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천하의 몹쓸 놈
-퍼억!
제대로 들어갔다.
유달의 이단 옆차기에 놈의 고개가 90도로 돌아갔다.
“어디서 까불고 있어.”
항시 인간을 만만히 봤던 마물에게는 예상치 못한 충격일 것이다.
곰돌이는 획, 고개가 돌아간 상태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정말 대단하세요!”
신소미는 존경의 눈빛으로 유달을 바라보았다.
“응~ 내가 많이 좀 대단하지.”
우쭐하며 그녀에게 시선을 돌린 게 실수다.
-후웅!
곰돌이의 손등 공격을 늦게 알아차렸다.
-푸악!
간신히 가드를 올려서 막기는 했지만, 몸에 전해지는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휘청휘청…….
유달은 술 취한 사람처럼 옆걸음쳤다.
“이거 마물계의 핵주먹인데?”
“괜찮으세요?”
“내 걱정 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
유달은 진지하게 싸울 자세를 취했다.
전력을 다해야 이길 수 있는 상대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는 곰돌이 역시 마찬가지.
-스으윽.
웅크리고 앉은 자세에서 몸을 일으키자, 머리가 천장 위를 넘었다.
-쿵, 쿵…….
두 발로 서서 뒤돌아서는 모습은,
“뭐야? 주머니 곰돌이야?”
육중한 몸체 중앙에 캥거루 같은 주머니가 있다.
곧이어 놈은 들고 있던 앞발을 내리며 네 발로 섰다.
-쿵-!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막강한 기운.
무게 중심을 낮추며 노려보는 모습은 황소 같은 저돌성이 느껴졌다.
유달은 놈에게서 시선 떼지 않고 신소미에게 말했다.
“좀 더 물러나.”
“네…….”
“무서우면 도망쳐도 괜찮은데, 내가 위험에 빠졌다고 도우려고는 하지 마. 어떤 상황이든 나 혼자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으니까.”
“알겠어요. 위원님.”
“딸꾹질은?”
“다행히 멈춘 것 같아요.”
유달이 공격할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 이건 절대 강요는 아닌데… 나는 방청객 리액션 엄청 좋아해. 혼자 고독하게 싸우는 것보다 주위에서 힘내세요, 파이팅, 완전 멋져요. 이런 소리 들으면, 없는 기운도 솟아나는 것 같다고.”
신소미는 바로 반응했다.
“위원님, 파이팅!”
“그렇지…….”
유달은 흡족한 표정을 짓는 순간,
-카아아악!
곰돌이가 사나운 입을 벌리며 먼저 달려들었다.
유달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곰탕거리로 만들어 주마!”
힘차게 내려치는 오른손 당수가 곰돌이의 미간에 정확히 적중했다.
-빠악!
유달의 특이한 기운엔 마신도 나가떨어지게 하는 파괴력이 담겨 있다.
미친 듯이 괴로워해야 정상인데,
“뭐, 뭐야…….”
곰돌이는 잠시 움찔하는 게 전부였다.
-크르르릉.
놈은 아무런 충격도 없는 듯 더욱 사납게 인상 썼다.
“하하하, 너는 맷집도 천하무적이구나…….”
유달은 재빨리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늦었다.
-덥석!
곰돌이가 거대한 앞발을 움직여 유달을 붙잡았다.
“헐!”
앞발 하나가 사람 몸통만 한데, 양쪽에서 꽉 움켜쥔 상태라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다.
“위원님, 힘내세요!”
신소미의 응원도 효과가 없다.
아니, 그녀의 외침이 귀에 들어올 처지가 아니다.
“안 돼, 안 돼, 나는 진짜 맛없어!”
쩍 벌어진 놈의 주둥이가 바로 눈앞에 있다.
“이 멍청한 곰 대가리야! 난 진짜 맛없다고! 차라리 돌을 씹어먹어! 나 먹으면 너 진짜 후회한다!”
그의 간절한 외침은 통하지 않았다.
-꿀꺽~!
곰돌이가 유달의 머리를 집어삼키는 순간,
“까악!”
신소미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무섭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자신이 경찰임을 자각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참혹한 눈앞의 현실과 당당히 맞서야 했다.
번쩍.
신소미가 용기를 내어 감았던 눈을 뜨는 때다.
-콰아아악~!
곰돌이는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것을 먹은 듯, 목을 치켜들고 진저리쳤다.
