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굿 카페
땅값 비싼 명동.
유동인구가 북적이는 사거리 코너 건물.
“여긴가?”
40대 중반의 남자가 휴대폰 웹으로 위치를 확인했다. 함께 온 30대 초반의 여자가 건물 위를 올려보며 대답했다.
“맞는 거 같네요.”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3층.
명동 번화가에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한글 간판이 달려있었다.
-굿 카페.
점퍼 차림의 남자가 갸웃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건물에서 장사하면 월세가 엄청날 텐데, 사주카페 해서 수지가 맞을까요?”
투피스 정장을 입은 여자가 뒤따르며 대답했다.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네요.”
띵동.
둘은 때마침 열리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3층 버튼을 누르고 점퍼 남자가 말했다.
“장 팀장님까지 오실 필요는 없었는데요.”
정장 여인이 나이가 젊지만, 직급은 위인 듯했다.
“특별히 맡은 게 없으니 이거라도 도와야지요.”
띵동.
둘은 동시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점퍼 남자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졌다.
“이야- 3층 전체를 다 쓰나 보네요?”
“입지가 좋으니 그만큼 장사가 잘되겠지요.”
“대체 얼마나 잘 되기에······.”
점퍼 남자가 먼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딸랑딸랑.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도심의 확 트인 전경.
호텔 라운지처럼 넓은 홀인데, 아무도 보이지 않아 썰렁함만 느껴졌다. 손님이 들어왔다는 종소리에도 응대하는 종업원조차 없었다.
점퍼 남자가 손에 든 검정 다이어리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휴일인가, 망한 건가······?”
정장 여인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눈짓했다.
출입문 옆에 계산대가 있었다.
여고생 나이 때의 여자가 앉아 있는데, 스마트폰에 빠져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점퍼 남자가 다가가 물었다.
“여기 사장님 좀 뵈러 왔는데요?”
“저기요.”
그녀는 짧은 고갯짓 한 번 하고 끝이었다.
SNS에서 싸움이라도 붙은 듯 그녀의 손가락 움직임은 현란했고, 화면에 고정된 얼굴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계속 말을 붙이면 짜증 낼 분위기였다.
점퍼 남자와 정장 여인은 그녀가 고갯짓한 곳으로 향했다.
계산대 맞은편.
검은 커튼으로 입구를 가린 위쪽에 ’사장실‘이란 작은 푯말이 붙어있었다.
점퍼 남자가 커튼을 살짝 열고 사장을 부르려는 때였다.
“아, 시파! 더럽게 안 맞아!”
젊은 남자의 짜증스러운 투덜거림.
곧이어 또르르, 구겨진 종이가 커튼 밑으로 굴러왔다.
정장 여인이 뭔가 하여, 주워서 펴보니,
로또였다.
점퍼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용한 점쟁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정장 여인이 다시 구겨 쓰레기통에 넣으려는 찰나.
촤악!
30대 초반의 남자가 거칠게 커튼을 열어젖히며 나왔다.
그는 굉장히 짜증 나고 안 풀린다는 표정이었는데, 눈앞에 서 있는 남녀를 보고는 이내 화색이 돌았다.
“아- 손님들!”
너무 반가워하여 두 사람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사주카페 사장이 그들은 가까운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런데 얼마나 청소를 안 했는지 먼지가 뽀얗다. 카페 사장은 민망한 표정을 감추며 잽싸게 냅킨으로 닦기 시작했다.
“요즘 미세먼지가 극성이라······ 어우!”
새까매진 냅킨을 보고 그도 깜짝 놀랐다.
점퍼 남자는 테이블의 청결 상태엔 신경 쓰지 않았다. 안주머니에 신분증을 꺼내려 손을 넣었는데,
탁.
정장 여인이 그의 손을 막으며 고개 저었다.
잠시 두고 보자는 의미였다.
카페 사장은 열심히 손을 놀려 테이블을 닦았다. 하지만 더러움은 완벽히 가지지 않고 테이블 위의 냅킨이 동이 날 지경에 이르렀다.
