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70화 (70/183)

70

화려한 이력

어두침침한 복도 3층.

장미란은 작은 LED 플래시 불빛을 비추며 걸었다.

리모델링 때문에 입주한 가게들은 셔터가 내려진 상태.

또각또각.

조용히 걷는 발소리가 굉자이 크게 들렸다.

장미란은 플래시 불빛으로 확실히 닫힌 상태인지 일일이 확인했다.

모두 아랫부분에 두꺼운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그런데 복도 끝 마지막 가게 앞.

셔터는 내려져 있는데, 자물쇠가 없다.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셔터를 올려 보았다.

촤라라라락.

요란한 소리를 내며 셔터는 힘없이 올라갔다.

인력 사무실 간판이 붙어 있는 철문.

장미란은 동그란 문손잡이를 잡았다.

스륵.

“!”

문손잡이가 힘없이 돌아갔다.

끼이익.

그녀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무단 침입? 아니다.

용의자 수색, 도난 방지의 목적 등등, 빠져나갈 수 있는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녀는 성급히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플래시 불빛을 비춰 보았다.

정면으로 커다란 창문과 접대용 소파가 보이고,

좌측엔 책상과 사무실, 우측에는 싱크대와 작은 식탁이 놓여 있다.

수상한 물건이나 인기척은 없다.

장미란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쾅~!

분명 아무도 없는데, 문이 저절로 닫혔다.

보통의 경우라면, 식겁하며 비명 지를 상황이다.

그런데 장미란은 스윽, 한번 돌아보고서 끝이다.

긴장은 해도 겁먹거나 두려워하진 않았다.

그녀가 불을 켜는 스위치를 찾고 있는 때다.

“죽을 곳을 찾아왔구나?”

“!”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음성이다.

또한, 동굴처럼 사방에서 울리는 느낌이라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장미란은 마취총을 꺼내 들며 주위를 경계했다.

분명 아무도 없는데, 기묘한 소리가 또 들렸다.

“정말 겁이 없는 년이구나?”

장미란은 당황하지 않았다.

유달과 함께 다니며 별의별 해괴한 일을 다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침착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당신이 루시퍼라는 살인마인가?”

“그렇다면 어쩔 거지?”

“10건이 넘는 살인 혐의로 체포해야지.”

장미란은 LED 플래시를 창틀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마취총은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게 겨냥하면서 휴대폰을 꺼냈다.

이동운 검사에게 다시 통화하려고 했는데,

탁!

그녀의 손에 있던 휴대폰이 누군가 손으로 친 것처럼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제 어떤 상황인지 감이 잡히시나?”

장미란은 창틀에 올려놓았던 플래시를 다시 집었다.

그녀는 플래시 불빛과 총구의 방향이 일치되게 잡고 주위를 경계했다.

“아직도 감이 안 잡힌 모양이네?”

치이이익.

갑자기 싱크대의 수돗물이 틀어지고,

와르르르.

인력 사무실 책장에 꽂혀 있던 파일과 책들이 연이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팍! 팍!

선반 위의 화분들이 박살 나 깨지며, 책상 위의 서류들은 돌개바람에 휩싸인 듯 허공을 날아다녔다.

사사사삭.

장미란은 자세를 낮게 하고 출입문으로 달려갔다.

이를 예상했다는 듯, 난잡하게 변한 인력 사무실에 기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후후후, 그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이다. 네년은 이곳에서 도망칠 수 없어.”

출입문 앞에 멈춰 선 장미란이 뒤돌아보며 대꾸했다.

“누가 도망친다고 했지? 나는 네놈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은 것뿐인데?”

“…….”

허풍이나 거짓이 아니라는 건, 그녀의 단호한 표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어 그녀는 눈에 바싹 힘을 주며 말했다.

“살인마 루시퍼, 네놈을 10건이 넘는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 네놈이 사람이든, 영혼이든, 마신이든 혹은 그 이상의 존재라도 반드시 체포한다.”

장미란의 예상치 못한 대범함 때문인가?

격노할 것 같았던 수상한 소리가 잠잠하다.

귀를 틀어막고 싶은 괴이한 외침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 * *

인력 사무실 앞 건물.

“아자자자자~.”

유달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밀어붙였다.

무너지는 건물이라도 떠받치고 있는 듯 처절하기 그지없는 괴성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신소미는 안쓰럽기만 했다.

체격 차이가 너무 났다.

거구의 보디빌더와 초등학교 저학년의 밀어붙이기 싸움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웬걸!

“아자아아~.”

달아오른 쇳덩이 같은 육중한 덩치의 붉은 마신이 서서히 밀려나는 모습이다.

-치이이이이익~.

살이 타는 듯한 소리는 더욱 커지고, 수증기처럼 하얀 연기까지 일어났다.

