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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카페-62화 (62/183)

62화- 신의 경지

처절한 패배를 경험한 장미란.

그녀는 두 눈 부릅뜨고 유달의 플레이를 지켜보았다.

3장의 기본 카드가 깔렸다.

다른 플레이어는 자신이 패를 확인하고, 한 장을 뒤집어 놓았다.

그런데 유달은 카드를 확인하지 않고, 아무거나 한 장 뒤집었다.

장미란은 다른 플레이어의 반응을 살폈다.

“훗.”

선이었던 남자는 또 코웃음 쳤다.

그리 허세 떨다가 개털 된 놈 여럿 봤다는 반응이다.

장미란은 왠지 그가 싫다.

강남에 빌딩을 가지고 있는 건물주라고 하는데, 그녀의 돈을 가장 많이 따갔다.

건물주 왼편엔 평범한 주부로 보이는 듯한 30대 초반의 여자가 앉아 있다.

말이 별로 없고 게임에만 집중하는 편이다.

그다음은 장미란과 유달.

유달의 왼편에는 50대의 중년 신사가 앉아 있다.

인상 좋아 보이는 그였지만 게임에서는 잔인했다.

정확히 말하면 장미란에게만 잔인했다.

그녀가 딸 것 같은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중년 신사에게 무참히 밟히고 말았다.

마지막은 검정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쓴 젊은 여자다.

건물주가 말했다.

“제가 또 선이군요.”

그는 4번째 카드를 나눠주었고, 선이 바뀌었다.

7이 두 장이 된 중년 신사가 배팅했다.

“10만.”

그는 파란색 칩 하나를 조용히 밀었다.

이는 이 테이블의 규칙인 듯, 10만 원이 무조건 배팅의 시작이다.

젊은 여자가 레이즈했다.

“20으로 가죠.”

건물주와 평범한 주부는 콜.

모든 플레이어는 유달이 어떻게 나올지 주목했다.

“일단은 콜하죠. 그런데 제 칩은 옆에 있는 호구님이 옮겨도 되겠습니까?”

호구는 장미란을 지칭하는 말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눈초리를 눈초리로 바라보자 유달이 부연하여 말했다.

“제가 칩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핀셋 같은 것으로 칩을 옮기면 한참 걸리겠죠?”

모두가 어이없다는 반응.

하지만 그들의 눈은 아직 반이나 남은 칩에 고정되었다.

조만간 자신들의 것이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건물주가 흔쾌히 말했다.

“그렇게 하시죠.”

나머지도 고개 끄덕여 승낙하고, 5번째 카드가 돌았다.

사설 도박장은 모두가 동의하면 룰이 된다.

많은 곳에서는 포커 플레이어가 아니면 아예 테이블에 못 앉게 했다.

장미란이 칩을 옮기고 물었다.

“도박 칩도 돈처럼 징그러워요?”

“아니요, 그냥 계산하기 싫어서요. 저는 숫자가 들어가는 것에는 매우 취약합니다. 암산이 안 돼요.”

“그러면서 어떻게 포커를 해요?”

“저는 계산하지 않고, 관찰합니다. 승리의 비결은 나중에 알려드리죠.”

계속 카드가 돌고, 베팅을 거듭했다.

마지막 히든카드가 분배되고. 생존자는 세 명.

“저는 죽어요.”

젊은 여자는 히든카드를 확인하자마자 포기했다.

남은 사람은 건물주와 유달.

건물주가 백만 원짜리 갈색 칩을 던지며 말했다.

“백부터 시작할까요?”

장미란과 플레이 할 때보다 조심스럽다.

유달의 실력이 어떤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유달에게 쏠렸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뒤집힌 카드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건물주가 넌지시 물었다.

“히든은 확인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콜!”

과감히 콜을 선언한 유달이 먼저 카드를 오픈했다.

J와 9, 투페어.

나쁘지 않은 패다.

그러나 건물주를 이기지는 못했다.

“안타깝군요. 저는 K 투페어입니다.”

건물주는 기분 좋게 테이블에 쌓인 칩을 쓸어 갔다.

장미란과 플레이 할 때보다 판돈이 크지는 않다. 유달의 실력이 별 볼 일 없음을 확인했기에 기분 좋은 것이다.

장미란이 어어 없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뭐예요?”

실망감을 보이는 그녀와 달리, 유달은 매우 안도하는 반응이다.

“우와, 다행히 졌습니다. 저는 이기는 줄 알고 엄청 쫄았습니다. 첫끗발이 개끗발이라는 명언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제 그 굴레에서 벗어난 겁니다.”

