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12화 (12/183)

12화- 거친 사내들

유달이 취침을 해결하는 사장실 안.

현찰 3억이 담긴 돈 가방을 내밀었던 김승수는 어이가 없었다.

그가 예상했던 반응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김승수가 가방을 여는 순간, 유달은 수풀 속에서 뱀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분명 장난은 아니었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맺히고 욕도 서슴지 않았다.

“아, 시파! 갑자기 내밀면 어쩌자고? 닫아, 담아, 어서 닫으라고!”

툭.

김승수가 가방을 닫자, 그제야 유달이 안정을 찾았다.

유달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우와- 진짜 어이가 없네? 도대체 이 무거운 현금을 왜 들고 다니는 겁니까? 돈으로 입막음하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데? 무기명채권도 있고, 가상화폐도 있고, 골동품이나 그림 같은 현물도 있고. 현찰로 넘겨줄 거면 미리 양해를 구하던가······.”

김승수는 영문을 모르는 사과를 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거의 모든 분이 현금을 요구했기에 준비했던 것입니다. 제가 사장님이 선호하는 방식을 잘 몰랐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어떤 것으로 대가를 받고 싶으십니까?”

유달은 너무 놀라서 의자가 뒤로 넘어갈 뻔한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안 받습니다. 무겁겠지만 도로 가져가세요.”

“사장님께서 협조만 잘해주시면, 이 금액의 두 배를 더 얻을 수 있습니다.”

“안 받는다니까요?”

“사장님은 제가 무엇을 요구하지는 지도 모르고, 무조건 거부하고 계십니다.”

“점괘를 보지 않아도 뻔한 거 아닙니까? 투자회사 대표의 심기 건들지 말고, 입 다물고 있으라는 거겠지요.”

“맞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이 많은 돈을 드리겠다는 겁니다. 거기에 더해 사장님이 저희 고객분께 하셨던 말이 있는데······.”

김승수의 목소리자 작아지자 유달이 대뜸 말했다.

“그 고객이 가장 신임하는 부하에게 칼 맞을 거란, 신점 말이지요?”

“네, 그에 대한 추가 정보를 주시면 이 가방에 있는 금액에 두 배를 더 얹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말 한마디로 부자가 될 수 있는 행운을 잡으신 겁니다. 제 고객분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싫은데요? 전혀 관심 없습니다.”

김승수는 답답하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유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심각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장님, 제가 아는 고객분은 이리 마음이 넓은 분이 아닙니다. 합법과 불법적인 방법을 총동원하여 괴롭히는데,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왜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지, 솔직히 저도 모르겠습니다. 사장님을 생각하여 말씀드리는데, 받아들이십시오.”

유달은 즉각 대답했다.

“거절하겠습니다.”

“이리 완강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그런데 정말 소문처럼 유별난 분이시군요?”

유달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저에 대해 압니까?”

“저희 로펌에는 학국대 법학과 출신이 많습니다. 사장님의 정신세계는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 거라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장님의 뜻은 제 고객분에게 확실히 전해드리겠습니다.”

김승수가 가방을 들고 일어서려는 때였다.

“잠깐.”

유달이 마음을 바꿨나 했는데, 아니다.

“사주·관상은 보고 가야지요?”

“괜찮습니다. 제가 바쁜 몸이라······.”

“일단은 내가 괜찮지 않아요. 보시다시피 제가 공짜 돈을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금방 끝낼 테니, 여기에 한자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주시지요.”

김승수는 유달이 내미는 메모지를 바라봤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메모지를 자기 쪽으로 가져와 적었다.

이에 유달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보름아!”

“네, 사장님.”

“커피 믹스 타는데, 왜 이리 오래 걸려? 빨리 가져와. 커피도 안 주고 돈만 받으면 내가 미안하잖아.”

“알았어요. 지금 가고 있어요.”

송보름이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가져온 커피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냉큼 다시 밖으로 나갔다.

“다 적었습니다.”

유달은 김승수가 거네는 메모지를 받자마자, 바로 사주풀이를 시작했다.

“우와, 타고난 문필의 능력이 출중하고 언변으로는 당할 자가 없으니, 변호사가 되시길 잘한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사주와 관상을 함께 봅니다. 영험함을 타고나야 가능한 일이지요.”

“상관없으니 빨리만 봐주십시오.”

“지는 걸 싫어하고,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으니 남부럽지 않은 출세를 할 것인데······ 솔직히 이런 사주는 부모가 아주 힘들어요. 자식놈이 똑똑하니 뭔 짓을 해서든 가르치고는 싶은데, 살림살이는 빠듯하고, 남편도 없는 과부의 처지라면 더욱더 말이죠?”

“!”

“식당일, 보험일, 닥치는 대로 해도 빚만 늘고, 몸은 안 아픈 데가 없고, 자식놈에게 너무 욕심내지 말자 말하고 싶은데, 출세하면 호강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이 악물고 버텼는데······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이승을 떠나고 말았군요.”

“!”

