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특훈
유달이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타이밍 진짜 절묘하네…….”
장미란은 그가 몸을 일으킬 때 떨어뜨린 손수건을 주워 주며 물었다.
“눈은 좀 어때요?”
유달은 똑바로 눈을 뜨려 했지만, 안 된다.
심하게 눈을 깜박거리다 이내 다시 감아 버렸다.
“아직은 무립니다.”
이어 그는 신소미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긴 놈이야?”
“사람과 비슷한 형상인데… 쇠붙이가 불에 달궈진 것처럼 붉은색 몸뚱이예요. 머리는 하나인데, 얼굴은 세 개고요, 등에는 흉측한 날개가 세 쌍이나 있어요.”
“호들갑 떨며 겁먹을 필요 없어. 마신은 사람들이 가장 공포심으로 느끼는 모습으로 출현하니까… 그놈은 지금 어디 있지?”
신소미는 더욱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바, 바로 위원님 앞이요. 세 면의 얼굴 중에서 염소처럼 생긴 얼굴이 위원님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불타는 해골 형상의 얼굴은 저를 노려보고 있고요… 딸꾹!”
“뭔가 이상한 기운이 솔솔 느껴지는데, 이놈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냄새를 맡고 있어요. 위원님의 가까이 얼굴을 대고요, 여기저기 개처럼 냄새 맡고 있어요.”
“그래? 그럼 나도 질 수 없지.”
유달도 똑같이 냄새 맡기 시작했다.
두 눈을 감은 상태로, 이리저리 고개 돌리며 냄새를 맡았다.
이를 지켜보는 신소미는 징그러움에 몸서리쳤다.
서로 밀착한 상태에서 킁킁거리는 그 둘이, 어쩌다 입을 맞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유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세상 냄새는 아니고… 분명 기억에 있는 냄새인데, 정확히 뭔지 확신을 못 하겠네?”
괴이하게 생긴 마신도 비슷한 반응이다.
한참이나 냄새를 맡더니 그냥 뒤로 물러났다.
신소미가 잽싸게 보고했다
“다행히 우리한테는 관심 없는 모양이에요. 붉은 괴물이 조용히 물러났어요.”
“여기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
“네, 붉은 괴물이 곰돌이한테 다가가고 있어요. 여학생의 영혼을 노리는 거 같아요. 어떡하죠, 위원님?”
“어떡하긴 뭘 어떡해? 앞 못 보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내 눈이 다 나을 때까지 버티기를 바라야지. 그리 걱정되면 응원이라도 하든가.”
이어 유달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장미란을 불렀다.
“미란 씨, 어디 있나요?”
“여기요.”
유달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 돌리며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왜요? 제가 도움 될 일이 있나요?”
“잠시 귀 좀…….”
유달은 작은 목소리로 장미란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 근처에 루시퍼란 놈이 있을 겁니다.’
“!”
장미란은 놀란 표정을 급히 수습하며 물었다.
‘어디요? 피트니스 클럽 안에는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이 건물 안에 있는 건가요?’
‘정확한 위치는 저도 모르지요. 확실한 건, 마신과 몸주는 멀리 떨어질 수 없다는 겁니다. 만복이처럼 특이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100미터 내외입니다.’
‘다른 특징 같은 건 없을까요? 이 지역은 상가라 늦은 밤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유달은 잠시 생각하고 대답했다.
‘아마도 루시퍼의 시선의 이 피트니스 클럽에 고정되어 있을 겁니다. 집중이 필수라는 것이죠. 딴짓하게 되면 마신의 능력도 떨어집니다.’
‘알았어요. 제가 밖에 나가서 놈을 찾아볼게요.’
‘조심하세요. 이번 놈은 진짜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 검사님에게 받은 선물은 유달 씨가 아닌 그놈에게 먼저 쓰게 되겠네요.’
툭툭.
장미란은 허리춤에 차나 마취총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에 유달이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상황극 벌이면서 나가세요. 마신과의 연결이 끈끈한 놈이면, 여기의 상황까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곧이어 장미란이 모두 들으란 듯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안 보여요?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제가 빨리 약이라도 사 올게요.”
유달이 엄살떨며 장단 맞췄다.
“으아~ 조금 쉬면 나아질 것 같았는데, 계속 따끔거려서 죽겠습니다. 배도 엄청 고프고요. 오늘 길에 간식거리도 부탁드립니다.”
“알았으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장미란은 다급히 피트니스 클럽에서 나갔다.
그와 거의 동시에 거대한 괴수 둘이 치열하게 싸우는 듯한 소리가 시작되었다.
