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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카페-24화 (24/183)

24화- 가장 중요한 일

순식간에 공기가 달라진 것 같은 분위기.

장미란이 잠시 상황을 지켜보다 노신사에게 영어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대답했다.

“마음에 드는 카페군요.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습니다.”

장미란은 선뜻 대답하지 않고 유달을 쳐다보았다.

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허락이 필요할 것 같았다.

“직원도 늘었으니,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요.”

장미란은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저쪽에 앉으시지요.”

장미란은 노신사를 창가 자리로 안내했다.

탁 트인 전망이라 손님들이 선호도가 높았다.

“경관이 좋군요. 어떤 커피가 있습니까?”

“저기를 보시면 됩니다.”

장미란은 계산대에 써서 붙인 메뉴판을 가리켰다.

노신사는 한글도 알고, 한국의 문화에도 익숙한 듯했다.

“믹스 커피밖에 없습니까?”

“아니요, 오늘 새로운 바리스타를 구했습니다. 실력도 알아볼 겸, 가장 자신 있는 것으로 만들어 보라고 하죠.”

“그게 좋겠군요. 커피 한 잔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사주카페입니다. 주문하시면 사주와 관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원치 않으시면······.”

“아니요, 보겠습니다. 같은 값이라면 안 보는 게 손해지요.”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장미란이 계산대로 다가와 유달에게 말했다.

“손님이 사주·관상 보겠다는데요?”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유달은 적개심을 누그러트리며 노신사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갔다.

노신사는 호의적인 눈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앉지.”

털썩.

맞은 편에 앉은 유달이 말했다.

“일단 그쪽 나이가 있으니 존칭은 써드리지요.”

노신사는 고맙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유달의 도전적인 말투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뭐 하자는 짓일까요? 동종 업계 사람끼리 사주·관상 보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그것도 타락한 신과 일심동체인 존재가 말입니다.”

“나는 점 따위는 관심이 없네. 잠시 자네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뿐이야.”

“좋습니다. 한번 해봅시다. 그 대화라는 거,”

송보름과 장미란이 그들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

장미란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노신사가 소위 ‘마신’이라는 건가?”

“맞아요. 그것도 엄청난 등급의 마신이에요.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니까요.”

“뜻밖이네? 켄달 회장이 그런 존재였다니······ 종교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저 외국 사람 알아요?”

“응, 윌리엄 켄달, ‘퓨쳐 테크놀로지’의 창업주잖아. 나도 설마 했는데, 확실한 것 같아. 미국에서는 꽤 영향력 있는 인물이야. 포브스 100위 안에 드는 부자에, 7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천재로 국내에서도 꽤 알려진 사람인데?”

“전혀 몰라요. 포브스가 부자 순위인 것도 처음 알았어요.”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아까 신당 쪽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신경 쓰지 마세요. 기운이 수상한 사람이 들어오면 저런 소리가 나니까요.”

“그래~?”

장미란은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사이 유달과 윌리엄 켄달이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먼저 묻지요.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머나먼 이 나라까지 오셨습니까?”

“정말 모르는 것 같군.”

“뭘 모른다고 그리 쳐다보는 것일까요?”

“그분이 깨어날 조짐이 보이네.”

“누구요? 대마신을 말하는 겁니까?”

윌리엄 켄달은 여유로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

“믿음이 다르니, 부르는 말도 다를 수밖에. 억지로 강요할 마음은 없으니 마음대로 부르게나.”

“그러니까요, 대마신이 깨어날 조짐은 말이지요. 선무당이 아니면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분이 재림하실 나라가 대한민국이란 것도?”

유달은 진짜 몰랐다.

다른 이들처럼 대마신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어쩐지······ 삼천포로 빠지는 정도가 심하다 싶더니만.”

윌리엄 켄달이 표정을 진중히 하고 말했다.

“조만간 이곳은 영적인 능력자들의 각축장이 될 것이네. 나처럼 재림의 지키려는 이와, 이를 막으려는 자들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들 것이야.”

