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23화 (23/183)

23화- 단골

오현아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봤나 보네요.”

그녀는 곧바로 장미란에게 말을 붙였다.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최종적으로 마무리 지을 일이 있어서요. 촬영 끝내고 오시는 길이에요?”

“아니요, 개인적인 일이에요. 이 집······ 부모님과 상의해서 처분하기로 했어요.”

“!”

순간, 유달도 움찔하는 반응을 보였다.

장미란이 물었다.

“이번 사건 때문인가요?”

“네, 부모님이 경찰분에게 미안하다고 많이 속상해하셨어요. 결국, 고심 끝에 처분하기로 하셨어요.”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나 봐요?”

“언니 때문이에요. 어머니는 지금도 언니가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올 것 같데요.”

“······.”

장미란은 어떤 사연인지 알기에 아무 말 못 했다.

“솔직히 저도 아쉬워요. 저곳엔 어릴 때 추억이 많았거든요. 언니 친구들이 오면 제가 더 신나서 뛰어놀았어요.”

오현아는 애잔한 시선으로 낡아 부서진 담장 벽을 바라보았다.

그 담장 안에서 벌어졌던 옛 추억이 떠올랐다.

-우와아아.

한 무리의 아이들이 마당 넓은 집으로 들이닥쳤다.

익숙하게 가방을 마루에 내던지고,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어놀았다.

규칙은 없다. 한 아이가 뛰면 다른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쫓았다.

그러다 누가 쫓기고 누가 쫓는 사람인지 뒤섞여 마당 전체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요란해졌다.

그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봤던 오현아.

어디선가 나타난 언니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현아야, 너도 와!

-알았어!

오현아는 언니의 손을 잡고 열심히 뛰었다.

활짝 웃는 그녀의 얼굴엔 즐거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규칙은 없다.

누군가 앞에 보이면 잡으려 했고, 누가 쫓아오면 속도 내어 도망쳤다.

-현아야, 빨리 뛰어!

지척까지 쫓아온 아이들에게 잡힐 것 같았다.

오현아는 최선을 다해 달렸지만, 속도가 나질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내 손 잡아.

유달이 히어로 처럼 나타났다.

오현아가 유달이 내민 손을 잡는 순간,

붕-.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언니와 유달이 양쪽에서 잡고 끌어주니 달리기가 엄청 편해졌다.

그녀는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유달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그리움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였다.

얼굴을 가린 고깔모자가 턱밑까지 흘러내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두두두두두.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면서, 그들은 동시에 회상에서 깨어났다.

“헐!”

유달은 황급히 늘어진 고깔모자를 올려 썼고, 오현아는 장미란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죄송해요. 바쁜 형사님을 잡고 제가 딴생각에 빠졌네요.”

“괜찮아요. 저는 한가한 직업으로 바꿨어요.”

“예? 형사를 관두셨나요?”

“네, 지금은 여기서 일하고 있답니다. 너무 한가한 곳인데 제가 바쁘게 만들어야죠.”

장미란은 명함을 꺼내서 그녀에게 주었다.

굿 카페의 상호가 떡하니 박혀 있다.

그런데 유달은 명함을 만들어준 기억이 없다.

장미란이 면접 오면서 미리 명함을 만들어온 것이다.

유달은 면접이 그리 만만해 보였냐며 따지려 했지만,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다.

오현아는 장미란의 명함을 관심 있게 보았다.

“굿 카페? 어디에 있는 거예요?”

“명동에 있는 사주카페에요. 거기 사장님이 오현아 씨의 아주 오래된 왕팬이고요.”

“아~ 그래요.”

오현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미란과 유달이 함께 있는 궁금증이 풀렸다는 반응이다.

그녀는 명함을 휴대폰 케이스에 넣었다.

“시간 내서 한번 들릴 게요.”

“네, 꼭 한번 들려주세요. 가게가 250평이 넘어요. 소규모 팬사인회도 할 수 있는 규모에요.”

“그래요? 기획사 통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장미란과 눈인사한 오현아가 뒤돌아섰다.

그녀는 천천히 언덕길을 내려가다가 멈춰 섰다.

“죄송하지만, 카페 사장님께 제 말 좀 전해주시겠어요?”

“네, 말씀하세요.”

