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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카페-26화 (26/183)

26화- 영험한 무당의 손자

명성 대학교 정문 입구.

유달과 장미란은 안으로 몇 발짝 들어서자마자 바로 제지를 당했다.

경비초소에서 보안요원이 뛰어나와 물었다.

“죄송합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저희는······.”

장미란은 신분증을 꺼내려다 머쓱한 반응을 보였다.

이래서 습관이 무섭다.

그녀는 더 이상 형사가 아닌 카페 매니저였다.

유달이 끼어들어 보안요원에게 말했다.

“안에 좀 들어가려고요?”

“예, 그러니까 무슨 일로 오셨는지 용무를 밝혀주십시오.”

“그걸 꼭 밝혀야 합니까? 나 대학 다닐 때는 경비 아저씨가 안 물어보던데? 막 들여보냈어요?”

30대 초반의 보안요원은 임무에 충실했다.

“죄송합니다. 학교 방침입니다. 최근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여 외부인의 검사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헐, 나는 이 학교에 아는 사람 없는데······ 미란 씨는 혹시 아는 사람······.”

그녀는 벌써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있었다.

“네, 알겠어요. 조금 있다 뵐게요.”

유달이 물었다.

“누굽니까?”

“예전에 알던 교수님인데, 이곳에 부총장님이에요.”

“미란 씨는 엄청 발이 넓으십니다?”

“그것도 수사에 도움이 되니까요.”

곧이어 경비초소에서 보안요원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그냥 보내드려.”

“실례 많았습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보안요원은 깍듯이 인사하고 돌아갔다.

유달과 장미란은 봄꽃이 만개한 길을 걸었다.

화창한 날씨 때문인지, 상당히 많은 학생이 잔디밭과 운동장 스탠드에 나와 있었다.

유달이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정말 오랜만에 대학 캠퍼스에 오네요. 나도 저렇게 팔팔했을 때가 있었는데. 젊음이 재산이라면 저는 지금 오링 단계입니다. 클럽에서도 눈치 보이고······.”

장미란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유달 씨는 대학 때 공부만 하지 않았나요? 그러니까 재학 중에 ‘사시패스’ 할 수 있었고요.”

“뭐······ 그랬었죠?”

전반기만 인정하는 것이다.

후반기는 광란의 역사할 할 수 있었다.

유달이 주변을 계속 살피며 말했다.

“그런데 뭔가 들떠 있는 분위기 아닙니까? 운동장에는 무대 같은 것도 설치하네요?”

“내일부터 축제라 그럴 거예요. 유달 씨는 축제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었겠네요.”

“뭐······ 그랬겠죠?”

역시나 이도 전반기만 그렇다.

후반기엔 전설을 만들었다.

유달이 말 돌리듯 물었다.

“사건 개요나 알려 주시죠. 아! 잔인한 장면은 순화해서 부탁드립니다.”

“4년 전이네요. 그때는 축제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어요. 새내기였던 윤하영은 오후 2시쯤 실종되었어요. 그 시간에 명성 대학교 정문을 나가는 게 CCTV에 찍혔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간 줄 알았고, 집에서는 축제라서 늦게까지 학교에 있는 줄 알았죠.”

“실종신고는 언제 접수됐습니까?”

“당일 밤 11시요. 하영이의 어머니가 딸과 휴대폰 연락이 되지 않자 지구대를 찾아가 신고했어요.”

“빠른데요?”

“가출할 동기가 없고, 여성이며, 휴대폰 위치 추적이 되지 않아 범죄 피해가 의심된다고 판단 거지요. 하지만 그녀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고, 일주일 후 버려진 폐가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어요. 그 당시 광수대에 있던 제가 사건을 맡게 된 거예요.”

“사인은 뭐였습니까?”

“교살인데, 부분적인 신체 훼손이······.”

“그만! 거기까지만 듣겠습니다.”

유달이 더는 듣기 싫은지 속도를 내어 앞서갔다.

장미란이 바로 따라붙으며 물었다.

“그런데 윤하영의 영혼이 어디 있는지는 느껴져요?”

