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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지먼트
오영희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주나요?”
“내 능력으로 가능한 것만. 죽은 사람들은 큰 욕심 부리지 않던데… 대부분이 누군가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싶다는 정도지.”
유달은 그래 주기를 바라는 표정이다.
오영희는 결심한 듯 말했다.
“저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가수?”
유달은 소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다.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어렵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사안이다.
당연히 유달은 쉬운 쪽으로 생각했다.
“노래 부르고 싶다는 거 아니야? 좋아, 불러. 내가 기꺼이 들어 줄게.”
“저는 진짜 가수가 되고 싶어요. 수많은 팬 앞에서 제 노래를 들려 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오영희는 어려운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유달은 중재안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말이야, 내가 우리 카페를 하루 빌려줄게. 주변에 있는 원혼들 다 불러서 자리 꽉꽉 채워 줄 테니까, 신나게 노래하라고. 오케이?”
“제 소원은 정식 가수로 데뷔하는 거예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서 노래하고, 팬 사인회도 갖고, 광고도 찍고 싶어요. 그 돈으로 좋은 일을 하고 싶고요.”
“하~.”
유달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진정으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모습이다.
송보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능할까요?”
유달은 버럭 성내듯 대꾸했다.
“어떻게 가능하겠어! 첫 번째, 영혼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 전세계 무당들을 모아서 팬클럽 결성할까? 두 번째, 시간이 촉박하다고. 내가 아무리 힘써도 49일 넘기기 힘들어. 언제 가수 데뷔해서 공연하고, 팬클럽 결성하고, 광고까지 찍냐고?”
오영희가 민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불가능한 소원인가요?”
이내 유달의 태도가 부드럽게 변했다.
“응~ 아니야.”
영혼은 유달에게 거짓말을 못 한다.
유달 또한 영혼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최고의 영험을 타고난 내가 못하는 게 어디 있어. 힘든 거 하지 않으려는 게으름 병이 또 도진 거지. 이렇게 소리치면 그쪽이 민망하여, 소원을 바꿀 것이라 잔머리를 굴린 거라고. 염병……”
이실직고한 유달이 푹 고개를 숙였다.
환하게 얼굴이 밝아진 오영희가 물었다.
“그럼, 제 소원을 들어주실 수 있나요?”
유달은 탁자에 엎드린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고…….”
“고맙습니다, 사장님! 저는 죽고 나서 세상을 보게 되었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인데, 왜 스스로 갇혀 지냈나 하는 후회가 들었어요. 이승을 떠나는 날까지 활기차게 살아 보고 싶어요.”
유달이 정신을 수습하고 말했다.
“너무 좋아하지 마. 이제부터 고생 시작이니까. 노래, 춤, 외모 다 되는 팔팔한 애들도 가수 데뷔하는 게 힘든데, 귀신의 몸으로 쉽겠냐고?”
오영희는 두 주먹 불끈 쥐며 대답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장님!”
“그렇게 부르니까, 내가 꼭 기획사 사장 같잖아. 일단은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그래야 망각의 과정을 최대한 늦출 수 있으니까. 정확히 언제 삶을 마감한 거야?”
“모, 모르겠어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헐…… 언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른다면, 최소 보름은 지났다는 것인데. 한 달 남은 기간에 어떻게 데뷔시키고, 광고까지 찍지…….”
머리를 쥐어뜯는 그에게 장미란이 조언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되잖아요?”
“누구요?”
“유달 씨를 매우 좋아하는 진짜 기획사 사장님이 있잖아요. 그분이라면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지 않을까요?”
“그렇네요!”
유달도 딱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 * *
압구정동 대로변 건물.
호박엔터테인먼트 사무실.
끼익.
유달이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장미란은 살인마 루시퍼 사건이 종결되지 않아 특별 수사 본부로 출근했다.
출입문 바로 옆 책상 여직원이 유달을 알아보았다.
“어머, 어서 오세요. 대표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진 붙어 있는 문 맞죠?”
“네, 선생님.”
이곳에서 유달은 존중의 대상이다.
박상진 대표를 따라 모두 선생님이라 호칭했다.
똑똑.
노크하자마자 눈이 열렸다.
덜컹!
