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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카페-14화 (14/183)

14화- 대결(1)

덜컹, 덜컹, 덜컹······.

온종일 운전을 했던 장미란은 매우 피곤한 모습이다.

그녀는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는지 계속 말을 붙였다.

“유달 씨는 정말 돈이 징그러워요?”

“네, 환장할 정도로 징그럽습니다.”

“보름이 말로는, 뱀이나 벌레를 보는 느낌이라고 하던데?”

“그건 보름이 수준에 맞춘 표현이고요. 돈에서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라 할까요······ 여하튼 징그러워서 보기도 싫습니다. 물론 카드나 수표 등은 상관없습니다.”

“뭐, 세상엔 별의별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마르크스도 비슷한 말을 한 것 같네요.”

“마르크스요? 공산주의 국가에서 좋아하는 그 사람 말인가요?”

“네, 자본론으로 유명하잖아요?”

유달은 최고 명문대를 나와 사법고시까지 통과했다.

하지만 그의 현재 지적 수준은 고등학생보다 떨어졌다.

유달은 그런 책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 저었다.

장미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어쨌든, 저도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요, 자본주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와 오물을 뒤집어쓰고 출현한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 시대에 있었던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것이죠.”

“지금이라고 별반 다릅니까?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는 세상인데.”

촤르르르.

장미란이 천천히 차를 멈췄다.

“다 왔으니, 내리시죠.”

“알겠습니다.”

유달은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주변 경관을 살폈다.

커다란 연못처럼 보이는 소규모 저수지였고, 낚시터가 있었던 흔적도 보였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기에 장미란은 트렁크에서 랜턴을 찾아 불을 밝혔다.

“한 바퀴 둘러볼까요?”

“그러지요. 형사님.”

장미란이 앞장서고 유달이 뒤따랐다.

물가를 따라서 걷는 길은 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성하게 자란 잡초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워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뎌야 했다.

장미란은 유달이 미끄러지지 않게 신경 써서 랜턴을 비춰주며 걸었다. 어두운 밤에는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오늘은 여기만 살피고 서울로 올라가죠. 아니, 어차피 다시 내려와야 하니, 모텔을 잡는 게 나을까요?”

“형사님이 맘대로 결정하십시오. 저는 어느 경우나 상관없습니다.”

“정말 서울에 안 가도 돼요? 카페는 어쩌려고요?”

“보름이가 있잖습니까?”

“보름이가 사주까지 볼 수 있어요?”

“웬만한 선무당보다는 낫지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둘은 계속 걸어 폐쇄된 낚시터에 이르렀다.

유달은 버려진 의자 끝단에 엉덩이를 걸치듯 앉았다.

“더는 볼 것도 없습니다. 원귀는커녕 귀기(鬼氣)조차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백용규의 원혼이 승천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안 보이는 게 아닐까요?”

“아니요. 그놈은 죗값이 무거워 승천하지 못합니다. 분명 시체가 있는 곳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을 겁니다.”

“그럼, 여기도 아닌가요?”

“그렇다고 봐야 하는데······ 꺼림직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네요? 여기는 깨끗해도 너무 깨끗하단 말이죠. 이는 사람이 살지 않는 외딴 섬에서나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저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요.”

“강제로 정화 시켰나······ 그렇게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데?”

“정화는 또 뭐에요?”

유달은 장미란을 무시하고 혼자 대화했다.

“이렇게 깔끔히 처리할 수 있는 능력자가 우리나라엔 없는데? 아니야, 만복이라면 가능할 수도······.”

그녀는 이제 대답을 기대도 하지 않고 물었다.

“만복이는 또 누구고요······.”

“그 재수 없는 새끼와 이렇게 또 엮이는 건가? 예상치 못한 최악인데······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내가 병신 소리 듣는 거잖아? 염병, 누굴 탓해. 손만 대면 태평양처럼 일이 커지는, 내 팔자가 문제인 거지.”

벌떡.

혼자 중얼거리던 유달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장미란에게 말했다.