“아직은 알 수 없지요. 이건 금속탐지기나 자동차 후방 센서처럼 가까워질수록 띠띠띠띠띠,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게 아닙니다. 순간적인 직감으로 알아채야 합니다.”

“제가 학교에 부탁하여 사람들을 모을까요? 그게 윤하영의 영혼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쓸데없는 짓입니다. 그녀의 영혼이 사람에게 있는지 사물에 있는지 어떻게 압니까?”

“사람이 아닌 물건에도 가둬둘 수 있는 거예요?”

“이론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어떤 이론이요?”

유달이 발걸음을 멈추며 대답했다.

“우리나라 무속계의 이론은 아주 간단합니다. 제가 가능하면 이론이 되는 거죠. 영적 능력의 한계를 결정 짓는 게 바로 접니다.”

이어 그는 다시 발걸음을 시작하며 당부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소란스러운 일은 삼가는 게 낫겠습니다. 제가 카페에서 그녀를 불렀을 때, 아주 순간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순간적인 반응?”

“쉽게 풀이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녀의 영혼이 캄캄한 감옥 같은 곳에 갇혀 있는데, 갑자기 제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 거죠. 그녀가 놀라서 ‘누구세요?’ 했는데, 누군가 재빨리 끼어들어 차단한 겁니다. 그러고는 계속 통화 중. 제가 아무리 기를 써도 끼어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놈이 방심하는 순간을 노려야 한다는 거네요?”

“역시 FBI. 미란 씨는 이해력이 빨라서 제가 편합니다.”

“그렇다면 이 넓은 캠퍼스를 발품 팔며 돌아다녀야 한다는 건가요?”

유달이 장담하듯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생각보다 쉽게 찾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요?”

“요즘 천기는 개판 5분 전입니다. 영혼을 강제로 가둬놓는 게 이전처럼 쉽지 않을 겁니다. 이를 강제로 억누르려고 하면, 분명 문제가 일어나지요. 정문 보안요원도 요즘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요? 부총장님을 급히 만나야 합니까?”

“아니요. 그분은 제가 편한 시간에 만나기로 했어요.”

“잘됐네요. 지성의 상징인 대학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으로 갑시다.”

“어디요? 도서관?”

“아니죠. 식당입니다. 공부든, 수사든 배부터 채우는 게 순서 아니겠습니까?”

유달은 더욱 힘을 내어 앞으로 걸었다.

***

명성 대학교 학생 식당.

점심시간이 지나 북적거림은 없다.

탁 트인 주방에서는 설거지가 한창이고, 학생들은 드문드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식판을 깨끗이 비운 유달은 매우 흡족한 표정이다.

“역시 입소문은 믿을만합니다. 대학 식당 탑5의 맛이라는데, 결단코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제 입맛엔 딱입니다.”

이제 배도 불렀겠다.

유달이 본격적으로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어떻게 미란 씨가 나섰는데,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겁니까?”

“뭐라도 나와야 진전이 있죠. 윤하영의 행적은 큰 사거리의 CCTV를 벗어나면서 끊겼어요. 전단 돌리고, 방송에도 내보냈지만, 아무것도 건진 게 없었어요. 살해 현장도 깨끗했고, 그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조사해도 작은 단서 하나 건지지 못했지요.”

“이게 바로 완전범죄인가요?”

“세상에 완전범죄는 없어요. 이를 밝히지 못하는 무능한 형사가 있을 뿐이죠.”

순간, 유달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들었어요?”

장미란도 슬쩍 고개 돌리며 대답했다.

“네, 계속 듣고 있었어요.”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옆 테이블이다.

여대생 셋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모두 둥근 모양의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데, 색이 다르다.

그녀들의 대화 내용은 윤하영과 관계된 것이었다.

빨간 안경테 여학생이 자신이 직접 본 듯 흥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야. 복학생 진수 선배가 왜 다쳤는지 알아? 늦은 밤에 동아리 문 닫고 계단 오르는데, 어떤 여자가 ‘진수야, 안녕?’하고 휙 지나가더래?”

