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71화 (71/183)

71

잠입 수사

최종 면접 장소는 교감실이다.

이사장의 강력 추천이라 특별 채용이나 마찬가지.

합격은 정해진 것과 다름없는 형식적인 절차였는데,

번쩍.

갑자기 유달이 손들며 말했다.

“잠시 타임 부르겠습니다.”

“예?”

교감 선생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의 교직 생활 어언 30년.

그동안 많은 채용 면접을 봤는데, 면접 시작과 동시에 타임 선언한 건 유달이 처음이다.

교감 선생은 애써 웃음 짓는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 때문입니까?”

“제가 옆에 있는 매니저… 아니, 장 선생님과 할 말이 있습니다. 교감 선생님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요? 그래서 저희가 나가서 이야기 좀 나누고 오겠습니다.”

“그, 그러시지요.”

교감 선생은 마지못해 승낙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나가서 자리를 피해 줘야 한다는 협박처럼도 들렸다.

유달이 몸을 일으키며 장미란에게 고갯짓했다.

“어서 나오시지요?”

그는 거짓 웃음을 짓고 있다.

입꼬리 주변이 파르르 떨렸다. 불만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인 것이다.

곧바로 장미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감 선생님, 개인적으로 다급한 일이라서요. 바로 처리하게 돌아오겠습니다.”

“허허허허…….”

교감 선생이 너그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장미란은 그의 배려심이 깊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마음대로…….”

교감 선생은 반쯤 포기한 표정으로 어서 나가라는 손짓을 거듭했다.

덜컥.

유달은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갔고,

쿵…….

장미란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문을 닫으며 교감실에서 나왔다.

명성 고등학교 교감실은 본관 1층에 있다.

지금은 2교시 수업이 끝나 가는 시간.

교감실이 있는 복도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유달이 휙, 돌아서며 불만을 터트렸다.

“대체 이게 뭡니까? 교사 면접이요! 저한테는 그냥 학교 내부를 수색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일단 진정하세요.”

“제가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나는 학생 놈들이 싫어요. 질풍노도의 시기라 반항심이 하늘을 찌른다고요. 아니, 그것보다 나한테 뭘 가르치라고, 이런 가당치도 않은 일을 꾸미셨습니까?”

“루시퍼는 매우 조심스러운 놈이에요. 공개적인 수사를 했다가는 더욱 그 정체를 숨길 거에요. 잠입 수사가 필요한 상황이고, 그놈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유달 씨예요.”

그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말이 안 되는 게요. 그깟 열쇠고리 하나로 루시퍼가 여기 있다고 확신하는 겁니까?”

“특별 수사본부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에요. 게다가 제가 발견한 열쇠고리는 모든 학생에게 나눠 줬던 일반적인 게 아니었어요. 따로 소량으로 제작하여 교사와 직원들에게 나눠줬던 것이지요.”

“어떤 미친 범죄자가 중요한 증거를 흘리고 다니겠습니까?”

“루시퍼는 자신을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어요. 그간의 범행에도 아무런 증거를 남기지 않은 것이 그를 더 과감하게 만들고 있지요. 게다가 저번에는 범죄를 실행하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었지요. 뜻하지 않게 단서를 흘리게 된 게 확실해요.”

“그놈이 다른 사람에게 받았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이 학교에 있는 놈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요.”

“그에 대해서는 다른 수사관들이 조사하고 있어요. 루시퍼 사건 이후 학교를 떠난 사람들 모두를요. 우리는 현재 학교에 있는 교직원들을 몰래 조사하는 임무를 맡았고요.”

유달은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이다.

“솔직히 이건 잠입 수사가 아닙니다. 인력 사무실에서 도망친 놈이 루시퍼가 확실하다면 미란 씨의 얼굴을 봤을 가능성이 큽니다. 세트로 따라온 저 역시 의심하고 조심하겠지요?”

“상관없어요. 외려 저는 놈의 그런 반응을 주시하고 찾아낼 거에요. 아, 그리고 이 검사님이 유달 씨에게 전해 달라는 말이 있어요.”

“폐하께서요?”

“네, 이번 루시퍼의 수사에서 유달 씨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고 하네요. 성공적으로 수사 종료되면 단둘이 식사라도 하자고 하셨어요.”

“단둘이! 정말입니까?”

장미란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의 최고 권력자와 개인적인 친분을 맺어 두어 손해 볼 일은 하나도 없다.

“그놈만 잡으면 출세의 길이 활짝 열리는 겁니까!”

유달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활활 타오는 때다.

띠리리 띠띠 따리리 릴리리.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유달은 감회가 새롭다는 듯 말했다.

“우와, 제가 다녔던 학교 종소리와 똑같습니다.”

“소녀의 기도네요.”

“이게 제목이 있었군요?”

곧이어 화장실로 향하는 학생들이 쏟아졌는데.

