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72화 (7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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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령

지옥문이 열린 듯.

유달은 극도로 긴장하여 걷기 시작했다.

교실 안은 조용했다.

정원은 25명, 남녀 비율은 6대4.

유달이 고등학교 다닐 때보다 인원수가 현저히 적다.

그들은 유달의 빳빳한 걸음걸이에 뭔가 하는 표정.

직진으로 걷던 유달이 원목 느낌의 교탁 앞에 도착했다.

그의 시선은 아직도 정면.

곧이어 로봇처럼 부자연스럽게 몸 전체를 돌려 학생들을 바라보며 섰다.

순간, 유달은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뭐부터 해야 하지? 왜 이리 눈들이 초롱초롱한데!’

가르치는 입장은 처음이다.

예전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망신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는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전투적인 눈빛으로 학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스윽.

중간에 앉은 여학생이 갑자기 일어났다.

유달은 순간적으로 긴장했는데,

“바른 자세.”

그냥 인사하려는 것이다.

“선생님께 인사.”

“반갑습니다!”

꽃다운 활기참이 느껴지는 인사 소리다.

학생들이 웃음 띤 얼굴로 바라보는 모습에 유달의 긴장감도 조금 풀렸다.

“아, 저도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스윽, 스윽.

그는 자신이 이름을 칠판에 크게 쓰며 말을 이었다.

“유달입니다! 성은 유이고, 이름은 달, 한글 외자 이름이지요.”

곧이어 학생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정말 수능 만점 맞았어요?”

“그렇지……?”

“정말이요?”

“수능 만점이 뭐 대수라고, 내가 거짓말을 할까?”

“오오~.”

부러움과 질투심이 뒤섞인 탄성이 터졌다.

그들에게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인지, 유달의 수능 점수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선생님, 그때 만점 받은 사람은 몇 명이에요?”

“나 혼자. 미친 난이도였다고 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했고, 변별력 상실했다고 뉴스에서도 연일 때렸었지.”

청문회처럼 묻는 학생도 있었다.

“사법 고시도 붙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당연히 사실이지. 주변에 한국대학교 법대 나온 사람 있으면 물어봐.”

개인적인 질문도 이어졌다.

“결혼은 하셨어요?”

유달은 맨 앞에서 여학생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응~ 이번 생은 포기했어.”

“현재 사귀는 여자는요?”

“있으면 급살 맞지…….”

유달은 학생들의 질문 세례가 싫지 않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50분.

수업 종 치고 늦게 들어오면서 5분을 어물쩍 넘겼다.

그리고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8분이라는 시간을 또 흘려보냈다.

50분에서 13분을 빼면… 32분.

지금도 시간은 가고 있고, 잘만 하면 수업하지 않고 끝낼 수도 있다는 희망이 보였는데,

“선생님, 진도 나가죠.”

창가 맨 뒷자리의 남학생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런 새끼가 진짜 있었어!’

유달은 찌릿 노려봤지만 어쩔 수 없다.

“당연히 수업해야지. 수업하자고 수업… 그런데 지금 무슨 시간이지?”

‘헐!’

그는 자신이 물어놓고 후회했다.

사회 과목이니 자신이 들어와 있는 거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무슨 과목인 줄 알고 오셨어요?”

학생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정신없는 초짜 선생 취급받을 게 분명한 상황.

유달은 대놓고 웃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당연히 나는 법과 정치를 가르치러 왔다. 요즘은 정치와 법 과목으로 바뀌었네? 엎어치나 매치나 똑같은 말인데, 왜 쓸데없이 바꾸는지 모르겠어… 어쨌거나 4번, 7번, 16번!”

“네?”

갑자기 번호가 불린 학생들은 얼떨결에 대답했는데,

“너희들은 왜 다른 과목 교과서를 보고 있는 거냐? 지금은 분명 정치와 법 시간이 아니더냐?”

“!”

지적당한 학생들은 발뺌하지 않았다.

