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망언
김명관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부인······.”
“!”
순간, 이나원은 소름 끼친다는 반응이다.
유달이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김명관에게 말했다.
“호칭 주의합니다. 우리는 그쪽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왔으니까.”
“너는 뭐 하는 놈이냐?”
“내 뒤에 계신 분의 맞선남이며, 사주카페 사장.”
“무당인가?”
“당연히 것을 왜 물어보시는지?”
“신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무당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군.”
“오늘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쓸데없는 사람들 물리고, 당사자들끼리 이야기하는 게 어떠신지?”
김명관은 유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부인들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물러가라. 그리고 짐이 나갈 때까지 아무도 들이지 마라.”
왕명이 떨어진 듯 성심관 안에 있던 신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쿵.
문이 닫히는 순간,
유달과 김명관의 분위기가 동시에 변했다.
철천지원수를 대하듯 사나운 눈빛에,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번지며, 상대를 향한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유달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내가 직업상 많은 미친놈을 봤는데, 그쪽이 단연 갑이야. 이렇게 단체로 때깔 맞추고, 헛지랄하는 경우가 흔치 않거든.”
김명관은 여과 없이 살기를 드러냈다.
“이 한심한 무당 놈아, 짐의 부인을 탐하고도 무사하길 바라느냐? 기회를 줬을 때 달아났어야지. 여기가 어디라고 겁도 없이 발을 들인 것이냐?”
“겁은 그쪽이 상실한 것 같은데? 감당할 수 없는 신은 욕심 내는 게 아니야. 육신과 영혼이 잡아먹히게 된다고, 지금 그쪽처럼.”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니, 뜨거운 맛을 봐야 주둥이를 닥치겠구나? 이제는 잘못했다며 용서를 빌어도 소용없다. 죽음보다 더한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뭐, 착각은 자유니까······ 그런데 무슨 짓을 하려고 그리 줄 맞춰 앉으시나?”
김명관이 가부좌를 틀고 앉자, 그의 부인들이 양편으로 무릎 꿇고 앉았다.
곧이어 김명관이 합장하듯 양손 모으며 말했다.
“주제 파악 못 하고 설치는 무당 놈, 이번에는 결코 운이 좋지는 못할 것이다.”
“무슨 헛소리야? 나는 여태껏 운이 좋아 본 역사가 없는데?”
김명관은 유달의 반박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더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어 그의 부인들도 손에 손잡고 주문을 따라 하면서, 성심관 내에는 불경을 외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달이 그들 앞을 기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대체 뭐 하는 거야?”
이나원이 그의 등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조심하세요. 천존의 주문은 사람을 해칠 수 있어요. 아무 지병도 없는 젊은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해요. 그 때문에 신도들이 두려워하며 따르는 것이고요.”
유달이 이내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에이~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주문만으로 사람을 해칩니까? 절대 믿지 마십시오. 뻥입니다. 뻥!”
“제가 직접 봤다니까요?”
“짜고 치는 고스톱에 속은 겁니다. 저놈과 서로 짝짝궁이 되어 있던 놈이지요. 저놈이 약속된 신호를 보내면, 알아서 쓰러지며 연극 했던 겁니다. 의대 나오신 분이 그 정도 속임수도 눈치 못 챕니까?”
“몇 번이나 과학적인 검증을 했는데, 속임수가 아니었어요. 제가 밝혀낸 건······ 천존은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하단 것이었죠.”
“정말 그런지는 바로 알 수 있겠지요. 방금 저놈이 주문을 끝냈습니다.”
“!”
그녀는 공포에 질려 얼어붙은 반응이다.
유달이 뒤돌아보니, 김명관이 기분 나쁜 웃음 지으며 노려보고 있다.
이내 그의 웃음기가 사라는가 싶더니,
화악!
유달의 목을 베는 시늉하며 소리쳤다.
“죽어라!”
-사악-.
유달만이 들을 수 있는 파공음.
날카로운 검날이 허공을 베는 소리와 비슷했다.
곧이어 유달은 무언가 자신을 덮치는 느낌을······ 받은 것 같기도 했다.
“응? 방금 뭐 했어?”
“!”
김명관의 놀란 두 눈이 부릅떠지는 순간,
풀썩.
그의 첫 번째 부인이 맥없이 쓰러졌다.
이제야 상황 파악한 유달이 물었다.
“금방 나한테 살(煞) 날린 거니?”
그는 이에 화가 난 게 아니라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마신 주제에 제법이잖아? 어떻게 굿도 안 하고 그게 가능하지? 이런 능력이 있으면 지구를 정복해야지. 왜 사이비 교주 노릇이나 하고 있는 걸까?”
김명관은 유달의 칭찬이 달갑지 않다.
그런 자신의 능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은 상대는 뭐란 말인가?
살이 통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반사하듯 튕겨냈다.
호텔 앞에서 있었던 어처구니없는 일은 자신의 실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김명관도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어 물었다.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무당이라고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을까?”
