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74화 (7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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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수

둥근 아치형 지붕의 체육관.

출입문 앞에는 세 명의 여인이 서 있다.

장미란과 신소미 그리고 미술 선생 김소연이다.

유달은 본관 모퉁이를 돌다가 이를 보고 멈춰 섰다.

그리고는 조심조심 따라오는 한상호에게 말했다.

“선생님은 더 이상 다가오지 마십시오.”

“왜요?”

“미술 선생님이 계십니다. 선생님은 선령이고, 그분은 어떤 이유든 마신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둘은 함께 있으면 안 되는 존재입니다.”

한상호는 그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 고집부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그대로 달아나십시오. 절대 도우려 하지 마세요. 방해만 됩니다.”

“네, 그리하지요.”

유달은 단단히 주의 주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신소미가 장검을 쥐고 다가오는 유달을 발견했다.

“어머나, 그게 뭐예요?”

“마귀와 악령을 없애는 천하제일의 신검(神劍)이지. 제아무리 대단한 마신도 이거 앞에서는 깨갱이지.”

유달은 자랑스럽게 신검을 추켜들며 대답했다.

이에 김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치고 말았다.

유달이 장미란에게 물었다.

“열쇠는 가져오셨죠?”

“그럼요.”

장미란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출입문 자물쇠를 열었다.

철컹.

유달이 뒤로 멀어진 김소연에게 물었다.

“이 안에 뭐가 있는 겁니까?”

“나도 몰라요.”

“수상하다면서 조사해 보지도 않았습니까? 마신급 능력자가 귀신 같은 걸 무서워할 리 없을 텐데요?”

“조사는 해 봤는데, 무엇을 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체육관 안으로 들어섰던 것까지는 확실히 기억하는데, 그다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미술실에 홀로 앉아 있었어요.”

“선령도 충격을 받고, 마신도 기억이 끊기고… 대체 무엇인지 저도 궁금하군요.”

끼이익.

유달은 아무 거리낌 없이 체육관 문을 열었다.

뚜벅뚜벅…….

유달과 장미란이 앞서고, 그 뒤를 김소연이 따랐다.

그는 맨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신소미에게 물었다.

“문은 왜 안 닫는 거지?”

“무, 무섭잖아요?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도망칠 수도 있고요.”

“그러다 갑자기 문 닫히면 더 무섭지 않을까?”

“네?”

“다른 사람들 들어오면 골치 아프니까, 문 닫고, 문도 잡아 버려.”

“알았어요…….”

유달은 체육관 중앙에 멈춰 섰다.

장미란이 커다란 플래시로 사방을 비췄다.

아무도 없는 체육관에서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인원을 나눠서 찾아볼까요?”

유달이 천천히 앞장서며 대답했다.

“공포 영화의 법칙 잊었습니까? 흩어지면 죽는 겁니다. 그냥 제 뒤만 따르십시오.”

유달의 가장 큰 적은 무료함이다.

그는 체육관 벽을 따라 걸으며 장미란에게 물었다.

“미란 씨는 선생님이 적성에 맞으십니까?”

“고작 하루였는데요?”

“저는 단 하루라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절대 학생들을 가르칠 타입이 아닙니다. 내 앞에서 재수 없게 깝치는 놈들 어떻게 사랑으로 대합니까? 이건 성자들이나 가능한 직업입니다.”

“저는 나름 잘 맞는 것 같아요. 악질 범죄자들 매일 추격전 벌이는 것보다 백번 낫지요. 저의 예전 꿈이 교사였는데,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

유달이 좋은 꼬투리 잡은 듯 대꾸했다.

“국제적으로 놀았던 미란 씨의 어렸을 때 꿈이 고작 교사였단 말입니까? 실망인데요…….”

“유달 씨는 뭐가 되고 싶었는데요?”

“저는 아주아주 원대했습니다.”

“대통령이요?”

유달은 가소롭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일개 국가의 수장이 어떻게 나의 원대한 꿈에 비빕니까? 저는 세계 정복을 꿈꾸었습니다. 지구촌 인류가 모두 내 앞에 엎드려 경배하게 만들고 싶었지요.”

“…….”

잠시 할 말을 잃었던 장미란이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아직도 그 꿈은 진행 중인가요?”

“제가 아직도 철부지 어린애입니까? 당연히 예전에 접었지요. 생각해 보십시오, 정복당한 인간들이 그냥 고분고분 말 듣겠습니까?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얼마나 요구 사항이 많을지 뻔하지 않습니까? 귀찮아서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인류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네요?”

