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방법이… 아예 없진 않은 것 같은데…….’
베오날드는 각종 패널과 살아 있는 자신의 유산을 바라보면서 방안을 떠올리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할 수 있는 방안으로 성공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고, 보통 정신으로 하기 힘든 것이 떠오르는 그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하는 수밖에 없지.’
쿠르릉! 쿵! 우르르릉!
서서히 소리가 커지면서 다가오는 게 느껴지는 마왕의 움직임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그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고, 그는 결국엔 이를 악물고 생각한 방안을 실행하기로 했다.
우선은 패널들을 눌러서 지하에 있는 이동 마법진 영역에 ‘성맥’의 마력을 끌어모으는 작업을 시작했다.
‘좋아, 오래되었지만 역시 보존 상태가 좋아서 쉽게 작동되는군. 이제… 마왕 놈이 혹시라도 다른 조작을 하거나 부수지 못하게 감추고 나가야겠어.’
[여기는 문이 조금 더 단단하군.]
‘제길! 버, 벌써 여기까지?’
쿠웅! 쿠우웅!
묵직한 타격음이 코앞에서 들리자 베오날드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래도 중앙 관제실이라고 해서 일반 방어의 2배, 3배로 해 둔 덕분인지 단번에 뚫리진 않았지만 그것도 곧 뚫리는 건 시간문제라고 느낀 그는 코앞까지 온 마왕에 두려움이 커졌고, 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잽싸게 빠져나가서 지하로 향했다.
‘빠르게 도망! 도망! 하나 더 뚫어 봐라!’
철컥! 쿵!
외부 패널로 조작을 마친 베오날드는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서 지하실로 빠졌다.
이윽고 중앙 관제실의 문을 부수고 들어온 마왕은 무언가 기기들이 작동하는 것을 바라보았지만, 오만한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지나치고 계속해서 베오날드를 쫓아갔다.
“후우… 겨우 도착했군.”
베오날드가 도착한 곳은 ‘유적’ 지하에 있는 공간 이동 마법진들이 다수 존재하는 거대한 대공동이었다.
이곳은 본래 대륙 전체에서 모은 공물과 유물을 분배하고, 대륙에 퍼진 자신의 ‘둥지’로 모든 물건을 보내는 장소로 가장 많은 양의 마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성맥’의 마력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모이는 장소이기도 했다.
“역시 별의 중심지답군. 후우…….”
500년 전의 글자로 ‘마력 주의’라고 써진 것을 바라보며 베오날드는 마왕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여러 곳으로 보내기 위해서 나누어진 공간 이동 마법진 시설에 마력을 공급하는 술식과 설비를 일부 뜯어내고 고의로 파괴한 다음 열심히 무언가 조립하며 계속 이어 나갔다.
점점 가까워져 가는 진동과 묵직한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베오날드는 손을 빠르게 놀려 설비의 파괴와 조립을 반복하며 자신의 마갑주에 연결하고 챙겨 온 가방에서 포션을 마시면서 바쁘게 움직인다.
“드디어 왔군.”
쿠웅! 쿠우웅! 투콰아아앙!
그리고 이곳 공간 이동 마법진이 있는 곳에 드디어 두꺼운 아다만티움 문을 부수고, 마왕이 도착하게 된다.
트랩에 조금이라도 상처 입거나 당했으면 하는 게 베오날드의 바람이었지만, 그는 조금도 상처 입지 않고 멀쩡한 모습으로 이곳 유적의 지하까지 잘만 온 것이었다.
[조금 성가신 걸 만들어 놨군.]
“그거 정말 황송한 말씀이군.”
[내 상태만 좋았더라면 그냥 싹 다 날려 버릴 텐데 말이지.]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아쉬운 듯 말하는 마왕. ‘유성우 낙하’는 여러모로 신의 한 수가 된 셈이었다.
그것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자신은 이렇게 싸울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정. 베오날드는 예를 차리는 척하면서 곧바로 마갑주와 기기들에 연결된 버튼들을 한 번에 눌렀다.
‘이걸로 안 되면… 끝이다!’
[도망치다가 여기서 멈춘 것을 보면 또 뭔가를 꾸미고 있나 보군.]
“크으으으윽!”
파지지지지직!
그리고 베오날드가 스위치를 넣자, 마갑주에 연결된 선과 술식이 모두 찬란할 정도로 푸르게 빛나기 시작한다.
마치 태양이 불타오르면서 빛나는 듯한 푸른빛의 불꽃. 마갑주뿐만 아니라 안에 있는 베오날드의 육체에서도 푸른빛이 불타오르듯 피어오르고 있었다.
