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1.5
커플매니저 이미옥이 물었다.
“이모님 말씀으론, 한국대 출신에 사법고시까지 붙었다고 하더군요.”
“하하하하, 그런 스팩을 가지고 제가 사주카페나 하고 있겠습니까?”
“손가락의 반지를 보니 확실하군요.”
“!”
유달이 잽싸게 가렸지만 늦었다.
“그 반지는 한국대에서 재학 중 사법고시에 붙은 인재에게만 특별히 주는 것이죠.”
“커플매니저님은 수사관을 하셨어도 성공하셨을 겁니다.”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일부 고객들은 자신에 대해 정직하게 않게 표현하지 않더군요. 그걸 잘 찾아내는 것도 커플매니저의 능력이지요.”
이어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게 참 넓네요. 250평쯤 되나요?”
“정확하십니다.”
유달은 압수수색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예전 그의 이모가 보냈던 커플매니저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적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모님이 우려하셨던 것보다는 손님들이 많네요?”
“오늘만 반짝하는 겁니다. 평소에는 절반도 못 미치는 비참한 수준이지요.”
“지나치게 정직한 말씀이군요. 이럴 때는 두 가지 경우라 할 수 있지요. 하도 맞선을 맞이 봐서 반쯤 포기한 고객이거나, 의도적으로 안 좋은 면을 강조하여 맞선을 피하고 싶은 고객이거나. 만약 후자의 경우라며 쓸데없는 짓이라고 충고드리고 싶네요.”
“역시 보통이 아니시군요?”
“이모님의 의욕이 대단하다고 말씀드렸죠? 저 또한 이쪽 방면에선 명성이 조금 있답니다. 못 이기는 척하고 세 번만 맞선 보시지요?”
“저기요······.”
유달이 대응 방식을 바꿨다.
그는 곤란해 죽겠다는 표정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다고 제 마음이 바뀔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체질적으로 결혼이 맞지 않습니다. 서로 간의 시간 낭비일 뿐이지요. 이런 골치 아픈 의뢰를 왜 맡은 겁니까?”
“저에게는 무척 쉬운 의뢰랍니다.”
“왜요?”
“중매가 어려운 건, 좀 더 나은 배우자를 소개받기 원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모님의 요구는 무척 간단했습니다.”
“뭔데요?”
“산 사람이면 무조건 된다고 하시더군요. 세상에 이처럼 편한 의뢰를 누가 거절할까요?”
“······.”
이미옥이 목소리 톤을 높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제가 아무나 소개하겠다는 뜻은 아니지요. 사장님에게 딱 맞는 참한 배우자를 찾아드리겠습니다. 거절을 염두하고 나와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주선하는 맞선, 딱 세 번만 보세요.”
“저기요······.”
안 되겠다 싶은 유달이 다시 작전을 변경했다.
“사실, 이곳에는 저보다 더 커플매니저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저쪽을 보시지요.”
유달은 사무실에 노트북을 살피는 장미란을 가리켰다.
“우리 카페의 총괄 매니저이자 최대 투자자입니다. 보시다시피······ 혼기는 예전에 놓쳤고요. 집안이 빵빵하여 성혼 사례금도 엄청 땡길 수 있습니다.”
“글쎄요······.”
이미옥은 썩 내키지 않은 기색이다.
유달은 그런 반응이 이해되지 않아 목청 높였다.
“저 정도면 딸리는 외모 아닙니다? 나이 정도는 충분히 카바할 수 있어요. 게다가 옥스퍼드 졸업하고, FBI 수사관 경력에 광수대 팀장도 하고요. 3개 국어에 능통한 제원입니다.”
“그렇군요······.”
“이 반응은 또 뭘까요? 제가 미란 씨의 집안까지 언급하게 만드시는군요. 아마도 아버님은 큰 사업을 하시나 봅니다. 세계 도처에 사업체가 있는 것 같고요. 미란 씨는 무남독녀이니 그 재산을 누가 갖겠습니까? 게다가 어머니는 별이 두 개입니다.”
“예?”
유달은 자신의 설명이 부족했음을 즉시 깨달았다.
“감옥 들락날락하는 그 별이 아니라 군대의 별말입니다. 대한민국의 여성 장성이지요. 이런 스팩과 배경을 가진 미란 씨의 혼사가 탐나지 않습니까?”