나머지 여학생들은 긴장하여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진수 선배가 누군가하고 돌아봤더니 뒷모습이 낯설지가 않더라는 거야? 그래서 계속 누군가하고 지켜봤더니, 그 여자가 갑자기 멈춰서더래.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 돌려 돌아보는데, 죽은 그 여자였데! 진수 선배가 죽은 그 여자하고 친구였잖아? 놀란 진수 선배는 다리 풀려서 계단에서 굴러버렸고.”

검은 안경테 여학생이 연신 테이블을 손으로 두드리며 말을 받았다.

“맞아, 맞아, 맞아. 내가 아는 동아리 선배도 이상한 일 겪었잖아? 그 선배는 독서 동아리고, 옆 방이 사진 동아린데, 어떤 여자가 계속 혼자 큰소리로 떠들며 웃더래? 그 선배가 열 받아서 벽 두드리며, 조용히 좀 하라고 그랬더니, 죄송하다면서 조용해진 거야. 그런데 반전!”

검은 안경테 여학생은 긴장감을 극대화하고 말을 이었다.

“그날은 사진 여행 떠나서 사진 동아리 방에 아무도 없었데? 열쇠를 가져가서 아무도 출입 못 했다는 거지. 죽은 그 여자가 사진 동아리였잖아~.”

담갈색 안경테의 여학생은 완전히 겁먹었다.

“난 절대 동아리 가입 안 할 거야······ 그런데 몇 시지?”

“어머, 늦겠다. 빨리 일어나자.”

그녀들이 빈 식판을 들고 자리를 뜨려는 때다.

“학생들~.”

유달이 능글맞은 웃음 지으며 다가갔다.

“엄마야!”

여대생들은 골목길에 치한을 만난 듯 깜짝 놀랐다.

“지금 나눴던 이야기 우리에게 자세히 말해줄래?”

빨간 안경테 여학생이 경계하며 물었다.

“누, 누구세요?”

“나는 유명한 사주카페 사장이고, 내 옆에 계신 분은 전직 FBI 요원.”

“예? 정말 FBI에요?”

“맞아. 그리고 4년 전 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님이기도 하시지.”

“어머, 대박······.”

장미란이 그녀들에게 물었다.

“혹시 수업 시간에 늦은 거니?”

“아니요, 학부 친구들 만나기로 했는데, 늦는다고 전화하면 돼요.”

“그럼, 우리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할까?”

“좋아요!”

그녀들은 순순히 유달과 장미란을 따라나섰다.

***

명성 대학교 동아리 건물.

유달과 장미란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

죽은 윤하영을 봤다는 목격담과 이상한 현상의 경험담은 대부분 동아리 건물에서 발생했다.

그들은 계단을 내려와 넓은 복도를 걸었다.

“별별 동아리가 다 있네요.”

복도 양편으로 동아리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장미란은 어떤 동아리인지 기웃거리며 걸어가는 유달에게 물었다.

“대학 때 동아리에 가입한 적 있어요?”

“저는 증권투자 동아리였습니다. 아주 잘 나갔는데, 금감원이 뜨는 바람에······.”

“금융감독원이 대학 동아리를 조사했다고요?”

“그런 게 있습니다. 저는 그때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뭐든 적당히 해 처먹고 빠져야 한다는 걸 말이지요.”

순간, 유달이 신기한 걸 발견한 듯 뛰어갔다.

“여기 점보는 동아리도 있습니다.”

문 옆에 붙어있는 동아리 이름은 ‘천기누설’.

축제 기간 동안 점집을 하여 돈을 벌려는 모양이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진짜 손님을 대하듯 연습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전문가인 유달이 보기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무래도 내 도움이 절실할 것 같은데요?”

“유달 씨······.”

장미란은 낮은 음성으로 그를 제지했다.

그들의 목적지는 윤하영이 가입했던 사진 동아리였다.

둘은 안경 쓴 여학생들이 알려준 대로, 중간에 갈림길이 나오자 좌측으로 꺾였다.