“실은 제가 고백할 게 있습니다.”

“갑자기요? 설마 내가 우려하는 그런 건 아니겠죠?”

“물론이지요. 저는 이번 생에 여자는 포기했습니다.”

“그럼, 무슨 고백인지 말해보세요.”

유달은 옆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얼었다.

“제가 무슨 일이든 쉽게 처리가 되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꼬이면서 일이 점점 커지게 되죠. 이번에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는데, 정말 위험한 놈을 상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위험한 놈인데요?”

“처음 문제가 되었던 기자 놈의 위험도가 1이라고 하면, 투자회사 대표가 아마 10쯤 되겠지요. 그런데 조만간 상대하게 될 놈은 100이 훨씬 넘습니다.”

유달만 심각한 표정이다.

장미란은 두려워하는 기색조차 없다.

100배 차이의 위험성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놈의 직업은 뭐죠?”

“저와 같은 무당인데 모시는 신이 다릅니다. 인간을 타락시키고, 탐욕에 빠트리는 아주 못된 신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를 마신(魔神)이라 부르지요.”

“마신?”

“보통 사람에겐 ‘사탄’이라 말하면 이해가 빠르더군요.”

“!”

장미란은 이제야 그 위험성을 실감하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만복이란 사람이 사탄의 숭배자인가요?”

“숭배자가 아니지요. 그놈은 마신과 일심동체입니다. 제가 아까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도 있다고 말했지요? 만복이 그놈이 바로 그런 짓을 합니다. 투자회사 대표에게 돈을 받고, 이곳에 떠도는 원혼들을 모두 소멸시키려 했을 겁니다.”

“승천과 비슷한 건가요?”

“전혀 다르죠. 승천은 안식을 찾아가는 것이고, 소멸은 존재 자체가 사멸하는 겁니다. 원혼들에게 가장 끔찍한 고통이죠. 조폭 두목처럼 죗값이 무거운 놈들은 상관없는데, 여기에는 원한이 무거워 승천하지 못하는 원혼들도 있어요. 자신들의 시신이 발견되길 바라며 떠도는 것이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백용규의 사체예요. 그자가 이 근처에 묻혀있는 게 확실하다면, 경찰을 불러 찾아내면 끝이지요. 소멸을 시키든 승천을 시키든, 만복이라 자와 부딪힐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그 조폭 두목의 원혼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확신합니까? 그리고 대무당의 적손인 저는, 이런 짓을 그냥 넘길 수 없습니다. 귀찮고 짜증 나도 할 건 해야지요. 아직 정화가 완벽히 이루어지진 않았습니다. 박만복, 그놈만 찾으면 소멸을 막을 수 있어요.”

“좋아요. 그런데 문제의 그 박만복 씨는 어디 살죠? 정확한 소재를 모르면 나이나,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 알려줘요. 제가 신원 파악 요청할게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지금 찾고 있어요.”

유달이 저수지 주변의 인가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소멸 의식은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특히나 이처럼 넓은 지역을 정화 시키려면 말이죠. 만복이 놈이라도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지요. 당연히 여기서 가까운 곳에 놈의 신당이 있을 겁니다. 도대체 얼마나 받았기에 이리 번거로운 짓을 하는지······ 아마도 저기 같습니다.”

척!

유달이 언덕 위에 있는 별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북유럽풍의 목조 건물이었는데, 은은한 조명을 받아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어떻게 확신하죠?”

“저 별장이 이 근방에서 제일 좋은 집일 겁니다. 그놈은 허세가 완전 쩝니다.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거, 무엇이든 최고여야 성에 차지요.”

“혹여 저 별장이 아니면요?”

“그다음 좋은 집을 찾으면 되지요. 그 집도 또 아니면 그다음 좋은 집으로 가면 되는데, 아마도 저 집이 맞을 겁니다.”

유달이 별장을 향해 발길을 옮기기 직전, 장미란의 의향을 물었다.