유달은 마물의 군침에 흠뻑 젖었을 뿐,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퉤, 퉤, 퉤, 퉤… 이 미련곰탱이 같은 새끼야, 내가 맛없다고 경고했잖아! 어우, 더러워 침~ 이거 눈에 들어가면 잠시 실명하는데, 큰일 날 뻔했네.”
곰돌이는 멋모르고 유달을 삼킨 충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콰악! 콰악! 콰아아악~!
격렬하게 목을 흔들어 대며 괴로워했다.
이는 유달에게 기회였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힘을 모으고,
가슴까지 끌어 올린 양팔을 있는 힘껏 밀쳤다.
-팟!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순간,
화악.
유달은 오른발을 쭉 뻗어, 놈의 턱을 그대로 올려 찼다.
-빠악!
놈이 휘청거리며 뒷걸음치면서 거대한 앞발에 제압당했던 몸이 완전히 풀렸다.
“너 이제 뒈졌어.”
유달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파박.
원투 스트레이트 이은 회심의 롱훅!
-뻐억~!
놈의 고개가 이번엔 한 바퀴 가까이 돌았다.
“위원님, 짱 멋져요! 파이팅~.”
신소미의 응원이 다시 시작되었고, 유달은 한층 속도를 높여 주먹과 발차기 공격을 퍼부었다.
-빠바바바바박!
“옛날 놈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게 약해. 아니… 내가 너무 강해진 건가!”
승기를 잡았다가 판단한 유달이 파상적으로 몰아쳤다.
-후웅~.
이따금 놈이 거대한 앞발을 휘두르며 반격했지만, 유달의 움직임보다 빠르지는 못했다.
사악.
유달은 주저앉듯 몸을 낮춰 놈의 핵주먹을 피했다.
그리고는 바로 거리를 좁혀 뛰어들며 빈틈이 생긴 놈의 배에 앞차기를 날렸다.
-퍽.
너무 가까운 거리라 충분한 힘이 실리지 못했는데,
-쿠아아아~.
놈은 괴성을 지르며 허둥지둥 뒷걸음쳤다.
“저놈 왜 저래?”
유달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최상급 마물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없다. 변변치 않은 발차기에 저런 반응을 보일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내가 엄청나게 강해진 거야!”
유달은 파상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특히나 놈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배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퍼퍼퍼퍼퍼퍽!
수세에 몰린 곰돌이는 자신의 배를 보호하는 극단적인 방어로 돌입했다.
-털썩.
유달을 등지며 웅크리고 앉더니, 육중한 양팔로 주머니가 달린 배 부분을 완벽히 가렸다. 유달 일행이 놈을 처음으로 봤을 때와 똑같은 자세였다.
“너는 내가 그래플링 기술의 달인인 거 모르는구나?”
유달의 신기는 특이하여 마물과 접촉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는 웅크리고 있는 곰돌이의 뒤로 다가갔다.
곧이어 놈의 두툼한 목을 양팔로 감아서는 힘주어 잡아당겼다.
“나는 탭 안 받아 준다!”
격투기의 초크와 비슷한 기술이다.
-크아아아~.
곰돌이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괴성을 질러댔다.
유달은 더욱 강하에 목을 졸랐고, 곰돌이의 반항은 점차 기운을 잃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뒤로 젖혀진 곰돌이의 상체에 힘이 풀리고, 배를 보호하고 있던 육중한 양팔이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허걱, 저게 뭐야!”
유달이 진정으로 놀란 비명을 질렀다.
곰돌이의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마물이 왜 사람의 영혼을 품고 있어!”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에 잠시 목을 누르던 힘을 멈춘 게 실수였다.
-꿀꺽!
기운을 회복한 곰돌이가 유달의 머리를 집어삼켰다.
이번에는 맛없다고 바로 내뱉지 않았다. 한참이나 입에 물고 버티며 유달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 * *
한동안의 소란 뒤에 조용해진 PT 구역.
유달의 상태가 좋지 않다.
그는 벤치 프레스 의자에 누워있고, 장미란은 그의 눈에 젖은 손수건을 올려놓았다.
“어쩌다 방심한 거예요?”
“방심한 게 아니고, 놀란 겁니다. 마물이 사람의 영혼을 품고 있는 게 말이 됩니까? 그놈들은 사람의 영혼을 먹잇감으로 여긴다고요…….”
“눈은 언제 정상이 돼요?”
곰돌이에 먹혔던 후유증이다.
최상급 마물의 침이 눈에 들어가면 잠시 실명하게 된다.
“글쎄요, 영험한 신기를 타고난 저라도 1시간 정도는 눈을 못 뜰 것 같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확실한데, 정확히는 못 봤다는 거죠?”