“대, 대충 된 것 같으니, 이제 착석하셔도 됩니다.”
말과 동시에 그가 먼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친 듯이 테이블을 닦느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했다.
“휴- 덥네요. 어서 앉으세요?”
둘은 카페 사장이 재차 권하는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한숨 돌린 카페 사장이 기운차게 말했다.
"사주를 볼 것이냐, 관상을 볼 것이냐! 전혀-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둘 다 봐 드립니다. 여기 종이에······ 어디 갔지? 종이가······."
테이블 주위를 살피던 카페 사장이 계산대에 소리쳤다.
“보름아, 여기 종이하고 볼펜 좀 가져와.”
“네······.”
종업원은 세상 귀찮은 표정으로 다가와 툭, A4 용지와 볼펜을 던져놓고 돌아가려 했다.
카페 사장은 무뚝뚝한 그녀의 태도에 화를 내기는커녕, 부탁하는 어조로 말했다.
“이왕 온 김에 주문도 받아라.”
보름이란 여자가 건들거리며 물었다.
”뭐 드실래요?"
딱딱함을 넘어 도전적인 목소리였다.
정장 여인이 반문했다.
"어떤 게 있어요?"
종업원이 까딱 뒤로 고갯짓했다.
계산대 앞에 성의 없이 쓴 메뉴판이 붙어있었다.
-콜라 10,000원
-사이다 10,000원
커피도 있는데 대놓고 ’믹스‘라고 쓰여 있었다.
점퍼 남자는 뭐 이런 곳이 있나 어이없는 표정이고, 정장 여인은 점점 더 흥미롭다는 반응이었다.
"커피 둘. 제가 살게요."
그녀가 주문을 끝내자 카페 사장이 종이를 나눠주었다.
“여기에 생년월일과 성함을 적어 주세요. 태어난 시 알면 더욱 좋고, 한글이나 영어식 이름도 무방합니다. 저도 한글 이름입니다.”
둘은 잠시 눈빛을 교환하고 적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거의 동시에 끝내고 사장에게 내밀었다.
“미세하게 빨랐던 남자분부터 보겠습니다.”
카페 사장이 점퍼 남자의 사주가 적힌 종이를 집어 들었다.
“강세훈 선생님? 관상과 사주를 종합해보면 굉장히 장수할 겁니다. 노후대비 철저히 하시고요. 재물운이 좀 그러니까, 돈 관리는 사모님께 맡기시는 게 좋겠습니다. 최소한의 용돈만 받고 생활하세요.”
점퍼 남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은 제가 요즘 고민거리가 있는데······.”
“아! 그건 고민이 아니라 축복이라 하지요. 잘 낳아서, 예쁘게 키우세요.”
"!"
강세훈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의 반응을 본 정장 여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이에요?”
“네······ 어쩌다 보니······.”
강세훈은 어떻게 알았는지 정말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이제 여자분 걸 볼까요.”
카페 사장이 그녀의 사주를 살폇다.
“장미란 씨? 역도 선수랑 이름이 똑같네요?”
“······.”
“우리 미란 씨는 사주하고 관상이 전혀 매치가 안 돼요. 이런 경우는 얼굴에 칼을 댄 경우가 태반인데, 성형한 얼굴은 아니고······ 이거 정말 장미란 씨 사주 맞아요?”
장미란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진짜배기네요?”
카페 사장의 얼굴에도 화답하는 웃음이 번졌다.
"당연하지요. 진짜배기 중에서도 진짜배기랍니다. 이제 정확한 사주를 적어 주시겠습니까?"
그녀는 곧바로 다시 적어 넘겨주었다.
유심히 보던 카페 사장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오호, 세상에 이런 사주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애매했다.
“이건 거의 롤러코스터 급이에요? 올라갔다, 내려갔다. 또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인생 기복이 엄청 심하네요. 우울증 조심하시고······ 특히나 올해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있어요. 결혼은 확실히 아니고······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새로운 일을 시작할 겁니다.”
