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굿 카페-6화 (6/183)

6화- 천재인가?

유달이 사주와 이름이 적인 종이를 들었다.

바로 앞에는 중국인 여자 관광객 세 명이 앉아 있다.

20대 후반의 그녀들은 무슨 말이 나올지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한참을 살피던 유달이 옆에 앉은 장미란에게 물었다.

"이거 중국어 이름 뭐라고 읽어요?"

"양경희. 그냥 한국식으로 말하면 제가 알아서 통역할게요."

고개를 끄덕인 유달이 맨 왼쪽 여자를 바라보았다.

"우리 경희씨는 참 복이 많아요. 부모복에 재물복도 있어 사업이 승승장구. 그런데 연애복은 지지리도 없단 말이죠."

유달이 말을 끊자 곧바로 장미란이 통역했다.

그녀의 통역이 끝나자 관광객들은 즐겁게 놀라며 손뼉까지 쳤다. 신통하다는 반응이 분명했다.

유달이 자신감을 얻었다.

"괜찮은 남자들을 만나기는 하는데 오래 가지 못해요. 양다리나 집안의 반대 같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넘겨도 되는 아주 사소한 일로 깨지게 된단 말이죠."

통역을 들은 양경희의 표정이 굳어졌다.

신통함을 넘어 약간의 두려움까지 느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너무나 강한 인연의 끈이 경희 씨를 잡아당기기 때문이에요. 조만간 인연의 주인공이 나타날 것이고, 강철처럼 질기게 헤어지지 않고 잘 살 수 있어요.“

양경희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졌고, 유달은 가운데 앉아 있는 관광객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추미호 씨는 일단 얼굴이 예뻐요. 여자 관상 아무리 좋아도 얼굴 예쁜 거 못 따라가지요. 하지만······."

유달의 사주풀이와 달변은 중국인 관광객에게도 통했다. 테이블을 옮길 때마다 환호성과 박수, 엄지 척이 이어졌다.

장미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리 고객만족도가 높은데 장사가 왜 안 되는 것일까?

성황리에 사주풀이를 끝낸 유달이 카운터로 향했다.

"물!“

유달이 시원한 물 한 잔 들이켜고 물었다.

"보름아, 매출 얼마야?"

"대충 계산해도 일주일 치 매상이 넘었어요."

"우와, 단체 관광객 받으면 하루 장사하고 일주일은 놀 수 있겠어!"

"그러게요!"

장미란은 왜 장사가 안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기분이 들떠 있는 유달에게 다가갔다.

"장사보단 놀 궁리부터 먼저 하시나요?"

"그러는 형사님은, 범인 안 잡고 뭐 하십니까? 오늘 매상 올려줘서 고맙긴 하지만."

"제가 퇴직이 얼마 안 남은 몸이라."

"그래도 할 일은 하셔야죠. 빨리 그 기자 놈부터 처넣으란 말입니다. 난 송사에 휘말리는 거 싫다고요."

"체포할만한 증거가 있어야 잡아넣지요? 꼬마 귀신도 김 기자가 했다고 하지는 않았잖아요?"

유달이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디까지 밥 떠먹여 줘야 하는데요? 그놈이 확실하단 말입니다. 사건 당일 그놈의 행적을 조사해보라고요"

“이미 했는데, 김 기자는 범행 시간에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어요.”

"정말이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우리 서의 경찰이 살해된 사건인데.”

“정말로 완벽한 알리바이냐는 말입니다. 수십 명의 사람과 다른 장소에 있는 게 CCTV에 찍혔냐 말이죠?”

“CCTV 자료는 없지만, 여러 명이 함께 술 마셨다고 증언하고 있어요.”

“아, 미치겠다. 소송 취하 안 하면 엄청 귀찮아지는데. 원귀들이 가득한 경찰서와 법원을 왔다 갔다······ 생각만 해도 짜증이 물밀 듯이! 변호사 비용은 또 어떻게 구하지?”

유달은 순간 결심한 듯, 장미란을 바라보았다.

“그놈 어디 신문사 다닙니까? 휴대폰 번호 알려주면 더 좋고요.”

“드디어 사과할 마음이 생기셨나요?”

“천만에요! 내가 왜 그런 놈에게 사과합니까?”

“그럼 어쩌려고요?”

“그 기자 놈에게 누굴 건드렸는지 알려주려고요. 사람이건 귀신이건, 나를 해코지하려 해서 무사했던 놈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미안하지만, 피해자의 정보는 함부로 알려줄 수 없어요. 연락처 알고 싶으면 그쪽 변호인 통해서 하시죠.”

“끝까지 안 도와주시네.”

“이게 제대로 도와주는 거예요.”

@

대성일보 사회부.

-띠링, 띠링, 띠링.

김형식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 번호를 확인한 그는 반색하는 표정이었다.

“장변,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이번 고소 건에서 나는 빠진다.

김형식은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귀가 먹었냐? 유달이라는 사주카페 사장 고소 건에서 나는 빠진다고. 이제 확실히 알아들었어?

“그러니까, 왜냐고?”

김형식은 일방적인 통보에 짜증이 치솟았는데, 상대방이 먼저 화를 냈다.

-야, 이 자식아, 누구 망하게 할 일 있어? 그놈이 내 법학과 후배라고 말해줘야 했을 것 아니야! 진심으로 경고하는데, 그놈하고 악연으로 얽히는 짓은 하지 마라. 끊어!