“우와, 쩔어…….”

어떻게 자기들 번호까지 알고 있는지 경외감마저 느끼는 반응이다.

“모두 교과서 펴라. 수업 시작한다.”

일단 기선 제압에는 성공.

하지만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거냐고!’

고딩보다 못한 실력으로 고딩을 가르쳐야 한다는 게 치명적인 문제다.

학생들은 수능 만점 교사가 어떻게 가르칠지,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상황.

스윽.

유달의 고개가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학생들의 고개도 덩달아 돌았는데, 아무도 없다.

그런데 유달은 누군가 들어와서, 교탁 앞을 지나 창가로 향하는 듯 고개가 움직였다.

“잠시 자습.”

유달은 수업을 중단하고 창가로 걸어갔다.

* * *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의 영혼이다.

무슨 부탁이라도 들어줄 것 같은 인상 좋은 호감형에, 단정한 양복 차림이었다.

그의 세상을 달관한 듯한 눈빛으로 지그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달은 나란히 그의 곁에 서며 말을 붙였다.

“선령이시군요?”

중년의 영혼은 뜻밖이란 표정으로 고개 돌렸다.

“나를 볼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보통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대화도 가능하고요. 이 학교의 선생님이셨습니까?”

“그랬던 것 같은데…….”

유달이 사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혹시 무슨 과목이셨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쳤던 것 분명한데… 정확한 기억이 나질 않아요.”

“이상하네요? 선령은 죽기 전 기억을 온전히 가지며, 학습 능력까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의심해 볼 것은 한 가지인데요. 혹시 마신의 공격을 받으셨습니까? 몸 전체가 빨갛고, 날개도 있으며, 얼굴이 세 개인 놈입니다.”

“글쎄, 언젠가부터 기억이 뒤섞이며 흐릿하여 잘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아, 맞다!”

“마신을 봤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요. 내가 가르치던 학생 중에 당신처럼 영혼과 대화할 수 있었던 아이가 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몰라요. 더는 기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헐…….”

유달이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때다.

“선생님, 첫 시간부터 자습은 너무한 것 아닙니까?”

또 그놈이다.

유달이 선생님 영혼에게 말했다.

“실은 제가 선생님이 아니라, 경찰의 수사를 돕는 사람입니다.”

“경찰?”

유달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래서 어울리지도 않은 교사가 된 겁니다. 제가 멘탈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시겠습니까?”

“당연히 도와야지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제 몸속에 들어오셔서 저놈들 좀 가르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진짜 교사이셨고, 돌아가시고도 쭉 학교에 계셨으니, 저보다는 훨씬 나을 것 아닙니까?”

인자한 선생님의 영혼은 싫지 않은 반응이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외려, 그는 강력하게 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우려스러운 것은 한 가지.

“선생님은 기억이 온전하지 못한데 괜찮겠습니까?”

“그건 내 개인적인 것에 관계된 것이지, 내 머릿속의 지식하고는 상관없습니다. 어떤 과목이든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윈윈이다.

“얼른 내 손을 잡으시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간절히 염원하십시오. 제가 그 바람을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영혼은 유달이 시키는 대로 했다.

곧이어 부르르.

한차례 몸을 떨어 대던 유달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다시 교탁으로 돌아온 그는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이다.

이어 그는 뒤에 있는 칠판에 글씨를 썼다.

-정치(政治)와 법(法).

맨 처음 이름을 썼던 글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필체였다.

“자습 끝났으니, 수업 시작하지.”

곧이어 이어지는 강의도 열정 그 자체였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역시 수능 만점이라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 * *

점심시간 전.

명성 고등학교 상담실.

잠입 수사의 중간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

장미란과 마주 앉은 신소미는 진짜 고민 상담을 하고 있다.

“어떡하면 좋아요. 아이들이 말을 놓지 않아요. 터놓고 이야기하며 정보를 캐기 쉽지 않다고요.”

“그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알아서 먼저 접근해야지.”

