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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카페-60화 (60/183)

60화- 희한한 영혼

밤 9시가 넘은 시간.

서울중앙지방법원 입구 옆 갓길.

장미란이 차를 세우고 유달을 기다렸다.

터덜터덜······.

기운 없는 발걸음으로 내려오는 유달이 보였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장미란은 얼추 짐작이 갔다.

“마셔요.”

그녀는 준비해 두었던 생과일주스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원기충전이 필요했습니다.”

유달은 시원하게 몇 모금 빨아먹고 소감을 말했다.

“어우······ 시원하다. 그래도 나름 선방했다고 봅니다. 괴악한 피고인 신문이 되었지만, 역대급으로 남을 사건은 아니죠.”

“덕분에 세상을 기만했던 잔혹한 범죄자가 합당한 벌을 받게 되었고요.”

철컥.

유달이 조수석 문을 열고 대답했다.

“저는 그딴 거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에게 의미가 있는 건 단 한 가지. 향후 5년간은 배심원으로 초대받을 일이 없다는 것이지요. 우하하하!”

그는 기분 좋게 차에 타며 문을 닫았다.

쿵.

“어련하시겠어요······.”

장미란도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그녀는 안전벨트를 매는 유달에게 물었다.

“어디로 갈까요? 제가 맛있는 거 사줘요?”

“아니요. 오늘은 피곤하니까 그냥 카페로 가죠.”

-카페가 어딥니까?

“그야 당연히 명동······!”

유달이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확.

뒷자리로 고개 돌리니,

빼빼 마른 영혼이 염치없다는 표정으로 인사했다.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와 보네요.

“으아악~!”

유달이 돈벼락이라도 맞은 듯 소리쳤다.

장난이 아니다.

정말로 경기를 일으키듯 깜짝 놀라서 지르는 비명이다.

덩달아 놀란 장미란이 물었다.

“왜, 왜 그래요?”

“방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확인하고 말씀드리죠.”

이어 그는 안전벨트를 풀고, 뒷자리로 몸을 돌렸다.

“왜 아직도 승천을 안 한 겁니까?”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요?

“어떻게 하긴요? 저한테 음식 얻어먹었죠?”

-법원 도시락 말입니까? 아주 맛있었습니다.

빼빼 마른 영혼은 또 먹고 싶다는 표정이다.

“그러니까요? 제 음식 공양받으면 무조건 자동 승천입니다. 영혼이 싫다, 좋다,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아저씨는 이승에 있으면 안 되는 건데, 왜 여기 있냐고요?”

-저도 모르지요?

“헐······ 그건 그렇고, 왜 저를 따라오는 겁니까?”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영감님 주위에서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저도 참 신기한 경험입니다.

유달은 현실을 부정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도 안 돼, 안 돼······ 나한테 귀신 붙은 거야?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절대 있을 수 없어······ 설마, 내 영험함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

그는 이내 또 고개를 흔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의심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한 가지밖에 없다.

유달은 진중한 표정으로 빼빼 마른 영혼에게 물었다.

“혹시 죽기 전에 나라를 구한 적이 있습니까?”

-헤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는 전문 도박꾼이었습니다. 식구들도 제대로 건사 못했는데, 어떻게 나라를 구하겠습니까?

장미란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요?”

유달은 빼빼 마른 영혼의 얼굴을 요모조모 살피며 대답했다.

“제 영험한 기운은 통하지 않는 희한한 영혼이 나타났습니다. 선령도 아니고 그렇다고 원귀도 아닌······ 아주 대책 없는 존재입니다.”

“나라는 구했냐는 물음은 또 뭐고요?”

“저의 영험함은 마기를 없애는 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요. 하지만 선한 기운 앞에는 도통 맥을 못 춥니다. 내 눈에 보이는 이 아저씨가······ 과연 내 영험함을 뛰어넘는 신성한 존재일까요······.”

-헤헤······.

