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85화 (85/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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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음악 대축제

굿 카페의 한가한 오후.

유달과 송보름이 가장 시원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며칠 전 비밀 연구실에 봤던 충격적인 장면을 생생하게 이야기했다.

“커다란 달걀처럼 생긴 기계에 줄줄이 있고, 그 안에는 하얗게 얼어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데, 악령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어서… 어우, 내가 봤던 쇼킹한 장면 3위 안에 충분히 들 것 같아.”

“사장님, 저는 듣기만 했는데도 속이 안 좋아요.”

“그거 봐라. 내가 알아서 좋을 거 하나도 없다고 했지. 귀찮아서 너한테 설명 안 한 거 아니라니까?”

송보름은 거북한 속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그러면요, 그 안에 있는 냉동 인간들은 죽은 거예요? 살아 있는 거예요?”

“죽었다고 봐야지. 육신을 떠난 영혼은 다시 돌아오지 못해. 승천하거나,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아니면 지박령이 되어 소멸하거나… 혹여 먼 훗날 엄청나게 기술이 발전되어 해동시킨다고 해도, 깨어나는 사람은 죽기 전 그 사람이 아니야. 그 육신을 차지한 악령을 깨우는 거야.”

“무서워요. 사장님.”

“그러니까, 너도 냉동 인간 같은 거 하지 마.”

송보름이 펄쩍 뛰며 대꾸했다.

“제가 그런 걸 왜 해요?”

“조판석의 마지막 사기에 당한 사람이 한둘인 줄 알아? 그놈은 사람들의 절박함을 이용했어. 만약 네가 불치병 걸리면 너희 아버지도 그럴 수 있지. 돈도 엄청 많고, 너를 끔찍이 위하니 못 할 게 없지.”

“아빠한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확실히 말할게요. 그리고 불치병에도 절대 안 걸릴 거고요. 그런데 조판석이란 사기꾼은 뭐예요?”

“뭐가?”

“생명줄이 끊어지지 않았으니, 혼자만 냉동 인간에 성공한 건가요? 소멸하지 않는 악령이 탄생한 거잖아요?”

유달은 확신을 갖지 못하고 대답했다.

“글쎄, 그놈은 상당히 특이한 경우라. 아마도 대마신의 영향이 아닌가 싶어. 그게 가능한 건 그놈밖에 없으니까.”

“대마신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가요?”

“몰라, 몰라. 골치 아픈 얘기 말고 딴 거 없어?”

“있어요.”

“뭔데?”

송보름은 한층 밝아진 음성으로 말했다.

“이번 여름 휴가는 아주 괜찮은 곳에서 보내게 될 것 같아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사장님.”

“정말?”

“그럼요. 맑은 공기에 시원한 강바람. 역대급으로 편한 잠자리와 최고급 음식이 제공될 거에요.”

유달은 기뻐하기보단 의심부터 했다.

“미안한데, 우리 휴가비 예산이 얼만지는 알고 있어? 작년의 두 배라고는 하지만, 인원도 두 배가 늘었다고. 물가 상승률까지 고려하면 더 줄어든 셈이지.”

“걱정하지 마세요. 돈은 한 푼도 안 들어요,”

“진짜로 정말? 시원한 강바람, 편안한 잠자리, 최고의 음식. 그 모든 게 공짜로 가능하다고?”

“물론이지요. 게다가 운이 좋으면 보너스도 두둑이 챙길 수 있다고요.”

“대체 어디로 휴가를 잡았기에 그래?”

“미리 알려 드릴까요?”

유달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 아니. 괜히 부정 탈까 무서우니까 절대 말하지 마. 그런데 정말 아무 경비도 안 들이고, 그런 엄청난 혜택을 누릴 수 있단 말이지?”

“그럼이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해요. 사장님 뒤끝 만리장성인 거 내가 뻔히 아는데?”

“대체 어디지?”

“알려 드려요?”

“아니, 아니, 아니. 나 참을 수 있어. 절대 말하지 마.”

유달이 푼수 같은 행동을 거듭할 때다.

딸랑딸랑.

장미란과 백시연이 같이 들어왔다.

함께 쇼핑이라도 했는지 그녀들 손에는 유명 백화점 쇼핑백이 들려 있다.

유달의 반응은 곱지 않았다.

“내일이면 도로 적이 되는데, 그리 다정하게 쇼핑하러 다니십니까?”

한여름 밤의 음악 대축제가 내일이다.

오영희가 무대 공연을 끝내고 승천하면, 유달과 백시연은 처음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백시연이 그에게 다가오며 대답했다.