“글쎄요. 정말 다행스러울까요? 저는 포기했는데, 제 친구 놈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장미란이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유달 씨에게 친구가 있어요?”

“이럴 수가! 방금 제가 크나큰 말실수를 했군요. 이젠 친구가 아니지요? 그놈의 몸뚱이를 아작아작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개잡놈이지요.”

유달이 여과 없이 자신의 분노를 드러낼 때다.

뒤따르던 신소미와 김소연이 동시에 발길을 멈췄다.

그녀들은 인상을 쓰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장미란이 신소미에게 물었다.

“왜 그래?”

“이상한 냄새가 나요.”

“냄새?”

장미란은 그녀들과 똑같이 주변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반문했다.

“무슨 냄새? 나는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아주 기분 나쁜 냄새예요. 코를 확 찌르는 게 달걀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유달이 확신하듯 말했다.

“이건 지옥의 냄새야.”

신소미는 화들짝 놀라 반문했다.

“지, 지옥의 냄새요?”

“응~ 유황 냄새하고 조금 비슷하지… 신기가 없는 사람은 맡을 수 없고, 지옥문이 열린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바로 저기~.”

그녀들의 시선은 유달이 손가락질하는 곳으로 향했다.

* * *

체육관의 정중앙,

농구 코트의 하프 라인이 표시된 지점이었다.

나무 바닥 밑에서 불이 난 듯,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새빨갛게 달구어졌다.

곧이어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의 모습으로 바뀌더니, 그 뜨거워 보이는 표면 위로 무언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피트니스 클럽에서 봤던 얼굴 셋 달린 붉은 마신이다.

이미 한번 상대했던 놈인데, 신소미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반응이다.

“더 커졌어요. 더 커졌어…….”

상체만 모습을 드러냈는데, 전에 봤던 모습보다 훨씬 거대했다. 용광로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면 체육관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싶었다.

그런데 체육과 바닥에서 기어 나오는 건 붉은 마신만이 아니다.

스멀스멀…….

말로써는 형언할 수 없는 기괴한 형상의 마물들이 바닥에서 기어 나와 체육관 위에 가득했다.

그놈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형체를 갖추고 몸을 드러내자마자 유달 일행을 괴기스럽게 노려보았다.

“딸꾹!”

신소미의 딸꾹질이 또 터졌다.

마신의 능력을 지닌 김소연도 두려움에 물든 표정으로 체육관 벽에 바싹 몸을 붙였다.

장미란은 마취총을 꺼내며 물었다.

“어떤 상황이죠?”

유달은 그녀가 꺼낸 마취총을 손가락 하나로 누르며 대답했다.

“넣어 두십시오. 별거 아닙니다.”

순간, 신소미와 김소연이 유달을 동시에 째려봤다.

이것이 별것 아니면, 무엇이 별것인 상황이냐는 질책이다.

기괴한 형상의 마물들이 서서히 몰려드는 상황.

유달은 검도 뽑지 않고 차분히 장미란에게 설명했다.

“제 예상대로 지옥문을 열 수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역시 한 명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하하하하하!”

“어째서 과거형이죠? 이젠 그런 능력이 사라졌다는 것인가요?”

“그럴 리가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것입니다. 남아일언은 중천금 아닙니까?”

“그럼 지금은 어떤 상황인 거죠?”

“살짝 균열이 생긴 것뿐입니다. 그것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닌,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지요. 정말 지옥문이 열리면 말입니다…….”

스윽.

붉은 마신 쪽으로 고개 돌린 유달이 피식 웃었다.

진짜와 비교하면, 지금의 상황은 새 발의 피도 안 된다는 의미였는데,

장미란도 들을 수 있는 음성이 들렸다.

“네놈들은 정말 겁이 없구나? 그리 죽고 싶다면 한꺼번에 죽여 주지.”

장미란이 도록 넣으려는 마취총을 다시 들었다.

“그놈이에요!”

“인력 사무소에서 창문 깨고 도망친 놈이요?”

“네, 어떤 속임수를 쓰기에 제 눈에 안 보이는 것이죠?”

장미란은 언제라도 방아쇠를 당길 자세를 잡았다.

“글쎄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에는 별별 마신들이 다 있어서요. 그런데 방금 말했던 놈이 정말 루시퍼가 맞을까요?”

