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수작
유달이 기죽지 않고 말했다.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웃는 것인지?”
“불쌍해서······ 너는 누구보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할 것이고, 죽어서도 영원히 고통받을 테니까.”
“악담이 수준급인데?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그런 죽임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서동식은 웃음기를 거두지 않고 대답했다.
“내 영역을 침범하면 안 되는 거였어. 그것이 실수든 고의든······ 절대 용서받지 못할 일이야.”
유달 역시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당신이야말로 사람 영혼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는 거였어. 천기를 어지럽히면 천벌 받아.”
“나는 너 같은 무당이 아니야.”
“그럼?”
“그 이상의 존재지. 마음만 먹으면 모든 영적인 존재를 부릴 수 있어.”
“그런 능력이면 지구를 정복하지 왜 여기에 있을까? 그따위 위협은 나한테 안 통해. 더 이상 나를 수학하고 멀어지게 만들지 말지?”
유달과 서동식이 대화하는 모습이 보이는 주방 앞.
장미란은 매출 장부를 확인할 때보다 더 심각한 얼굴로 그들을 주시했다.
그런 그녀에게 송보름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신경 쓰지 말아요. 저런 선무당들 꽤 있어요.”
“선무당?”
장미란은 그녀에게 서동식의 정체를 말하지 않았다.
여대생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 밝혔다면 기겁하여 도망쳤을 것이다.
“아까 신당에서 찌잉하고 울렸잖아요? 제 느낌에도 영적인 능력은 타고난 것 같은데, 사장님한테는 안 되죠.”
“뭐가 안 된다는 걸까?”
“선무당이 사람 잡는 말도 있잖아요. 실력보다는 자신감이 넘치죠. 사장님의 신기가 특별해서 마신인 줄 알고 도전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대부분은 신발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도망치는데, 이번에도 아마 그럴 거예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유달과 서동식은 웃는 얼굴로 상대를 헐뜯고 있다.
누가 더 야비하게 웃음 짓는지 경쟁하는 듯했지만,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장미란은 송보름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여기서 일하는 거 부모님이 싫어하지 않아?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도 다니고, 또래 친구들 만나는 걸 원하실 것 같은데 말이야.”
“어쩔 수 없죠. 악귀가 떨어지긴 했지만 안심할 순 없어요. 내가 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악귀가 또 붙을 수도 있데요. 여기가 저한테는 가장 안전한 곳이에요.”
“신병(神病)인가?”
“그렇다고 봐야죠.”
장미란의 물음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신병은 현대 의학으로도 고치지 못한다고 하던데······ 보름이도 강신무(降神巫)가 되는 거야?”
“그런 팔자로 태어나긴 했는데요,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어떻게 그게 신경 쓰이지 않을까?”
“사장님이 그러는데, 신병 났다고 꼭 무당이 될 필요는 없데요. 무당이 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고 했어요.”
“어떻게?”
“자세한 건 저도 몰라요. 사장님이 이론상 가능하다고 했어요.”
장미란은 그 이론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대화를 끝내려고 했는데, 송보름이 사탕 빨며 계속 말을 이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무당 되는 걸 결사반대하는데요, 나는 무당도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
“잘만 하면 뜨는 직종이 될 수 있어요. 유명한 역술인이나 무속인 되면, 방송 출연하고 큰돈도 벌고요. 미신이니 뭐니 꺼림칙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지만, 수요는 꾸준히 있어요?”
이어 그녀는 사탕 빼고 본격적인 설명을 했다.
“아빠 주변에는 돈 많은 사람이 넘쳐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똑똑해서 그럴까요? 아니죠! 그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그 사람들도 그걸 알기에 새로 사업 시작하기 전에 점집 엄청 찾아다녀요. 뭐, 형사 언니처럼 기가 센 사람은 이해 못 할 거예요. 악귀들도 달라붙을 엄두를 못 내잖아요.”
송보름은 매우 부럽다는 시선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칭찬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기가 세다니? 나 그렇게 용감무쌍하지 않아. 나도 으슥한 골목길 혼자 걸으면 무서워?”
“걱정하지 말아요. 골목길 안에 있던 원귀들은 식겁해서 도망치고 있을 거니까요. 형사 언니는 전형적인 여장부 상이에요.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고 해도, 잔 다르크, 뮬란 다 크리했을 거에요.”
“······.”
장미란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송보름이 실수한 건 아닌지 물었다.
“왜요?”
“내 어머니가 여성 장군이야.”
“별이 몇 개에요?”
“두 개.”
“어쩐지······.”
그녀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떡일 때다.
“녹차 나왔습니다.”
강성호가 주방에서 녹차를 내왔다.
머그잔에 숟가락만 달랑 있는 게 아니다.