“적이라니요? 따지고 보면 제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봤다고요. 저는 앞으로도 굿 카페 식구와 잘 지내고 싶어요.”

유달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누구 맘대로요? 그동안 작곡가님에게 존댓말 쓰느라 얼마나 짜증 났는지 아십니까? 함부로 빈정거리지도 못해서 죽을 맛이었단 말입니다.”

“저를 존중해 주는 게 그리 힘들었다니 유감이네요. 그런데 내일이 공연인데 리허설 참석도 안 할 건가요?”

“저는 무대 체질이라 할 필요 없습니다.”

“본인이 싫다는데 어쩔 수 없지요.”

이어 그녀는 손에 들고 쇼핑백을 유달에게 내밀었다.

“입어 보세요.”

“뭡니까?”

“무대 의상이에요. 전국에 생중계되는 행사인데, 그 복장으로 오를 순 없잖아요.”

“뭘~ 이런 걸 다 사 옵니까?”

유달은 사양하지 않고 넙죽 받았다.

“설마 반짝이 트로트 의상은 아니겠지요?”

“입어 보고 얘기해요.”

유달이 옷을 꺼냈는데 화려한 색상은 아니다.

검은 정장 스타일인데 연미복처럼 상의 밑단이 길었다.

“이런 건 지휘자들이나 입는 거 같은데요?”

맞춤 제작한 듯 유달의 몸에 딱 맞았다.

유달은 약간 불만인 듯했지만, 송보름은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주 멋있어요. 사장님, 뭔가 중후한 것이 영국 귀족의 느낌도 살짝 나고요.”

“정말?”

“사장님은 장검 들고 무대에 오를 거잖아요. 사장님의 액션을 더욱 돋보이게 할 것 같아요.”

유달은 송보름이 괜찮다고 하면 끝이다.

“감사합니다, 작곡가님. 평생토록 잘 입겠습니다.”

“저한테 감사할 필요 없어요.”

“예?”

“여기 계신 장미란 매니저님이 사 주신 거예요. 무대 의상으로 어떤 게 좋을지 모르겠다고 해서 제가 골라 준 것이죠. 덕분에 저도 쇼핑도 좀 했고요.”

유달 것 하나 빼고는 전부 그녀의 것이었다.

백시연은 장미란이 주는 쇼핑백을 들고 카페를 나섰다.

“내일 저녁 늦지 않게 오세요. 저는 일이 있어서 데리러 못 오니까요.”

유달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장미란에게 감사와 사과의 뜻을 전했다.

“역시 저를 챙겨 주는 건 미란 씨밖에 없군요. 기부 목록 1호로 넣고, 아주 특별한 날에만 입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유달 씨가 저를 돕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저는 이래서 미란 씨가 좋습니다. 사람들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데, 미란 씨는 그게 없어요. 항상 똑같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요.”

“그리 생각해 주시니 고맙네요. 참, 휴가는 내일 공연 끝나고, 토요일에 가는 건가요? 그때 맞춰서 내부 인테리어 공사 들어가려고요.”

유달은 연미복 스타일의 무대 의상을 벗으며 대답했다.

“아마도 이틀 뒤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휴가 떠나기 전에 골치 아픈 일을 모두 마무리하려고요. 그래야 마음 편히 휴가 즐기고 돌아와 새롭게 카페를 시작할 수 있겠죠.”

“알았어요. 공사 업체에겐 제가 전화할게요. 참, 오늘 저녁 외식할까요? 영희 씨가 내일 떠난다고 하니까요.”

송보름이 반색했다.

“좋아요! 오랜만에 고기 먹어요.”

그런데 누구보다 열렬히 환영할 줄 알았던 유달이 거부의 뜻을 밝혔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안 되겠습니다.”

송보름이 놀라서 물었다.

“왜요? 어디 아파요?”

그렇지 않고는 유달이 포식할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내 몸은 언제나 건강하지. 아쉽게도 선약이 있어.”

“누구요?”

“영희네 부모님 만날 거야. 떠나기 전에 마지막 인사나 하게 하려고.”

“예?”

송보름이 유달의 팔을 끌며 말했다.

오영희가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였다.

“사장님 왜 그래요? 저 언니가 불쌍한 건 알겠는데,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에요? 사장님답지 않게, 하고 싶다는 건 다 들어주잖아요. 혹시 약점 잡힌 거 있어요?”

“너도 알잖아. 우리가 가게 초반에 얼마나 힘들었어. 손님 한 명 못 받고 문 닫는 날이 태반이었지. 내가 겉으로는 대범한 척, 편해서 좋다고 했지만,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갔는지 모른다고.”

