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괴상망측한 괴물
송보름이 반대했다.
“그랬다가, 형사 언니가 앙심 품으면 어떡해요? FBI 감당할 자신 있어요?”
“못하지! 어떻게 교묘히 떨어트릴 방법이 없을까?”
유달과 송보름은 귓속말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장미란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대화 목소리였다.
“사장님, 정면승부하세요. 바로 면접 진행하고 떨어트리면 되잖아요. 어차피 월급이 맞지 않을 거예요.”
“맞아, FBI 출신 프로파일러가 최저시급 받고 다니겠어?”
용기를 얻은 유달이 장미란에게 말했다.
“바로 면접 진행할까요?”
“그러시죠.”
장미란은 유달을 따라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이력서는 가져오셨습니까?”
“물론이지요.”
그녀는 핸드백에서 꺼낸 이력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어디 볼까요······.”
이력서를 살피는 유달의 입에선 감탄사부터 튀어나왔다.
“우와아~ 아주 글로벌한 스팩이네요. 홍콩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셨고, 대학은 영국에서 나왔네요. 이거······ ‘옥스퍼드’라고 읽는 거 맞죠?”
유달은 영어가 쓰인 이력서에 확인을 구했다.
“네, 맞아요.”
“미국 FBI에 있다가 대한민국 특수범죄 수사팀에 스카우트 되셨고요······ 3개국 언어에 능통하시며, 심리학 박사 학위까지 가지고 계신 분이······ 어째서 사주카페 홀 매니저에 지원하신 겁니까?”
“그동안 저는 보통 사람과 다른 험한 세상을 살아야 했습니다. 상대해야 하는 인간들이 악질 범죄자들이라 저 또한 독해져야 했어요. 자의든 타의든 더는 경찰 일은 할 수 없게 되었고, 이번 기회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어떤 심정인지 이해합니다. 그리고 저는 열린 경영자라 할 수 있어요. 학벌, 종교, 나이 아무것도 따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유달은 강조의 의미로 잠시 말을 끊었다.
“저희 가게 매출은 가히 좋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참담한 수준이지요. 경영상의 이유로 최저시급 이상은 줄 수 없는 형편입니다. 올해 최저임금이 얼만지는 알고 계시지요? 그런 급여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저는 그런 금액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탕.
유달은 탁자를 치며 좋아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군요. 다음에 좋은 인연으로······.”
유다리 홀가분하게 일어서려는 찰나,
“저는 단순히 홀 매니저만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럼요?”
“저는 이 카페에 투자하고 싶어요. 실내 인테리어를 새롭게 바꾸고, 제가 가게경영을 맡는다면 매출이 몇 배는 급상승할 거예요.”
“급, 급상승!”
유달이 혹하는 기색을 보이자 송보름이 끼어들었다.
“사장님, 흔들리면 안 돼요. 급격히 늘어나는 매출만큼 바쁘게 사주·관상 봐야 한다고요. 그건 사장님이 원했던 삶이 아니잖아요?”
“이 상태로는 어쩔 수가 없어? 저번에 이모 만났을 때, 가게가 아주 잘 된다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고. 조만간 이모가 찾아올 수 있겠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단 말이야.”
“너무 애쓰지 말아요? 이모님도 많이는 기대하지 않을 거예요?”
“싫어. 이 나이 처먹고 계속 걱정만 시키면 되겠어? 이모가 카페 문을 열었을 때 손님이 바글바글······ 너무 흡족한 이모가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모습이, 내 일생일대의 소원이란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가 보통 사주카페도 아니고······.”
“괜찮아. 내게 놀랄만한 계획이 있으니까?”
이어 유달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장미란에게 말했다.
“일어나시죠. 투자자님?”
장미란이 물었다.
“어디 가려고요?”
“일단은 경찰 살해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았습니까?”
“아직인데요? 김형식은 자신의 독단적인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권도훈 대표와의 연결 관계를 밝혀내야 마무리되는 거예요.”
“그건 형사분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요. 하지만 서둘러야 할 겁니다.”
“왜죠?”
유달이 착 내리깔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놈 언제 급살 맞을지 모릅니다. 제 몸주신이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말이지요.”
장미란이 수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물었다.
“혹시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니요, 아니요. 별일 없었습니다. 그런 거 가지고 일이라고 하면 안 되지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투자자님.”
분명 무슨 일이 있었다.
유달의 과장된 반응이 바로 그 증거.
진짜로 화가 난 것이기도 했기에 건드려서 좋을 건 없었다.
“알았어요. 그것에 관해선 더는 묻지 않을게요. 하지만 제가 지금 왜 움직여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어야 하지 않나요?”
“살해 현장에 봤던 목격자 기억하지요?”
“아······ 꼬마 귀신 말인가요?”
“맞습니다. 그때 저하고 꼬마가 딜을 했지요? 범인이 잡혔으니, 이제 그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려는 거지요. 저는 준비할 것이 있으니까, 잠시 기다리세요.”
유달이 사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쇼핑백을 들고나왔는데,
장미란의 채용을 극구 반대했던 송보름이 그녀 곁에 딱 붙어있었다.