빼빼 마른 영혼은 민망하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에게 절대 그렇게 안 보입니다. 신성함이 다 얼어 죽었습니까? 이는 필시 하늘이 나에게 내리는 벌입니다. 귀신이 붙어도 왜 하필 이런 요상한 아저씨냐고요? 세상에 예쁜 귀신 얼마나 많은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요. 빨리 카페로 돌아가서 쉬어야겠어요.”

부르릉!

장미란은 서둘러 승용차를 움직였다.

@

굿 카페의 휴일.

외부 손님을 받지 않는데, 카페 내부가 분주했다.

정세리의 인테리어 최종 시안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비록 시신이 된 상태였지만, 엄마를 찾아 준 것이 고마워 특별히 신경 써서 작업했다.

장미란은 정세리와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했고, 그녀가 데려온 공사 담당자가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실측했다.

바리스타 강성호도 출근했다.

주방도 이번 기회에 싹 갈아엎을 예정이다.

송보름은 아무도 없는 집이 싫다며 계산대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이럴 거면 차라리 가게 문을 여는 게 나았을 상황.

유달은 전망 좋은 창가 자리에 앉아 있다.

그의 손에는 사주가 적힌 종이가 들려 있었다.

“내 평생 죽은 사람 사주·관상 보기는 처음입니다.”

-헤헤, 저도 죽어서 점을 볼 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점괘는 괜찮습니까?

유달이 사주·관상 풀이가 시작되었다.

“아저씨는 잡기에는 능하나, 성격이 대범치 못하여 큰일 할 그릇은 아니었군요?”

-제가 도박에 소질은 있습니다. 하지만 원체 새가슴이기도 하고, 남에게 큰 피해 주는 것도 싫어합니다. 한탕 크게 하는 것보다, 조금씩 야금야금 티 나지 않게 뽑아 먹자는 게 제 지론이지요.

유달은 좀스럽다며 놀리지 않았다.

“아주 현명하신 생각입니다. 제가 아저씨처럼 했으면 이처럼 운이 꽉 막혀 있진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생명선이 장난 아닌데요? 무궁무진 장수할 사주입니다.”

-예?

-농담이 아니에요. 이 정도면 제가 그동안 봤던 사람 중에 단연 탑인데요? 보통 사람의 두 배······ 아니, 세 배가 넘는 수명입니다.

빼빼 마른 영혼은 어이없는 듯 반문했다.

-저는 50도 못 넘기고 죽었는데요?

“그러니까 제가 당황스러운 거 아닙니까? 도대체 왜 눈치 200단 아저씨는 모든 게 예외냔 말입니다!”

유달이 인생 최대의 적을 만났다.

짜증이 폭발하여 사주가 적인 종이를 북북 찢어버리는 때다.

딩딩딩딩딩.

유달은 잽싸게 휴대폰을 받았다.

“어디야?”

전화 상대는 여자 목소리다.

-지금 주차장에 도착했어요. 몇 층이에요?

“3층, 전체를 쓰고 있으니 헤매지는 않을 거야.”

-알았어요. 지금 올라가요.

빼빼 마른 영혼이 반색하며 물었다.

-저의 재심을 맡아줄 변호사님 맞습니까?

“네, 그런데 좋아하실 상황은 아닙니다. 가능성 없다고 포기한답니다.”

-헐······.

“일단은 그동안 조사한 자료 모두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설득해 보고 안 되면······ 다른 변호사 찾아봐야죠.”

-고맙습니다. 젊은 영감님, 복 받으실 겁니다.

딸랑딸랑.

카페 문이 열리고,

고급 정장을 입은 여인이 들어왔다.

당찬 커리우먼 분위기의 그녀는 유달이 법원에서 봤던 대학교 후배다.

이름은 윤지영.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다.

그녀는 서류가 가득 담긴 쇼핑백을 힘들게 들고 왔다.