“전혀요.”
“아, 왜요? 우리 미란 씨가 뭐가 어때서요?”
유달은 자신이 무시당한 것처럼 화를 냈다.
이미옥은 차분히 말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중매가 어려운 건, 좀 더 나은 배우자를 소개받기 원하기 때문이라고요. 이런 경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왜요?”
“우리나라의 있는 집안에서는 주관이 뚜렷하고, 능력 있고, 국제적인 감각까지 지닌 여자를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런 조건은 남자에게나 필요한 것이죠. 저는 유달 사장님의 맞선에 집중하고 싶군요.”
“헐······.”
유달은 최후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맞선 한 번으로 합의 보죠?”
“그건 좀······ 두 번 어떠세요?”
“단판 승부, 한 번입니다.”
“그렇다면 1.5로 가죠?”
“그건 어떻게 가능한 횟수일까요?”
“처음 만난 분과의 애프터도 횟수로 계산하는 겁니다. 사장님은 한 여자와 두 번 만나도 되고, 다른 여자와 각각 맞선 볼 수도 있어요. 어때요?”
유달은 잠시 머리 굴리고 대답했다.
“그렇게 하지요. 나중에 딴소리하면 안 됩니다.”
“물론이지요. 마땅한 상대를 찾으면 전화하겠습니다.”
“당연히 제 전화번호는 가지고 계시겠지요? 제 가게 주소도 알고 찾아오셨으니 말입니다.”
***
굿 카페가 있는 건물 1층 현관.
띵동.
승강기 문이 열리고, 이미옥과 유달이 함께 내렸다.
촤악.
이미옥이 자동 우산을 펴며 말했다.
“이제 들어가세요. 저 혼자 가도 괜찮아요.”
“아니요, 이모님의 특별 손님이신데 그럴 순 없지요. 제가 정류장까지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촤악~!
유달이 우산은 거대했다.
그는 파라솔 같은 우산을 빙빙 돌리며 물었다.
“버스? 지하철? 어느 걸 타고 가십니까?”
“비가 오니 지하철을 타는 게 낫겠네요.”
“그럼, 이쪽입니다.”
유달은 이미옥과 함께 비 오는 거리를 걸었다.
이미옥이 물었다.
“혹시 저한테 부담을 주어 맞선을 피하려는 의도는 아니겠지요?”
“저 그렇게 교활한 놈 아닙니다. 약속한 것은 최대한 지키려 노력은 하지요.”
유달은 한 발짝 앞서 나가며 그녀가 편히 걷게 해주었다.
“사장님 가게에 관해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든 물어보십시오.”
“계산할 때 보니까, 사주·관상 봤던 금액을 8천 원 따로 받던데요?”
“너무 비쌉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깜짝 놀랄 정도로 잘 맞추니 좀 더 아니, 몇 배를 올려도 보러올 손님은 있을 것 같아서요. 그 가격은 왜 그렇게 정한 거예요?”
요금제의 변경은 장미란이 주도했다.
그러나 따로 받는 사주·관상 금액은 전적으로 유달이 결정했다.
그가 왜 그런 가격으로 정했는진 장미란과 송보름도 몰랐다.
“질문 감사합니다. 제가 얼마나 고심해서 정한 것인데, 매니저와 알바는 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더군요.”
이어 그는 차분히 그 과정을 이야기했다.
“어디에나 적정 가격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 직업은 특이하여 결정이 쉽지 않더군요. 대무당의 적손이 다른 점쟁이 얼마 받는지 살피기도 뭐하고요. 그렇게 고심하다가 미용실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미용실이요?”
“네, 제가 자주 가는 단골 미용실이요. 남자 커트만 전문적으로 하는 곳인데, 손님이 많을 때는 밥 먹을 시간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미용사 아주머니는 대충대충 깎지 않고, 최대한 스타일 맞춰주더군요. 순간, 내가 하는 일은 저 정도 받으면 되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하여 커트 요금과 똑같은 8천 원이 결정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지하철역이 얼마 남지 않은 인도였다.
“이제 돌아가세요?”
“아닙니다.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되겠죠?”
“?”
이미옥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걸음을 재촉하는 때다.
촤아아악~!