“정말이요?”

“이제부터 칩 쓸어 담을 준비하십시오.”

유달이 호기롭게 말하고 카드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일방적인 게임이 되었다.

유달은 자신의 패를 확인하지 않고 포커판을 지배했다.

***

유달이 포커 테이블에 앉고 한 시간 정도 흘렀다.

그는 이미 장미란이 잃었던 돈을 넘겨 땄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돈을 잃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유달은 여전히 자신의 뒤집힌 패를 보지 않았다.

그러고도 계속 돈을 따니, 환장할 노릇.

속임수를 의심하고 카드를 바꿨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여전히 상대의 패를 다 알고 치는 듯, 불리하면 쏙 빠지고, 유리하면 어김없이 판을 키워 먹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라 다른 테이블에서 몰려와 구경하기에 이르렀다.

유달이 히든카드를 받고 베팅했다.

“3백으로 시작해 볼까요?”

장미란은 재빨리 그 금액에 맞춘 칩을 중앙으로 밀어 넣었다.

“다이······.”

중년 신사는 받지 않고 포기.

건물주는 기다렸다는 듯 레이즈했다.

“3백 받고, 5백 더.”

그는 소위 액면, 보이는 카드에서 확실히 유리했기에 베팅을 올렸다.

“그러면 저는 그 5백 받고······ 천을 더 지르겠습니다.”

“콜······.”

건물주는 베팅한 만큼의 칩을 밀어놓고, 자신의 카드를 오픈했다.

“하트 플러쉬. 히든에 떴네요?”

“그럼 저는 어떤 카드일까요······.”

유달도 뒤집힌 카드를 확인해야 알 수 있다.

기본으로 받았던 두 장을 뒤집으니, 스페이드가 네 장.

마지막 히든카드를 오픈하는 순간,

“우와~.”

구경꾼들의 탄성이 터지고,

“젠장!”

건물주는 분을 참지 못하고 자신 앞에 있는 카드를 집어 던졌다.

유달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잠시 열 좀 식히죠?”

“무슨 소립니까? 어서 앉지요.”

건물주를 비롯한 다른 플레이어들이 허락지 않았다.

“제 집중력이 한계에 봉착해서 말입니다. 딱 한 판만 쉬겠습니다.”

“대신, 멀리 가면 안 됩니다.”

“예~.”

유달과 장미란은 테이블에서 의자를 약간 뒤로 떨어트리고 쉬었다. 테이블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그들이 용납지 않을 것이다.

유달이 도박장 천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만하면 양덕수의 관심을 끌었을 것 같은데, 아직 입질이 없네요? 피라미들 상대하는 거 벌써 진력났습니다.”

천장에는 수많은 감시카메라가 숨겨져 있다.

유달은 양덕수가 모니터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선하게 그려졌다.

그러나 장미란의 관심은 오직 한 가지다.

“어떻게 패도 보지 않고 이길 수 있어요?”

“제가 이미 힌트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계산하지 않고, 관찰한다고요.”

“무의식중에 드러나는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건가요? 좋은 패를 가졌을 때와 나쁜 패를 가졌을 때의 미세한 차이 말이에요.”

유달이 고개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건 별로 정확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무엇이든 속일 수 있는 존재입니다. 무의식중에 드러난다 여겨지는 반응도, 실은 꾸며낸 것일 수도 있지요.”

“그럼 뭘 관찰한다는 거예요?”

유달은 선문답하듯 말했다.

“도박장은 탐욕의 극치라 할 수 있지요. 수많은 원귀가 득실거리는데, 저를 귀찮게 하지 않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원귀들도 도박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저한테 신경 자체를 쓰지 않아요. 도박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이어 그는 좀 전까지 게임 했던 테이블을 턱짓했다.

“우리가 있던 자리에도 많은 원귀가 있습니다. 건물주가 방금 히든카드 받았죠?”

“네······.”

“포커페이스 유지하고 있는데, 완전 망친겁니다. 그 주위의 귀신들이 혀 차면서 고개 젓고 있어요. 기껏해야 원페어 정도 될 깁니다. 제일 좋은 패는 모자 쓴 젊은 여자가 쥐고 있어요. 원혼들의 반응을 보니, 풀하우스 이상일 겁니다. 그리고 중년 신사분의 카드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마도 스트레이트 정도일 겁니다.”

“정말이에요?”

“의심나면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장미란은 테이블로 바싹 다가갔다.

건물주가 숨 한번 내쉬고 말했다.

“체크.”

30대 주부는 이미 카드를 접었기에, 선은 중년 신사에게 넘어갔다.

