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5화 (15/183)

15화- 대결(2)

백시연이 도움을 청하듯 장미란를 바라보았다.

“형사님, 이게 대체 무슨 경우죠?”

“뭐 가요?”

장미란은 어깨 으쓱 한 번 하고 끝이다.

그녀는 관여를 않겠다는 듯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백시연이 정색하고 말했다.

“두 분 다 나가주세요.”

벌떡.

유달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는 거실을 배회하듯 걷다가 작은 방 앞에 멈췄다.

“여기가 신당인가?”

순간, 백시연의 음성이 살벌하게 변했다.

“그 문 열면 네놈은 죽어.”

유달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나는 주인의 허락도 없이 신당에 들어가지 않아. 그쪽이 어떻게 반응하나 떠보려는 거였지. 이제 본색을 드러내신 것 같은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볼까?”

백시연은 적대감을 거두지 않았다.

“당신, 정체가 뭐야?”

“서로 말놓으니 한결 편하네? 직업을 묻는 것이라면 무당이라고 해두지. 요새는 무속인이란 말을 많이 쓰더라고, 어쨌든, 지금은 명동에서 사주카페를 하고 있어. 250평이 넘지. 매출은 형편없지만. 그쪽은?”

“가르쳐줄 마음 없는데?”

소파에 앉아 있던 장미란이 대신 말했다.

정확히는 그녀의 핸드폰 속 문자 메시지를 큰 소리로 읽기 시작한 것이다.

“직업은 작곡가. 서울에서 실용음악과를 졸업하셨고, ‘미향’이란 가명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이 별장은 아버지 소유로, 당신이 이곳으로 주소를 옮긴 지는 5년 되었네요.”

백시연이 고개 돌리며 물었다.

“지금 당사자가 동의도 안 했는데 개인정보를 조사한 거예요? 저는 위법한 일을 한 적이 없어요”

“당연히 전과도 없으시고요, 개인 소유의 별장에 신당을 차린 게 죄가 되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골드윙의 권도훈 대표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면, 솔직히 말씀하셔야 합니다.”

“누구요?”

“글로벌 투자 골드윙의 권도훈 대표 말이에요. 그의 부탁을 받고 정화 의식을 한 게 아닌가요?”

“저는 처음 듣는 이름이에요.”

“그럼, 박만복이란 사람은 아시나요?”

“아니요. 그런 이름도 몰라요.”

유달이 앙칼진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만복이의 사주를 받고 저수지의 영혼들을 소멸시키는 짓거리를 했잖아!”

“대체 그 만복이가 누구야! 내가 궁금해 미치겠다고!”

백시연이 진심으로 짜증을 냈다.

장미란은 흥분한 그녀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저희는 당신과 싸우러 온 게 아니에요.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누가 정화 의식을 부탁했죠?”

“고객의 정보는 절대 말해 줄 수 없어요.”

“좋아요. 그렇다면 저수지의 영혼들을 없애려 했던 이유만이라도 알려 주세요. 그것 때문에 저희는 당신이 권도훈과 연관 있을 거라고 오해했어요.”

백시연은 흘깃 유달을 곁눈질하고 입을 열었다.

“원래 고객의 요청은 망자의 혼을 달래는 위령제였어요. 아주 오래되었죠. 제가 전임자에게 위임받은 게 5년 전이니까. 그런데 2년부터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지요. 저수지의 원혼들이 마물(魔物)로 변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화 의식을 했던 거고요.”

유달이 강력히 반박하고 나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떻게 인간의 영혼이 마물로 변할 수 있다는 거지? 둘은 근본 자체가 다른 거야.”

“그러니까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잖아? 누군 좋아서 정화 의식을 하는 줄 알아? 정화 의식이 얼마나 힘든지 정도는 알고 있을 테데.”

“선무당이라 뭘 모르는 거 같은데, 사람의 영혼이 마물로 변하는 건 말아야. 침팬지가 갑자기 인간이 됐다는 거랑 똑같은 거야. 그런 주장을 몇 명이나 믿을까?”

“뭘 모르는 건 외려 그쪽 같은데? 그런 일이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야.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가능성이 하나 있지.”

“그게 뭘데?”

“대마신이 깨어날 전조.”

“닥쳐!”

유달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재수 없는 이름을 어디서 입에 담는 거야? 그놈이 깨어나면 얼마나 귀찮은지 몰라?”

“그, 그저 귀찮다고?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흥미로운 반응이네?”

“어쨌거나, 원혼을 소멸시키는 짓은 그만해. 그쪽 말대로 진짜 마물로 변했다면 소용없는 짓이니까.”

“내가 의식을 멈추면, 저수지의 마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유달은 입꼬리 올라가는 미소만 지어 보였다.

자신만만함의 표현이었다.

@

어스름한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저수지.

유달과 장미란은 물가에 가까이 다가가 잔잔한 수면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미란의 표정은 담담했는데, 한편으로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는 모양이다.

그녀는 손에 든 비닐봉지를 유달에게 들어 보였다.

“마물을 퇴치하려면 영험한 무구(巫具)를 지니고 싸우거나 굿을 해야 하지 않나요? 이렇게 편의점에서 산 물건들로 괜찮겠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몸 자체가 영험한 무구입니다.”

장미란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대답이다.