큰 트럭이 지나가면서 솟구치는 흙탕물이 인도까지 튀는 순간.
화악.
유달이 잽싸게 파라솔 같은 우산으로 폭우처럼 덮치는 흙탕물을 막아주었다.
후두두두둑.
우산에 부딪히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하마터면 더러운 흙탕물을 흠뻑 뒤집어쓸 위기였다.
이미옥은 놀랄 겨를도 없이 안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고마워요······.”
“천만에요. 이제 안심하고 가셔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저도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예······ 물어보세요.”
“왜 재혼하지 않으셨는지요? 커플매니저를 하시니 괜찮은 남자들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녀는 특유의 눈웃음지으며 대답했다.
“참 괜찮다 싶은 남자 많았지요. 하지만 전남편보다 좋은 남자를 찾을 수 없었어요. 그 사람이 죽었다는 건 문제가 되지 않더군요.”
“그렇지요? 저도 동감입니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유달은 파라솔 같은 우산을 빙빙 돌리며 카페로 향했다.
***
딸랑딸랑.
유달이 커플매니저를 배웅하고 돌아왔다.
장미란은 사무실에서 나와 매출 장부를 살피고 있었다.
문소리가 들리자 반사적으로 고개 돌렸다.
“커플매니저는 잘 보내드리고 왔어요?”
“네, 무사히 지하철역까지 모셔드리고 왔지요.”
“정성이네요? 유달 씨가 그리 멀리까지 배웅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저는 맞선에 환장한 놈 아닙니다. 그보다 태황가의 최준기를 언제 검찰이 소환하는지 알 수 있습니까?”
“왜요?”
“그놈에게 원귀를 다시 붙여야지요. 내가 직접 눈으로 봐야 가능한데, 꼭꼭 숨어서 나오질 않네요. 소환장 받으면 어쩔 수 없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장미란은 유달에게 다가가며 대답했다.
“검찰하고 그쪽 변호인단이 날짜를 조률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놈에게 당분간은 원귀를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미란 씨가 그놈을 불쌍히 여길 리는 없는데 말이지요”
“별별 수를 다 써서 소환을 피하려는 놈이에요. 우리가 일부러 그런 기회를 말들어 줄 필요는 없겠지요?”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군요. 그럼 저도 야수 모드 해제하고, 당분간 조용히 있겠습니다.”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장미란은 유달을 흉내 내어 말하다 물었다.
“그런데 맞선 날짜는 언제예요? 미리 말해 줘야 가게 영업에 지장이 없지요.”
“방금 현장 조사 끝났습니다. 풍부한 제 경험에 의하면, 아직 멀었습니다.”
유달이 장담하여 말하는 때다.
딩딩딩딩딩······.
그의 휴대폰에 처음 보는 번호가 떴다.
유달은 갸웃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미옥 커플매니저예요. 이번 주 토요일에 첫 번째 맞선 잡혔습니다.
“벌써요?”
그의 장담과 어긋나는 일이 벌어졌다.
-제가 일 추진이 매우 빠른 편이랍니다. 이름은 이나원, 지금은 미용사로 일하고 있어요.
“미용사요? 아까 제가 한 말 때문에 일부러 그런 직업을 고른 건 아니지요?”
-우연일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용사라는 말이 조금 걸리네요. 미용사 전에는 뭘 하던 분인데요?”
@
화창하게 날이 갠 토요일 오후.
유달은 약속한 맞선 장소로 가고 있었다.
“대체 어떤 여자가 나오려나······.”
그가 맞선 상대에 대해 아는 건 이름과 직업뿐이다.
커플매니저가 조금순의 당부를 철저히 따랐기 때문이다.
사주와 관련 있는 나이는 물론, 관상을 볼 수 있는 사진도 보내주지 않았다.
엠파이어 호텔 커피숍에서 커플매니저 이미옥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웅장한 호텔 건물이 보이는 사거리.
유달은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대기 중이다.
“이번엔 제발 사고 없이 제대로 끝내자.”
그의 몸신이 시샘하여 개입하는 건 아니다.
무슨 일이든 이상하게 꼬이는 팔자가 문제였고, 맞선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맞선 때마다 크고 작은 사고에 휘말려 불안해하는 그때.
쾅~!
교통사고가 일어난 모양이다.
차량이 충돌하는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