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83화 (83/183)

83

돌직구

백시연과 유달의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녀는 유달이 인정 못 한다는 것을, 인정 못 했다.

“생각 좀 하고 대답하세요. 영희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지요. 작곡가님?”

“영희는 자신의 모습으로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은 거예요. 누군가에게 빙의한 상태가 아니고요.”

“빙의 필요 없이, 현재의 모습으로 가능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요? 제가 아는 그 어떤 영적인 존재도 불가능해요.”

“내가 가능하다면 가능한 겁니다. 물론 약간의 제약이 있기는 하지요.”

백시연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그게 뭘까요? 혹시나 말도 안 되는 제약을 들먹이며, 없던 것으로 하자는 꼼수는 아니겠지요?”

“나는 그렇게 교활한 성격이 못 됩니다. 타고난 성격 때문에 속내가 뻔히 들키고 말지요.”

이어 그는 오영희에게 물었다.

“원하는 바를 내가 들어줄 수 있어. 하지만 시간의 제약이 있단 말이지.”

“그게 뭔데요?”

“보통 사람과 똑같이 노래 부를 수 있는 시간은 10분 정도? 노래가 끝나면 바로 승천해야 해. 더는 이승에 머물 수 없다는 말이지.”

“저는 괜찮아요.”

“오케이, 그렇다면 마지막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해 보자고. 아마도 저게 괜찮을 것 같은데?”

유달은 TV를 향해 고개 돌렸다.

중간 광고 시간이다.

-한 여름밤의 음악 대축제.

음악 전문 채널에서 주체하는 행사에 관한 광고다.

다음 주 금요일 밤, 국내 유명 가수들이 총출동한다는 내용이었다.

유달이 백시연에게 물었다.

“저기에 영희를 출연시키고 싶군요. 업계에 영향력이 큰 작곡가시니, 힘 좀 써 보시지요?”

“일을 점점 크게 만드시네요. 만약 잘못되면 내 경력은 끝장이에요.”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전무후무한 공연이 될 수도 있지요. 작곡가님이 최대한 도와주시면 말이지요.”

“영희가 참석 의사를 밝힌다면 방송국에서 거부할 이유는 없지요. 외려 더 좋아할 거에요.”

“몇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백시연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 예상했다.

“빨리 말해요. 그래야 방송국과 협의 들어가지요.”

“영희는 맨 마지막 순서로 잡아 주세요. 선배 가수들의 눈총이 있겠지만.”

“상관없어요. 행사가 끝나고, 특별 무대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하면 돼요.”

“무대에는 나도 올라가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진검 들고 올라가도 되죠?”

“예?”

유달은 필요한 사항을 전달했고, 백시연은 앉은 자리에서 전화로 모두 해결했다.

“다른 건 또 없나요?”

“추후 발생 되면 바로 연락 드리죠. 이제 여기 온 용건을 말하면 됩니다. 약속도 없이 갑자기 온 이유가 이겠지요?”

백시연은 오랜 통화로 열이 나는 핸드폰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맞아요. 지하실에 있는 사기꾼 때문에 왔어요.”

“그놈이 왜요? 시끄럽게 계속 짖던가요?”

“아니요, 상태가 이상해요.”

“어떻게 이상한데요?”

“제가 보기에는 악령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유달이 의아한 듯 반문했다.

“생명 줄이 끊어지지 않은 존재가 악령으로 변한다고요”

“그놈 상태가 그래요. 제가 잘못 볼 리 있을까요?”

“재밌네요.”

“재밌어요? 소멸이 불가능한 악령이 탄생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설마 그런 일까지 벌어지겠습니까?”

“지금이라면 벌어질 수도 있지요. 대마신이 재림할 징조 중에 하나 아닐까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괴물이 세상을 어지럽힐 것이다.”

“저는 그게 좀비인 줄 알았는데요?”

백시연이 인상 쓰며 대꾸했다.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마시고요. 사기꾼 그놈은 괴물 악령이 될 것 같은 전조를 보인다고요.”

“어떤 식으로요?”

“조만간 사장님이 걸어 놓은 목줄이 끊어질 것 같아요.”

“헐… 마신도 아닌 악령이요?”

“전화로 말하면 믿지 않을 것 같아서 제가 직접 찾아온 거예요. 지금 함께 가실까요?”

“뭐, 그럽시다.”

장미란도 유달을 따라 몸을 일으켰다.

“저도 같이 가요.”

“그러세요.”

백시연은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 * *

늦은 밤.

백시연의 어두침침한 지하실.

장미라과 유달은 플래시를 비추며 개집 쪽으로 향했다.

