 뽐내고 있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힘들어 뒈지겠어!’
영혼들을 사람과 똑같이 보이게 하는 건 상상도 못 할 영적인 기운을 소모한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여섯 명.
게다가 유달이 부적을 그려 넣은 무대 전체에서 효력을 발휘했다.
‘너무 자신감이 충만했어! 예상했던 것보다 내 영기가 훅훅 빠져나가!’
유달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버티고 있는데,
빰, 빰, 빰, 빰!
흥을 고조시키는 EDM 소리가 울려 퍼지며, 강렬한 비트로 바뀌었다.
완전히 난장으로 변한 무대.
오영희와 녹음실의 유령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막춤을 추어댔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징 소리.
뎅~.
‘이건 뭐야?’
춤추던 유달도 당황했다.
주변에 있던 원혼들이 사물놀이패를 이끌고 무대 위로 등장했다.
타당 탕탕 타다다당.
그들은 꽹과리와 장구 소리에 맞춰 신명나게 무대를 누비고 다녔다.
‘젠장! 힘들어 뒈지겠는데, 다른 원혼들까지 왕창 붙었어!’
하지만 불청객 원혼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빰빰빰빰.
두두두둥, 두두두둥.
고적대의 나발 소리와 전쟁의 북소리.
흥을 주체 못 한 원혼들이 무대 위로 뛰어들어 미친 듯이 춤을 추며 난리다.
그 넓은 무대가 영혼들로 꽉꽉 들어찬 상황.
‘에라, 모르겠다!’
유달은 될 대로 되라는 듯, 그들과 어울려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꽉 들어찬 영혼들의 춤으로 들썩이는 무대.
그 흥겨움은 관객석까지 퍼지고, 무대 주변 전체가 거대한 춤판으로 변해 버린 상황.
그렇게 미친듯한 흥겨움이 절정으로 치닫고,
쾅~!
폭음과 같은 마무리로 노래가 끝난 순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펼친 유달이 소리쳤다.
“승천하라~!”
그의 외침이 여운처럼 울려 퍼지며,
무대 위에 가득 찼던 원혼들은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반짝이는 불빛이 되어 밤하늘로 사라져다.
“우와아~ 우아아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관중들의 함성.
연예부 기자들이 가수 영희를 인터뷰하기 위해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오영희는 물론 무대 위에서 춤추었던 그 누구도 찾지 못했다.
완전히 탈진한 유달만이 큰 대자로 누워 있을 뿐이다.
* * *
백시연의 지하실.
유달은 어깨에 장검을 걸치고 계단을 내려갔다.
바로 뒤에서 랜턴을 들고 따라는 백시연은 그의 방문이 못마땅한 표정이다.
“꼭 이렇게 이른 시간에 찾아와야 했나요.”
“10시가 넘었는데 뭐가 일러?”
약속한 기간이 끝났기에 그녀에 대한 존중은 사라졌다.
“저는 야행성이라 오후에 일어난다고요.”
“내일 휴가 떠나려면 어쩔 수 없어. 그동안 미뤘던 일을 모든 일을 끝내고, 상큼하게 갔다 오고 싶단 말이지.”
계단을 다 내려온 백시연이 불을 켜며 대답했다.
“네, 좋겠네요…….”
딸깍.
순간, 유달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불을 켰는데, 왜 아직도 어둡지?”
“선글라스를 벗어요.”
“아, 맞다! 선글라스~ 요번 휴가를 위해 큰돈 들여서 산 거야. 명품이야. 명품.”
아무래도 유달은 이렇게 자랑질을 하고 싶어 일부러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던 것 같다.
백시연은 랜턴을 선반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참 대단하세요?”
“뭐가? 내가 대단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어젯밤, 있는 영기 없는 영기 다 쏟아부었을 것인데, 아침부터 생생하잖아요.”
“내가 원래 강철 체력이야. 그런데 어제 내 공연 보고 느끼는 거 없었어? 멋있다, 대단하다, 그런 거 빼고.”
“저한테는 일종의 경고처럼 느껴졌어요.”
유달은 근접한 답인 듯 반갑게 되물었다.
“어떤 경고?”
“보통 사람들은 어제의 공연이 화려한 퍼포먼스로 보였겠지요. 하지만 저 같은 사람에겐 충격 그 자체였어요. 그 어떤 영적 능력자도 흉내 내지 못할 엄청난 일이었지요.”
“그 어려운 일은 내가 왜 했을까?”
“앞으로 이 땅에는 대마신의 재림 때문에 전 세계의 영적 능력자들이 모여들겠지요. 그들에게 보내는 무언의 경고지요. 까불지 말고 조용히 다니라는…….”
“오케이, 정답. 이제 골칫거리 해결하고 휴가 갈 일만 남았네. 우선은 저놈부터.”
유달은 개집에 묶여 있는 조판석에게 다가갔다.
“아직 완벽히 악령으로 변하진 않았네.”
백시연이 부정적으로 말했다.
“그 검으로 벤다고 소멸하겠어요? 아직 생명줄이 끊어지지 않았는데.”
“내가 왜 검으로 소멸시킨다고 생각하지? 그러니까 마신들은 안 되는 거야. 머리를 쓰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고.”
이어 유달은 개집에 묶여 있는 조판석과 눈높이를 맞추며 쪼그려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