“왜요?”

“제가 그동안 미란 씨 따라다니며 많은 사건을 해결하지 않았습니까? 몰래 죽이고 시체를 암매장했으면 모를까, 자신 표식을 새긴 시신까지 남기는데, 경찰은 아무런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방금 말한 놈은 그리 철두철미하게 느껴지지 않는데요? 중요한 열쇠고리도 떨어트리고.”

장미란은 아무 대꾸 없이 미소 지을 뿐이다.

“왜 그런 표정이죠? 이는 마치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 학생을, 기특한 듯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인데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해서요. 아마도 루시퍼와 공범일 수도 있고, 종범일 수도 있고. 잡아서 물어보면 되겠죠?”

“아, 그렇군요. 일단 잡아서 족쳐 보면 되겠군요.”

신소미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위원님, 위원님, 지금 그리 한가하게 대화할 시간 없어요. 기괴한 괴물들이 바로 위원님 뒤에 있다고요.”

“알고 있어. 이놈들도 나름 분위기 잡고 나왔는데, 내가 바로 검을 뽑으며 너무 허무하게 끝나잖아.”

“위원님, 허무해도 빨리 끝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제가 조마조마해서 못 보겠어요!”

“그렇다면… 끝내 줘야지!”

스릉.

유달은 발검과 동시에, 뒤로 돌며 검을 휘둘렀다.

사아악~.

크게 반원을 그리는 칼질.

유달의 칼에 닿은 마물들은 사방으로 불꽃을 터트리며 사라졌다.

-퍼퍼퍼펑!

유달은 마물들이 자신에게 몰려들기를 기다렸다가, 회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사아아악~.

-퍼퍼퍼퍼퍼퍼펑!

유달이 휘두르는 검의 궤적을 따라 마물들은 불꽃이 되어 사라졌다.

이는 마치 불꽃놀이 하며 칼춤을 추는 모습이다.

유달은 돌고 또 돌고.

-퍼퍼퍼펑! 퍼퍼퍼펑!

요란한 폭음 속에 마물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분위기 잡고 나온 것에 비해 너무도 빠른 허무한 퇴장이었다.

순식간에 마물을 해치운 유달이 붉은 마신 앞에 섰다.

“또 만났네?”

놈은 반갑지 않은지 거대한 팔을 내뻗어 공격했다.

“어딜!”

유달은 여유롭게 피해 내며 놈의 팔을 잘랐다.

뎅강.

-크아악!

육중한 팔이 떨어지자 붉은 마신은 울부짖듯 괴성을 질렀다.

유달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붉은 마신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렀다.

“네놈 고향으로 돌아가!”

-푸욱!

유달의 정확하게 놈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었다.

-크아아아악~.

붉은 마신은 마지막 발버둥 치듯 온몸을 심하게 떨어 대는 상황.

그런데 유달의 검은 계속하여 뚫고 나가지 못하고, 중간에 막히고 말았다.

“헐! 여기서 신기가 떨어지다니!”

붉은 마신은 불꽃으로 화하여 소멸하지 않았다.

놈은 허전해진 오른팔을 부여잡고 체육관 바닥 밑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아, 씨… 끝장낼 수 있었는데.”

아쉬운 표정을 짓는 그에게 장미란이 물었다.

“도망쳤나요?”

“네, 깔끔하게 놓쳤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신기가 다 되고 말았네요.”

“핸드폰처럼 검에 신기를 충전해야 하나요?”

“그렇죠. 저번에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이제 한동안 이 검을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놈을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남겨 놨습니다.”

유달의 반짝이는 눈빛은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의미다.

“어떤 증거요?”

“빙의한 마신과 놈은 한 몸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신의 팔이 잘렸기에 그놈 역시 한쪽 팔을 거의 못 쓸 겁니다. 쓸 수는 있지만 매우 큰 고통이 따르죠.”

장미란의 눈빛도 반짝였다.

“내일 학교에서 갑자기 오른팔을 못 쓰는 사람을 찾으면 되겠네요?”

“그렇지요! 그놈이 루시퍼라고 우기는 놈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만약 이를 숨기려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면…….”

“자신이 그놈이라고 자백하는 꼴이죠. 놈은 반드시 학교에 나올 거에요.”

“맞습니다.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팔이 불편한 놈만 찾으면 됩니다. 놈은 외통수에 걸린 것이나 다름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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