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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259화 (완결) (259/259)

[259화]

‘이걸로 두 번째 죽음인가……. 훗. 아, 이번 생은 매우 짧지만 화려하게 불태웠군.’

사라지는 의식 속에서 베오날드는 육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영혼이 되는 평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다시 여신의 앞에 서서 그녀와 약속한 것을 지켰다고 주장하고 자신의 요구 사항을 들어줄 것에 대해 생각한다.

베노피스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가면서도 ‘소환문’과 ‘진’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불살랐다.

‘이미 이전에 유성우 낙하로 이곳 베노피스에 있던 암흑신교와 마족들이 죽었고, 내가 소환문과 진을 파괴했으니 이제 남은 건 저 불완전한 상태의 마왕뿐……. 그 정도라면 지금의 제국과 다이나 왕국 선에서 좀 노력하면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수십에서 백 년 단위로 대륙은 안전해.’

그렇게 되면 한동안 제국에서는 이번과 같은 재난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손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신성국도 지금 그 수도가 한번 몰락해서 이미 힘이 빠졌으니 광신에 빠질 우려도 적다.

그러니 이거면 충분히 자신은 임무를 다한 것이라고 봐도 되었다.

‘아무튼 여신이 왜 나를 콕 집어서 거래하고자 살린 건지 여러모로 이해가 가는군. 아무튼 이제 모든 게… 끝…….’

[끝나지 않았다.]

‘이… 목소리는?’

덤덤하지만 아는 이에겐 섬뜩한 목소리. 마왕의 음성이었다.

베오날드는 분명 자신은 이미 죽음에 이른 상태인데, 들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상대가 마왕이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린다.

마의 권속, 마족들의 왕으로 영혼을 다루는 자였기에 확실히 베오날드는 죽었다고 해서 안심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큰일 났다.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젠장! 죽어도 도망을 못 치다니!’

[축하하마. 네놈은 내 일을 성공적으로 방해했다. 그래, 덕분에 너희 세계는 아주 조금 시간을 벌었다고 할 수 있지.]

‘음? 그 말인즉, 패배를 인정한다는 건가?’

[패배? 하긴 너희가 죽을 때까진 멸망을 맞이하지 않을 테니 그렇게 볼 수도 있군. 아 참, 네놈은 이미 죽었지.]

‘그래. 뭐, 그러라고 본래 지옥에서 불타던 영혼이 살아난 거니까 여한은 없지.’

[그리고 여신에게 가서 내게서 딸의 영혼을 돌려받고, 다시 지옥으로 갈 생각인가?]

마왕의 지적이 날카롭게 들어왔지만 베오날드는 답하지 않았다.

그래, 애초부터 여신과 계약한 내용은 자신이 일을 하면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준다는 것이었지, ‘지옥에서 건져 올려 준다.’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마왕의 목적을 막았으니 딸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그 소원을 쓰면 베오날드는 9,5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시 지옥에서 고통받아야 한다.

[아마 형이 1만 년이었던 걸로 아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나는 그리 머리가 좋지 않지만 아는 게 하나 있지. ‘거래’라는 건 가지지 못한 것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지. 나도 똑똑하고 일 잘하는 부하가 필요했거든.]

‘그런 건가?’

[그래. 딸의 영혼을 돌려주마. 내 밑으로 와라. 내 권속으로 삼겠다. 그렇게 되면 불멸의 존재가 되어 영원히 그 고통받는 지옥으로 가는 일이 없을 거다. 원한다면 계약을 해도 좋다. 마왕이라고 해도 계약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건 너도 알고 있지 않은가?]

마왕의 제안. 흥미가 돋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이었다.

여신에게 돌아가서 딸의 영혼을 구하는 것에 ‘소원’을 사용하면 결국 9,500년간 지옥에서의 형벌을 받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하나 저 마왕의 제안을 받으면 그 말대로 딸을 자유의 몸으로 만들 수 있으며, 지옥의 형벌도 피할 수 있다.

어디를 보아도 너무나 매혹적인 제안. 500년간 지옥에서 온갖 형벌을 받아 본 베오날드였기에 그때의 고통과 괴로움을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몸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생각이 몇 번이고 들기 시작했고, 여러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으으음…….’

딸도 구하고, 지옥의 형벌도 피할 수 있지 않느냐?