유달은 고통스러워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나만 괴롭냐? 너도 괴롭지! 유황불 가득한 지옥에 잠자코 있지, 왜 지상으로 기어 나온 거냐고!”

밀려나는 붉은 마신이 반격을 개시했다.

놈은 큼지막한 양손을 들어 올려 깍지 끼듯 모으고, 유달의 등을 있는 힘껏 가격했다.

-퍼억!

하마터면 무릎이 꺾일 뻔한 엄청난 충격이다.

“카이, 더럽게도 아프네…….”

붉은 마신이 재차 공격하려, 양팔을 들어 올리는 움직임이 느껴지는 순간,

사사삭.

유달은 재빨리 놈의 뒤를 점했다.

세 쌍의 날개가 달린 등에 착 달라붙어 붉은 마신의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후와, 후왁, 후왁!

붉은 마신이 거칠게 몸을 흔들어 떨쳐 내려 했지만, 유달은 매미처럼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안정된 자세를 유지한 유달이 신소미에게 말했다.

“독학 무당, 빨리 미란 씨에게 전화해. 진짜 만만한 놈이 아니니까, 그냥 돌아오라고.”

“알았어요.”

그녀는 서둘러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몇 번이나 거듭 전화해도 장미란과의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안 받으세요. 어떡하죠? 제가 나가서 찾아볼까요?”

“헉헉… 아니야…….”

강철 체력을 자랑하는 유달이 급속도로 지쳐 보였다.

그만큼 붉은 마신이 강한 상대라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눈까지 안 보이는 상태였다.

“미란 씨가 쉽게 당할 리 없어. 잔 다르크와 뮬란도 씹어먹을 여장부인데… 게다가 나한테 가르침을 받았으니 어쩌면 그놈을 체포할 수도 있을 거야.”

“어떤 가르침이요?”

신소미의 물음에 유달은 살짝 말을 바꿨다.

“직접 가르친 건 아니고… 미란 씨와 나는 수많은 악령과 마신, 마물을 처치했어. 물론 몸은 내가 쓰고 미란 씨는 구경하는 수준이었지. 하지만 미란 씨는 머리가 보통이 아니고, 타고난 전사야. 싸워야 할 상대가 누군지 잘 알고 있으니까, 예전 수사관들처럼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럼 우리는 장 팀장님이 그놈을 잡을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네요?”

“그렇지! 우리는 그냥 버티면……!”

유달의 태도가 갑자기 부정적으로 돌변했다.

“안 돼, 안 돼,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절대 안 돼!”

“왜요? 위원님.”

“이런 영적인 사건은 내가 해결하고, 미란 씨는 수고했다는 말만 하면 끝났단 말이야. 덕분에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내 말을 전적으로 따르는 암묵적인 규칙이 생긴 거지.”

“그래서요?”

“만약 이번 일을 미란 씨가 해결하고 우리가 도움받으면 어떻게 되겠어? 내가 큰소리칠 게 없어지잖아? 위계질서가 무너지는 거라고!”

신소미가 현실을 인식시켜 주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위원님은 지금 버티는 것도 힘겨운 상황이라고요.”

“무슨 소리! 나는 인류 최강의 무당이야. 불가능 따위는 있을 수가 없어. 미란 씨가 오기 전에 내가 이놈을 처치해 버릴 거야.”

“어떻게요?”

“불굴의 의지!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정말 어쩔 수 없지. 굿 카페의 위계질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거야!”

유달이 독한 마음을 품었다.

이어 그는 더욱 강하게 붉은 마신의 몸통을 끌어안았다.

“아자아~!”

요란한 기합과 함께 힘주는 것을 보니,

뒤로 붙잡고 있는 붉은 마신을 허공에 띄워서 넘기겠다는 심산이다.

신소미는 말도 안 되는 짓이라 생각했다.

유달은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다.

버티는 것도 힘겨운데, 어떻게 육중한 덩치의 붉은 마신을 뒤로 넘긴다는 것인가?

그런데 이게 또 웬걸!

“어머나!”

붉은 마신의 몸뚱이가 진짜 들렸다.

“힘들어 뒈질 것 같아…….”

부들부들…….

오만상의 찌푸린 유달의 상태가 위태위태 하지만, 분명 붉은 마신의 양발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이어 그는 있는 기운, 없는 기운 모두 쥐어짰고,

“나는 큰소리치고 싶어… 굿 카페의 위계질서는 반드시 지켜진다… 와자자자자~!”

처절함까지 느껴지는 기합을 터트리며, 육중한 붉은 마신을 백드롭으로 넘겼다.

-쿵~!

* * *

출입문을 등진 장미란이 말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환상이든 실제든 상관없어.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당겨 버릴 거야.”

