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인류 최강의 무당.
굿 카페 주방.
한꺼번에 많은 주문이 들어왔다.
장미란과 협상하여 메뉴는 커피로 통일.
유달이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뜯어 넣고, 송보름이 전기포트에 끓인 물을 부었다.
곧이어 그들은 각자 커피 스푼을 들고, 경쟁하듯 열심히 젓기 시작했다.
송보름이 말을 붙였다.
“사장님, 정말 소문이 사실이었어요.”
“무슨 소문?”
“조폭과 강력계 형사는 외형상으로 구분이 안 된다는데, 진짜 같아요.”
“쓸데없는 소리······ 이 커피값은 누가 낸데?”
“형사 언니요.”
유달은 곱지 않게 쳐다보며 대꾸했다.
“언제부터 언니야?”
“FBI잖아요? 처음 봤을 때는 좀 재수 없는 느낌이었는데, FBI 출신이란 말을 듣는 순간, 형사 언니의 모든 게 이해되는 것 같아요.”
“대체 뭐가 이해되는데?”
“정직 먹고 여기에 온 것과 형사들 불러들인 것 말이죠. 아마도 사장님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인 것 같아요. 사장님이 신변보호는 죽어도 싫다고 하니까 말이에요. 이제 조폭들이 떼로 들이닥쳐도 걱정 없어요. 언뜻 들으니까, 경찰 특공대도 있는 것 같던데, 정말 고맙지 않아요?”
“고맙기는······ 어서 커피나 쟁반에 담아.”
유달은 커피 12잔을 쟁반에 담아 창고로 향했다.
그는 이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호기심이 동했는지, 잠시 멈춰 서서 무슨 말을 하는지 엿들었다.
장미란이 모임을 주도했다.
그녀는 편안히 팔짱을 하고 서 있는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는 형사들에게 말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이번 작전은 공적인 수사와 별개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공적인 업무가 없는 비번이 경우에만 참여할 수 있어요.”
형사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망을 통해 미리 전달 드렸는데요. 서울 광수대 강 팀장님이 쪽이 골드윙의 권도훈을 맡고, 마포서 방 팀장님 쪽이 대성일보의 김형식을 맡을 거예요. 방 팀장님 먼저 지금까지 조사한 거 공유해 주세요.”
양복 차림의 형사가 일어나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것도 건진 게 없습니다. 김 기자는 권도훈과 엮을 만한 연결고리도 없고, 알리바이를 깰 수 있는 증인이나 물증도 찾을 수 없었고요. 계좌 조회도 꼼꼼히 했는데, 사건 전후로 큰돈이 오고 간 흔적은 없었습니다.”
장미란이 고개를 끄떡이며 대꾸했다.
“계속 수고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특별팀을 구성해서 보강 수사하는 걸 기자들에게 은밀히 노출 시키세요. 김형식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태연할 수 있는 사이코패스가 아니에요. 수사망이 좁혀온다는 압박감이 심해지면 빈틈을 노출 할 수도 있어요.”
장미란이 조폭 두목 같은 형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강 팀장님, 말씀하세요.”
“우리 팀은 권도훈의 예전 보스였던 백용규의 행적에 다시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놈은 동남아로 밀항해서 수사 중단되었는데, 권도훈이 죽였다는 정보가 확실한 겁니까?”
“그런 가정하에 조사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요? 암매장 장소는 저수지나 낚시터 등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빅데이터 수사기법으로 20곳을 추렸습니다. 하지만 시체를 찾으려면 다수의 경찰 인원과 잠수부까지 동원해야 하는데, 비공식 수사에선 불가능한 일이죠.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도 몇 달이 걸릴지 모릅니다.”
“제가 다른 사건과 엮어서 수색을 실시 할 수 있지만, 기껏해야 한두 곳 정도에요. 좀 더 세밀히 조사해서 추정 장소를 줄여주······.”
갑자기 말을 멈춘 그녀가 입구를 향해 말했다.
“유달 사장님, 커피 식으니까 빨리 들어와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커피 쟁반을 앞세운 유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례합니다······.”
그는 탁자 위에 쟁반을 내려놓다 수사 파일을 발견했다.
“아, 이놈이 권도훈에게 매장당한 두목이군요.”
광수대 강 팀장이 황급히 파일을 덮으려 했는데, 장미란이 괜찮다는 눈빛을 보냈다.
유달은 손바닥 크기의 사진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언제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칼에 찔려 암매장까지 당할 것 같진 않아 보이네요.”
장미란이 농담처럼 물었다.
“어떤 점쟁이들은 사진만 보고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확히 맞추던데요?”
“그리 용한 재주가 있다니 정말 놀랍네요? 그 점쟁이에게 여러 장의 사진을 펼쳐놓으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정확히 골라낼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저는 그냥 TV에서 본 것을 말했을 뿐이에요.”
“아쉽게도 제가 사진상으로 알 수 있는 건, 사진을 찍었을 때의 기운입니다. 이 조폭 두목이 사진을 찍었을 시기는 아주 잘나가던 시절이었을 겁니다. 아, 그리고! 제가 이놈을 찾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돕겠다는 거죠?”
“저는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 장소에만 데려다주시면 끝! 대규모의 경찰 인력이나 잠수부가 필요 없습니다. 물론 공짜는 아니지요. 커피 12잔의 사주·관상은 안 보고, 퉁치는 걸로?”