거기에 멋대로 일만 맡기고 제대로 된 도움도 주지 않고, 자신이 용사라는 것도 알리지 않고 온갖 일만 짬 때리다가 딸이 죽고 난 이후에나 용사라는 걸 알려 주면서도 이 성검 한 자루만 주고 마왕과는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고 자신이 남긴 유산과 육체를 모두 불태워 가면서 발악해야 겨우 계획이나 비틀 정도였다.

‘하나 거절한다.’

그러나 베오날드는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보냈다.

어딜 봐도 명백히 마왕의 제안이 한결 더 좋은 것이 진실. 딸의 영혼도 돌려받을 수 있으며, 모든 필멸자들이 원하는 영생에 가까운 삶도 얻어서 그대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베오날드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거절한 것이었다.

[어째서이지? 그다지 이상한 수작도 없고, 손해도 없는 거래인데 말이지.]

‘그 대가로 네놈 밑에서 영원히 일해야겠지.’

[적어도 나는 지옥에서 고문받는 것보단 나은 대우를 한다고 생각한다만?]

‘분노의 마왕’이라는 이름답지 않게 날카로운 대답이 들어온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지식을 추구하진 않아서 부족하고, 또 불멸자라서 시간에 대한 개념이 남달라서 가치관이 이상하긴 해도 지혜가 없진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지옥이 훨씬 낫지. 거기는 이제 9,500년만 지내면 되거든. 반면 네놈 밑에선 영원히 일해야 하겠지.’

[그게 오히려 좋지 않은가? 너는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지식과 지혜가 죽음으로 모두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 적이 없나? 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게 되는데? 그래서 다들 죽음을 두려워하지. 이룬 것이 많을수록,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 모든 것이 사라지는 걸 말이야.]

‘…….’

[특히나 네놈은 500년 전에 한번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고 그 유산을 이 대륙에 남겨 놨었지. 그걸 다 버리는 게 아깝지 않다고? 내 권속이 되면 그 모든 것을 영원히 가질 수 있는데?]

‘정원을 가꾸면 말이다.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그 어떤 아름다운 꽃도 피고 나면 지기 마련이고, 마르고 썩어서 흙이 되지. 그리고 그것이 뿌린 씨는 또 다른 꽃을 피우고 말이야. 같은 종의 꽃이지만 엄연히 씨앗을 남기고 흙이 된 그 꽃과 새로이 핀 꽃은 다른 개체고, 꽃을 피워도 엄연히 다른 것이지. 그래, 죽음은 두려운 것이지만 그것이 있기에 생명은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베오날드는 생전에 살기 위해서 연금술 약도 쓰면서 죽음에 최대한 저항을 하긴 했다.

하나 그렇다고 죽음을 아예 거부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애당초 그랬다면 알테리오라는 후계자를 아주 신중하게 판단해서 정하고 그에게 가문을 이어받을 준비조차 시키지 않았으리라.

그냥 자신이 영생을 누릴 방안만 찾아내면 되기에 자신을 방해 안 할 적당한 후계자를 지정해 두고 자신의 일만 하면 되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 삶은 한정된 것이기에 최선을 다해서 살 수 있는 것이지. ‘죽음’이 온 순간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 나는 비록 저번 생에 아들놈에게 배신당해서 처형대에 올랐지만 일절 후회는 없었다.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옥의 형벌은… 반갑지 않았지만, 그건 엄연히 대가이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 좋아. 포기하지. 그러나 하나는 알아 둬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는 결국 이 잔혹한 게임 속에서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몸이라는 걸. 빠져나가려면 모든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마왕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베오날드였다.

잠시 후, 그의 눈앞에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고, 새하얀 빛으로 가득 차더니 익숙한 곳의 모습이 보였다.

빛과 구름과 성스러운 옥좌, 그리고 수많은 천사들의 사이에 있는 익숙한 모습, 여신님이었다.

중간중간 기도로 뵙기는 했지만 이렇게 다시 보는 건 너무나 오랜만이었기에 베오날드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예부터 차렸다.

“아, 그러니까… 일단은 명하신 일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여신님.”

[예. 딱 바라던 일, 행해야 할 일을 마치고 잘 돌아왔습니다. 혹여나 다시 타락을 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군요.]

“이런저런 생각은 많이 했지만 뭐, 지옥의 맛을 봤기도 하고… 영원히 일하는 건 질색입니다. 끝이 있고 한계가 있으니 열심히 할 맛이 나는 거죠. 애당초 제가 이럴 것을 아시고 절 보내신 거 아닙니까?”

