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73화 (73/183)

73

명성고 3대 괴담

장미란이 유달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선생님 영혼의 말을 듣고 급히 검색한 기사였다.

“아마도 그 사고 같은데요.”

“그런 것 같네요.”

10년도 훨씬 넘은 기사다.

경기도의 모 고등학교 옥상에서 눈을 치우던 교사가 추락사했다는 내용이다.

신소미가 번뜩 생각난 듯 말했다.

“저 알아요! 명성 고등학교 3대 괴담 중 하나에요. 눈 오는 밤에 어떤 선생님이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대요. 경찰에서는 단순 사고로 처리했지만, 그날 그 선생님이 옥상으로 올라갈 이유가 없었다는 거죠. 자살이다, 귀신에게 홀렸다 등등, 아직도 말들이 많아요.”

유달이 물었다.

“그 선생님 성함이 뭐야?”

“한상호 사회 선생님이요.”

유달의 본인에게 확인을 구했다.

“맞습니까?”

“아… 글쎄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떠올랐습니다.”

“어떤 거요?”

“그때 옥상에서 봤던 저의 제자 말입니다.”

이어 그의 손이 모니터 화면으로 향했다.

“바로 이 아이입니다.”

남녀 2장의 사진 중에서 여자 쪽을 가리켰다.

“이름이 수연이었을 겁니다. 김수연, 항시 말이 없고 조용한 학생이었지요. 제가 구해 준 아이가 선생님이 되었다니, 정말 다행이군요.”

유달과 신소미는 난처한 표정으로 눈을 마주쳤다.

그가 구해 준 학생이 살인마 루시퍼임이 밝혀진다면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유달이 한상호 선생에게 말했다.

“저는 점심 식사하고, 다음 수업 들어가겠습니다. 어딘지는 아시지요?”

“물론입니다. 2학년 8반 아닙니까?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식사 끝내고 오십시오.”

그는 유달의 몸에 빙의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몹시 즐거운 모양이다.

최대한 빨리 오라는 표정으로 상담실 밖으로 사라졌다.

스윽.

유달이 모니터 화면을 장미란에게 돌리며 말했다.

“여선생님 사진입니다. 이름은 김수연이라고 하더군요.”

“미술 선생님이네요. 그녀가 임용되고 1년 후에 루시퍼의 첫 번째 사건이 발생했어요.”

“그러면 혹시 그녀가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는지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왜요?”

“지옥에 있는 마신을 끌어들이려면 지옥으로 가야만 가능합니다. 아마도 목숨이 끊어졌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을 겁니다.”

“잠시만이요…….”

장미란이 빠르게 자판을 두드리며 검색했다.

“없어요. 가벼운 증상으로 병원에 다닌 적은 있지만, 크게 다쳐서 입원한 기록은 없어요.”

“이상하네…….”

유달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다.

신소미가 또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혹시 명성고의 두 번째 괴담과 연관 있지 않을까요?”

유달이 물었다.

“그건 또 뭔데?”

“6년 전인가, 수학여행 가다가 큰 사고가 있었어요. 강원도로 가는 길인데, 버스 한 대가 브레이크 고장으로 절벽으로 밑으로 굴러 버린 거예요.”

“그래서?”

“엄청나게 큰 사고였는데, 운전자 빼놓고는 크게 다친 사람이 없었어요. 모두 안전벨트를 했다고 하지만, 기적이죠. 기적.”

“그게 왜 괴담이야? 미담에 더 가깝구만.”

“괴이한 일은 그다음부터예요. 그때 기적적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학생들이 이상한 일을 당하기 시작했어요. 이유 없이 아파서 입원하고, 이상한 사고를 당하고… 가장 결정적인 건, 루시퍼의 첫 희생자도 그때 그 버스에 타고 있었다는 거지요.”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내용인데?”