-퍽퍽퍽퍽퍽.
-쿠아아악~.
유달은 앉은 상태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어떤 상황이야?”
“붉은 괴물이 곰돌이를 공격하고 있어요. 곰돌이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황이고요. 필사적으로 영혼을 보호하려는 모습이 너무 애처롭게 보여요.”
“얼마나 버틸 것 같아?”
“정말로 오래는 못 버텨요. 곰돌이는 금방이라고 쓰러질 것 같다고요.”
유달은 표정을 진중히 하고 그녀를 불렀다.
“이봐, 독학 무당?”
“네, 위원님.”
“곰돌이 살리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알겠습니다! 무엇이든 시켜 주세요.”
신소미는 불구덩이라도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유달은 벤치 프레스 의자에서 멀어지며 말했다.
“지금부터 그쪽은 스포츠 캐스터가 되는 거야. 곰돌이와 붉은 마신의 대결을 나한테 생생하게 중계하는 거지. 그쪽 감정 빼고, 붉은 마신이 어떻게 곰돌이를 공격하는지. 아주 세세하게 전달해 달라고. 붉은 마신을 이길 수 있는 특훈이라 할 수 있지. 오케이?”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럼 시작.”
신소미는 숨 한번 고르고 중계 방송을 진행했다.
“지, 지금 붉은 마신이 주먹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냥 꼿꼿이 서서 마구잡이고 내뻗는 주먹인데, 엄청나게 빠릅니다. 곰돌이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습니다.”
-퍽퍽퍽퍽퍽퍽.
얼마나 빠른지는 타격 소리로 짐작할 수 있다.
유달은 신소미의 중계를 들으며 어떤 식으로 방어해야 할지 연습했다.
“곰돌이는 꿋꿋하게 버티는데, 붉은 괴물이 날개로 찍어 버립니다.”
-팍, 팍!
유달은 양손으로 방어하던 동작을 멈추며 물었다.
“날개? 정확히 설명해 봐.”
“등 뒤의 날개가 빙글빙글 회전하듯이, 양쪽에서 막 찍어서 공격해요.”
“정면에서의 주먹 공격과 측면의 날개 공격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거야?”
“네, 맞아요.”
“허이, 상당히 골치 아픈 놈이네? 그렇다면 이렇게 방어해야 하나…….”
“배가 완전히 비었는데요?”
“그렇지? 발차기가 날아오면, 바로 골로 가는 거지.”
* * *
피트니스 클럽이 입주한 건물 밖.
거리로 나와서 주위를 살피는 장미란은 땀에 젖은 얼굴이다.
살인마 루시퍼에 관한 첫 번째 단서는 가까운 위치.
그녀는 건물 옥상부터 지하까지 먼저 조사한 다음, 밖으로 나온 것이다.
장미란의 예상대로 거리에 사람들이 많다.
루시퍼가 범행은 대한민국의 모든 매체를 통해 알려졌기에,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살인 사건이 발생한 건물을 한 번쯤은 손짓하고 지나갔다.
살인마 루시퍼에 관한 두 번째 단서.
피트니스 클럽을 계속 주시하고 있는 사람.
장미란은 건물 주변을 한 바퀴 천천히 돌면서 의심스러운 사람을 찾았다.
편의점에서 건물을 바라보며 라면을 먹고 있는 젊은 남자, 한참이나 휴대폰 통화하며 건물 주변을 배회하는 중년 여인, 술 취해서 건물 앞 주차장에 앉아 있는 회사원.
그녀는 FBI 시절부터 범인 수색과 검거를 위한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누구보다 빠르게 수상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지만, 이번에는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
그동안의 수사에서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살인마 루시퍼의 성별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장미란이 휴대폰을 꺼냈다.
이동욱 검사와 통화하기 위해서다.
-아직도 수사 중이십니까?
“네, 그 때문에 지원이 필요해요.”
-말씀하십시오. 바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긴급히 주변을 탐색할 인원이 필요해요. 제복 경찰이 아닌 사복형사요. 위험한 상황에 대비된 인원이면 더욱더 좋겠네요.”
장미란은 그와 통화하는 중에도 주변 탐색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몇 명이나 필요합니까?
“지원 인원이 많을수록 좋겠지만, 확실히 성과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요.”
-성과를 만들기 위해 지원하는 것 아닙니까. 어디로 보내 드리면 되지요?
“루시퍼 사건 현장이요.”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그 근처에서 조사하는 인원이 있으니 바로 보내 드리지요.
“고마워요.”
통화를 마친 장미란이 낡은 건물을 올려보았다.
피트니스 클럽 건물 뒤편에 있는, 4층짜리 리모델링 중인 건물이다.
