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위험한 상대
사르륵.
조용히 눈을 뜬 유달이 물었다.
“어때요?”
“크게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네요.”
“예? 미세한 반응을 보인 게 아니고요?”
“직접 확인하세요.”
장미란이 그의 시선을 가린 몸을 비켜주었다.
뿔테 사내가 무언가를 찾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유달의 눈에도 보였다.
“뭐지 저놈?”
이어 그는 장미란을 보며 말했다.
“저는 말이죠. 뜨끔함을 참고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놀라기는 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행동하는 장면을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저렇게까지 허둥거리는 걸 보니, 제가 외려 당황스럽네요.”
뿔테 사내는 계단 위아래와 사방을 고갯짓하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연신 머리를 긁어댔다.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쳐다봤다.
장미란이 유달에게 물었다.
“왜 저 사람이 침착히 대응할 것이라 예상한 건가요?”
“범인은 아직까진 완전범죄를 저지른 놈이지요?”
“그렇죠.”
“그 정도로 치밀하고 냉혹한 놈이라면 어떤 행동을 할지 뻔하지 않습니까? 저의 부름을 듣고 순간적으로 당황하긴 하겠죠. 하지만 이내 안정을 찾고 태연히 주위를 둘러보는 겁니다. 아주 재미있어지겠다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죠.”
“그래요? 그렇다면 우리가 저놈을 찾아가서 범인이 아니냐고 추궁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아요?”
“일단은 앉으라고 하면서 정중히 차 대접을 하겠죠. 커피도 괜찮고요.”
“갑자기요?”
“완전범죄를 저지른 놈이니 그만큼 여유롭다는 겁니다. 그러고는 왜 자신을 범인으로 생각하느냐, 차분히 물을 겁니다. 나는 윤하영의 영혼에 대해서 말하겠죠. 핵심을 찌른 것인데 놈은 당황하지 않습니다. 내 말을 모두 듣고 나서 조용히 말할 겁니다. ‘증거를 가져와 보시죠,’ 그러면서 씨익 사악한 웃음을 보이는 거죠.”
“유달 씨는 영화를 너무 봤네요. 내가 보기엔 정상적인 반응 같네요. 완전범죄를 꿈꿨던 놈이라 더욱더 당황스러운 것이겠지요.”
“그런가요?”
유달은 뿔테 사내를 유심히 쳐다봤다.
그는 이제 안정을 찾은 듯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천천히 계단을 내렸다.
유달이 갸웃거리며 계단으로 향했다.
“따라오세요. 다시 한번 해봅시다.”
그들은 계단 난간에서 뿔테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유달은 다시 윤하영의 영혼을 부르는 순간,
우당탕.
뿔테 사내는 놀라서 발을 삐끗해 계단에서 구를 뻔했다.
유달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놈은 여대생을 납치하고 살해한 것도 모자라, 피해자의 영혼 가지고 장난질까지 쳤던 잔혹한 놈입니다. 저리 띨한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실망스러운 기분이 드는데요.”
“너무 섣부른 판단 아닐까요. 내가 프로파일링 한 범인은 서울 거주 30대 남성, 지적인 능력이 뛰어나고, 주의 깊은 성격에 전문직에 종사할 확률이 높았어요.”
“그때가 4년 전이니······ 얼추 맞는 것 같은데요?”
“거기에 더해 치밀하고, 잔인하며, 자기애가 누구보다 강해요. 자신의 영역이라 생각하는 것에 침범당하는 것을 지독히도 못 참는 성격이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아무 죄책감 없이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어요.”
“저놈이요?”
뿔테 사내는 벗겨진 구두를 신고, 허둥지둥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유달 씨의 말대로 완전범죄를 꿈꿨던 잔혹한 살인마예요. 우린 지금 그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고요.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선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아주 위험한 놈이지요.”
“그 말을 들으니 외려 힘이 나는데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유달 씨는 어떻게 저놈이 수상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만복이와 비슷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하도 많이 들은 이름이라 익숙함마저 느껴졌다.