장미란이 말했다.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에요. 처음 수사를 했던 기록에도 그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그 당시 떠돌았던 소문의 상당 부분은 사실이었고요. 그리고 또… 그 버스에는 김수연 선생도 타고 있었네요.”

“흠… 왜지?”

유달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반응이다.

이어 그는 설레설레 고개 저으며 출입문을 향해 등을 돌렸다.

“밥 먹고 합시다.”

“그게 좋겠어요.”

신소미는 재빨리 따라붙었지만, 장미란은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먼저 식사하세요. 저는 조사할 게 더 있어서요.”

“뭘 조사한다는 겁니까?”

“루시퍼의 사건이 있었던 날, 그녀의 알리바이요. 첫 번째 사건 빼놓고는 조사가 전혀 되어있지 않네요.”

“헐… 그걸 언제 다 찾아서 조사합니까? 그냥 찾아가서 물어봅시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만약 그 미술 선생이 루시퍼라면, 조사해도 아무것도 나오는 건 없을 겁니다. 아니지? 그러다 혹시 나오면 나만 개망신당하는 거잖아. 그거는 독학 무당에게 맡기고, 우리는 직접 찾아가 물어봅시다.”

“알았어요. 언제가 좋을까요?”

장미란도 일어나 출입문으로 향했다.

“저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요. 방과 후, 바로 미술실로 쳐들어갈까요?”

“좋아요. 그렇게 하지요.”

드륵.

그들은 상담실 문을 열고 나가, 식당으로 향했다.

* * *

명성 고등학교 미술실 복도.

유달과 장미란이 나란히 걸었다.

루시퍼로 의심되는 김수연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녀는 학창 시절, 말이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선생님이 되어 돌아와서도 성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른 선생님을 통해 얻은 정보로는, 평소 말이 없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며, 동료 선생과 어울리는 자리는 극도로 피한다고 했다.

그리고 퇴근 후에도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미술실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여기군요.”

발길을 멈춘 유달이 바로 노크했다.

똑똑똑.

“누구세요?”

나직한 여인의 음성이다.

“오늘 새로 온 교사입니다. 김수연 선생님과 이야기할 게 있어서요.”

“죄송한데, 저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데요.”

드륵.

장미란이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김수연은 놀란 듯 책상에서 반쯤 몸을 일으킨 상태다.

유달은 미술실 내부를 살피며 장미란의 뒤를 따랐다.

그가 알던, 귀신 나올 것 같던 분위가 아니다.

밝은 조명에 깨끗한 작업대, 조용한 카페에 들어온 것 같은 산뜻한 분위기였다.

장미란은 곧장 김수연 앞까지 걸어갔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기색을 드러냈다.

“무례하시네요?”

장미란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저는 이사장님의 부탁을 받고 이 학교에 왔어요. 제 경력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죠?”

“네…….”

김수연의 완고한 반응이 수그러들었다.

“저는 이 학교에 있는 누구에게도 질문을 할 수 있고, 질문은 받은 분들은 반드시 사실대로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만약 싫으시면 이사장님께 말씀하세요.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바로 있을 겁니다.”

유달은 김수연의 시선을 피해 장미란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역시나 산전수전 다 겪은 수사관이다.

단번에 김수연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제 제가 질문을 해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그녀는 순순히 대답할 뜻을 내비쳤다.

이에 장미란은 주머니에서 열쇠고리를 꺼냈다.

“이것과 똑같은 열쇠고리를 가지고 있나요? 개교 4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서 모든 교사에게 나눠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요…….”

그녀는 차 키가 달린 열쇠고리를 보여 주었다.

장미란은 이를 확인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이제부턴 유달이 김수연을 상대해야 했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거리며 나섰다.

“김수연 선생님이시죠?”

“네, 그런데요.”

“제 눈을 피하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시지요.”

“지금 그러고 있는데요…….”

“움직이지 말고요.”

“안 움직여요.”

그녀는 대답과 행동이 전혀 달랐다.

