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인과응보
김형식이 입원한 702호 병실.
그는 2인 병실을 1인실처럼 혼자 썼다.
병원 외래 진료가 끝나는 시간.
젊은 의사가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김형식을 진찰하고 있었다.
그가 복도에서 넘어진 사실을 간호사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검사를 마친 의사는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특별한 이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괜찮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넘어진 겁니까? 김 기자님의 화상은 거동이 불편할 정도는 아닌데요?”
“물 뜨러 가다가 발목이 삐끗해서 넘어졌습니다.”
젊은 의사는 의아한 듯 반문했다.
“간호사의 말은 다르던데요? 그냥 혼자 앞으로 고꾸라지듯 쓰러졌다고 하던데요? 혹시 어지럼증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그런 거 없었습니다. 간호사가 잘못 본 겁니다.”
“알겠습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드륵.
의사가 나가자마자 김형식의 표정이 변했다.
“젠장, 그 새끼를 본 다음부터 재수가 없어······.”
유달을 말하는 것이다.
김형식에게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은 그를 만난 뒤부터 시작되었다.
“보통 또라이 새끼가 아니야.”
짜증 나고, 화가 치솟는 한편으로 두려움도 느껴졌다.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라 부딪히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그는 리모컨으로 TV를 켜려다 그만두었다.
뉴스에선 온통 저수지 사건에 관한 내용뿐이다.
골드윙이 잘못되면 그도 무사할 수 없었다.
김형식은 일찌감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잠들고 싶어서 얇은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쓸 때다.
-잠이 와?
“!”
그는 번쩍 눈을 뜨며 이불을 걷었다.
TV는 확실히 껐다.
병실 밖에서 들리는 소린가 했는데,
-잠이 오냐고? 김형식 기자.
“뭐, 뭐야!”
김형식은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잘못 듣거나, 밖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병실 안에서 아주 가까이······ 자신의 귓가에 대고 말하는 소리였고,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원망의 목소리였다.
-나를 죽이고 잠이 오냐고!
“누, 누구야!”
김형식은 부릅뜬 눈으로 소리쳤다.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줄기 되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 벌써 잊었어?
너무 똑똑히 기억하기에 문제다.
김형식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 그래······ 사주카페 사장 너지? 내가 속을 줄 알고? 어디다 녹음기를 숨겨 놓은 거야······.”
그는 병실 불을 켜고 이곳저곳을 뒤지기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복수에 불타는 원한이 그의 등 뒤에서 따라다녔다.
원한의 불꽃은 사납게 타오르며 아래쪽으로 뚝뚝 떨어지기도 했다.
“앗 뜨거! 대체 무슨 짓을······ 앗 뜨거!”
김형식은 뜨거움을 느낀 손등을 확인했다.
순간적인 고통으로 끝이 아니다.
진짜 화상을 입은 듯 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물집까지 생겼다.
“이, 이, 뭐야······ 으아아악! 앗 뜨거! 앗 뜨거!”
화상의 고통은 그의 목덜미와 얼굴, 어깨와 허벅지 등으로 점점 늘어났다.
-나를 왜 죽였냐고? 왜 죽였어!
“으아악!
김형식은 패닉에 빠진 반응을 보였다.
링겔대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미친 듯이 고함쳤다.
드륵.
갑작스러운 소란에 간호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환자분, 괜찮으세······!”
간호사는 문을 연 상태로 몸이 굳었다.
“시발! 꺼져! 꺼지라고! 앗 뜨거-!”
땀 범벅에 충혈된 눈, 화상 입은 얼굴로 고함치는 모습은 분명 제정신이 아니다.
급기야 링겔대를 마구잡이로 휘둘러 병실까지 부수기 시작했다.
“지, 진정하세요. 환자분······.”
간호사는 침착하게 행동하려 했다.
김형식의 상태는 그녀의 말이 통할 상태가 아니다.
그는 병실 문이 열린 것을 확인하고는 사납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나는 안 죽였다고!”
“엄마야!”
김형식은 기겁하는 간호사를 밀쳐내며 병실을 뛰쳐나갔다.