[신의 시야로 보이는 것은 일반 인간이 보는 것과 매우 다른 것들입니다. 무수히 변화하는 미래의 현실들을 보며 어떻게 조율할지 판단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항상 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미래가 절대적으로 온다고 확정하고 계획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택한 것은 확정적인 미래의 가치만을 보고서 결정한 절대적 사실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가변적인 운명 속에서 가장 나은 방향으로 갈 가능성과 또 그대가 남겨 둔 유산을 비롯한 여러 요소들, 거기에 마왕과 계약한 딸에 대한 운명 개변적 요소들을 포함해서…….]

“저, 여신님, 어차피 이제… 지옥에 간 뒤 거대한 순환 속에 바쳐질 몸. 설명하셔도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식과 지혜란 결국 사용할 곳이 없으면 허무한 것일 뿐이니 말이죠.”

[소원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나 보군요.]

끄덕.

베오날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하나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9,500년간 다시 지옥으로 가서 고통받을 일에 살짝 마음이 떨리기도 했지만, 딸아이를 구한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굳게 먹고 흔들리지 않고자 한다.

그 증거로 지금 혹시라도 입을 열면 두려움에 본심이 아닌 겁쟁이 같은 말이 나올까 봐 그는 입을 꾹 닫고 참았다.

‘9,500년… 무거운 시간이지. 하나 라라, 널 구할 수 있다면 지옥이라도…….’

[그 뜻은 잘 알았습니다. 소원대로 분노의 마왕에게 있는 ‘딸의 영혼’은 곧 해방될 것입니다. 애초에 약속한 바이니 말이죠.]

“예. 그거면 된 겁니다. 후우우우…….”

베오날드의 한숨과 동시에 그의 눈앞에 눈이 부실 만큼 강하고 영롱한 빛이 일어나면서 주변을 메웠다.

하나 지금 실제 육신을 가진 것이 아니기에 그런 강렬한 빛에도 시각이 손상될 일이 없었기에 베오날드는 모두 볼 수 있었다.

그 빛 안에서 서서히 모이는 영혼의 형상. 라라의 형상으로 변한 영혼은 잠시 베오날드를 바라보더니 슬프면서도 기쁜 듯한 미소를 짓고는 이내 흩어져 버렸다.

“아… 대체 어디로 간 겁니까?”

[그녀는 절반은… 숲의 아이이고, 그쪽의 삶을 살았으니 심판과 전생은 그쪽에서 하게 될 겁니다.]

“천국과 지옥도 종족별로 갈려 있는 겁니까? 기가 막히는군요.”

[아뇨. 심판과 전생만 그쪽에서 담당할 뿐, 모두가 같은 곳으로 가게 됩니다. 물론 그 아이는 엘프라는 입장을 고려하고도 죄가 가볍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지요.”

마왕에게 영원히 구속되는 것을 빼 온 것만 해도 엄청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신도 죄를 지은 몸. 그녀 또한 사정은 있다곤 하나 죄악을 저지른 몸이니만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베오날드는 후련한 마음과 함께 이제 지옥으로 갈 때가 되었구나 생각한다.

“그래도 다행이군요. 그 아이도 지옥으로 올 테니… 9,500년간 지내면서 가끔 만나 보겠군요.”

[자, 그럼 보내 드리겠습니다. 속죄의 길로…….]

“예. 후우우… 9,500년 값을 치르러…….”

다시 태어나서 보낸 시간의 약 300배에 가까운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에 긴장하며 한숨을 쉬는 베오날드였다.

그래도 어쨌든 죗값을 치르는 거라 생각한 그는 고통을 달게 받자고 다짐하며 몸을 돌려서 가려는데, 갑자기 의식이 끊어지기 시작했지만 어차피 다시 눈뜨면 알아서 지옥에 도착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의식을 잃는 것에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쓰러진다.

…….

…….

…….

“으음? 으으음? 새… 소리?”

짹짹… 짹짹…….

꿈인지 생시인지, 베오날드는 눈을 뜨고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눈을 뜨면 다시 지옥에서 악마들의 손에 여기저기 굴러다니면서 죗값을 치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싱그러운 향기가 나는 숲속의 풍경이었다.

따사로운 햇살, 재잘거리는 새의 소리와 풀 냄새. 깜짝 놀란 그는 벌떡 일어나면서 지금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자 한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그 여신이… 또 장난을? 뭐지? 이건 대체?”

분명 여신은 자신을 지옥으로 보낸다고 했었는데, 베오날드는 의아해하면서 지금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단 현 상황부터 이해하고자 한 그는 근처 호수로 가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두 번째 생에 태어난 베오날드의 모습 그대로였다.