“몇 번이나 얘기합니까. 자세히 보려고 할 때 먹혀 버리고 말았다고요.”
이에 장미란은 신소미에게 자신이 휴대폰을 건넸다.
“받아요. 화면에 보이는 사진이 최초로 희생당한 여학생이에요.”
“어머나, 불쌍해서 어떡해…….”
신소미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받았다.
“유달 씨의 상태가 저러니까, 소미 씨가 대신 도와줘야겠어요. 사진의 여학생과 마물이 품고 있는 영혼이 같은지 확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장 팀장님.”
신소미는 조심스럽게 곰돌이에게 다가갔다.
놈은 유달과의 격전 때문에 잔뜩 신경이 곤두선 상태다.
신소미는 숨을 참으며 걷고 있었다.
곧이어 그녀의 신기가 사라지자. 곰돌이는 그녀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신소미는 조심스럽게 휴대폰 사진과 곰돌이가 품고 있는 영혼을 비교하며 살폈다. 만약 접촉이 일어나면 그녀의 은신이 풀리기 때문이다.
파다다다다닥.
확인을 끝낸 신소미가 되돌아오는데, 숨을 참는 게 한계에 다다랐는지 엄청나게 빠는 속도였다.
“파아~.”
꽉 참았던 숨을 내쉬는 그녀에게 장미란이 물었다.
“맞아요?”
“허억, 허억…….”
신소미는 숨이 벅차 말을 못 했기에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만들어 보였다.
장미란은 누워 있는 유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확실하다고 하는데요?”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5년 동안 먹지도 않고, 품고만 있었다고요. 미친 거 아닙니까?”
신소미가 안정적으로 숨을 회복하고 말했다.
“혹시 여학생의 영혼을 보호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헐… 먹지도 않을뿐더러 보호까지 했다고? 그렇다면 나는 그런 고귀한 마물을 두들겨 팬 천하의 몹쓸 놈이 되는 거네…….”
신소미는 자신의 추측을 확신하는 모습이다.
“저렇게 필사적으로 영혼을 지키는 것도 그렇고요. 위원님과 싸우기 전에 있던 상처도 그렇고요. 루시퍼에게서 영혼을 지키다가 저렇게 된 것 같은데요?”
장미란이 동조하고 나섰다.
“루시퍼 사건과 연관이 있는 건 분명해요. 혹시 여학생의 영혼과 대화가 가능할까요?”
“당연히 불가능하지요.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 소멸하지 않은 게 기적입니다.”
“만약에 말이에요. 루시퍼가 여학생의 영혼을 노리고 있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될까요?”
“뭐가 말입니까?”
장미란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루시퍼는 5년 전에 그녀의 영혼을 빼앗는 것에 실패했어요. 아마도 곰돌이라는 최상급 마물 때문이겠죠. 그래서 어제 다시 시도했지만 결국 또 실패했고요. 루시퍼는 이대로 포기할까요?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을까요?”
“그러니까, 그 번잡한 짓을 루시퍼란 놈이 왜 하냐고요?”
“이유 여하를 따지지 않고, 그렇다고 가정하면요.”
“흠…….”
벤치 프레스 의자에 누워 있는 유달은 한참을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일단은 제가 천하의 몹쓸 놈인 게 확실해진 것이고요, 아마도 루시퍼는 마신이거나 실력이 뛰어난 퇴마사일 겁니다. 그래야 최상급 마신과 싸울 수 있겠죠. 그것 빼놓고는 모든 게 의문투성이입니다.”
“5년 동안의 공백은 힘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봐도 될까요? 최상급 마물을 제압하기 위해서요.”
“그렇다고 봐도 되겠지만, 아직 힘을 덜 키운 모양이죠. 곰돌이가 무사한 것 보면 말입니다.”
“만약 방해를 받았다면요? 어젯밤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는데, 트레이너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죠. 루시퍼는 여학생 영혼에 대한 집착이 강하니,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다시 오지 않을까요?”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쿵~!
유달이 깜짝 놀라 물었다.
“미란 씨, 이게 무슨 소리죠?”
“무슨 소리요? 저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요?”
“!”
불길함을 느낀 유달이 신소미에게 물었다.
“독학 무당, 금방 들린 웅장한 소리는 뭐지?”
“그, 그게요… 딸꾹, 딸꾹, 딸꾹!”
신소미는 단단히 겁에 질려 대답을 못 하고, 심하게 딸꾹질만 해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