“어떠한 신기도 느껴지지 않은 무당이 짐의 살을 막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달이 심각하게 대꾸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방금 번뜩하고 생각났는데, 내 앞에서 쓰러졌던 그 노인,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지? 원흉은 네놈이지만, 나에게도 약간의 책임은 있는 거야. 맞지?”
“네놈에게는 그게 중요한가?”
“당연하지! 나는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은 절대 건들지 않는 무당이야. 그런데 너는 나에게 찜찜함을 안겨 줬어. 그 죄를 어떻게 감당할 건데?”
“네놈은 짐을 무척이나 짜증 나게 하는구나. 어째서 살이 통하지 않는 것이지······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 짐의 분노가 폭발하게 만드는구나······ 꾸엑~.”
김명관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발했다.
멧돼지의 울음인 듯, 거대한 산짐승의 외침인 듯,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꾸엑, 꾸엑, 천벌을 내리리라······ 꾸엑~ 짐을 모욕하는 인간에게 심장이 뚫리는 고통을······.”
덥석.
김명관이 목을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곧이어 눈이 뒤집히며 온몸을 떨기 시작되었다.
그의 부인들이 걱정되고, 괴이한 모습에 어찌할 바 모르는 표정이다.
“처, 천존님? 평정을 찾으시옵소서······ 두렵습니다.”
“벌을 내릴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천벌을······ 꾸에에엑~!”
돼지 멱따는 듯한 괴성이 터지고,
“꺄아악!”
그의 부인들이 귀를 막고 괴로워했다.
아무리 세게 귀를 막아도 소용없다.
-꾸에에엑~ 꾸에에엑~!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는 괴성은 머릿속을 열고 뇌를 직접 난도질하는 것 같다.
김명관의 부인들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러다녔다.
***
괴성과 비명이 난무하는 성심관.
유달이 뒤에 있는 이나원을 돌아봤다.
그녀 역시 양손으로 귀를 막으며 괴로워했다.
유달이 다가가 그녀를 마주하며 섰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귀를 막아주었다.
“!”
순간, 그녀는 괴성이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을 난도질하는 고통 또한 바로 사라졌다.
그녀는 신기하고도 어리둥절한 반응이다.
“방금 무슨 소리였죠?”
유달은 그녀의 귀에 살짝 손바닥을 댄 상태다.
그가 하는 말을 아무 지장 없이 들을 수 있었다.
“스토커 놈이 마신에게 먹히는 중입니다.”
“!”
“괜히 눈으로 확인하려 하지 마십시오. 저놈이 부인을 고르는 기준은 영적인 능력이 있는 여인입니다. 그렇기에 평범한 사람은 들을 수 없는 괴성에 반응하는 거죠. 만약 저놈이 마신으로 완전히 변한 모습을 보게 되면, 미쳐버릴지도 모릅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꺄아악~!”
“까악, 까악, 까아아악!”
여자들이 지르는 비명이 더욱 격해졌다.
서로 먼저 도망치려고 안달하는 난리 치는 모습인데, 오금이 저려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수준이다.
유달은 이나원을 바라보는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이제야 탈바꿈이 끝났나 봅니다. 아마도 지금 제 등 뒤에서 흉측한 모습으로 침을 흘리고 있을 겁니다.”
“!”
그녀가 두려움을 참고 물었다.
“이, 이제 어떡해야 해요?”
“당신의 도움이 약간 필요합니다.”
“어서 말하세요. 무엇이든 도울게요.”
“그러면 제 와이셔츠 단추를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예?”
이나원이 당황하여 유달을 올려봤다.
“제가 이 시국에 이상한 거 시키겠습니까? 내가 손을 거두면 안 되니까, 부탁드리는 거죠.”
“예······ 알았어요.”
그녀는 유달의 와이셔츠 단추를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되셨으면 러닝셔츠를 살짝 위로 올려 주시는데, 복근 없다고 놀라지 마시고요.”
“예······ 기대도 안 해요.”
“제 배에 뭔가 붙어 있는 거 보이죠?”
“네, 파스인가요?”
“아니요, 저의 신기(神氣)를 잠시 막는 부적입니다. 맞선 때는 꼭 하기로 이모와 약속했거든요. 하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약속을 깨야 할 것 같습니다. 과감하게 떼십시오.”
“알았어요.”
차악~.
“앗! 따그······.”
유달이 그녀의 귀를 막았던 손을 거두며 말했다.
“이제는 괴성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마기의 영향은 담배처럼 백해무익합니다. 싸움이 시작되면 바로 귀 막고, 눈 가리고, 납작 엎드려 계십시오.”
“네, 그럴게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남들은 상위급의 미쳐버린 마신을 상대하길 꺼리는데, 저는 보통의 마신보다 훨씬 싸우기 편합니다. 항상 적당히 위험한 것들이 문제이지요. 혼자서 어떡하든 처리해야 하니까 완전 개고생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주 위험한 것들은······.”
“저, 저기요?”
이나원이 조심스럽게 유달의 말을 끊었다.
