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7화 (7/183)

7화- 오작동?

지하철역 인근 커피숍 초우.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아니다.

정원에 있는 듯 수많은 화초로 꾸민 개성 있는 커피숍이다.

딸랑딸랑.

김형식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젊은 여자 종업원이 인사했다.

김형식은 이에 상관치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야?”

먼저 기다리겠다는 유달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잠시 고심하다가 길가 풍경이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사주카페 사장이 일부러 늦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휘잉.

창밖을 바라보는 김형식의 눈에 미친 듯이 달려 지나치는 유달의 모습이 보였다.

이거 그는 황급히 커피숍 문을 열어 들어와 김형식에게 다가갔다.

“미안, 미안, 내가 늦었지? 근처에 우산 파는 데가 근처에 없어서 말이야.”

“오늘 비가 올 확률은 거의 없는데?”

“기상청 슈퍼컴퓨터는 섬세함이 떨어지니 나를 믿어. 자, 받아.”

유달이 사 온 우산은 두 개였는데, 그중 하나를 박형식에게 내밀었다.

박형식은 귀찮다는 손짓하며 거부했다.

“나는 필요 없어.”

“후회할 텐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 그때 왜 내 멱살을 잡고 난리를 쳤던 거지? 장 팀장이 시켰나?”

유달은 털썩 소파에 앉으며 대답했다.

“그 일은 나도 유감이야. 예상치 못한 사고라고 할까, 원한에 찬 망령이 빙의하는 걸 내가 막지 못했어. 천기가 바뀌는 시기의 혼란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 망령의 입장에서는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이봐, 그렇다면 내가 그 경찰을 죽였다는 거야?”

“당연한 걸 나한테 왜 물어? 하지만 나는 그쪽이 뭔 짓을 했건 상관 안 해. 나에 대한 고소만 취하하면 더는 얽힐 일이 없을 거야.”

박형식은 기도 안 찬다는 반응이다.

“정말 유치하게 놀고 있네? 지금 장 팀장과 짜고 연극 하는 거 내가 모를 것 같아. 그 경찰을 내가 죽였다고 인정하는 말을 녹음하려고 말이야.”

“무슨 소리야? 그 여자 형사는 그쪽 알리바이가 완벽하다고 체포할 생각도 안 하고 있어. 내가 어렵게 찾은 목격자의 말까지 생까고 있다니까?”

“목격자?”

“걱정하지 마. 절대 법정에서 진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경찰들이 병신 같이 굴고 있어서, 절대 잡힐 일은 없을 거야. 내 고소 건만 취하하면 완전범죄가 되는 거야.”

“유별난 놈이라 들었는데, 완전히 미친놈이네. 이런 식으로 날 위협하시겠다?”

“환장하시겠네. 위협이 아니라고 이 병신아!”

***

명동 번화가 굿 카페.

송보름이 스마트폰에서 동영상을 찾으며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갑자기 이상해졌어요. 정신 병원에 들락거린 건 생략할게요. 아빠도 어쩔 수 없이 용하다는 무당이나 퇴마사들 찾기 시작했지요. 우선은 맛보기 영상부터 보여드릴게요.”

그녀는 장미란이 잘 볼 수 있게 손에 쥔 스마트폰을 틀었다.

장미란은 살짝 고개 숙이며 화면을 주시했다.

“천녀보살이라고 무속계에선 아주 유명했데요. 아빠가 특별히 부탁해서 굿을 하게 되었죠.”

틱.

송보름이 화면을 터치하자 동영상이 시작되었다.

고급 맨션의 응접실로 보이는 집안.

소복을 입은 송보름이 바닥에 앉아 있고, 굿을 하는 장구와 북, 징과 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푸른색 장군복을 입은 50대 여인이 천녀보살인 듯, 신칼을 휘두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댕댕댕댕댕댕댕.

무악(巫樂)의 박자는 빨라지고 천녀보살의 춤사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그러나 바닥에 앉아 있는 송보름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은 짙은 화장을 한 모습이었다. 도도한 눈빛으로 천녀보살을 바라보았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에는 애쓴다는 비웃음이 번졌다.

결국, 굿은 중단되었다.

천녀보살이 벅찬 숨을 진정시키고 물었다.

-대체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송보름은 엷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이에 천녀보살은 노여움을 띤 표정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펼쳐지는 치열한 눈싸움.

정확히는 천녀보살만 힘들고 괴로워 보였다.

송보름은 범접할 수 없는 기괴함과 여유로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천녀보살은 보이지 않은 힘에 굴복하듯 점차 몸이 허물어졌다.

털썩.

그녀는 송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송보름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에게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그러고는 귓속말을 하듯 짧게 말했다.

-꺼져줄래?

순간,

-커억!

천녀보살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깔깔깔깔, 깔깔깔깔깔!

송보름은 피가 튄 얼굴로 간드러진 웃음을 터트렸고, 무악을 연주하던 이들이 경악하며 정신을 잃은 천녀보살을 엎고 도망쳤다.

현재의 송보름이 다음 동영상을 찾았다.

“그나마 천녀보살이 나았던 것 같아요. 법력이 엄청나다는 스님, 수많은 악귀를 쫓았다는 목사, 퇴마가 전문이라는 도사들도 다 소용없었어요.”

그녀는 퇴마의식을 행했던 영상을 연이어 보여주었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송보름의 몸속에 든 악귀를 쫓으려 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꺼져줄래?