“마신의 기운이 느껴졌다는 건가요? 켄달 회장처럼요?”
“아······ 그게 조금 다릅니다. 이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제 머리에 쥐가 납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아주 위험한 기운을 가진 놈입니다.”
“범죄적 성향이나 영적인 능력 모두 위험한 놈이네요.”
“그런데, 우리의 위험한 상대는 뭐 하는 놈일까요?”
툭툭.
장미란의 유달의 어깨를 치며 따라오라 눈짓했다.
“바로 알아보면 되죠.”
그녀는 부총장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곧이어 5분도 되지 않아 그의 정체를 알아 왔다.
“그 남자는 수학과 서동진 교수에요.”
“수학이요? 하필이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데······.”
장미란은 유달의 푸념을 듣지 않고, 마포경찰서의 강세훈 형사에게 전화했다.
-잘 지내십니까, 장 팀장님.
“아직은 괜찮게 지내고 있어요. 사람 한 명 조사해 주세요.”
-무슨 일 때문입니까?
“4년 전에 여대생이 납치·살해당한 미제 사건 있죠?”
-명성대학교 여학생 말입니까?
“네, 맞아요. 그 사건의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제보를 받았어요.”
-누굽니까! 제가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명성대학교 수학과 교수 서동식이에요. 자세한 인적사항은 대학 측에서 메일로 보낼 거예요.”
-알겠습니다. 바로 조사 시작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통화를 마친 그녀에게 유달이 물었다.
“이제 우린 뭐 하면 되죠? 그 수학과 교수를 찾아가서 차 대접 한 번 받아 볼까요?”
“그건 경찰 조사가 어느 정도 끝나고 할 일이에요. 놈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쳐들어가는 게 낫겠죠?”
“그렇군요. 그러면 무엇을 할까······ 그놈의 주변을 탐문 해볼까요? 아니면, 학생으로 잠입해 그놈의 수업을 들어보던가······ 아니요, 방금 한 말은 취소입니다.”
나이 때문이 아니다.
“그놈이 수학과 교수인 걸 깜박했습니다. 맞다! 놈의 SNS 행적을 추적해 볼까요?”
장미란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우리는 본업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요?”
“본업이요?”
그는 자기가 사주카페 사장인 걸 깜박한 듯했다.
@
명동 번화가 사거리.
굿 카페 영업이 끝나는 시간.
매출 장부를 살피는 장미란의 표정은 심각했다.
“내 예상에서 훨씬 못 미치는 매출이네. 이래서 어떻게 가게 운영이 가능했던 것일까?”
송보름이 사탕 먹으며 그 비밀을 알려주었다.
“일단은 월세가 싸요.”
“얼만데?”
“오십이요.”
“오, 오십만 원?”
명동 번화가 그것도, 250평이 넘는 상점에선 있을 수 없는 월세였다.
“원래는 백만 원이었는데요, 사장님이 아빠한테 애원해서 점점 내려간 거예요.”
“애원이라니!”
유달이 끼어들었다.
“나는 경영상의 애로사항을 토로했던 것이고, 너의 알바 자리를 걱정했던 건물주께서 스스로 깎아줬던 것이야.”
“알았어요. 그렇다고 쳐요. 지구상에 우리 아빠 손해나게 하는 사람은 사장님이 유일해요.”
장미란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가장 큰 고정비가 월세인데 오십이면 버텨 볼 만했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매출은 너무 충격적이네? 입지도 좋고, 유달 씨의 점보는 실력도 괜찮은데, 왜 이럴까······.”
송보름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가게 이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굿 카페? 요즘 트랜드와 너무 맞지 않죠.”
유달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무슨 소리! 이보다 어떻게 더 이름을 잘 지어? 들어오는 손님마다 ‘아, 이 굿이 아니라 그 굿이구나!’ 하며 무릎을 탁. 친다니까?”
“몇 명이나 무릎을 쳐요? 카페 이름에 ‘어그로’가 없으니까 손님도 없는 거라고요.”
“어그로? 그게 대체 뭐야?”
장미란이 끼어들며 말했다.