“그래요?”
장미란은 무덤덤.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 건 강세훈이었다.
그는 긴장감에 목이 타는 듯, 뭔가 마시려고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는데, 탁자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를 본 카페 사장이 계산대를 향해 소리쳤다.
“송보름, 커피 아직 멀었니!”
“물 끓이고 있잖아요.”
“정수기 써!”
“언제는 정수기 뜨거운 물 쓰지 말라 하더니······.”
“그건 손님이 보고 있을 때 얘기지!”
카페 사장이 독촉하는 틈에 강세훈과 장미란이 귓속말을 했다.
‘정말 족집게인데요?’
‘저도 얼마나 진짜배기인지 궁금하기는 한데, 일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겠지요.’
카페 사장이 종업원과 다툼을 끝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우리 알바가 철이 없어서. 제가 어디까지 했더라······.”
“사주풀이는 됐고, 이젠 우리 차례네요.”
장미란이 눈짓하자 강세훈이 신분증을 꺼냈다.
“마포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헐······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형사님들?”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
강세훈 형사가 수첩을 꺼내며 물었다.
“유달 씨 맞으시죠?”
카페 사장이 공손히 대답했다.
“네, 제가 유달 맞습니다. 외자 이름이지요.”
강세훈의 물음이 계속되었다.
"탤런트 오현아 씨 아시죠?"
"물론이지요! 제가 팬입니다. 팬! 왕- 팬! 왜요? 우리 현아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오현아 씨가 아니고, 오현아 씨 주변을 순찰하던 경찰관이 괴한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다행······ 아니, 경찰분이 크게 다치셨다니 매우 유감입니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강세훈이 수첩 있던 메일 복사본을 내밀었다.
"이거 유달 씨가 보낸 메일 맞습니까?"
"맞는데요? 이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뭐라고 쓰셨는지 직접 읽어보시겠습니까?"
“예······.”
유달이 종이를 받아 소리 내어 읽었다.
“친애하는 현아님, 천기가 심히 수상합니다. 오늘 밤은 외출을 삼가세요. 특히나 자정 무렵을 조심해야 합니다. 화장실도 가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카페 사장이 간단한 메일을 다 읽고 반문했다.
“이게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죠?”
“범행이 일어난 시간이 자정 무렵입니다.”
“그런데요?”
“범인이나 공범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있었을까요?”
***
유달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범인이거나 범인과 연관이 있다는 겁니까? 무슨 되먹지도 않는 말씀을!”
장미란이 나섰다.
“진정하세요. 우리는 그 사건과 유달 씨가 관련 없다는 것을 조사하러 나왔습니다. 어젯밤 11시에서 01시 사이에, 어디 계셨죠?”
“여기요.”
“증명해줄 사람 있나요?”
“아니요.”
“카페 내 CCTV는요?”
“그런 거 없습니다. 정말 난 아니라니까요? 점괘가 그렇게 나와 메일 보낸 것뿐이라고요?”
“네, 저희는 유달 씨를 믿어요.”
“믿지 않는 얼굴인데요!”
유달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진중한 생김새와 달리 감정의 변화가 심했다.
장미란이 다독이듯 말했다.
“흥분을 좀 가라앉히시고요.”
“제가 흥분 안 하게 생겼습니까? 까딱하면 경찰 상해범으로 몰리게 생겼는데요!”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장 팀장님?”
강세훈은 불만 섞인 표정이었다. 그러나 장미란이 계속 나가자는 눈빛을 보내자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장미란이 명함을 내밀었다.
“나중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유달은 제발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듯 성의 없이 명함을 받았다.
딸랑딸랑.
형사들이 카페 밖으로 나왔다.
곧바로 유달과 보름이 살며시 문을 열고 살폈다.
띵동.
승강기가 내려와 문이 열리고.
스르륵.
그들이 탄 승강기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며 송보름이 물었다.
“소금 뿌릴까요?”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