“맞아요. 가뭄에 콩 나듯 손님 들어오는데, 그나마도 썰렁한 분위기에 다시 나가기 일쑤였지요. 소금 뿌릴 돈도 없었다고요.”

그들은 과거의 아픔을 떠올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손님 하나 없는 가게를 바라보는 처참한 심정은 가게를 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어. 그때 한 줄기 빛처럼 등장한 손님이 바로 영희잖아.”

“믹스 커피가 신선해서 좋다고 했어요. 사주·관상 안 보고도 제값 다 지불했고요. 매일 빼놓지 않고, 친구와 아는 사람들 다 데려왔잖아요.”

“나 정말 그때 가게 접으려고 했었어. 영희가 없었다면 지금의 굿 카페도 없지.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은 몇 배로 갚아도 지나치지 않는 거야.”

“인정! 고기는 휴가 가서 먹지요.”

“오케이, 그런데 영희 부모님은 어떻게 만나지? IT 업계의 신흥 재벌이잖아. 만나기도 힘들고, 무당인 내가 죽은 따님 일이라고 하면, 사기꾼인 줄 알 텐데?”

* * *

IT 기업으로 유명한 해피넷 본사.

유달은 손쉽게 오명근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왠지 기운 없어 보이는 그는 손수 차까지 대접해 주었다.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흔쾌히 만남을 허락해 주셔서 제가 외려 당황스럽습니다.”

“굿 카페 기억합니다. 예전에 제 막내딸이 자주 갔던 곳이지요.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한 겁니까?”

유달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먼저 약속부터 해 주십시오. 제 말이 이상하게 들리더라도 무작정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지요. 말해 보세요.”

이에 유달은 속사포처럼 말을 터트렸다.

“저는 무당입니다. 제 옆에는 따님의 영혼이 있지요. 그 증거로 따님과 사장님만 알 수 있는 내용을 말씀드리지요. 10살 때 따님이 눈을 다친 것은…….”

오명근은 가만히 듣기만 했고, 유달은 숨이 찰 정도로 더욱 빠르게 말을 이었다.

“…마지막 운명의 순간, 회장님이 따님의 손을 잡고 하신 말씀은 없습니다. 그냥 손만 잡고 울기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나고 발인하기 직전, 회장님은 다른 사람들을 모두 물리고 따님과 혼자 남았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죠. 내 심장이 떠나는구나.”

“그만하십시오.”

오명근은 몸을 일으키며 유달의 시선을 외면했다.

남에게 눈시울이 붉어진 걸 보이기 싫은 듯, 등을 진 상태로 말했다.

“나는 당신 말을 믿지 않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혹여 진실일 수도 있으니, 제 딸이 원하는 게 있으면 말씀해 보십시오.”

“오늘 가족이 식사할 때 초대해 주시고, 내일 시간 되면 공연 보러 오십시오.”

“그뿐입니까? 바로 식사 준비시키지요.”

“제가 회장님께 했던 말은 가족분들께 하지 마십시오. 괜히 분위기 이상해집니다.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 저만 남이니, 얼마나 민망하겠습니까? 회장님이 가끔 말을 걸어 주시고요.”

오명근이 등진 몸을 돌리며 말했다.

“만약 제 딸이 옆에 있다면, 제 말 좀 전해 주시겠습니까?”

“저를 통해 말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말씀하셔도 따님은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따님은 망각의 상태가 상당히 진행되었습니다. 떠날 준비가 끝난 것이죠. 많은 기대 마시고, 먼 길 떠나는 따님에게 맛있는 밥 한 끼 먹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내일 공연은 또 뭡니까?”

“따님이 무대에서 노래할 겁니다. 너무 예뻐진 따님의 모습에 놀라지 마십시오.”

“제 딸이 노래를요?”

오명근은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당황스러운 모습이다.

* * *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인근 야외 공연장.

한여름 밤의 음악 대축제 특설무대.

상현달이 뜬 밤하늘.

엄청난 군중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모였다.

공연은 성황리에 진행 중이고, 굿 카페 식구들은 VIP석에 앉아 있었다.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로, 백시연과 오명근 회장 부부도 함께였다.

흥겨운 노래와 함성이 이어지던 공연이 막바지로 치닫고,

행사를 진행하는 스텝이 유달에게 다가왔다.

“준비하십시오.”

“오케이!”

유달이 장검을 쥐고 몸을 일으켰다.

매우 비장한 표정이다.

그는 파이팅을 연발하는 송보름이 외침도 안 들리는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유달과 함께하는 영혼은 오영희뿐만이 아니다.

녹음실의 유령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건들거리며 유달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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