“헐······ 저게 뭘까요?”

사진 동아리 주위에 학생들이 몰려들어 수군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쟤네들 또 사고 난 거야?”

“진짜 뭔가 있는 거 아니야?”

유달과 장미란이 수상히 여기고 다가갔다.

유달은 뒤쪽에서 목을 빼고 기웃거리는 남학생의 어깨를 툭 치며 불렀다.

“학생?”

“예?”

새내기로 보이는 학생이 뒤돌아서자 유달이 흠칫했다.

가슴에 부적을 주렁주렁 달고, 손에는 무구(巫具)로 쓰이는 목검까지 들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퇴마 동아리?”

“아니요. 저는 미스테리 동아리인데요?”

“그런데 목검하고 부적은 뭐야?”

“저 안에 악귀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 원귀에게 당하지 않게 무장을 좀 했지요. 제 외할머니가 유명한 무당이었는데요, 집에 있던 물건 몇 개 들고나왔어요.”

“제법 영험함이 서려 있는 물건인데?”

“볼 줄 아시는군요? 이건 번개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퇴마검이에요?”

“정말?”

그들이 사건 조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나눌 때다.

덜컹!

사진 동아리 문이 열리고, 동아리장을 맡은 남학생이 나왔다.

그는 떼로 몰려든 학생들을 보고 짜증스럽게 말했다.

“구경났어? 왜 다들 여기 모여 있는 거야?”

주변에 있던 학생이 물었다.

“왜 너희 동아리는 조용할 날이 없냐? 정말 귀신 있는 거 아니야?”

“귀신은 무슨 귀신이야? 그냥 쥐를 보고 놀란 것뿐이야.”

“쥐~!”

가장 식겁한 반응을 보이는 건 유달이다.

곧이어 어떤 여학생이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동아리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억울한 듯 동아리장을 향해 울먹이며 소리쳤다.

“쥐가 아니에요······ 쥐가 아니라고요!”

“쟤 좀 빨리 데리고 가!”

동아리장도 미치도록 골치가 아픈 모양이다.

그는 몰려 있는 학생들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 동아리방은 당분간 폐쇄할 거야. 그렇게들 알고 다들 돌아가.”

학생들이 흩어지자, 장미란이 그에게 다가갔다.

“누구세요?”

“김인선 부총장님이 보내셨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에게 조사해보라고 하셨거든.”

“부총장님이요?”

“의심스러우면 전화해 보던가.”

“아니요, 저도 왜 이런 일 자꾸 일어나는지 미치겠습니다. 제대로 조사해서 저에게도 알려주십시오.”

이어 그는 동아리방을 향해 소리쳤다.

“대충 챙겨서 나와! 나중에 짐 뺄 시간 있으니까.”

사진 동아리원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고, 동아리장은 그녀에게 열쇠를 주고 떠났다.

“유달 씨?”

장미란이 고갯짓하며 불렀다.

유달이 껄끄러운 표정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역할분담 하지요. 영적인 놈들이면 제가 해결하고, 쥐가 나타나면 미란 씨가 나서는 것으로요.”

“그래요.”

장미란이 흔쾌히 승낙하자 유달이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가 싶었는데,

끼익······.

쿵!

그는 식겁하여 바로 문을 닫아 버렸다,

장미란이 의아하여 물었다.

“쥐예요?”

“아니요, 마물입니다. 하, 미치겠네······ 여기서 저놈들이 왜 나오는 거지?”

장미란이 우려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저번처럼······ 또 대책 없이 맞아야 하나요?”

그녀는 유달이 저수지에서 비명 지르며 난리 쳤던 동작을 작게 흉내 냈다.

“아니요, 그때는 원혼이 마물을 변한 거지요. 혼기가 상할까 조심했던 겁니다. 하지만 저 안의 놈들은 순수한 마물. 그냥 소멸시키면 됩니다.”

그는 갑자기 생각난 듯, 줄지어 흩어지는 학생들을 향해 뛰어갔다.

“영험한 무당의 손자, 퇴마검 좀 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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