그녀는 이내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백시연은 저수지에서 멀찍이 떨어진 거리 있다.

그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여유로운 모습인데, 갑자기 놀란 표정이 되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유달의 얼굴 역시 굳어졌다.

장미란의 재빨리 저수지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가 보기에는 변함없이 잔잔한 수면이다.

그러나 유달과 백시연의 눈에는 달리 보였다.

엷은 안개가 드리워진 저수지에서 마물들이 기괴한 모습을 드러냈다.

***

스멀스멀.

그 형체는 사람도 아니오, 귀신도 아니오, 괴물이라 부를만한 것에 가까웠다.

바탕은 어둠이고, 형체는 네발 달린 짐승이다.

머리는 개를 닮은 듯 주둥이가 튀어나온 형상, 초승달처럼 날카로운 두 눈은 피처럼 붉은색이고, 서서히 벌어지는 주둥이에는 칼날 같은 송곳니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진짜 마물이잖아······ 진짜 지랄맞게 되는 게 없어.”

유달의 입에서는 신세 한탄부터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기괴한 형상의 마물은 황소보다도 크고, 열 마리가 넘는 숫자였다.

장미란은 지금의 상황을 눈으로 볼 수 없다.

유달과 백시연의 반응을 살피며 추측할 뿐인데, 상당히 안 좋은 모양이다.

유달은 중얼거림은 자책에 가까웠다.

“내가 죽어야 이 악운은 끝날 건가. 대체 어디까지 일이 커질 거냐고!”

그녀가 뒤돌아보니, 백시연은 더욱 멀어져 있다.

계속하여 뒷걸음치는 것이, 여차하면 전력 질주로 도망칠 분위기였다.

톡톡.

유달이 장미란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안개에 닿지 않게 뒤로 물러나지요.”

수면 위의 안개가 그들의 지척까지 접근했다. 장미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녀에게는 그냥 평범한 안개였지만, 유달에게는 마물들이 무리 지어 몰려오는 위기의 상황이다.

그들은 사나움을 자랑하듯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다가왔는데, 입에서 튀어나온 혓바닥은 수십 마리의 뱀이 뒤엉켜서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어우, 진짜······.”

징그러운 걸 유독 싫어하는 유달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유달의 인상은 금방이라도 토를 할 듯 좋지 않아 보였다.

장미란이 걱정되어 물었다.

“괜찮아요?”

“비위 빼놓고는 모든 게 괜찮습니다.”

유달은 가볍게 몸을 풀며 대답했다.

목과 어깨, 허리와 양다리의 근육을 차근히 풀더니, 양손을 들어 올리며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다.

“싸우려고요?”

“네,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격투기 배웠어요? 자세가 좋네요.”

“별의별 일을 다 겪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제 행동이 미친놈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이해하세요. 진짜 미친 건 아닙니다.”

“알았어요. 혹시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그럼······ 파이팅.”

장미란은 방해되지 않게 멀찍이 물러났다.

유달은 13마리의 거대한 마물들과 홀로 맞섰다.

겁먹지 않았다. 두려움도 없다.

그는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차분한 모습이다.

유달은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여 일렬로 다가오는 마물들을 주시했다.

머릿수에서 턱없이 차이가 났다.

공격보다는 방어. 먼저 달려드는 놈부터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화악!

맨 앞에서 무리를 이끌듯 다가오던 마물이 제일 먼저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유달도 주먹을 휘둘렀다.

휘익.

전문 격투기 선수 못지않게 빠른 주먹이다.

그러나 마물의 민첩한 움직임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

스윽.

유달의 주먹은 빗나갔고,

“헐······.”

땅을 박차며 뛰어오른 마물이 헛손질한 그를 덮쳤다.

후앙.

거센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마물의 몸뚱이가 유달의 몸을 그대로 통과했다.

그런데 유달의 몸은 뚫리지 않고 멀쩡했다.

빛이 유리를 통과하는 모습과 비슷했지만, 물리적인 충격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커억!”

유달은 크게 휘청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곧바로 다른 마물들도 경쟁적으로 달려들었다.

후앙-!

“커억-!”

후앙, 후앙-!

“크아악! 졸라 아파······.”

유달은 연신 얻어터지며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장미란이 다시 물었다.

“정말 괜찮아요?”

“죽지는 않으니 괜찮은 거지요. 크억! 그, 그런데 나 어때 보여요? 많이 이상해 보여요?”

아픈 건 참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보다는 영적인 능력이 없는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신경 쓰였다.

장미란이 사실대로 말했다.

“진짜 미친놈처럼 보여요. 미리 말해줘서 다행이에요.”

“저도 다행입니다. 미리 말해줘도, 이건 못 참고, 혀 차고 돌아서는 사람이 태반이었지요. 크아아악!”

유달은 또다시 얻어터지기 시작했다.

장미란의 눈에는 혼자 ‘생쇼’하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 오랜만에 맞아서 더 아픈 건가······ 크악!”

비명 지르며 휘청거리는 모습이 아주 예전에 봤던 코미디와 흡사했다.

수십 발의 총알을 맞아도 쓰러지지 않은 ‘집념의 엑스트라’가 떠올랐다.

그러나 ‘집념의 엑스트라’는 연기고, 유달은 실제로 육체적인 고통을 받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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