***
명진 종합병원 장례식장.
유달과 장미란은 1층 로비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장미란이 먼저 말을 붙였다.
“정말 병원보다 장례식장이 편해요?”
“당연히 둘 다 불편하지요. 굳이 고르라고 하면 이곳이 조금은 낫다는 거지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마음껏 물어보십시오.”
“사람이 죽으면 저승사자가 데려가지 않나요? 그런데 이리 세상에는 귀신이 많은 거죠?”
“글쎄요. 저승사자는 명부에 적힌 사람만 데려가죠. 아마도 제명대로 살지 못해서 데려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승을 떠도는 영혼 중에는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경우가 많지요. 그만큼 세상이 험해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추측인가요?”
“네, 저라고 영계에 대해 완벽히 아는 건 아닙니다. 실망하셨습니까?”
“아니요, 실망까지는······.”
그들의 대화가 중단되었다.
장례식장과 연결된 병원 로비에서 소란스러움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유달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가시죠.”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병원과 연결된 통로를 지났다.
병원 로비에 도착하여 난동 부리고 있는 김형식을 확인하는 순간, 유달은 기겁하는 비명을 질렀다.
“허걱! 뭐야 저거······.”
불지옥에서 나온 듯 전신에 화상을 입은 김형식의 몰골 때문이다.
그는 이성을 잃은 상태로 알루미늄 목발을 휘두르면 난리를 쳤다,
그런 그를 제지하려 병원 보안요원과 간호사들은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장미란도 조금 당황한 기색이다.
“목소리만 들리는 게 아닌 모양이네요?”
“그러게요. 대마신의 영향을 받은 건가······.”
“대마신이요?”
“아, 그런 게 있는데, 형사님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약간의 문제가 생겼지만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저놈의 자백부터 받아 내지요”
유달이 김형식에게 다가갔다.
이성을 잃고 난리를 치는 상황이라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일단은 그를 진정시키는 게 급선무였는데, 유달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특유의 빈정거림으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어우, 징그러! 꼴이 진짜 말이 아니네?”
순간, 분노가 폭발한 김형식이 알루미늄 목발을 휘두르며 유달에게 달려들었다.
“이 사기꾼 새끼야,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
유달은 여유로웠다.
후웅, 후웅-.
김형식이 휘두르는 목발을 가벼운 몸놀림으로 피했다.
“미안, 나는 너 같은 놈에게는 맞고 싶지 않아서······.”
“나한테 무슨 짓을 했어!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냐고!”
“무슨 짓은! 인과응보는 필연이야. 아무 죄도 없는 경찰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나? 이 병신아.”
유달의 말은 그를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으아악! 내가 아니라고!”
후앙!
김형식이 내려치는 목발이 유달의 몸을 스치듯 지나쳐 접수대의 모니터를 박살 냈다.
후앙!
그는 연이어 목발을 휘둘렀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유달이 고개 숙여 피하자, 그 뒤에 있던 화분이 줄기가 꺾이며 쓰러졌다.
위험천만한 상황이 계속되자 보안요원들이 나서야 했다.
그들은 경찰에 신고하고 김형식이 진정시키려 애썼다.
유달이 갑자기 끼어들어 난처하게 된 상황이다.
“저기요! 환자를 자극하지 마세요.”
보안요원들이 유달을 만류하려 하자 장미란이 나섰다.
“괜찮으니 놔두세요.”
“누구십니까?”
그녀는 신분증을 꺼내며 말했다.
“경찰이에요. 저 환자는 우리가 맡겠습니다. 보안요원분들은 통제선 설치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 환자의 담당 의사를 불러주시고요.”
보안요원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구경하던 사람들을 멀찌감치 물려 출입을 막았고, 김형식을 진찰했던 젊은 의사를 데려왔다.
장미란이 악수를 청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마포경찰서 특수범죄 수사팀 장미란 팀장입니다.”
“예······ 저는 피부과 전문의 ‘최준수’입니다. 무슨 일을 저를 찾으셨습니까?”
“김형식 기자의 담당 의사 맞으시죠?”