소파에 앉아 있는 형사는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었는데,
“좋아요. 스무 곳이나 되는 곳을 확인하려면 서둘러서 움직이죠.”
“그러시죠. 저도 빨리 끝내고 장사해야 하니까. 참고로 저는 운전하지 않습니다.”
“시키지도 않아요.”
둘은 황급히 창고를 빠져나갔다.
형사들의 눈에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죽이 잘 맞는 파트너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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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무렵의 어스름한 하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한 대의 차량.
장미란은 온종일 유달을 태우고 다니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녀는 비포장도로 접어들자 속도를 늦추며 물었다.
“어떻게, 차만 타면 조용해지네요?”
“습관입니다.”
그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무슨 습관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사람과 귀신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영험한 기운을 타고났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모님은 저를 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물었죠.”
그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달아, 지금 밖에 몇 명이 보이지?
“저는 창밖에 보이는 그대로를 말했죠.”
-세 명이요.
“이모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어요.”
-내 눈에는 두 명밖에 보이지 않는구나. 지금 함께 걸어가는 사람 중에 누가 산 사람이 아닐까?
“그러면 저는 집중해서 그들을 관찰했죠. 수다를 떨며 다가오는 고등학교 누나들이었어요. 생기발랄한 얼굴에 교복도 똑같고······ 하지만 귀신의 외형은 살아 있는 사람과 온전히 똑같을 순 없어요. 저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이모님에 말했지요.”
-가운데 있는 누나가 귀신 같아요. 다른 누나들은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심하게 흔들리는데, 가운데 누나만 아무렇지도 않아요.
-잘했다, 달아. 이제 아주 척척 맞추는구나.
“이모님은 저는 안아주며 칭찬해줬어요. 그런데 때로는 귀신과 눈이 마주치기도 해요. 순간, 섬뜩하게 눈이 변하면서 저를 향해 달려들지요. 최근에 죽은 귀신일수록 더욱더 필사적이죠.”
유달은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까악! 까아악!
벅벅벅벅벅벅.
“창에 달라붙어 괴성을 지르고, 차를 긁어대는 소리까지 똑똑히 들렸지요. 이모님은 괜찮다며 저를 더욱 꼭 안아주셨어요. 저는 무서웠지만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이모님의 차는 원귀들이 침입 못 하는 영험함이 깃들어 있었거든요. 이것이 제가 차만 타면 조용해지는 사연이며······ 운전을 안 하는 이유 되겠습니다. 어때요?”
운전하는 장미란이 대답했다.
“재밌네요.”
솔직한 심정은 아니었다.
시골길의 스산한 분위기 때문인지 그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유달이 말이 사실일까 하는 호기심도 들었다.
때마침 낡은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장미란은 속도를 늦추며 물었다.
“지금 밖에 몇 명이 보여요?”
유달이 심드렁히 대답했다.
“두 명이요.”
“!”
장미란은 등골이 또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한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
끼이익.
장미란이 차를 세우고 물었다.
“제 눈에는 한 명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아마도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할아버지일 테지요. 어린 여자아이가 자전거 뒤에 타고 있는 건 보이지 않을 것이고요. 분위기는 아주 좋네요. 다소곳이 뒤에 앉아 할아버지의 모습을 해맑게 바라보고 있어요.”
“······.”
장미란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유달이 장난을 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죽은 손녀일까 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네요. 입고 있는 옷이 너무 촌티 나요. 몇십 년 전에나 입힐 법한 것이고 귀신은 나이를 먹지 않으니 딸인가 싶네요. 저 할아버지도 뭔가를 느끼는 걸까요? 고물이나 다름없는 자전거를 못 버리니 말입니다.”
끼익, 끼이익.
할아버지가 타는 자전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량 옆을 지났다.
“아, 방금 아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순간, 애틋할 뻔한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쩌지요? 제 차에는 악귀를 막는 영험함이 없는데?”
그녀의 반응엔 과장됨이 섞여 있었다.
유달의 장난에 장단을 맞춰주는 것인지, 정말 무서움을 느끼는 것인지 구별하기 애매했다.
“괜찮습니다. 형사님은 지금 인류 최강의 무당과 함께하고 있는 겁니다.”
지이이잉.
유달이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었다.
“안녕? 옷이 매우 예쁘네?”
곧이어 둘이서 하는 듯한, 혼자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응······ 아빠가 아프지 말라고 사준 거야? 집에만 누워있으면 당연히 진력나긴 하지. 아빠가 자전거 태워줄 때가 가장 좋았구나.”
곧이어 타이르듯 목소리가 변하고,
“그래도 죽었으면, 얼른 승천해야지? 잘못하면 지박령이 될 수도 있어.”
이내 또 얼굴이 풀어졌다.
“응······ 아빠하고 같이 자전거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갈 거라고? 알았어. 그러면 아빠하고 최대한 늦게 올라가. 나쁜 무당이 조심하고. 빠이빠이~.”
유달은 미소 띤 얼굴로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지이잉······.
창문을 닫은 유달이 말했다.
“이제 출발하시죠.”
장미란이 차량 기어를 바꾸며 넌지시 물었다.
“유달 씨는 연애하기 힘들겠어요?”
“왜요?”
“데이트하다가 이런 모습 보이면, 여자가 소리치며 도망치지 않을까요?”
“아픈 곳 찌르지 마십시오.”
부웅.
다시 차량이 출발하고, 길을 더 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