“오셨습니까, 선생님. 어서 이리 앉으시지요. 아니, 이쪽 자리가 더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박상진의 과한 친절이 시작되었다.
유달은 그가 첫 번째로 권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시간 없으니, 본론으로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혹시 가수도 키우십니까?”
“물론이지요. 톱스타는 아니더라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가수도 몇 명 있지요. 그런데 왜요? 선생님께서 혹시 가수의 꿈을…….”
“그럴 리가요. 제가 모든 잡기에 능한데, 노래는 완전 아닙니다. 사람들은 입에 든 거 뿜고, 귀신들은 기겁하며 도망치지요. 제가 알고 있는 한 여성을 추천해 볼까 합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지요?”
유달도 정확한 나이를 몰랐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스물아홉이요.”
유달은 바로 전달했다.
“스물아홉입니다. 어쨌거나 20대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얼굴이 작고 동안인 외모라, 20대 초반까지는 우겨 볼 수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프로필 나이는 조절이 가능한데, 얼굴은 조절하기 힘들지요. 돈이 많이 드니까요. 그런데 추천하시는 분이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하십니까? 비교적 늦은 나이에 가수를 하고 싶다면 트로트 쪽이 아닌가 싶군요. 음악 시장을 봐도 요즘 트로트가 대세이긴 합니다.”
“글쎄요. 저는 발라드가 아닌가 싶은데…….”
고개 돌린 유달에게 오영희가 말했다.
“댄스요.”
“댄스?”
유달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문했다.
하지만 그녀의 결심은 확고했다.
“우울한 건 싫어요. 사람들과 신나게 노래 부르다 승천하고 싶어요.”
“오케이, 찬성.”
유달은 그녀의 뜻을 전했다.
“댄스로 밀고 나가지요.”
“선생님의 의지가 그렇다면 저는 상관없습니다. 장르보다는 가수의 실력이 중요하지요. 그건 어떻게 조절이 불가능한 부분이라 말이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추천하시는 분은 언제 오십니까? 제가 직접 만나 보고 실력을 확인하고 싶군요.”
이것이 유달에게 가장 난처한 문제였다.
“얼굴 없는 가수 컨셉으로 가려고 하는데요.”
“그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가수로서의 재능이 있는지는 전문가인 제가 직접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장님…….”
유달은 박상진을 이해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할까 생각했다.
그가 추천하는 가수 지망생이 한 달밖에 못 사는 시한부 생명이라면 얼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유달은 거짓말이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냥 저를 믿고 도와주십시오. 그녀는 남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정이 있습니다. 시간도 촉박하지요. 가수 데뷔, 팬클럽 사인회, 광고 출연을 한 달 안에 끝내야 합니다.”
“선생님의 부탁을 제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제가 직접 볼 수 없다면 데모 테이프라도 만들어 주십시오.”
“그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괜찮은 녹음실을 빌릴 수 있을까요?”
“글쎄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박상진은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고 유달에게 말했다.
“추천할 만한 녹음실이 두 군데 있군요. 한 곳은 언제라도 사용이 가능하고, 빌리는 값도 저렴합니다. 다른 곳은 시간 조율이 필요하며 값도 몇 배나 비싸지요.”
“두 곳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일까요?”
“먼저 말한 녹음실에선 귀신이 나온다고 합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인데, 녹음할 때 귀신 나오면 대박 터진다고 하지 않나요?”
박상진이 고개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노이즈 마케팅의 일종이지요. 진짜 귀신이 나오면 무서워서 누가 작업합니까?”
“저는 상관없습니다. 첫 번째로 하지요.”
“알겠습니다. 바로 예약 잡지요. 그런데 작곡가와 프로듀서는 필요하지 않습니까? 시간이 촉박하니, 한 번에 완벽히 끝내려면 말입니다.”
“그건 제가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 * *
굿 카페의 가장 시원한 자리.
유달은 고심하여 책을 읽고 있었다.
“좀 더 센 거 없나…….”
오영희는 당분간 그와 떨어질 수 없는 상태.
유달은 보는 책을 그녀도 볼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 흉악한 책을 보는 거예요?”
오영희는 매우 꺼림칙한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달이 읽고 있는 책은 <고문의 기술>, 온갖 종류의 고문 방법이 기록된 책이었다.