“저는 언제나 형사 언니 편이에요. 제가 반대하는 척했던 건 사장님의 청개구리 같은 성격 때문이에요. 제가 혹하는 반응을 보였다면 더욱 격렬히 반대했을 거예요.”
“고마워, 보름아.”
“천만에요. 나중에 저 총 쏘는 법 좀 알려주세요.”
“왜?”
“저도 FBI 하고 싶어요. 간지 나잖아요. FBI다. 손들어, 빵! 빵! 빵! 빵! 빠앙-!”
송보름은 심취하여 손가락 총을 난사하다가, 유달의 얼굴에도 총질하고 말았다.
“죄, 죄송해요, 사장님.”
그녀는 다급히 손가락 총을 내려놓았다.
유달은 심하게 배신당한 기분이다.
‘썩을 년······.’
하지만 그녀는 건물주의 딸.
심한 소리 해서 사이가 틀어지면 자신만 손해다.
유달은 송보름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렇게 총 쏘고 싶으면······ 군대 가.”
이어 그는 장미란에게 따라오라는 고갯짓하며 출입문으로 향했다.
“다녀오세요. 사장님!”
송보름이 깍듯이 인사했다.
유달이 자신에게만 인사하는 게 수상했다.
몰래 곁눈질로 살피니, 역시나.
그녀는 장미란을 향해서는 주먹 불끈, 입 모양은 크고 소리 없는, 애교 넘치는 ‘파이팅’을 전했다.
@
마포구 염리동 재개발지역.
경찰 살해 사건 현장 인근 전봇대.
유달이 꼬마 귀신과 대화를 나눴던 장소였다.
빈집이 대부분이라 인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점심시간 무렵에는 음식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종종 지나가곤 했다.
유달과 장미란은 굳은 표정으로 마주 보고 섰다.
그들은 서로의 어깨 너머로 누가 다가오는지 살폈다.
다다다다다.
낡은 스쿠터 한 대가 지나가자, 그들은 곧바로 행동 개시에 들어갔다.
사악.
장미란이 재빨리 케이크를 꺼내 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유달은 손에 쥔 7개의 생일초에 한꺼번에 불붙이고, 민첩한 손놀림으로 케이크에 꽂았다.
케이크 세팅이 끝나자, 유달과 장미란은 알록달록 고깔모자를 머리에 썼다.
그러고는 고갯짓으로 박자 맞춰서.
둘······ 셋!
그들은 4배 빠르기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생일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꼬마, 생일 축하합니다.”
유달이 꼬마 귀신에게 다정히 말했다.
“촛불 꺼야지~?”
장미란은 귀신을 볼 수 없다.
유달의 행동만 지켜볼 뿐이다.
그가 어깨 뒤로 넘긴 손으로 OK 신호를 주는 순간.
빵! 빵!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폭죽을 터트렸다.
짝짝짝짝짝짝.
열정적인 박수가 끝나자, 유달이 장난감 상자를 내밀었다.
“이건 생일 선물~ 감동했어? 케이크도 처음이고, 선물도 처음이라고? 하하하하, 이 아저씨는 은혜를 따블로 갚는 사람이야. 케이크 먹고 웬만하면 승천해. 알았지?”
유달이 허리 펴며 몸을 바로 세웠다.
꼬마 귀신과의 약속을 무사히 마친 것이다.
그들은 서둘러 머리에 썼던 고갈 모자부터 벗었다.
유달이 물었다.
“홀 매니저가 되면 이런 일도 해야 하는데,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못 할 건 없지요. 인간 말종 범죄자들 상대하는 것보단 백번 낫네요. 그런데 굿 카페에는 귀신도 들어오나요?”
“아니요? 이미 죽은 망자들이 사주·관상을 뭐하러 보겠습니까? 모든 게 덧없게 된 존재들인데 말입니다.”
“그럼 됐어요. 가시죠.”
그들이 사주카페로 돌아가기 위해 차로 걸어가는 때다.
부르릉······.
커다란 벤이 아래쪽에서 올라왔다.
연예인이 많이 타는 차량이고 짙은 선팅이 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자동차 앞에 멈춘 검정 벤에서 탤런트 오현아가 내렸다.
“안녕하세요, 형사님.”
“네, 안녕하세요.”
장미란임을 알아보고 일부러 차를 세운 모양이다.
“범인 잡았다는 소식 들었어요. 정말 다행······!”
오현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강한 의심을 품고, 장미란 뒤에 있는 유달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장미란은 둘의 관계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유달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하여 뒤돌아봤는데,
“뭐, 뭐에요?”
장미란이 식겁했다.
급했던 유달이 알록달록 고깔모자를 얼굴에 썼다.
괴상망측한 괴물처럼 거대한 부리가 툭 튀어나온 모습이 정말 가관이었다.
오현아는 그에 상관치 않고 조심히 말을 붙였다.
“저기······.”
“아닌데요,”
유달은 뭔지 듣지도 않고 부정했다.
“저기 혹시······.”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절대 아니라고요.”
유달은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통에 고깔모자가 몇 번이나 흘러내려다.
그가 잽싸게 다시 쓰긴 했지만, 이미 얼굴은 다 들통난 상황.
그런데도 유달은 끝까지 우겼다.
“아닙니다. 비슷할지 몰라도 절대 아닙니다. 아니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