드륵.

교감실과 조금 떨어져 있는 교무실.

중년의 여교사와 무척 성숙해 보이는 여학생이 함께 나왔다.

그 성숙한 여학생은 새로운 전학생인 듯, 중년의 여교사가 물었다.

“미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예… 신소미입니다.”

“나이가……?”

“고3이니까… 열아홉이겠죠? 조금 나이 들어 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요. 유급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아마도 칠팔 년 전의 나이일 것이다.

유달이 걱정스러워 물었다.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나이도 나이지만, 독학 무당 가슴 좀 보세요. 교복이 터질 것 같지 않습니까? 헐렁하게 옷 입을 땐 몰랐는데…….”

퍽.

장미란이 강하게 옆구리를 쳤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요. 처음에는 아는 척하지 말아요.”

“저도 그만한 눈치는 있습니다.”

신소미와 여교사가 나란히 교감실 앞을 지나갔다.

그녀 역시 무리인 걸 아는 모양이다.

슬쩍 유달을 바라보며 제발 어떻게 해 달라는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이에 유달은 지그시 눈 감으며 고개 저었다.

자신도 똑같은 처지라는 대답이다.

* * *

명성 고등학교 교감실.

잠시 중단되었던 면접이 다시 진행되었다.

교감 선생이 장미란의 이력서를 살폈다.

예전 그녀가 굿 카페에서 면접 봤을 때, 유달이 보인 반응과 흡사했다.

“허허허허, 정말 이력이 화려하시군요. 홍콩에 있는 명문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에 입학, 심리학을 전공하고, 미국 FBI에 스카우트…….”

교감 선생은 정말 믿어도 되는 이력인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대한민국 특수 범죄 팀장을 역임하시며 혁혁한 공을 세우셨군요. 정말 대답하십니다. 3개 국어에 능통하시며, 심리학 박사 학위까지 가지고 계신 분인데… 어째서 우리 학교의 기간제 교사로 지원하신 겁니까?”

“그동안 저는 보통 사람과 다른 세상을 살아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경찰 생활을 청산하면서도 좀 더 보람 있는 일을 해 보고 싶었어요. 저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부하다 싶을 정도의 전형적인 대답인데, 교감 선생은 매우 감명받은 모습이다.

“훌륭하십니다. 지금 당장 학생 주임으로 모시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런 이력이면 교직이 아닌, 다른 전문 기관에서 서로 모시려 했을 텐데 말입니다. 기간제 상담실 교사로 만족하시겠습니까?”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저에게 아주 큰 경험이 될 겁니다.”

교감 선생은 매우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반응이다.

다음은 유달 차례.

타임 사건 때문인지, 교감 선생이 그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이력서를 넘기는 손길부터 차이 났다.

촤락.

“학국대 수석 입학… 수능 만점이군요?”

유달은 최대한 공손히 자세를 하고 대답했다.

“예의상 한 개는 틀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한 문제는 풀지 않고 그냥 찍었는데, 그게 또 정답이라 예의 없는 점수가 나와 버렸습니다.”

교감 선생은 시큰둥하게 다음 질문을 했다.

“머리는 참 좋으신 모양입니다. 학기 중에 사법 고시 합격하셨고요.”

스윽.

갑자기 유달이 손을 내밀어 보였다.

“이 반지가 그 증표이지요. 학장님과 식사도 하고, 칭찬도 엄청 받았습니다.”

“예, 그렇군요…….”

교감 선생은 여전히 시큰둥한 기색이다.

“그런데 법조인의 길을 걷진 않았군요? 판검사는 따 놓은 당상인데, 연수원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가……!”

순간, 교감 선생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에 유달도 뭔가 하여 흠칫하는 반응이다.

교감 선생이 보고 있는 이력서는 그가 직접 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해외로 봉사활동을 떠나셨군요?”

아니다.

유달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이모의 집에서 요양해야 했다.

신기를 너무 남발했기 때문이다.

“유 선생님도 매우 훌륭하십니다. 가난한 나라를 돌아다니며 교육 봉사를 하셨군요? 장래가 보장된 예비 법조인이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유달이 옆자리의 장미란을 바라보며 눈총을 주었다.

뻥이 너무 심하지는 않냐는 것인데, 장미란은 그냥 받아들이란 고갯짓만 거듭했다.

탁.

교감 선생은 기분 좋게 이력서 서류철 덮었다.

유달 역시 더는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다.

이어 그는 유달과 장미란을 동시에 보며 면접 결과를 바로 통보했다.

“두 분 모두 합격입니다! 내일 당장 출근하십시오.”

* * *

늦은 시간, 굿 카페.

때아닌 축하 파티가 벌어졌다.

카페 중앙에 놓인 다인용 소파 자리.

굿 카페 식구가 모두 앉고, 신소미까지 합석했다.

툭.