“제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플래시 불빛에는 개집과 축 늘어진 목줄만 보였다.

유달이 장미란에게 말했다.

“잠시 불 좀 치워 주시지요. 영혼은 불빛이 없는 상대로 봐야 잘 보입니다.”

“알았어요.”

장미란이 플래시를 거두자, 유달이 유심히 살폈다.

“정말이네요. 사기꾼 놈이 악령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제가 걸어 놓은 목줄도 위태롭고, 겁도 없이 저한테 달려들려 하고 있습니다. 제 앞머리 흔들리는 거 보이죠.”

“네, 보여요.”

“내 앞에서 마구 손을 휘젓고 있습니다. 악령의 기운이 강해져서 가벼운 바람까지 일어나는 겁니다.”

장미란은 유달과 별별 일을 다 겪었기에, 이런 정도로는 무서움을 느끼지 않았다.

“대화가 가능할까요? 저놈이 사기 친 돈과 냉동 인간에 관해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

“그러시죠.”

이어 유달은 와락, 조판석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이게 어디서 맞먹으려고 지랄이야.”

사납게 달려들던 조판석은 이내 비굴한 반응을 보였다.

“크윽, 죄, 죄송합니다…….”

“악령의 기운이 뻗쳐서 눈에 뵈는 게 없지? 고통의 강도를 몇 단계 더 올려 줄까?”

“아, 아니요.”

“그럼 지금부터 형사님이 묻는 것에 사실대로 말해. 안 그러면 알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유달이 장미란에게 말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그녀는 바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조판석 씨, 당신의 마지막 사기는 냉동 인간에 관한 것이었어요. 그에 대한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군요.”

“큭큭큭큭, 사기라고? 그게 사기였으면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었을까, 형사 나리?”

유달은 조판석의 표정과 목소리까지 흉내 내며 그대로 전달했다.

“당신은 사망 전 중국에 간 일이 없어요. 그렇다면 냉동 인간으로 만드는 과정이 국내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우리가 모르는 냉동 보관 시설이 국내에 존재하나요?”

“시설이 아니고 연구소야.”

“그래요. 연구소. 그곳이 어디 있지요? 몇 사람이나 당신과 같은 상태로 있는 건가요?”

“그건 나도 몰라. 내가 살 가망성이 없게 되면 냉동 인간이 된다는 비밀 계약을 하게 되었지. 갑자기 쓰러져서 눈 떠 보니, 이 상태로 이 집에 갇히게 되었다고.”

“정말이요?”

“그건 그쪽이 알아서 판단해야지?”

유달이 끼어들었다.

“이놈 주리를 틀까요?”

“아니요, 아직 물어볼 게 또 있어요. 당신이 사기 친 돈은 어디다 감추고 있죠?”

“큭큭큭큭, 모른다. 안다고 해도 가르쳐 줄 것 같아? 내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지옥에 떨어져도 절대 말 못 하지.”

“안 되겠습니다, 이놈에겐 주리가 필요합니다.”

장미란이 만류했다.

“심하게 고문을 해도 얻은 게 없잖아요?”

“그렇긴 하죠. 목줄의 고통이 엄청난데도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돈에 집착하는 놈은 처음입니다.”

“도망가지 못하게 잘 잡고만 있어요. 내가 묻는 말에 특이한 반응을 보이면 알려 주고요.”

장미란이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당신에 대한 재수사는 이미 착수되었어요. 당신에게 뇌물을 받은 경찰이 조사를 받고 있고요. 당신과 거래했던 금융권 인사들의 압수 수색도 이루어지고 있어요.”

바로 반응이 왔다.

“이놈, 상당히 당혹한 표정입니다.”

장미란은 휴대폰의 문서를 살피며 계속 말을 이었다.

“경찰에서는 당신의 행동 패턴을 분석했어요. 특히나 당신이 죽기 직전, 어떤 접촉이 있었는지 집중적으로 조사했지요. 사기를 치기 위해서 참 많은 사람과 단체를 만났네요. A4 용지로 몇 장이 될 만큼 많아요. 그런데 그중에서 연구소라는 말이 붙은 곳은 딱 한 군데뿐이네요?”

“미란 씨, 이놈 완전히 식겁했습니다.”

이에 장미란은 핸드폰 화면을 내밀며 말했다.

“바로 여기, 미래 식품 과학 연구소.”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조판석이 발광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이는 그렇다고 자백하는 행동과 진배없었다.

“확실히 맞는 것 같습니다. 아주 발광을 합니다.”

“저놈이 가르쳐 준 거나 마찬가지죠.”

장미란이 핸드폰을 거둬들이는 때다.

“크아아악!”