이어 장미란이 사무적으로 물었다.

“명성고 학생들은 갑자기 새로운 선생님들이 온 걸 어떻게 생각하지?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 내가 FBI 출신인 것도 알고 있더라고.”

“맞아요. 위원님과 장 팀장님이 이사장님의 특별 추천이란 것도 알고 있더라고요. 위원님에 대한 반응은 아직 모르겠고요. 장 팀장님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이에요.”

“어떻게?”

“학생들도 루시퍼에 대한 무서움이 많아요. 이사장님이 FBI 출신인 장 팀장을 데려온 건,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방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나저나 유달 씨가 망신당하지 않고 수업을 잘 끝냈는지 모르겠네.”

장미란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할 때다.

드륵.

상담실 문이 열리고, 유달이 들어왔다.

“우하하하하하, 망신이란 말은 저하고는 어울리지 않죠. 2개의 수업을 아주 성황리에 끝내고 왔습니다.”

의기양양해하는 그에게 신소미가 인사했다.

“오셨어요, 위원님.”

그런데 그녀는 유달에게 인사하고 끝이 아니다.

유달 곁에 누군가 있는 듯 다시 고개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장미란은 이런 경우가 낯설지 않다.

그녀는 유달에게 시선 주며 물었다.

“누가 또 있나요?”

“네, 이 학교의 선생님이셨던 분입니다. 제가 감히 터치할 수 없는 선령이신데, 아주 중요한 정보를 말해 주셨습니다.”

장미란이 솔깃하여 물었다.

“어떤 정보요?”

“이분이 가르쳤던 제자 중에 영적 능력이 뛰어난 무당이 있었나 봅니다.”

“그게 누구지요?”

유달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안타깝게도 이분의 기억이 온전하질 못합니다. 아마도 마신의 공격을 받아 신령한 기운에 이상이 생긴 모양입니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당연히 그 제자가 누군지 알 방법이 없지요.”

“영영 기억을 못 하는 건가요?”

“아니요, 이게 드라마의 기억 상실과 비슷하지요.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요…….”

장미란이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고민 상담을 기록하는 컴퓨터 안에는 수사 기록이 감춰져 있었다.

그녀는 빠르게 자판을 두드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과연 그 학생이 루시퍼일까요? 현재 이 학교에 있는 선생님들의 기록을 조사해 보니, 이곳의 재학생이었다가 선생님이 되신 분이 2명 계시네요. 그분들 학생 때의 사진을 확대해 봤어요. 이 중에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휘익.

장미란은 모니터 화면을 유달 쪽으로 돌렸다.

뚫어지게 화면을 살피는 선령에게 유달이 물었다.

“한 명은 남자고, 다른 한 명은 여자네요. 찬찬히 잘 보십시오. 선생님. 이 두 사람 중에 영혼과 대화를 했던 제자가 있습니까?”

“글쎄요…….”

선생님의 영혼은 확실치 않은 반응이다.

이에 유달이 기억을 돕는 조언을 했다.

“얼굴을 떠올리지 마십시오. 언제 그것을 알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든, 영혼이든 충격적인 기억은 잘 잊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된 겁니까? 누군가 선생님께 그런 학생이 있다고 말해 줬나요?”

“아니요.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언제요?”

“정확히는 모르고 눈이 펑펑 오는 겨울이었어요. 옥상… 맞아요, 옥상! 어떤 학생이 뛰어내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황급히 달려가 만류했죠. 그때 그 아이가 말했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영혼들 때문에 못 살겠다고요.”

“그래서 어떻게 됐죠?”

“저는 그 학생에게 다가가며 말했습니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그런데 그 아이는 제 말을 듣지 않았어요. 자신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다고요. 그러면서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는 그 아이를 제가 달려가서 잡아챘지요. 그런데 바닥이 미끄러워 제 몸이 옥상 바깥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제야 생각났네요… 저는 그날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

상담실 안에는 고요한 침묵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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