“우선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요. 힘들게 공부시켜 변호사를 만들어 놨으니, 이제는 편히 좀 살만한 것 같았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

“하이고, 자식놈이 회 좋아한다고, 수산물 시장 갔다가 당한 봉변을 당했군요. 호강시켜주겠다는 자식놈은 장례식에서도 울지 않고, 보험금 타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잘살고 있으니······ 결국은 자식놈만 호강했네요?”

김승수는 아무 감흥 없이 말했다.

“끝입니까?”

“네, 바쁜 몸이라고 하셔서.”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굳이 사주를 봐주셨으니 저도 충고 하나 해드리죠. 나중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저처럼 고분고분하지 않을 겁니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얼마지요?”

“계산은 밖에서 하시면 됩니다.”

김승수는 커튼을 젖히고 사장실에서 나왔다.

그는 뚜벅뚜벅, 계산대로 다가가 송보름에게 물었다.

“얼마지요?”

“네, 만 원입니다.”

“잠시요.”

김승수는 손에 든 가방을 계산대에 올려놓고 지갑을 뒤졌다.

이에 장미란은 순간적인 충동을 참지 못했다.

“킁킁······.”

그녀는 살며시 고새 숙여 가방 냄새를 맡았다.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기는 한데, ‘돈 냄새’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김승수가 오만원권을 꺼냈다.

“여기요.”

“잠시만이요. 잔돈 드릴게요.”

“아니요. 됐습니다.”

딸랑딸랑.

김승수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송보름이 장미란의 옆구리를 찔렀다.

“형사 언니, 봤어요?”

“뭘?”

그녀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열심히 가방 냄새만 맡고 있었다.

“방금 나간 변호사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인데,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계산했어요?”

***

촤악.

유달이 검은 커튼을 활짝 열어젖히며 나왔다.

그는 목욕탕에라도 갔다 온 듯 매우 개운한 표정이다.

“아우, 살 것 같아! 에둘러 말하지 않고 그냥 쏴댔더니, 스트레스가 쫙 풀리네.”

장미란은 그가 계산대까지 오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방금 나간 변호사의 가방에 현금이 가득했나요?”

“그렇습니다. 놀라 뒈지는 줄 알았습니다. 나도 보름이처럼 돈 냄새에 민감하면 대비할 수 있었을 텐데······.”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 3억 거부하고 만원 벌었어요. 그 돈 받았으면 몇 년은 놀고먹을 수 있었잖아요?”

“제가 미쳤습니까? 그리 구린 돈을 받게. 한번 받으면 끝이 아니라 이를 빌미로 그놈은 뭔가를 또 시킬 겁니다. 나는 쉽게 버는 돈에 맛들려 그 일을 또 하게 되고, 결국엔 그놈의 똘마니가 되는 거죠.”

“현명하시네요.”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변호사가 넌지시 말해줬는데, 조폭들이 떼로 몰려와 뭔가 저지를 것 같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신변 보호 요청하시죠?”

“싫습니다. 저는 체질상 조폭도 싫고, 경찰도 똑같이 싫습니다. 아, 장미란 형사님도 싫다는 건 아닙니다. 형사님은 뭔가 통하는 느낌이 있어 예외입니다.”

“고맙네요.”

딸랑딸랑.

문소리가 들리자 둘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이번에는 심상치가 않았다.

거친 인상의 사내들이 떼로 들어왔다.

유달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는데, 장미란이 그들에게 아는 척하며 손 흔들었다.

“어서들 와요.”

거칠어 보이는 사내들 역시 반색했다.

“여기가 맞는군요? 위장이 아니네요? 진짜 사주카페일 줄은 몰랐습니다.”

유달이 장미란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어떤 분들이죠?’

“제가 아는 강력계 형사들이에요.”

그녀는 안심하라는 듯 대답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조폭 두목처럼 생긴 형사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장 팀장님, 본부로 쓰기에는 너무 개방적인데요?”

‘무슨 본부?’

유달은 불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 보였다.

장미란은 명품이 가득한 신당 맞은 편, 사장실처럼 검은 커튼으로 가려진 입구에 멈춰서며 물었다.

“유달 씨, 여기는 뭐 하는 데예요?”

“창고인데요? 위에 쓰여 있지 않습니까?”

파란 매직으로 막 써서 붙인 게 있기는 했다.

-창고.

촤르르.

장미란은 커튼을 젖혀 창고 내부를 살피고 말했다.

“그런데 무슨 창고에 아무것도 물건이 없어요?”

“매상이 얼마라고 창고에 넣을 물건이 있겠습니까? 하도 손님들이 화장실인 줄 들어가서 창고라고 써 붙였습니다.”

“잘됐네요. 그럼 우리가 여기를 쓸게요.”

유달은 부정적인 기색으로 대답했다.

“글쎄요. 저리 막힌 공간은 소방법에 접촉될 수도 있고요······.”

“그건 저희가 책임질게요.”

이어 그녀는 홀에서 서성거리는 형사들에게 말했다.

“본부 설치 시작하죠.”

“알겠습니다.”

형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소파와 탁자를 옮겼다.

유달은 안타까운 표정 금할 길 없었지만, 만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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