유달을 도와줄 생각 없이 손만 번쩍 들었다.

“여기!”

주방에서 강성호가 뛰어나와 그녀의 쇼핑백을 받았다.

“저 주십시오.”

“에휴, 고마워요.”

윤지영은 무거운 짐을 들어 뻐근한 팔을 풀면서 유달에게 다가갔다.

“바쁜 저한테 꼭 이런 일까지 시켜야겠어요? 택배로 보내드린다니까······.”

“불만 금지. 어서 앉아.”

곧이어 유달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내가 맡긴 재심을 왜 포기하겠다는 것이냐? 대학 시절, 약자를 위해 싸우는 변호사가 되겠다던 순수한 영혼은 어디다 팔아먹었어?”

“유달 선배, 이건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에요. 재심을 청구하려면 판결을 뒤집을 새로운 증거를 찾아야 하는데, ‘인천 도박장 사건’은 그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게다가 너무 오래 전 사건이기도 하고요.”

“그 증거는 내가 찾을 테니까, 너는 재판 맡아.”

윤지영은 의뢰인을 이해시키듯 차분히 말했다.

“우리 로펌은 형사재판에 관해서는 국내 최고예요. 베테랑 조사관들도 모두 가능성 없데요. 내가 맡고 싶어도 로펌 대표님이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요?”

“야, 로펌 대표가 네 남편이잖아?”

“우리는 공과 사가 확실한 부부예요. 회사에서는 남편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요. 제가 다른 로펌 알아봐 드릴까요?”

“싫어. 너네 로펌이 이쪽 방면에선 최고라고 하기에 맡긴 거라고.”

“최고라는 건 비싸다는 뜻이기도 해요. 선배님이 감당하기는 힘들 금액이고요. 성공 가능성도 없으니, 생돈만 날리게 된다고요.”

“대체 얼마를 받는데?”

윤지영은 사주를 적는 종이에 금액을 써서 보여 주었다.

“이건 정말 최소금액이에요. 지인 할인 들어가고, 성공보수도 뺀 거예요.”

액수를 확인한 유달은 분노까지 느끼는 반응이다.

“이런 도둑놈들!”

“당연히 포기하실 거죠?”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는 하루속히 아저씨 영혼을 떼어내고 싶었다.

“아니, 그냥 진행해. 최대한 저렴하게.”

윤지영은 도저히 이해를 못 해서 물었다.

“선배? 재심 청구하는 황기준과는 대체 어떤 사이에요? 가족도 아니면서 왜 발 벗고 나서냐고요?”

“억울하고 불쌍하니까, 도우려는 거지!”

“말도 안 돼요! 선배는 불쌍한 사람 보면 번개처럼 도망치는 성격이잖아요?”

윤지영이 유달의 정곡을 찌를 때다.

장미란이 그들이 있는 창가 자리로 다가왔다.

“잠시 실례할게요.”

이어 그녀는 유달을 보며 말했다.

“정세리 씨가 잠시 보자고 하네요.”

“알겠습니다.”

유달을 따라 윤지영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너는 왜 일어나?”

“선배 가게 좀 구경하려고요. 괜찮죠?”

“그러거나 말거나.”

***

검은 커튼으로 가려진 굿 카페의 신당 앞.

정세리가 뒷짐지고 있는 유달에게 물었다.

“이 뒤가 신당이라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이 검은색 커튼은 뗐으면 하는데요? 새로 하는 인테리어에 걸맞게 화사한 것으로 바꿀게요.”

그녀는 우중충한 커튼이 처음부터 눈에 거슬렸다.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이건 그냥 홈쇼핑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대자연의 영험함이 기운이 깃든 매우 귀한 것입니다.”

“어떻게, 색상이라도 바꾸면 안 될까요? 전체적인 조화를 다 망칠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이건 제가 진지하게 고민해보지요. 다른 건 또 없습니까?”