게다가 마갑주는 없다고 쳐도 마왕과 싸워 죽기 직전에 안에 입고 있던 복장이 모두 복구된 상태였다.

“푸하! 푸하아아! 젠장!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망할!”

그러곤 물로 세수까지 하면서 정신을 완전히 깨운 그는 일단 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요구하기 위해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앉아 기도하기 시작한다.

‘대체 이게 무슨… 어?’

[갚아야 할 죄악의 값-14,500년.]

‘이게 뭐지? 어떻게 된 거야? 14,500년? 이 숫자는 뭐고?’

눈을 감자 보이는 것은 밝은 빛으로 불타오르는 문자와 기이한 숫자. 14,500년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베오날드의 의문과 고민은 더욱 커지고 영문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 이 사태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려는 듯 잠시 후 여신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알다시피 당신의 죗값입니다. 죗값이라는 것은 본래 속죄를 위한 것. 지옥에서 고통을 받으며 보내는 것도 그 방식 중 하나이지만 세계를 구하고, 정의를 세우고,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는 것으로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닙니까? 무슨 예술가 놈들이 범죄 저지르고, ‘작품으로 속죄하겠습니다.’ 하는 것 같은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그런 건 정의가 아니잖습니까?’

[물론 그 말이 맞습니다. 하나 당신은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다소 과격하고 어지러운 방식이지만 그래도 혼돈과 어둠으로 물든 세계에 질서를 다시 세우고, 악에 맞설 힘을 키워 냈고, 마왕의 유혹을 이겨 낸 의지를 증명했습니다. 그러니 이 이상 다시 지옥으로 보내어 고통받게 한들 의미가 없지요.]

‘…말은 아주 청산유수시네요. 그러니까 저보고… 다시 인간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라는 거군요. 근데 제 형량은 본래 9,500년 아니었습니까? 14,500년이니까… 5,000년은 이자라도 붙은 겁니까?’

[그건 당신 딸의 몫입니다. 아무래도 이러는 편이 더 의욕이 생길 것 같아서 말이죠.]

‘뭔가… 마왕보다 더 심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만?’

지옥에 간 라라의 죗값을 자신이 덜어 줄 수 있는 것은 나쁜 제안은 아닌 듯했지만, 14,500년이라는 압도적 수치를 보니 베오날드는 솔직한 감상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거절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지옥에서 불타는 것보단 차라리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사용하는 일이 백배 낫기 때문이었다.

‘하아~ 뭐, 제가 거절하지 않는다는 걸 아실 테니 어쩔 수 없지요. 죗값을 깎아 내는 것도 깎아 내는 거지만… 한없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것도 꽤 재미있을 테니, 한번 열심히 해 보도록 하지요.’

[다시 천상에 오는 그날, 자신과 딸의 모든 죄를 스스로 구하고 오길 빌지요.]

‘예. 반드시 해내고 말겠습니다.’

그렇게 여신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베오날드는 다시 눈을 떴다.

지금 지옥에서 고통받는 딸과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죽는 그날까지 14,500년분의 속죄를 해내고 말 것이라 의지를 다진다.

‘뭔가 이용당하는 느낌인 것 같은데……. 흠, 아무튼 일단 돌아가면서 우선 해야 할 일을 생각해야겠군.’

물론 은연중에 이건 그저 핑계에 불과하고, 여신님은 여전히 간신인 자신이 쓸데가 많다고 생각해서 이런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모른 척하고 본격적으로 속죄의 길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기로 한다.

마침

***

안녕하십니까? AKARU입니다.

부족한 작품 끝까지 봐 주시고 이 후기를 봐 주시는 독자분들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작품의 경우 다른 때보다 특히 몇 배나 힘들었고, 고난이긴 해서 특히나 부족한 모습이 더 많이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쉬운 것은 제 능력에 맞지 않은 설계도를 가지고 만들려 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분명 설계도는 좋은 것이었고,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노력은 했지만 제 능력이 부족해서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고, 또 그것을 수습하려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부친상과 그 신변 정리에 안 좋은 일까지 겹쳐서 여러모로 부족한 모습이 몇 배로 더 겹쳤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 모두 어쩌면 ‘부진한 작품이 제 능력 부족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라고 자기 위로라든가 핑계를 대고자 해서 떠벌리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어쨌든 끝까지 봐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기도 하지만 그분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을 내었다는 생각에 너무나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펜… 아니, 키보드를 놓지 않고 다음엔 꼭 독자님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부디 좋은 하루, 행복한 매일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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