발버둥 치던 조판석이 흉측한 악령의 형상으로 변했다.

“내 돈은 못 가져간다!”

그는 바로 장미란을 향해 달려들려 했고,

-툭!

유달이 움켜쥐고 있던 그의 목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헐! 피하세요, 미란 씨!”

깜짝 놀란 장미란이 다급히 물었다.

“왜요? 무슨 일인데요?”

“악령으로 변한 조판석이 미란 씨의 몸을 차지하려고 하는데… 매우 벅찬가 봅니다.”

유달은 안도하는 기색으로 말을 끝맺었다.

장미란은 허공을 보며 눈을 깜박깜박, 온몸에 신경을 집중하며 물었다.

“지금 가슴 쪽에 기분 나쁜 느낌이 드는데, 악령이 파고들려 하는 건가요.”

“네, 그렇기는 한데, 몹시 안쓰럽습니다.”

조판석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장미란은 미스터리 끝판왕 촬영 당시, 마신조차도 파고들기 버거워했던 몸이다.

악령이 된 조판석은 간신히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빼내지도 못하고 낑낑대는 상황이다.

장미란이 찝찝한 표정을 참으며 말했다.

“미안한데, 빨리 좀 빼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잠시 움직이지 마십시오.”

화악.

유달은 조판석의 목덜미를 붙잡고 힘주어 머리를 빼냈다.

그러고는 그는 개집으로 끌고 가서 밧줄과 포장끈 등을 사용하여 꽁꽁 묶었다.

장미란이 가슴 쪽을 연신 손등으로 털어내며 물었다.

“찝찝함이 계속 남아 있네요. 아무래도 미래 식품 과학 연구소를 조사해야 할 것 같은데, 같이 갈 거예요?”

“당연하죠. 그 연구소가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저도 보고 싶습니다.”

* * *

인천 남동공단 외곽.

미래 식품 과학 연구소는 간판조차 없었다.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었고, 차량과 사람의 출입 통제가 엄격하게 이루어졌다.

유달과 장미란이 경비 초소로 다가갔다.

그들이 가까이 접근하자 보안 요원이 먼저 나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장미란이 대답했다.

“이곳의 책임자를 만나고 싶은데요?”

“약속은 하고 오셨습니까?”

“아니요, 대표 전화로 전화를 걸어도 아무도 받지 않더군요. 어쩔 수 없지 직접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보안요원이 수상함을 느끼고 물었다.

“어디서 나오셨습니까?”

“검찰에서 나왔어요.”

장미란은 검찰 수사관 신분증을 내밀었다.

이동욱 검사가 그녀에게 특별히 만들어 준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보안요원은 내부와 전화 통화를 하고 말했다.

“죄송하지만, 소장님께서는 만날 이유가 없으시답니다. 조사를 원하시면 영장을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장미란은 씩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알았어요. 검찰 수사를 거부했으니, 영장을 청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어 그녀는 핸드폰으로 이동욱 검사와 통화했다.

“네, 협조할 의향이 없다고 합니다. 증거 인멸 우려가 있으니 최대한 빨리 압수 수색 영장 받아 주세요.”

보안 요원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냥 돌아갈 줄 알았는데, 대놓고 영장 청구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급히 내부에 알렸다.

잠시 후.

다른 보안요원이 초소 안으로 들어왔다.

“따라오시지요.”

장미란과 유달은 그를 따라 3층짜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에 있는 면담실 안으로 들어가자,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이곳이 책임자인 배일수 연구소장입니다.”

장미란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면담실이라니… 소장실에 감추실 게 많은가 보죠?”

“중요한 연구 자료 때문이니 양해해 주십시오. 무슨 일로 오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조판석 관련 사건 때문입니다.”

배일수는 의아한 표정을 대답했다.

“희대의 사기꾼을 조판석 말입니까? 그는 동료들에게 살해당하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이 한참 떠들썩했지요. 그의 죽음과 함께 사기 사건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지 않았나요?”

“우리가 조사하는 건 그의 살인사건이에요. 그건 아직 종결되지 않았지요.”

“죄송하지만, 그 사기꾼의 죽음과 우리 연구소가 무슨 관계라는 겁니까?”

“그의 범죄 자금이 이 연구소에 들어왔다는 정황이 포착되어요. 그건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이곳에 무엇을 연구하는 곳인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미래 식품이 어떤 것인지 전혀 감을 못 잡겠네요?”

“연구 보안상 그건 안 되겠습니다.”

이에 장미란이 돌직구를 날렸다.

“냉동 인간을 보관하는 시설이라서 그런가요?”

“!”

배일수는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순간적으로 놀라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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