“그래서요?”

“자네는 어느 쪽인가? 내가 이곳을 찾은 건 정말 우연이라 할 수 있지. 아니, 원초적인 끌림이라 해야 하나. 정신을 차려보니 카페 문 앞에 서 있더군. 나는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까지 확신하지 못했네. 이런 곳에 과연 재림을 방해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것인가?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묻지 않을 수가 없겠군?”

유달은 귀찮은 기색이 다분했다.

“꼭 대답해야 합니까?”

“내가 자네를 찾았듯이,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다른 이들도 이곳으로 이끌려 올 수 있겠지. 그때마다 자네는 어느 편에 설 것이냐는 물음에 시달리고 싶은 것인가?”

“그렇다면 확실히 말해드리죠. 나는 아무 관심 없는 쪽입니다. 대마신이 어떻게 되던 전혀 상관 안 합니다. 양쪽에서 피 터지게 싸우든 말든, 맘대로 하십시오.”

“방금 한 말, 믿어도 되겠나?”

“날 먼저 건들지 않으면, 당신과 부딪힐 일은 없을 겁니다.”

“아주 마음에 드는 말이군.”

그들이 잠정적인 합의에 이르는 때다.

“커피 나왔습니다.”

장미란이 직접 커피를 가져왔다.

윌리엄 켄달은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괜찮군. 나는 이거 다 마시고 일어나겠네.”

“그러시지요. 손님.”

유달이 몸을 일으켜 장미란과 함께 계산대로 돌아왔는데,

우르르.

검정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카페 안으로 들이닥쳤다.

윌리엄 켄달의 경호원들이다.

“회장님, 무사하셨습니까!”

윌리엄 켄달은 눈살을 찌푸려 그들의 소란스러움을 제지했다.

그리고는 다시 창밖이 풍경을 보며 커피를 즐겼다.

유달이 육중한 체격의 경호원들을 흘깃 보며 중얼거렸다.

“외국에서 온 마신이 꽤 돈이 많은가 보네?”

송보름이 아는 척 나섰다.

“미국에선 엄청 유명하데요. 포브스 100위 안에 든 데요?”

“포브스? 그건 어떤 게임이야?”

장미란은 전화 통화 중이라 유달의 무식함을 목격하지 못했다.

그녀는 통화를 마치고 유달에게 물었다.

“제 사무실 공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가게 영업 끝나고 해도 되겠죠?”

“그냥 책상하고 의자만 들이면 되지, 무슨 공사씩이나 하시려고요? 뭐, 맘대로 하십시오.”

“리모델링을 위한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모레쯤 방문할 거예요. 어느 시간 때가 괜찮아요?”

“아무 때나 괜찮습니다.”

그들이 카페 리뉴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다.

커피를 다 마신 윌리엄 켄달이 계산대로 걸어왔다.

“기분 좋게 잘 마셨습니다.”

계산을 마치는 그는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카페를 나섰다.

딸랑딸랑······.

그들이 밖으로 나간 종소리가 잦아질 때다.

유달이 송보름을 나직이 불렀다.

“보름아······.”

“알겠어요. 사장님.”

그녀는 바로 주방에 있는 강성호에게 손짓했다.

“어서 따라오세요. 굿 카페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알려드릴게요.”

“뭐, 뭔데?”

강성호는 긴장하여 뛰어나왔다.

“소금 뿌려야 해요.”

그녀는 재빨리 소금통을 들고 튀어 나갔다.

@

다음 날 아침.

굿 카페 사장실.

유달이 부스스한 얼굴로 간이침대에서 일어났다.

“대체 공사를 몇 시까지 한 거야······.”

그는 제대로 잠을 못 잔 듯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투자자가 일을 너무 열심히 해······ 조만간 세계 각지에서 무당들이 몰려올 것이고······ 아~ 조용한 나의 삶은 이제 끝난 건가······ 몇 시지?”

벽에 걸린 시계는 10시.