“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서둘러 싸워야 하지 않을까요? 아까 등 뒤에서 침 흘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리 말하는 사이에 공격해 오지 않을까요?”
유달이 안심하라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아니, 그럴 수가 없는 거죠. 아까 말하려다 끊겼는데, 처음부터 아주 위험한 것들은 제 몸신이 직접 나섭니다.”
“?”
“물론 공짜는 아니고 명품 하나 질러야 하지요. 지금 마신에게 먹힌 스토커는 잔뜩 침 흘리고 있다가, 식겁하는 상황일 겁니다.”
유달이 천천히 뒤돌아섰다.
봉인했던 신기가 풀려 어떤 상황인지 똑똑히 보였다.
김명관을 잡아먹고 나온 마신은 거대한 멧돼지의 형상이다.
“삼겹살이 몇 근이나 나오려나?”
덩치는 코끼리보다 우람하고, 기다란 어금니는 날을 세운 창처럼 날카롭고, 몸 전체에 곤두선 털은 대못을 거꾸로 박아 놓은 듯 예리했다.
그러나 유달 쪽을 바라보는 마신은 두려움에 떨며 위축된 모습이다.
그 큰 덩치의 마신이 고개 들어 올려보았다.
거대한 날개 형상의 그림자가 겁먹은 마신의 얼굴을 뒤덮었다.
“금방 갔다 오지요.”
유달이 움직이자, 이나원이 납작 바닥에 엎드렸다.
뚜벅뚜벅.
유달은 김명관을 향해 걸어갔고, 그의 몸신은 마신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날갯짓을 거듭했다.
껍데기뿐인 김명관의 몸은 공격 본능밖에 남지 않았다.
“크아악!”
그는 유달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사납게 달려들었다.
유달 역시 걷는 속도를 높이며 거리를 좁혔다.
“크악!”
김명관이 양손을 뻗어 유달을 잡으려는 순간,
팟!
유달이 점프하여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강력한 무릎 공격으로 놈의 턱을 가격했다.
빠각!
김명관이 허물어지듯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화악!
유달의 몸신이 궁지에 몰린 마신을 덮쳤다.
사나운 생김새의 마신이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꾸에에엑~ 꾸에에엑~!
돼지 멱을 따는 애처로운 비명만 발할 뿐이다.
퍽! 퍽! 퍽! 퍽!
유달은 아픈 것도 모르고 날뛰는 김명관에게 계속 주먹질을 퍼부었다.
***
광무사 15층.
식탁에 앉아 있는 백시연은 휴대폰 시계만 쳐다보았다.
잠시면 된다며 나갔던 김명관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오냐오냐해주니까 진짜······.”
벌떡!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백시연이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현관문을 지키는 신도에게 물었다.
“천존은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지?”
덩치 좋은 20대 남자 신도가 대답했다.
“천존께서는 성심관으로 행차하셨습니다.”
백시연은 광무사에 자주 방문했다.
광무사의 신도들도 그녀를 귀한 손님으로 대접했다.
“대체 뭐 하느라고 아직도 안 올라오는 거야?”
그녀는 계단을 이용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성심관 주위에 신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백시연이 강지수에게 물었다.
“천존은 안에 있나요?”
“그렇습니다.”
“제가 잠시 들어갔다 나오겠습니다.”
“안 됩니다.”
광무사 신도들이 굳은 표정으로 막아섰다.
“제가 누군지 모르나요?”
강지수가 예의 갖춰 대답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지엄한 명이 있었습니다. 천존님의 귀한 손님이라도 이를 어길 순 없습니다.”
백시연은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이다.
“정말 가지가지 하네······ 약속은 내가 먼저 하고 왔다고! 금방 온다는 이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고! 대체 뭐 하고 있나 확인하고 싶은데, 그것도 안 되는 거야?”
“지, 진정하십시오······.”
백시연이 격하게 화를 내자, 강지수는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김명관도 백시연의 말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걸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심히 문을 열고 확인해주십시오.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백시연은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었다.
끼익······.
화를 누그러트리며 조심히 문을 열었는데,
퍽! 퍽! 퍽! 퍽!
“!”
백시연은 무자비한 폭력의 현장을 목격했다.
유달이 김명관을 반쯤 죽여놓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의 마신도 소멸하기 직전이다.
-꾸에에엑~ 꾸에에엑~!
마신의 몸뚱이를 갈가리 찢어버리는 존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녀는 머리칼이 곤두서는 공포를 느꼈다.
쿵.
백시연이 반사적으로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넋이 나간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빨리······ 구급차 불러요.”
“절대 안 됩니다. 안에서 벌 받는 사내는 천존의 부인을 탐했던 놈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미친······ 너희들의 천존이 맞아 죽는다고!”
백시연이 목청을 높였지만, 소용없다.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망언도 정도껏 하셔야지요.”
“이것들아, 비켜!!”
화악!
그녀는 광무사의 신도들이 만류를 뿌리치고 성심관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