“나는 보름이의 말이 일리 있다고 봐요. 명동에 카페가 여기밖에 없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무언가가 필요해요. 카페 이름 바꿔서 매출이 늘어난다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절대 못 바꿉니다.”
유달은 토라진 듯 계산대를 떠났다.
장미란이 송보름에게 말했다.
“유달 씨의 태도가 너무 강경하네? 카페 이름 바꾸는 건 없던 것으로 해야겠어.”
“아니요, 사장님은 엄청 팔랑귀에요. 일단은 자존심 때문에 싫다고 한 것이고요. 머릿속으로 어떤 이름이 좋을까 열심히 머리 굴리고 있을 거예요.”
“정말?”
“사장님의 모습을 잘 보세요. 중요한 건 손의 위치에요. 옆머리를 긁적이면 당황스러운 거고요. 지금은 손가락이 입에 가 있죠?”
“응, 그러네······.”
“저건 뭔가를 계속 골똘히 생각한다는 뜻이에요. 다른 습관도 몇 개 있는데 알려드릴까요?”
“나는 좋지.”
딩딩딩딩, 딩딩딩딩······.
그녀들의 대화는 장미란의 휴대폰이 울리며 중단되었다.
장미란은 송보름과 떨어지며 통화했다.
“네, 강 형사님. 서동식은 잘 조사하고 있나요?”
-당연하지요. 제가 직접 놈을 미행하는 중입니다.
장미란이 의아함을 느꼈다.
“용의자를 미행 중인데, 왜 전화를 한 거예요?”
-장 팀장님이 계신 곳이 굿 카페 맞죠. 명동 번화가 사거리 건물 말입니다.
“맞아요. 강 형사님도 몇 번 왔잖아요.”
-그놈이 지금 그곳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올랐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장미란은 급히 통화를 마쳤다.
유달에게 바로 이 사실을 알려주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열심히 머리 굴리던 그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뭐지 이 찜찜한 느낌은······.”
딸랑딸랑.
카페 문이 열리고 서동식이 들어왔다.
장미란은 시선은 출입문이 아닌 신당 쪽을 향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가진 자가 들어오면, 신당에서 소리가 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찌잉.
소리가 나긴 했다.
하지만 켄달 때와 비하면 훨씬 작은 울림이었다.
서동식이 카페를 둘러보며 말했다.
“영업 끝났나요?”
유달이 직접 나섰다.
“아니요, 아직 끝낼 마음 없습니다. 일단은 편한 자리에 앉으시지요?”
서동식은 잠시 유달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정중히 부탁하듯 말했다.
“나는 당신과 이야기 좀 나누고 싶은데요?”
“아무거나 주문하시면 저는 자동으로 앉지요. 불구대천의 원수가 시켜도 앉습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곳이군요.”
“메뉴판은 저쪽에 있으니, 마음대로 고르시지요.”
계산대에 붙은 메뉴가 새롭게 바뀌었다.
여러 종류의 커피와 차가 추가되었다.
“녹차가 괜찮겠네요.”
주문을 마친 서동식이 구석진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장미란이 유달에게 다가와 말했다.
“혼자 괜찮겠어요?”
“안 괜찮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조금은 뜻밖인데요?”
“뭐 가요? 놈이 먼저 우리를 찾아온 거요?”
“아니요, 내가 저놈에게 차 대접을 할 줄이야······ 저는 그 반대를 예상했거든요.”
유달은 아무 긴장감 없이 서동식의 자리로 향했다.
털썩.
유달이 맞은편에 앉자 서동식이 물었다.
“우리 초면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부총장실이 있는 복도에선 참으로 가관이더군요. 계단 내려갈 때는 놀라서 신발까지 벗겨졌지요?”
서동식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이에 개의치 않고 유달이 계속 말을 이었다.
“참고로, 나는 사람의 영혼 가지고 장난질하는 놈들을 제일 싫어합니다. 무슨 배짱으로 여기까지 찾아오셨는지?”
순간, 서동식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유달이 예상했던 바로 그 사악한 웃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