공사 때문에 건물 안 가게들의 영업이 잠은 중단되었다.
불은 모두 꺼져 있고, 며칠 뒤에 다시 개장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장미란은 소형 LED 플래시를 꺼냈다.
그러고는 음산함이 느껴지는 입구 안으로 들어섰다.
* * *
신소미가 비명 지르듯 소리쳤다.
“곰돌이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유달은 눈감고 혼자 훈련하던 동작 멈췄다.
“아직 특훈이 부족하데…….”
“계속 날개에 찍히고 있어요. 이젠 움직이지도 못해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 몸께서 또 나서 줘야지.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고 깔끔하게 처리해주지. 독학 무당?”
“네, 위원님.”
신소미는 재빨리 유달 곁으로 다가왔다.
“나를 붉은 마신과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안내해. 뛰어들면서 이단 옆차기 날릴 거니까.”
그녀는 유달이 시키는 대로 했다.
앞 못 보는 그를 부축하여 붉은 마신과 5미터 정도 거리에 세워 놓았다.
“5미터 확실해?”
“얼추 그런 것 같아요.”
“내 정면에 있는 거 맞지?”
“예, 그대로 뛰어가면 돼요. 곰돌이의 상태가 정말 안 좋아요. 서둘러야 하실 것 같아요.”
“오케이.”
유달이 곧바로 뛰어들었다.
다다다다다.
짧은 보폭으로 빠르게 뛰면서 점프할 타이밍을 쟀다.
5미터는 그가 태권도장에서 수도 없이 이단 옆차기를 연습했던 거리.
눈 가리고도 충분하다는 자신감은 충만.
그의 몸이 기억하고는 있는 느낌이 오는 순간,
부웅~.
유달이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지켜보던 신소미의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도약력이다.
양쪽 다리를 모으고 날아가던 유달은 힘차게 오른쪽 다리를 쭉 뻗었다.
“?”
퍽 소리와 함께 발바닥에 묵직한 충격이 느껴져야 하는데, 허전함뿐이다.
조급한 마음 때문이지 너무 일찍 점프한 것이다.
철퍼덕.
유달의 몸은 붉은 마신 지척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하이~ 쪽팔려…….”
아픈 것보다 민망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때,
신소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위원님, 놈이 밟으려고 해요!”
“!”
유달은 재빨리 몸을 굴려 피했다.
-쿵, 쿵, 쿵, 쿵!
한 바퀴 돌 때마다, 붉은 마신이 발로 밟는 충격음이 바로 귓가에 울렸다.
“언제까지 굴러야 해?”
“지금은 괜찮아요!”
유달이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놈 어딨어?”
눈이 보이지 않으니, 신소미의 외침에 의존해야 했다.
“위원님께 달려가고 있어요!”
유달은 차분히 방어 자세를 취했다.
신소미와 호흡을 맞춘 특훈의 성과를 기대해 봐야 했다.
“위원님, 주먹이요!”
붉은 마신이 내뻗는 주먹 공격을 한다는 알림이다.
유달은 연습한 대로 가드를 단단히 하고 얼굴을 막았는데,
-퍼퍼퍼퍼퍽!
붉은 마신의 공격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가늠치 못했다.
“크윽, 이거 가드를 하나 마나 아니야… 곰돌이 놈은 이런 공격을 어떻게 견뎠지?”
보통 마신들에게 방어 없이 제대로 맞는 충격이다.
“날개요!”
순간, 유달은 주저앉듯 상체를 숙였다.
-확, 확!
붉은 마신의 날개 공격이 빗나가는 파공음이 느껴지는 때다.
“지금이요!”
“오케이!”
화악.
유달은 몸을 날려 붉은 마신의 몸통을 끌어안았다.
특훈의 성과가 마침내 결실을 보는 순간인데,
-치이이익~.
달아오른 불판에 고기를 얹은 듯한 소리와 함께,
유달의 고통스러운 외침이 터졌다.
“앗, 뜨거! 이 새끼 대체 뭐야!”
그는 당장이라도 손을 풀고 싶었지만, 그럴 처지가 아니다.
떨어지면 승산이 없다. 접근전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유달은 온몸이 불타는 듯한 고통을 참아 내며 놈을 넘어트리려 안간힘 썼다.
둘은 한 몸처럼 완전히 밀착된 상태.
유달의 코가 붉은 마신의 배 부분에 완전히 파묻혔는데,
“킁킁, 뭐야? 어쩐지 낯익은 냄새라 했더니…….”
유달은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알아낸 반응이다.
“너, 지옥에서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