“아주 잡놈의 새끼가 있는데 쉽게 포기하질 않네.”
그가 읽고 있는 책은 연쇄살인마 박광훈을 위한 것이다.
그에게 붙어 있는 원혼들을 이용하여 온갖 방법의 고문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이고, 책만 읽으면 어김없이 똥이…….”
유달은 급히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갔다.
오영희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때다.
쩌엉.
굿 카페 신당이 울림과 동시에,
딸랑딸랑…….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한 여인이 있다.
진한 선글라스를 쓰고 경계하듯 주위를 둘러보는 여인은 백시연이다.
장미란이 웃음 띤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작곡가 백시연 씨 맞죠?”
“어머, 그때 그 형사님?”
백시연은 장미란을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다는 반응이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위로 벗어 올리며 물었다.
“형사님이 왜 여기 계신 거죠?”
“경찰 관두고, 여기서 일하고 있어요.”
“FBI 출신에 광수대 팀장까지 하셨던 분이 사주 카페에서 매니저로 일한다고요?”
그녀의 가슴에서는 매니저 금박 명찰이 달려 있었다.
“저에 대해 조사를 하셨나 보네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유달 사장님 만나러 오셨죠?”
“네, 안 나오면 재미없을 거리는 협박 메시지를 보냈어요. 미리 경고하는데,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여기도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그리 긴장할 필요 없어요. 싸우자고 부른 건 아니니까. 저기 에어컨 앞자리에서 기다리면 돼요.”
그녀는 장미라는 손짓하는 자리로 향했다.
자리에 앉자, 탁자 위에 놓인 책이 눈에 띄었다.
뭔가 하여 책 표지를 살폈는데,
“고문의 기술! 대체 뭐 하자는 거지?”
그녀가 더욱 경계심을 가지는 때다.
“어우, 시원해…….”
유달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왔네?”
백시연이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다가왔다.
“잘 찾아와서 다행이야. 유명 작곡가라 그런지 패션이 남달라. 오는 길이 많이 더웠지? 시원한 음료수 한 잔 줄까?”
그녀는 유달의 호의적인 반응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아니요. 날 부른 용건부터 말해 봐요.”
“실력 있는 작곡가에 음반 프로듀서도 한다고?”
“그런데요?”
“우리 같이 음반 작업 한번 해 볼까?”
“네?”
유달이 오영희에게 눈짓했다.
“어서 인사해. 좋은 곡도 주시고, 프로듀싱까지 해 주실 분이야.”
“안녕하세요. 오영희입니다.”
백시연은 어처구니없을 따름이다.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뭐하긴? 내가 그쪽을 왜 불렀는지 척하고 감이 안 와?”
“그러니까, 산 사람도 아닌 귀신의 음반을 내자고요?”
“역시 똑똑해. 좋은 곡 있으면 얼른 내놔 봐.”
“…….”
백시연은 할 말을 잃었다.
저수지 사건이나 광무사에서 유달의 막무가내인 모습을 봤지만, 오늘이 제일 황당했다.
“저기요?”
유달은 아첨하듯 재빨리 대답했다.
“네, 작곡가님.”
“참 한가하게 지내시네요. 귀신 매니지먼트까지 하고요. 다른 건 차치하고, 귀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녹음하죠?”
“그건 나한테 맡겨 주면 돼.”
“좋아요. 그러면 저 아가씨가 노래한 경력은 있나요? 나는 수준 떨어지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 않아요.”
오영희가 직접 대답했다.
“성가대 경력이 있어요.”
“그럼 불러 봐요. 저만이 아닌, 가게 안의 손님들이 모두 들을 수 있게요.”
“지금… 여기서요?”
백시연이 유달을 보며 물었다.
“안 되나요?”
“무슨 소리! 당연히 할 수 있지.”
벌떡 일어난 유달이 오영희에게 말했다.
“내 손 잡아. 그리고 집중해서 노래하면, 보통 사람들도 영희 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알았어요.”
오영희는 유달의 한쪽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잠시 숨을 고르고, 노래를 시작했다.
“아베마리아~.”
그녀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가게 안 손님들은 깜짝 놀랐다.
천상의 울림인 듯 너무도 감미로운 목소리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