“자, 장변?”

김형식은 어이없고 혼란스러웠다.

어이없는 건 사주카페 사장이 한국대 법학과 출신이라는 것인데, 그리 똑똑해 보이진 않았었다.

혼란스러운 이유는 장변이 받아들인 의뢰를 갑자기 중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고소 피의자가 같은 학교 후배라서? 절대 아니다. 그는 인정과는 매우 거리가 먼 변호사였다. 자신에게 큰 해가 된다고 판단했기에 포기한 게 분명했다.

‘대체 카페 사장의 정체가 뭐지?’

그를 알만한 사람이 때마침 눈이 보였다. 서류 뭉치를 든 정치부 기자가 김형식의 책상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 기자, 잠시 얘기 좀 할까?”

“예, 말씀하세요. 선배님.”

“자네 한국대 출신이지? 혹시 유달이라는 사람 알아? 비슷한 시기에 학교 다녔을 것 같은데.”

“유달? 아, 그 공붓벌레요?”

한국대는 수재들의 집합소였다.

가장 흔한 게 전교 1등. 공부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그들이 공붓벌레 운운하면 보통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내게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어?”

“그놈은 진짜 공부밖에 모르는 놈이었어요. 도서실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어요. 그러니까 학기 중에 사시 패스할 수 있었죠.”

‘천재인가!’

순간 당황했던 그는 생각을 바꿨다.

‘아니, 공부만 잘하는 바보일 가능성이 커. 어벙해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법고시에 붙고도 사주카페나 하는 것이겠지.’

김형식은 자신의 예상이 맞길 바라며 물었다.

“그런 사람이 왜 사주카페를 하고 있는 거지?”

“그놈 사주카페 하고 있데요?”

“응······.”

깜짝 놀라 반문했던 이 기자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놈이 좀 유별나긴 했죠. 그러니까 같은 과도 아닌데 제가 기억하는 거고요.”

“어떻게 유별났는데?”

“사시 패스하고 얘가 확 바뀌었어요. 만날 클럽에서 춤추고 놀러만 다니더니, 주식하고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어요.”

“완전히 인생 망가졌겠네?”

“아니요? 완전 떼돈 벌었어요. 선택하는 종목마다 상한가 치고, 절묘한 타이밍에 빠져나와 수익률이 엄청났죠. 경영학과 교수님들도 돈 맡길 정도였다니까요.”

“······.”

“그리고 엄청난 집안의 여자와 사귄다는 소문도 있었지요. 그렇게 돈 벌어서 모두 여자 명품 사는데 섰거든요. 그 외에도 많은 전설이 있는데, 나중에 말해 드릴게요. 아직 마무리 못 한 기사가 있어서요.”

“그래, 가봐.”

김형식의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때였다.

-띠링, 띠링, 띠링.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받았다. 제보 전화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대성일보 김형식입니다.”

-유달입니다. 그쪽이 고소하신.

김형식은 짜증 내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해도 되나? 할 말 있으면 내 변호사 통해서 하지?”

유달의 말도 짧아졌다.

-그 변호사가 직접 연락하라고 번호까지 주던데? 나인 줄 모르고 의뢰를 받았다고 사과하더라고. 그 변호사한테 아직 전화 못 받았나 봐?

김형식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내게 전화한 목적이 뭐야?”

-얼굴 보고 진솔히 이야기 좀 합시다.

“나는 그럴 마음이 없는데?”

-괜한 자존심 때문에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고. 나는 당신에게 기회를 주거는 거야. 둘 사이의 사소한 악연을 대화로 해결해보자고. 내가 정말 죽자고 덤비면······.

그냥 무시하고 끊으려 했던 김형식은 장변의 경고가 떠올랐다. 사주카페 사장과 악연을 맺지 말라는 것인데, 그 이유를 직접 만나서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어디지?”

-그쪽 회사 정문 앞인데, 어디서 기다릴까? 주변에 커피숍이 엄청 많아. 귀신같은 여자가 왕관 쓰고 있는 것도 있고. 날개 달린 아이가 헐벗은 것도 있고······.

“회사 근처 말고, 지하철 쪽으로 가면 ‘초우(初雨)’라는 커피숍이 있을 거야.”

-알았어, 먼저 가서 기다릴 테니까, 꼭 와야 해. 꼭!

유달은 기쁜 마음으로 통화를 끊었다.

@

명동 번화가 굿 카페.

북적거렸던 유커가 한꺼번에 빠져나가 조용해진 홀.

계산대 안쪽 주방에서 설거지를 마친 송보름이 장미란에게 물었다.

“왜 아직도 안 가요?”

손님 없는 홀을 배회하던 그녀가 주방으로 다가왔다.

“그러는 너는? 고등학생 같은데, 학교는 안 가?”

“검정고시 준비 중이에요. 나를 받아줄 학교도 없고, 가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장미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바꿨다.

“여기 사장님하고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아마 형사님이 예상하는 그대로일 거예요. 저한테 지독한 악귀가 씌웠는데 사장님이 쫓아줬어요. 그때 찍은 동영상이 있는데, 한번 보실래요?”

송보름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흔들어 보였다.

“그럴까?”

장미란은 흔쾌히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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