오현아는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제가 정말 미안했다고요. 어리고 철이 없어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언니 그렇게 만든 놈 잡겠다는 약속······ 지켜줘서 고맙다고요.”

“알았어요. 꼭 전해드릴게요.”

오현아는 한결 홀가분해진 미소를 지어 보이며 멀어졌다.

장미란이 자기 뒤로 숨은 유달에게 말했다.

“우리도 갈까요?”

그런데 유달은 이미 차에 타고 있었다.

부르릉.

차에 오른 장미란이 시동을 걸었다.

그녀는 출발하기 전에 조수석의 유달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그거 쓰고 있을 건데요?”

그는 여전히 고깔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장미란이 장난처럼 물었다.

“혹시 우는 건 아니죠?”

“그냥 갑시다······ 크읍!”

장미란은 말 붙이지 않고 조용히 차를 몰았다.

@

명동 번화가 굿 카페.

유달과 장미란은 생일파티를 마치고 돌아왔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유달이 대뜸 장미란에게 말했다.

“우리 합의 봅시다.”

“무슨 합의요?”

“그거 있잖아요. 그거······.”

“아, 유달 씨가 차 안에서 울었······.”

“쓰읍!”

유달이 눈을 부라리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 얘기를 보름이가 알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어떻게 되는 돼요?”

“처음 3일간은 혼자 집에서 배꼽 잡으며 웃겠지요. 그리고 일주일 동안은 나만 보면 피식피식 웃음을 못 참을 거고, 한 달 뒷면 상가 안의 모든 사람이 나만 지나가면, 피식거릴 거란 말입니다. 내 장례식장에서도 피식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까?”

“과대망상 아닌가요?”

“과연 그럴까요?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우리 합의한 겁니다.”

“네, 절대 말하지 않을 테니, 어서 들어가죠.”

딸랑딸랑.

유달과 장미란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송보름이 계산대를 박차고 쪼르르 달려왔다.

“사장님, 사장님······.”

다급함이 느껴지는 부름은 뭔가 큰일이 벌어진 것이다.

유달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녀는 놀라지 말라는 듯 최대한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단골이 왔어요. 사장님.”

“단골?”

유달은 그게 뭔 대수냐는 반응이다.

그러다 갑자기 목청 높여 되물었다.

“설마 그 단골!”

송보름은 힘주어 고개를 끄떡였다.

“아, 미치겠네······ 그 자식이 왜 또 왔지? 요 몇 달 보이지 않아서 진짜 좋았는데.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바로 이거였나?”

유달은 뭘 어찌할지 몰라 초조한 모습이다.

장미란은 이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꾸준히 매상을 올려주는 단골은 환영할 만한 고객 아닌가요? 그런데 왜 여기서는 안 보이면 좋아하고, 왔다니까 그리 당황하는 것일까요?”

유달과 송보름은 서로 눈치를 봤다.

누가 그녀에게 설명할지 정하는 것이다.

송보름이 창가 자리를 손짓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 보이는 남자 있죠?”

“응.”

가게의 손님은 20대 초반의 남자밖에 없었다.

“타고난 운이 너무너무 안 좋아요. 사주·관상 보면서 사장님이 놀라는 경우는 처음 봤어요.”

당사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우와, 보는 순간 진짜 놀랐습니다. 세상에 저리 박복한 팔자가 있나 하고 말이지요. 조실부모는 기본이고, 재물운, 직장운, 연애운 모두 전멸입니다. 그나마 나은 게 생명줄이 길다는 건데, 과연 그것이 좋다고 할 수 있을까요?”

송보름이 말을 받았다.

“그런데 사람은 너무 좋아요. 세상 비관하고 삐뚤어져야 하는데, 꿋꿋하게 버텨요. 내일은 좀 더 나은 날이 될 거란 희망을 품고 말이에요. 더 나빠질 것밖에 없는데, 너무 안타깝지 않아요?”

유달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제가 격려 차원에서 작은 이벤트를 마련했었지요. 우리 가게의 만 번째 손님으로 당첨됐다며 기념품까지 증정해 줬습니다. 계속 불행한 일만 당해서 그런지, 작은 행운에도 엄청나게 기뻐하더라고요.”

“사장님, 그게 화근이었다고요? 그러니까 힘들고 지칠 때면 꼭 우리 가게 오잖아요. 사장님이 계속 말도 안 되는 행운을 만들어주니까요. 이젠 더 짜낼 아이디어도 없다고요?”