-컥!

-깔깔깔깔, 깔깔깔깔깔!

송보름은 화며 속 자신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어떻게 내가 저리 웃을 수 있었지? 퇴마사들의 비명도 참 가지가지고요. 이거 동영상 공유 서비스에 올리면 진짜 대박일 거예요. 안 그래요?”

송보름은 재미난 영상 모음이라도 보는듯한 반응이다.

하지만 실제 화면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꺼져줄래?

-크아아악!

어떤 이는 벽에 머리를 박아 피범벅이 되고, 또 어떤 이는 십자가로 자기 눈을 찔러 버렸다.

송보름은 정도가 심한 영상만 일부러 골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장미란이 기겁하여 굿 카페에 관한 관심을 끊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강력계 형사인 그녀는 잔인한 장면에 이미 단련되어 있었다.

장미란이 무덤덤한 음성으로 물었다.

“가톨릭 신부님의 엑소시스트는 없네?”

“엑소시스트 조건이 맞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성수 뿌리면 괴로워하고, 십자가 들이대면 피해야 하는데, 저는 성수 마시고, 십자가 색칠해서 놀았거든요. 자, 이제 유달 사장님 차례에요. 등장부터 사장님다운 모습이었죠.”

틱.

그녀의 터치로 마지막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

지하철역 인근 커피숍 초우.

주문한 커피가 나왔지만, 그들은 입도 대지 않았다.

똑같은 말이 계속 반복하는 상황이다.

유달은 왜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지 답답했다.

“그러니까, 고소를 취하하라고? 그럼 다 끝이라고. 나는 그쪽이 무슨 짓을 했든 관심 없다고. 내 몸에 도청 장치 없는 거 확인했잖아?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정말 몰라서 물어? 너는 지금 내가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다는 가정하에 말하고 있잖아? 내가 고소를 취하하면, 그 짓을 했다고 인정한다는 것인데, 너 같으면 하겠어?”

“정말 환장하시겠네? 그쪽이 고소 취하 안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나는 경찰서와 법정 들락거리느라 탈모가 생길 수 있고, 그쪽은 감방에서 썩는다고? 서로 윈윈(win-win) 하자는 것인데, 망설이는 이유가 뭐야?”

김형식은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그는 유달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답답하고 짜증 났지만, 어리숙한 면이 확연히 보였다. 잘만 꼬시면 넘어올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장 팀장이 어떤 제안을 했지? 돈이야? 아니면 경찰을 도와 흉악범을 잡았다는 홍보를 노리는 거야? 솔직히 말해봐. 그러면 고소를 취하해줄게.”

“계속 솔직히 말하고 있거든.”

“너 진짜 미친놈이구나? 장 팀장에게 완전히 실망이네. FBI 출신이 이런 수법이 먹힐 거라 생각한 건가? 너 똑똑히 들어. 고소 취하는 절대 없어. 지금 하는 사주카페도 조만간 문 닫게 해줄게.”

“거절이야?”

“당연하지. 이 사기꾼 무당 새끼야. 앞으로 나한테 절대 연락하지 마라. 알았어?”

“사이비도 아니고 사기꾼? 그쪽이 선을 넘었으니 나도 더는 할 말이 없네. 너는 이 순간을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그만 쫑알거리고 조용히 꺼져라. 별것도 아닌 새끼 때문에 시간만······.

김형식이 커피잔을 향해 손을 가져가는 때였다.

촤아아아!

스프링클러가 터지며 물줄기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뭐, 뭐야!”

김형식은 갑자기 쏟아지는 물줄기에 크게 당황했고, 유달은 여유롭게 우산을 펼치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필요할 거라고 했잖아.”

“!”

박형식은 부릅뜬 눈으로 유달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몸이 흠뻑 젖는 것도 상관치 않았다.

곧이어 젊은 여종업원이 수건을 들고 뛰어왔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화재가 발생한 건 아닙니다. 스프링클러가 오작동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그녀는 황급히 김형식의 몸을 닦아주었다.

그가 계속 물줄기를 맞으면서도 꼼짝 않기 때문이었다.

유달이 우산을 쓴 채 다가갔다.

그러고는 젊은 여종업원이 들을 수 없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오작동일까? 내 눈에는 그쪽 뒤에 서서 노려보는 원귀가 보여. 네놈을 향한 복수심 때문에 활활 불타오르는 모습이야.”

@

명동 번화가 굿 카페.

장미란의 시선은 동영상에 고정되었다.

다양한 퇴마의식이 펼쳐졌던 고급 맨션의 응접실.

짙은 화장을 한 송보름이 소파에 앉아 있고, 그녀의 부모는 초조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띠리링, 띠리링.

현관 벨 소리가 들리자 송보름의 아버지는 황급히 뛰어나갔다. 카메라 각도 때문에 현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인사를 나누는 목소리만 들렸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이모님이 하도 성화를 하셔서······.

-여기가 맞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곧이어 응접실로 들어오는 유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비굴해 보일 정도로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제가 심장이 좀 약합니다. 따님의 모습이 영화처럼 막 목이 돌아가거나 그렇지는 않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유달은 순간 안도했는데, 아직 말이 끝난 게 아니었다.

-목이 돌아가는 건, 퇴마하시는 분들이었죠.

-헐······.

유달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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