유달은 캔맥주로 장미란과 건배했다.

“우하하하! 사법 고시 이후, 뭔가에 합격한 건 처음입니다. 기념함이 마땅한 날이죠.”

이어 그는 맞은편 자리의 신소미에게 농담을 건넸다.

“학생이 술 마시면 되나?”

그녀는 여전히 교복 차림이다.

유달의 농담에도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지옥 같은 하루였어요. 선생이고 학생이고 계속 나이가 몇이냐고 묻는데… 그냥 2년 정도 유급한 각본으로 할 걸 그랬어요.”

장미란이 그녀에게 물었다.

“아직 특이한 점은 없지?”

“네, 살인마 루시퍼라고 의심할 만한 사람도 없고, 영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건도 없었고요.”

“내일부턴 우리도 합류할 거야. 내가 있는 상담실을 본부로 쓸 거니까, 특이한 일 있으면 바로 보고해.”

“알았어요. 장 팀장님… 아니, 상담 선생님.”

장미란의 시선이 송보름에게 향했다.

그녀 역시 뭔가 불만이 있는 표정이다.

“보름이는 왜 기분이 별로일까?”

이를 기다렸다는 듯 송보름이 대꾸했다.

“섭섭해요.”

“뭐가?”

“그 작전에 저도 끼워 줄 수 있었잖아요? 저도 영적인 거 볼 수 있고, 누구처럼 나이 때문에 추궁당하지 않아도 되고요…….”

신소미는 매우 뜨끔한 반응을 보였고,

유달은 펄쩍 뛰며 대꾸했다.

“미쳤어! 살인마 중의 살인마가 있는 곳에 널 끌어들이면? 네 아버지가 날 가만둘 것 같아? 굿 카페는 바로 문 닫아. 당장 짐 싸서 나가야 한다고.”

“뭐, 그렇기는 하지만…….”

“딴생각하지 말고 가게나 잘 봐. 퇴근하고 들르긴 하지겠지만, 급한 일 생기면 거기서 먹고 자고 할지도 몰라.”

“알았어요. 그런데 사장님은 무슨 과목 가르쳐요?”

“당연히 체육이겠지? 그거 빼고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게 있겠어. 맞지요?”

유달은 장미란에게 확인을 구했다.

이력서부터 모든 걸 그녀가 담당했기 때문이다.

“저도 우리나라 교육 제도는 잘 몰라요. 이 검사 측에서 알아서 했는데, 사회 과목에서 법과 정치 쪽을 전문적으로 가르친다고…….”

“예~?”

유달은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법과 정치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겁니다. 내가 죽도록 싫어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걸 어떻게 가르치란 말입니까!”

“무슨 소리예요? 이 검사님이 신경 써서 학교 측과 협의한 것 같은데요.”

그녀는 유달의 실상을 아직 모른다.

벌컥벌컥.

속 타는 유달이 맥주 캔을 단숨에 들이켰다.

“어떡하지? 나는 학생들한테 개망신당하기 싫은데… 맞다! 자습이 있지. 쟤네들도 공부하기 싫으니까, 쌍수 들고 환영할 거야. 윈윈이야. 윈윈.”

송보름이 우려하는 음성으로 끼어들었다.

“과연 그럴까요? 요즘 얘들은 자습 싫어해요. 선생님들이 조금만 딴소리해도 진도 빨리 나가자고 한다고요. 대충대충 가르치거나 실력 형편없으면, 바로 학교 게시판에 오르고, 학부모 항의가 빗발칠걸요?”

유달은 불쌍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반문했다.

“설마~?”

“설마인지 아닌지는 내일 밝혀지겠죠. 학생들에게 엄청 까이더라도 멘탈은 꼭 챙기세요. 그래야 루시퍼라는 나쁜 놈을 잡을 거 아니에요. 알았죠? 사장님.”

송보름은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표정이다.

그래서 유달은 더더욱 불안했다.

* * *

명성 고등학교 2학년 3반 교실 앞.

유달의 생애 첫 수업 시간이다.

긴장한 기색이 다분한 유달 옆에는 장미란도 있다.

“왜 저까지 데려온 거예요?”

“학생만 고민 들어 줍니까? 교사의 고민도 들어 주고 위로해 주셔야죠. 제가 어떤 사정인지 다 밝히지 않았습니까.”

유달은 자신이 고딩보다 못한 실력임을 시인했다.

“그런 사정이 있으면, 진즉 말했어야죠? 지금 당장은 해결 방법이 없으니 며칠만 버텨 보세요.”

“알겠습니다. 잘 버텨 보죠. 미안한데, 제 손 한번 잡아 주겠습니까?”

“오해받아요.”

장미란은 단호히 거절했다.

“매정하시군요.”

“종 친 지 한참 됐어요. 빨리 들어가세요.”

드르륵…….

유달은 아주 조심스럽게 교실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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