그녀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정면으로 마취총을 겨냥하고 있다.

인력 사무실 안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기척이 있는지만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내가 잘 아는 무당이 그러더군. 두려움만 떨치면 마신도 별거 아니라고. 게다가 그쪽은 부리는 마신이 앞쪽 건물에 있지? 인간의 육신을 가진 자가 내 총을 맞고 무사할 수 있을까?”

화아아앙~!

인력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바람이 더욱 강해졌다.

초강력 태풍처럼 소파와 책상 등의 무거운 집기까지 모두 날려 버렸다.

이에도 장미란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이런 수법은 나한테 안 통해. 왜냐하면, 나는 이보다 더한 경우도 많이 겪어 봤거든.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쪽이 만들어 낸 허상일 거야. 아마도 지금은 내가 겨누는 총구를 피해 한쪽 구석에 숨어 있지 않을까?”

장미란은 짐작 가는 쪽으로 총구의 방향을 옮겼다.

푸숙.

그녀는 망설임 없이 마취총을 발사했다.

“다른 곳에 숨어 있나?”

푸숙!

장미란이 받은 마취총은 국정원에서 받은 것이다.

마취 효과가 즉각적이고 5발 연속 사격이 가능했다.

이어 그녀가 또 다른 구석을 겨누고 발사하려는 찰나,

쨍그랑!

정면 쪽 유리창을 깨지면서, 집기들이 날아다니는 이상한 현상이 감쪽같이 사라져다.

인력 사무실 내부는 그녀가 처음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상태였다.

실제로 달라진 것은 깨진 유리창뿐이다.

장미란은 깨진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3층에서 뛰어내렸다면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인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놓쳤나…….”

장미란이 분한 표정 지으며 뒤돌아서려는 때다.

반짝.

플래시 불빛에 번쩍이는 작은 물체가 눈에 띄었다.

* * *

장미란이 피트니스 클럽 안으로 돌아왔다.

유달은 아직도 붉은 마신과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를 연이어 시도했다.

신소미의 다급한 외침이 터졌다.

“위원님! 위쪽이요.”

순간, 유달은 한쪽 손을 들어 가볍게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는 바로 붉은 마신의 팔을 잡고 엎어치기!

유달은 쓰러진 마신의 몸에 걸터앉아 쉴 새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위원님, 멋져요!”

장미란이 환호하는 신소미에게 물었다.

“아직도 싸워?”

“네, 일방적으로 이기고 있어요.”

장미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루시퍼가 한참 전에 도망쳤으니, 붉은 마신도 당연히 사라져야 정상인데?”

“!”

신소미는 순간적으로 뜨끔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를 놓칠 장미란이 아니다.

“무슨 일이지?”

그녀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위계질서는 지켜져야 한다면서요…….”

“그게 무슨 뜻?”

“…그렇게 분노의 백드롭 하다가 위원님도 함께 기절했어요. 잠시 뒤에 깨어나서는 장 팀장님은 영적인 능력이 없으니까, 위원님이 멋지게 물리치는 것으로 하자고 꼬드기기는 바람에…….”

“알았어요. 어찌 됐든, 붉은 마신도 사라지고, 여학생의 영혼도 무사한 거죠.”

“네, 곰돌이도 많이 회복했고요.”

“비겁하게 도망치다니!”

유달의 연극이 막바지로 치닫는 때다.

이동욱 검사가 피트니스 클럽 안으로 들어왔다.

장미란이 요청한 지원 인원과 함께 왔던 것이다.

“유달 씨는 왜 저러고 있습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건물 주변 CCTV 영상은 모두 확보했나요?”

“물론입니다. 차량 블랙박스 영상까지 모두 확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장 팀장님이 저에게 주신 이거 말입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열쇠고리가 증거 봉투에 담겨 들려 있었다.

장미란이 인력 사무실에서 발견한 것이다.

“벌써 알아보셨나요?”

“네, 이 열쇠고리는 명성 고등학교에서 개교 40주년 기념으로 만든 것입니다. 첫 번째로 희생당한 여학생이 다니던 학교였죠.”

“의미 있는 증거가 될까요?”

“우리는 지금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 최대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지원이라니요?”

* * *

경기도에 있는 명성 고등학교.

이기동 교감 선생은 갑자기 결원이 생긴 기간제 교사 2명을 뽑기 위해 면접을 보고 있다.

그는 최종 면접에 참석한 두 명의 예비 교사가 무척 마음에 드는 표정이다.

“두 분의 이력이 모두 화려하시군요? 이사장님의 특별 추천도 있고, 인물까지 훤칠하시고. 기간제가 아닌 정식 교사를 뽑고 싶은 심정입니다.”

면접을 보는 자리에는 유달과 장미란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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