꽤 비싸 보이는 다도(茶道) 세트를 내왔다.
장미란이 깜짝 놀라서 강성호에게 물었다.
“이거 어디서 난 거야? 혹시 성호 씨 개인 돈으로 산 거 아니야?”
“아닙니다. 이 주방은 보물찾기하는 것 같아요. 수납장만 열면 귀한 게 막 쏟아져 나옵니다.”
송보름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여기 오픈할 때 들어온 선물이에요. 사장님 이모가 무속계에선 영향력이 장난 아니거든요. 우리 아빠도 고마운 게 있으니까, 오픈식 썰렁하지 않게 신경 써달라고 사업체 사람들에게 부탁했죠. 정말 이것저것 마구 들어왔는데, 사장님이나 제가 쓸 줄 알아야죠? 대충 수납장에 욱여넣다가, 남은 건 모두 주방 창고에 쌓아 놨어요.”
강성호가 물었다.
“주방에 창고도 있었어?”
“저기 보이는 작은 문이 창고잖아요. 내가 오빠한테 열쇠 안 줬어요?”
강성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이요.”
송보름은 계산대 서랍을 뒤적여 작은 열쇠를 찾아냈다.
“이게 창고 열쇠에요. 이제부턴 오빠가 보관해요.”
“알았어.”
열쇠를 받아든 강성호가 주방 창고로 향했다.
철컥.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여는 순간,
“우와······.”
강성호는 보물창고라도 발견한 표정이다.
스윽.
장미란이 다도 세트를 들고, 송보름에게 말했다.
“이건 내가 갖다줄게. 보름이는 성호 씨와 같이 퇴근해.”
“알았어요.”
곧바로 장미란은 유달과 서동식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
영업시간이 지난 굿 카페.
장미란은 다도 세트를 들고 구석진 자리로 걸어갔다.
그들은 여전히 경쟁하듯 악담을 주고받았다.
“나를 놀라게 해서 얼마나 대단한 놈인가 했더니, 기껏 사주카페나 하는 놈이었다니······.”
“직업은 서로 건들지 말지? 내가 엄청 심한 말을 하고 싶지만, 꾹 참고 있어. 그건 전국에 있는 모든 교수님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어서 말이야. 직업이 문제가 아니라 그쪽의 인성이 문제인 거니까?”
“주문하신 녹차 나왔습니다.”
탁.
장미란이 다도 세트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순간, 유달이 놀라서 물었다.
“이 비싸 보이는 것은 뭡니까?”
“성호 씨가 주방에서 찾았어요.”
“이 귀한 것이 우리 가게에 있었다고요?”
서동식은 방해받는 게 싫은 듯 장미란에게 말했다.
“잘 마시겠습니다. 사장님과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군요.”
“네, 맛있게 드세요.”
그런데 장미란은 테이블을 떠나지 않았다.
털썩.
그녀는 자연스럽게 유달의 옆자리에 앉았다.
곧바로 서동식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요?”
“제가 교수님께 여쭤볼 말이 있어서요.”
“누구신데, 저에게 할 말이 있다는지 모르겠군요?”
“여기 굿 카페 매니저예요. 그전에는 광수대 팀장으로 윤하영 학생의 수사를 담당했었죠.”
“!”
서동식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광수대 팀장까지 했던 형사가 사주카페 매니저 일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아, 그런데······ 급히 연락할 일을 깜박했네요. 제가 전화 한 통 해도 될까요?”
서동식은 뒷주머니의 휴대폰을 꺼내 들고 허락을 구했다.
“그러세요.”
장미란은 흔쾌히 승낙했다.
이에 서동식은 유달에게도 정중히 허락을 구했다.
“사장님은 어떠신지요? 제가 전화를 걸어도 되겠습니까?”
“왜 갑자기 급공손? 맘대로 하세요~?”
“두 분 다 허락하셨군요······.”
순간, 서동식의 분위기가 변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곧이어 거만함을 뽐내듯 팔짱 끼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서는 둘 다 죽여버리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일이 커지겠지? 아쉽지만 오늘은 약간의 벌로 마무리하지. 형사 년, 너는 이 녹차를 뜨거울 때 모두 마셔. 그리고 사이비 무당, 너는 탁자 위에 볼펜 집어서 양쪽 눈 모두 찔러. 어서 시작해야지······ 허락했잖아?”
순간, 멍한 표정의 유달이 볼펜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눈으로 거리낌 없이 가져가나 싶었는데,
화악!
유달이 갑자기 돌변하여 서동식의 얼굴을 찍으려 했다.
“이걸 그냥!”
“으악!”
서동식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유달은 휘두르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손에 쥐고 있는 볼펜은 그의 머리 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얼굴을 가렸던 서동식은 죽다 살아난 표정이다.