“나도 이젠 포기했어.”

“한동안 잠잠해서 좋았는데, 왜 갑자기 왔을까요? 또 친구한테 여자를 빼앗겼을까요?”

“회사에서 잘릴 타이밍 아니야? 어쨌든, 니가 가서 억울한 사연 좀 들어줘. 나는 제만 보면 안쓰러워서 말이 안 나와.”

“싫어요! 나는 저 사람 볼 때마다 눈물 날 것 같아요.”

“제가 나서죠.”

유달과 송보름은 자청해서 나서겠다는 장미란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속인이 아니다.

하지만 심리학 전공에 실력 있는 프로파일러.

둘은 괜찮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장미란이 창가 자리로 향했다.

그녀는 단골손님은 악수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유달과 송보름은 계산대에서 어찌하나 살펴봤다.

분위기는 괜찮다.

대화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골손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송보름이 대단하다는 탄성을 발했다.

“와······ 역시 FBI는 다르네요.”

“여기서 FBI가 왜 나와?”

“전문 프로파일러라 그런가요······ 고민의 핵심을 꼭 찍은 것 같아요. 사장님은 우리 단골이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 본 적 있어요?”

유달은 분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별의별 이벤트 다했어도, 저리 진심으로 기뻐하게 만들지는 못했었다.

장미란은 그의 90도 감사 인사까지 받고 돌아왔다.

“언니, 정말 대단해요.”

송보름이 손뼉 치며 환영해 주었다.

유달은 시기가 섞인 눈빛으로 물었다.

“저 친구, 오늘은 왜 왔답니까?”

“잘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부도났데요. 밀린 월급 받기도 힘들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여기서 같이 일하자고 했어요. 마침 바리스타 자격증도 가지고 있더라고요.”

“예······ 예에?”

깜짝 놀란 유달이 따지듯 물었다.

“사장은 전데, 마음대로 직원 뽑으면 어떡합니까?”

“저는 홀 매니저로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 것뿐이에요. 채용 결정은 당연히 사장님인 유달 씨가 직접 해야겠죠?”

장미란이 손짓하자 단골손님이 긴장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는 들락날락한 직장이 책으로 써도 모자라다.

언제라도 자기소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강성호입니다. 저는 여기만 오면 기분이 좋습니다. 불행을 달고 사는 저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오늘은 정말 힘든 날이었습니다.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나 봅니다! 저는 이곳이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분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유달의 결정을 기다렸다.

거절은 무리다.

얼굴만 봐도 안쓰러워서 말도 안 나온다고 했던 그다.

“합격!”

유달은 두 눈 딱 감고 승낙했다.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당장 일할 수 있습니다.”

“보름아······.”

“따라오세요.”

그녀는 강성호를 데리고 주방으로 향했다.

자신이 잘한 결정을 한 것인지, 뒤늦게 후회하는 그이게 장미란이 물었다.

“저기 창고를 제 사무실로 쓰고 싶은데요?”

“마음대로 하시지요.”

유달은 강성호가 잘 적응할지 주방을 살폈다.

송보름이 대충 설명했다.

“이 커피 기계들 쓸 줄 아세요?”

“네, 커피 알바 경력 10년입니다. 어떤 기계든 다 쓸 줄 압니다.”

“다행이네요. 저는 쓴 적이 없어서 가르쳐 주지도 못해요. 그리고 말 놓으세요. 이상해요? 저보다 나이도 훨씬 많잖아요.”

“그, 그럴까······.”

“그런데 왜 이리 긴장한 표정이에요? 여기는 서로의 영역에 대해 간섭하지 않아요. 핸드폰질해도 상관없고, 커피만 잘 만들면 돼요.”

“아, 그게 말이야. 나는 입사하자마자 회사나 가게가 문 닫은 경우가 많았거든. 첫 손님을 무사히 넘겨야 하는데, 괜히 걱정이 드네.”

그의 말이 불안하게 여겨질 때다.

딸랑딸랑.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이 있었다.

한국 사람이 아니다.

최고급 정장을 입은 금발의 노신사(老紳士)였다.

순간, 유달에 이마에 주름이 갔다.

그와 동시에,

쩌엉!

굿 카페의 신당에서 유리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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