“네, 그렇습니다.”
“솔직히 털어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김 기자를 강력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예에?”
최준수는 당연히 크게 놀랐다.
사전에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고, 기자라는 신분 때문에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환자였기 때문이다.
장미란이 말했다.
“저희는 1시간 전에 그를 만났습니다. 그때는 멀쩡한 얼굴이었는데, 왜 갑자기 저렇게 된 것이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30분 전에 봤는데, 그때도 멀쩡한 상태였습니다. 왜 저렇게 되었는지 현재로서는 뭐라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그는 잠시 고개 돌려 난동의 현장을 살폈다.
김형식은 미친 듯이 목발을 휘두르고, 유달은 이를 피하기만 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장미란이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김 기자의 화상은 자해가 아닐까요?”
“환자 스스로 얼굴과 몸에 화상을 입혔다는 겁니까?”
“병원에도 저런 정도의 화상을 입을 만한 곳이 있나요. 30분 전까지 멀쩡했다고 하니, 그가 입원해 있던 7층에 한정해도 되겠네요.”
“없습니다.”
“샤워실의 물 온도 때문에 화상 입는 경우는요?”
“아니요, 우리 병원의 안전기준은 매우 철저합니다. 그런 사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의심하는 겁니다. 30분 전에 김 기자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나요?”
“뭔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긴 했는데······ 안정적인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30분 전까지 멀쩡했는데, 갑자기 저런 상태가 되었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나요? 김 기자는 체포영장이 발부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이를 피할 방법을 찾아야 했을 거예요.”
“수사를 피하려고 일부러 난동을 부린다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의사시니 환자의 상태가 우선일 거예요. 김 기자가 경찰 살해범이든, 자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수사를 피하든, 상관없이 치료부터 하고 싶으실 겁니다.”
최준수는 그런 마음이 없는 듯했다.
경찰 살해범이란 말이 나오는 순간, 손 떼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희는 김 기자에게 긴급히 확인할 게 있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고, 그에게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중단하겠습니다. 저희를 믿고 치료를 조금만 미뤄주시겠어요?”
“네,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혹시 모를 응급 상황에 대비하고 있겠습니다.”
장미란은 문제가 될 소지를 미리 차단하고 난장판이 된 현장으로 다가갔다.
안내데스크 주변은 멀쩡한 물건이 없고, 김형식과 유달 모두 지친 상태였다.
유달이 숨을 헐떡이며 경고했다.
“헉, 헉······ 그 목발 내려놓는 게 좋을 거야······.”
김형식은 목발을 들고 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무슨 고집인지 유달의 말과는 정반대로 품에 안듯 끌어당겼다.
“왜 내 말을 안 듣는데?”
유달은 김형식을 생각해서 했던 말이다.
그의 목발 끝을 복수에 불타는 원혼이 붙잡고 있었다.
원한만큼 뜨거운 열기가 알루미늄 목발에 전해졌다.
“으악, 뜨거-! 대체 이게 뭐냐고······ 크윽······.”
목발을 떨어트린 김형식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완전히 탈진한 듯 엎드려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유달이 바싹 다가가, 눈높이를 맞추며 설득했다.
“그만 자백하고 편해지라고. 이렇게 평생 시달릴 거야? 나는 원한의 목소리만 들려주려 했는데, 뭔가 착오가 있어서 복수의 화신이 되고 말았어. 절대 버틸 수 없다니까?”
“제발 나 좀 살려줘······ 나는 정말 아무 잘못도 없어.”
“우와~ 이리 뜨거운 맛을 보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우기지 말고 용서를 구하라고! 네놈이 실토하면 모두가 편해진단 말이다. 이 병신아!”
장미란이 다그치는 유달을 내려보며 물었다.
“아직인가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이 정도 당했으면 없는 죄도 만들어 불었을 텐데, 이놈은 진짜 독종이네요?”
“가죠.”
“예?”
유달이 잘 못 들은 게 아니다.
“그냥 두고 가자고요. 아무 반성 없이 교도소에서 편히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고통당하며 평생 죗값 치르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