송보름은 아직 출근도 안 했을 시간이다.

더 잘까 하던 유달이 몸을 일으켰다.

꼬르르르.

뱃속에서 울리는 외침.

촤악.

유달은 커튼을 열고 사장실에서 나왔다.

배가 고파서 뭐라도 주워 먹으려 밖으로 나온 것인데,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그를 본 강성호가 활기차게 인사했다.

유달은 당혹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그, 그래······.”

자신의 가게 같지가 않다.

뭔가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 맛있는 커피 향이 퍼지고, 청소도 거의 끝마친 상태였다.

더욱 놀라운 건, 송보름이 벌써 출근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열심히 계산대를 걸레질하고 있었다.

“일어났어요, 사장님?”

“뭐니?”

“뭐 가요?”

“지금이 몇 신데, 벌써 출근했냐고?”

송보름은 잠시 걸레질을 멈추고 다가왔다.

곧이어 그녀는 웃는 표정이 삭 바뀜과 동시에, 낮고 빠른 음성으로 속삭였다.

‘누군 좋아서 이래요? 다들 열심인데 나만 빠질 순 없잖아요! 성호 오빠는 청소한다고 8시에 나왔고, 형사 언니는 사무실 정리한다고 6시에 출근했다고요.’

“이해를 못 하겠네? 매니저 사무실에 뭘 정리할 게 있다고 새벽부터······.”

무심코 고개 돌렸던 유달이 깜짝 놀랐다.

“뭐, 뭐지, 저건!”

늦게까지 공사했던 그녀의 사무실.

커튼으로 대충 막아 놓았던 공간이 완전히 탈바꿈했다.

깔끔한 유리문 너머, 고급스럽고 화사한 실내장식은 유명 로펌 변호사 사무실은 연상케 했다.

검은 커튼으로 가려진 자신의 사장실과는 너무도 비교되는 모습이다.

“어째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기분인데.”

유달은 질투 어린 시선으로 사무실을 정리하는 장미란을 바라보았다.

“기죽을 필요 없어요, 사장님. 여기는 사주카페잖아요. 커피가 맛있거나, 형사 언니가 아무리 잘났어도, 결국은 사장님의 점을 보러 오는 거잖아요?”

“그렇지! 사이드메뉴는 메인메뉴를 못 당하는 법! 내가 있어야 이 카페도 존재하는 거지.”

유달이 잠시 흔들렸던 자신감을 되찾은 때다.

딸랑딸랑.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유달은 그 어느 때보다 활력 넘치는 목소리로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50대의 여인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여기가 장미란 형사님이 계신 곳인가요?”

“······.”

유달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고, 주방에 있던 강성호가 뛰어나왔다.

“장미란 매니저님 찾아오셨습니까?”

“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매니저님을 찾는 손님 있으면, 잘 안내해 달라고 저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똑똑.

강성호가 유리문을 두드렸다.

책상을 정리하던 장미란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활짝 문을 열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아주머니.”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형사님.”

그녀는 두 손 모아 공손히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를 지켜보던 유달이 송보름에게 물었다.

“누굴까?”

“글쎄요. 경찰 쪽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동네 아줌마 스타일인데요?”

“폭발할 것 같아······.”

“뭐 가요?”

“한이 쌓이고 쌓였어. 간신히 억누르고는 있는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야.”

“그 정도로 심각해요?”

“저 안에서 한 명은 죽어 나갈 수도 있겠어.”

송보름이 식겁하며 말했다.

“제가 형사 언니한테 경고할까요?”

“뭐 하러? 강력계 출신이니 알아서 잘하겠지. 조만간 세계 각지에서 별별 무당들이 다 몰려들 텐데, 이 정도도 처리 못 하면 버티기 힘들어. 나는 청소 상태나 점검해 볼까······.”

유달이 카페 내부를 느릿느릿 걸었다.

청소 점검은 구실이다.

행여 무슨 일이 생길까, 유달은 장미란의 유리벽 사무실 너머를 계속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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