“저와 함께 움직이실래요, 여기서 기다리실래요?”

“제가 방해되지 않는다면 같이 가는 편이 게 낫겠죠.”

“당연히 저는 땡큐입니다.”

@

풍광 좋은 언덕 위의 고급 별장.

장미란이 초인종을 누르고 응답을 기다렸다.

-누구시죠?

인터폰에선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미란은 신분증을 인터폰 카메라에 보이며 말했다.

“경찰입니다. 강력 사건의 용의자가 근방에서 목격되어 탐문 수사 중입니다. 직접 뵙고,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계속 집에 있어서 아무것도 몰라요.

“원활한 수사를 위해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경찰에서 찾는 용의자는 매우 위험합니다. 저희가 지금 이 집의 안전을 확인하지 않으면 다른 경찰 또 찾아올 겁니다.”

-알았어요. 현관까지 들어오세요.

찌잉.

별장 철문이 열렸다.

운치 있는 돌계단을 오르자 잔디가 깔린 마당이 나왔다.

현관까지 이어진 현무암 디딤석을 밟고 걸으며, 유달이 깝죽대듯 말했다.

“거짓말을 진짜 능숙하게 잘하십니다?”

“내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꺼림직한 기운이 점점 강해집니다. 현관 안으로 들어가면 확실해질 것 같습니다. 그 뒤부터는 저한테 맡기십시오.”

“부탁인데, 내가 수습이 가능한 정도만 사고 치세요.”

“물론이지요.”

그들은 굳게 닫힌 현관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다.

철컥.

현관문이 열리고, 젊은 여인이 반쯤 몸을 내밀며 물었다.

“무엇을 확인한다는 것이죠?”

20대 후반에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는데, 화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목구비가 뚜렷한 서구형 미인이다.

장미란이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오늘 이곳을 방문한 낯선 사람이 있었나요? 택배나 음식 배달, 수도·가스 검침원 등등이요.”

“없어요.”

“집이 상당히 넓은데, 사설 방범 업체는 쓰고 계십니까?”

“아니요.”

“지금 함께 거주하시는 분은요?”

“없어요. 저 혼자에요.”

장미란은 난감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경우엔 저희가 그냥 돌아가기 힘듭니다. 외부 침입 예방법을 설명드려야 하는데, 잠시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꼭 들어야 하나요?”

“강제 사항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가 보고를 해야 하는 상사는 시민의 안전에 지나칠 만큼 철저하신 분이지요. 메뉴얼 대로 일 처리 못 했다고 저희를 혼내고, 다른 경찰을 보낼 가능성이 큽니다.”

“들어오세요.”

그녀는 현관문을 활짝 열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유달과 장미란이 신을 수 있는 거실 실내화까지 준비해 주었다.

유달은 응접실 소파로 향하며 무언가를 확신하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장미란이 별장 주인에게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름도 필요해요?”

“어떻게 불러드려야 할지 몰라서요.”

“백시연이에요.”

“저는 장미란 형사입니다. 이쪽은 경찰의 수사를 도와주시는 분이고요.”

“유달입니다. 음료수 같은 건 필요 없으니, 앉으시죠.”

주객이 전도된 분위기다.

소파에 먼저 앉은 유달이 백시연에게 권했다.

그녀는 유달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최대한 그와 떨어져 앉아, 장미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서 말씀하세요. 내일 중요한 일이 있어서, 빨리 끝내고 쉬고 싶네요.”

“그건 저와 함께 온 유달 씨가 말씀드릴 겁니다.”

백시연은 어쩔 수 없이 유달과 다시 눈을 마주쳐야 했다.

그녀의 얼굴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말이든 빨리하시죠?”

유달은 상체를 바싹 앞으로 당겨 거리를 좁혔다.

그러고는 속일 생각 하지 말라는 착 깔린 음성으로 물었다.

“만복이는 어딨습니까?”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나랑 똑같네?”

“예?”

“연기가 서툴러. 그쪽 동공에 지진 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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