“2백.”

“다이.”

건물주는 바로 죽고, 젊은 여인은 레이즈했다.

“2백 받고······ 3백 더.”

중년 신사는 잠시 생각하다 결정했다.

“콜.”

드디어 패를 오픈하는 시간.

중년 신사는 스트레이트였고, 젊은 여인은 6풀하우스였다.

장미란은 놀라운 표정으로 유달을 바라봤다.

그는 기고만장하여 다시 게임에 참여했다.

잠시 쉬고 온 유달은 작정하고 몰아붙였다.

“천만 원 질러봅니다.”

“다이······.”

사설 도박장은 상한액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음 판은 더 크게 키워 질렀다.

“천 받고, 2천 더 갑니다.”

“다이······.”

“올인.”

중년 신사가 용감하게 덤볐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둘 다 속된 말로 뻥카.

유달은 10 원페어, 중년 신사는 8 원페어였다.

이는 더 하고 싶은 의욕을 완전히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곧이어 줄줄이 항복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는 다른 테이블로 옮기겠습니다. 여기 계속 있다간 진짜 지옥문이 열릴 것 같습니다.”

건물주가 먼저 자리를 뜨자, 젊은 여인과 30대 주부도 불만을 토하며 몸을 일으켰다.

“저 아저씨 초능력자 아니에요?”

“내 남편보다 더 재수 없어······.”

유달이 앉은 테이블이 순식간에 텅 비는 때다.

정장 차림의 도박장 남자 직원이 다가와 말했다.

“저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지요. 양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호, 드디어 승진인가?”

유달은 좋다고 하며 몸을 일으켰다.

한강파 조직원들은 서둘러 테이블의 칩을 챙겼고,

유달은 장미란과 함께 남자 직원을 따르다가 갑자기 멈췄다.

이어 그는 천장을 향해 손을 드는가 싶더니,

“팡!”

감시카메라를 겨냥하여 손가락 총을 발사했다.

***

모니터를 살피던 양덕수가 인상을 찡그렸다.

“뭐지? 저놈······.”

육십이 넘은 나이, 도박계의 거물을 된 그는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했다.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얼굴인데?”

모니터 화면은 유달이 총질(?)하며 멈춘 상태.

양덕수가 김현호에게 물었다.

“본 적 있나?”

“아니요. 저 역시 처음 봅니다.”

인천 도박장 사건 때 그의 나이는 20대 초반.

이제는 40대 후반이 되었고, 도박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양덕수는 내심 껄끄러운 기색이다.

“왠지 기분 나쁜 놈이야. 속임수를 쓰는 게 아니라면 실력이라는 것인데······ 한강파 보스가 외국에서 데려왔나?”

“무슨 상관입니까? 회장님.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돈 받고 타짜 짓 하는 놈들의 실력이야 뻔하지 않습니다.

“그게 마음에 걸려······ 저놈은 아무래도 돈이 목적이 아닌 것 같아. 내 목을 노리고 왔다는 예감이 든단 말이야. 일단은 진짜 실력이 어떤지 보자고.”

“누굴 붙였습니까? 회장님.”

“6번 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지.”

“종목이 블랙잭이면, 캐리를 붙이셨군요.”

“외국에서 데려온 놈이라면, 우리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지. 어쩌면 자네 차례까지 안 올 수도 있어.”

그들이 여유롭게 차까지 마시고 있을 때다.

덜컹!

노크도 없이 직원이 다급히 들왔다.

“회장님, 회장님!”

유달을 안내했던 그 남자 직원이다.

김현호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캐리가 딜러를 포기했습니다.”

“왜?”

“그 이상한 놈한테 무너졌습니다. 시작하고 내리 털리기 시작하는데, 손실액이 벌써······.”

“!”

그들은 더 듣지 않고 6번 방으로 향했다.

회장실에서 멀지 않은 VVIP 6번 방.

끼이익.

때마침 캐리가 문을 열고 나왔다.

20대 후반의 늘씬한 금발 미녀다.

그렇지 않아도 하얀 얼굴이 완전히 질려서 백지장이 되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김현호의 물음에 그녀는 서툰 한국말로 대답했다.

“그놈······ 사람이 아닙니다. 진짜 사람 아닙니다······.”

그다음부터는 알 수 없는 외국 욕이 이어졌다.

“비켜.”

김현호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블랙잭 테이블에 등을 기대고 손 흔드는 유달의 모습과 마주했다.

“어서 와. 신의 경지가 어떤 건지 내가 보여 줄게.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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