유달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곁눈질로 노려보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장미란은 몸을 바로 세우며 경계했다.

여차하면 마취총이 있는 뒤춤으로 손을 가져갈 기세였는데,

“돌아 버리겠네…….”

잡가기 유달이 인상 쓰며 뒷머리를 긁적댔다.

장미란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일이 매우 복잡하게 됐습니다. 여기 있는 선생님은 마신의 능력을 지녔지만, 루시퍼가 아닙니다. 아마도 복수를 위해 마신이 된 것 같습니다.”

“복수라니요?”

“미술 선생님은 루시퍼의 먹잇감이었을 겁니다. 그놈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자 어리석은 판단을 했겠지요. 그러다 한상호 선생님이 희생되었고, 이에 복수를 하고자 다시 이 학교의 선생님으로 오게 되었다. 뭐, 이런 스토리가 전개될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미란 씨가 직접 물어보십시오.”

“어디 가요?”

말을 마친 유달은 곧장 출입으로 향했다.

“제가 더 관여할 게 없습니다. 미술 선생님이 루시퍼였으면 깔끔히 끝나고,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드륵.

유달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 * *

방과 후의 썰렁한 복도.

미술실 복도를 걷던 유달이 잠시 멈춰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재빨리 빈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나오십시오. 선생님.”

한상호의 영혼이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제 도움이 또 필요합니까?”

“그게 아니고요. 일단은 기뻐해 주십시오.”

“갑자기요?”

“선생님이 살리신 제자분은 살인마가 아닙니다. 솔직히 저는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생명과 바꿔 살린 목숨이 대한민국 최악의 살인자라면, 정말 짜증 나는 상황 아닙니까? 저는 그것 때문에 선생님이 승천을 못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한상호는 엷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수연이가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모든 선생님이 그리 말씀하시죠. 하지만 솔직히 조금은 의심하셨죠?”

“걱정은 했지만, 의심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요?”

“아니지요. 걱정과 의심은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 위험한 놈이 우리 학교에 있는 겁니까?”

유달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떤 미친놈이 설치고 다니는 모양인데, 곧 잡힐 겁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기회 되면 바로 승천하십시오.”

“그리 난리가 난 사건인데, 왜 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일까요? 영혼이 된 날부터 저는 매일매일 이 학교의 모든 곳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돌아다니시다가 그놈을 만난 거지요. 선생님은 다행히 선령이라 제아무리 막강한 마신이라도 소멸시키지 못한 겁니다.”

“호, 그렇습니까?”

“그렇게 안도하는 표정 짓지 마시고요! 놈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또다시 공격당하면 회복 불능 상태가 되어 지박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제 기억이 이상해지기 시작한 건 체육관 건물이 들어선 다음부터입니다.”

“체육관이요?”

“네, 개교 40주년을 기념하며 준공식을 한 건물이지요.”

“오호, 뭔가 감히 확 오는데요. 그렇다면 확인해 보도록 할까요?”

유달은 서둘러 빈 교실을 나섰다.

그런데 그가 향하는 곳은 체육관이 아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주차장이요. 이번에는 제대로 끝장을 내야지요.”

유달의 장미란의 차에서 진검을 꺼내는 때다.

딩딩딩딩딩.

장미란의 전화였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어디에요?

“주차장에서 무기 찾고, 체육관으로 가는 중입니다.”

-잘됐네요. 우리는 지금 체육관 앞이에요. 미술 선생님이 그러는데, 밤만 되면 이곳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고 하네요.

신소미의 목소리도 들렸다.

-명성고 3대 괴담 마지막이요. 밤마다 체육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대요. 겁 없이 확인하러 들어갔다가 기절한 학생이 한둘이 아니고요.

“알았어. 거의 도착했으니까, 꼼짝 말고 있어.”

검을 쥐고 체육관으로 향하는 유달의 발걸음이 더더욱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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