“신당 안을 볼 수 있을까요? 매니저님 말로는 세기의 명품이 진열되어 있다고 하던데요.”

유달은 흔쾌히 승낙했다.

“물론이지요. 제 몸신은 남들이 부러워하며 오두방정 떨어대는 거 좋아합니다.”

세기의 명품이란 말을 듣고 윤지영도 다가왔다.

유달이 커튼을 향해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저는 정신 사나운 거 질색이니, 너무 호들갑 떨며 소리치진 마십시오.”

촤아악!

유달이 커튼을 활짝 열어젖히는 순간,

정세리와 윤지영은 아무 반응도 없다.

그녀들의 기대에 못 미친 게 아니다.

진열대에 가득한 명품의 진가를 알아봤기에, 비명이 늦게 터졌다.

“와아악~!”

“우와아~!”

월드컵에 골 들어간 분위기다.

그녀들은 오늘 처음 보는 사인데, 손을 맞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이어 그녀들은 자석에 끌리듯 진열대로 다가갔다.

“이, 이거 그거 아니에요?”

“맞아요, 에르메스 버킨백!”

“저, 저거······ 라나 막스 클레오파트라 클러치 맞죠?”

“네~ 맞아요, 맞아!”

유달은 진열장 앞을 가로막았다.

“훠이, 떨어져.”

미련을 떨치지 못한 윤지영이 말했다.

“저거 수임료로 주시면 안 돼요?”

유달은 그녀가 가리키는 명품백을 힐끔 보고 대답했다.

“남편이 반대해서 못 맡는다며?”

“그런 게 어딨어요! 백만 넘겨주면 계약 성립이에요.”

“절대 안 돼······ 급살 맞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그의 몸신이 용납할 리 만무했기 때문인데,

끼이익······.

갑자기 진열장 문이 저절로 열리더니,

툭.

윤지영이 찜했던 가방이 유달의 손으로 떨어졌다.

“이, 이, 이, 이럴 수가!”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벌어졌다.

누구보다 명품 욕심이 많은 그의 몸신이 빼빼 마른 영혼을 위해 선심을 베푼 것이다.

대체 왜?

어쨌거나 유달에겐 득이 되는 상황이다.

“자, 계약 성립?”

“오케이!”

윤지영은 유달이 내미는 명품백을 냉큼 끌어안았다.

좋아 죽는 그녀는 진열장이 하나가 아님을 발견했다.

“어머, 이 뒤에도 명품들이 잔뜩 있어요! 조금만 더 구경해도 되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유달은 창가 자리로 돌아왔다.

장미란이 강성호가 탁자에 올려놓은 자료를 살피고 있었다.

“이게 그 눈치 200단 아저씨의 재판과 수사기록 자료인가요?”

“맞습니다. 저는 아직 무슨 내용지도 모릅니다.”

“여기요.”

그녀는 얇은 서류철은 유달에게 내밀었다.

“로펌에서 간결하게 잘 정리한 보고서에요.”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기는 해야겠네요······.”

서류철 받아서 천천히 읽던 유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차, 차, 찾았습니다!”

“뭘 찾아요?”

“내 영험함이 무시당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줄줄이 벌어졌던 이유 말입니다.”

이어 그는 빼빼 마른 영혼에게 물었다.

“아저씨, 혹시 장기기증하셨습니까? 기록을 보니 여러 생명 살렸다고 나와 있네요.”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났습니다. 제가 교도소에서 사고당해 죽는 순간 말입니다. 살인자의 장기라고 받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그런 염려가 들었습니다.

빼빼 마른 영혼은 별것 아니라는 듯 멋쩍게 웃었다.

순간, 유달은 눈이 부신 듯 움찔했다.

아저씨 영혼의 등 뒤에서 하얀 광채를 발하는 아우라가 일출처럼 솟아나는 느낌이다. 그 광채는 너무도 신성하여 유달의 영험함이 기를 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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