그의 뿔테 안경은 코 밑에 삐뚤어져 걸쳐 있고, 배나 커진 눈으로 연신 희번덕거렸다.
유달은 어처구니없는 듯 볼펜을 테이블에 던졌다.
“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뭘 허락했다고?”
장미란은 매우 심각하게 입을 열었다.
“손님, 지금 갑질하시는 건가요?”
서동식은 있을 수 없는 일인 듯 크게 당황했다.
“어, 어떻게 내 말을 거역하는 것이냐······.”
유달이 발끈하여 주먹질하려 했다.
“니가 상감이야? 어디서 거역이란 말을 입에 담아? 이걸 진짜 확!”
서동식이 움찔하며 소리쳤다.
“너, 너, 너는 무당이라고 했잖아! 내 뒤에 있는 존재가 보이지 않는 것이냐! 어둠을 지배하는 존재가 두렵지도 않다는 것이냐!”
유달이 고개를 바싹 내밀고, 그의 등 뒤를 살폈다.
곧이어 유달은 모든 의문이 풀렸다는 표정이 되었다.
“너, 계약자였구나? 그런데 어쩌냐······ 엄청나게 떨고 있는 건 그쪽이 불러낸 마신이라고. 여기서 부정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면, 내 몸신께서 엄청 싫어한다고, 이 병신아!”
유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꺄아아아아!
여인의 울부짖은 같은 굉음이 카페 전체에 울려 퍼졌다.
장미란에게 들리지 않은 소리다.
유달은 인상 쓰며 귀를 막았고, 서동식은 경기를 일으키며 달아났다. 얼마나 경황이 없이 도망쳤는지 신발이 벗겨지는 것도 몰랐다.
잠시 후.
유달이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저놈 돈 안 냈죠?”
“나중에 받으면 되지요. 우리가 조만간 찾아갈 테니까. 그런데 계약자가 뭐예요?”
“그런 게 있습니다. 역시나 머리에 쥐 나니까 나중에 알려드리죠. 그리고 저놈이 왜 찾아왔나 했더니, ‘수작’ 걸러 온 것 같습니다.”
“수작이요?”
“마신의 힘을 빌려서 인간이 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는 겁니다. 대부분은 좋은 일에 쓰진 않죠.”
“그걸로 사람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나요?”
유달이 손사래 치며 대답했다.
“아주 특수한 상황에만 쓸 수 있습니다. 무작위로 가능하면 지구를 정복했겠죠? 신체 건강한 사람에겐 통하지도 않습니다. 하물며 영험함을 타고난 저한테는 어림없는 짓이죠. 미란 씨 또한······.”
“잔 다르크와 뮬란을 능가하는 여장부의 기운이라 통하지 않았을 테고요.”
“제가 언제 말했죠? 마음 상하실까 봐 숨겼는데······.”
“어쨌든, 아주 위험한 놈이네요. 그놈을 미행하는 강 형사에게 주의하라고 알려줘야겠네요.”
장미란은 휴대폰을 꺼내서 통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몇 번이나 시도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상하네? 미행 중이라도 문자는 보낼 텐데······.”
순간, 둘은 불안감을 느끼고 동시에 카페를 뛰어나갔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1층까지 쉬지 않을 내려갔다.
건물 입구에서 강세훈 형사가 보였다.
그는 벽에 부딪힌 상대로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미친 사람이 따로 없는 행동이다.
장미란이 황급히 그를 돌려세우며 물었다.
“강 형사님, 왜 그래요?”
멍한 표정이었던 그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장 팀장님이 여기는 어쩐 일입니까?”
“여기가 어딘데요?”
“그야 당연히 마포서······.”
강세훈은 주위를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여기가 어디지요? 저는 뭐 하고 있었고요?”
어리둥절하는 그에게 유달이 물었다.
“신발은 어쩌셨습니까?”
“신발요? 당연히······.”
강세훈이 내려다보니 맨발이다.
“미치겠네? 내 신발은 또 어디 간 거야······.”
그는 이리저리 신발을 찾으러 다녔다.
장미란이 유달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신체 건강한 사람에겐 수작이 통하지 않는다면서요?’
‘아무래도 대마신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그놈을 잡아야 할 것 같은데요?’
@
연일 계속되는 화창한 날씨.
유달과 장미란이 다시 명성대학교를 방문했다.
정문 초소를 지나며 유달이 먼저 보안요원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네, 연락받았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그들은 기분 좋게 정문을 통과했다.
햇빛 좋은 오후.
꽃이 만개한 길을 걸으며 유달이 들뜬 음성으로 소리쳤다.
“축제로구나~.”
캠퍼스는 진짜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유달은 이 순간을 손꼽아 기다린 듯, 불끈 주먹 쥔 팔을 빙빙 돌리며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