본래 보랏빛인 베오날드의 오러와 다른 이 푸른 마력은 ‘성맥’의 마력. 베오날드는 성검과 자신의 검과 오러로는 도저히 저 마왕을 쓰러뜨릴 수 없다는 걸 자각했고, 다른 수단을 생각하다가 떠올린 것이 바로 이 ‘성맥’의 마력이었다.
“으윽… 크으으으윽! 으으으으윽!”
[별의 마력을 몸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어리석은 짓을 하는군. 나라면 모를까, 일개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댁을… 쓰러뜨릴… 시간이면 충분해! 으윽!”
[그러고 보니 그 ‘성검’을 들고 있군. 과연 그거라면 좀 더 오래 버틸 순 있겠지. 하나 그래 봐야 지푸라기가 촛불로 변한 정도밖에 되지 않아. 게다가 그 거추장스러운 선들과 술식을 짊어진 채로 나와 싸울 수 있을까?]
“으으윽!”
파지지직! 치지지지직!
마왕의 말대로 베오날드의 몸은 막대한 양의 ‘성맥’의 마력을 받아들인 통에 시시각각으로 타오르면서 부서져 가고 있었다.
자신의 오러로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고, 성검의 힘까지 빌렸지만 아무리 그런다고 한들 바닷가의 모래성은 결국 파도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운명. 그러나 지금으로선 방법이라고 떠오른 게 이것뿐이었다.
‘내 힘으로 불가능하다면! 날려 버릴 힘을… 다른 곳에서 끌어와야 하는 법이지.’
결국 저 마왕을 쓰러뜨리려면 세계급의 힘이 필요했고, 베오날드가 택한 임기응변은 바로 이 지하 아래에서 성맥의 마력을 끌어모으는 것. 하나 시간이 너무 급박했기에 그저 마력을 자신의 몸과 마갑주로 모으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부서지기 전에 끝장내야 해. 최소한… 저 ‘소환문’이라도! 나 자신을 걸고 파괴한다. 큭! 진통제를 안 마셨으면 정신을 유지할 수도 없었을 거야.’
파지지지직! 치지지지직!
지금 베오날드가 순순히 견디는 건 마갑주와 성검의 보호 덕분. 그러나 그것에서 오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각오를 한 다음 가지고 있는 마취, 진통 효과가 있는 약을 모두 마셔서 고통을 최대한 견딜 수 있게 했지만, 그렇다곤 해도 저 마왕의 말처럼 베오날드의 육신과 마갑주는 결국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을 받아 내는 연못처럼 넘쳐흐르는 걸 넘어서 결국 무너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베오날드는 그 전에 모든 걸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우선은!’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오의-히드라’!
콰아아아아아아!
하나 그 엄청난 마력을 받아들인 만큼의 대가는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마왕을 향해 동시에 날아가는 9개의 검기는 본래 베오날드가 사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거대한 궤적이 되었고, 남보랏빛의 오러가 되어 마치 진짜 히드라가 9개의 머리를 휘두르면서 돌진하는 형상으로 마왕에게 날아간 것이다.
[이건 좀 볼만하군. ‘용격’.]
‘젠장! 이것도 안 먹힌다고?’
마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거대한 뱀의 머리처럼 달려드는 9개의 검기들을 한 손으로 쳐 내면서 베오날드에게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온다.
충격이 큰 베오날드였고, 그 여파로 이 지하 공동이 무너지고 있었지만 그는 정신을 차리고 계속해서 성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불태워서라도… 반드시 이번엔 이겨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저 마왕을 처단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 여기서 죽어도! 모든 걸… 쏟아붓는다!’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오의-우로보로스’.
콰아아아아아아!
영원한 순환을 상징하는 원형. 베오날드가 그리는 원형의 오러로 된 검은 본래 사람만 한 모양에서 점점 확대되기 시작했다.
몸에 들어온 마력을 밖으로 뿜어내며 원은 점점 커져 갔고, 그것은 아까와 다르게 마왕의 걸음을 막아 내는 위업을 달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오오오오오오!”
[양으로 밀어낸다는 건가?]
‘으으윽! …내가 다 불타 없어져도 좋다! 라라! 나에게 힘을 다오!’
몸에 쏟아져 오는 마력과 오러가 원을 계속해서 키워 냈고, 이 지하 공동을 가득 채우는 걸 넘어서 바깥을 뚫고 나가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기술. 하나 그 대가로 마갑주는 외장과 술식이 하나둘 파괴되면서 내부 프레임이 드러났고, 그 안으로 보이는 베오날드의 육체도 푸른 불꽃과 보랏빛 오러가 처절하게 싸우면서 조금씩 타서 없어지고 있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콰가가가가가가가!
거대한 원형의 검기로 인해 이 유적의 지반이 무너지고 천장이 가라앉아서 서서히 붕괴되어 갔다.
그럼에도 베오날드는 멈추지 않고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오의-우로보로스’를 유지하면서 마왕을 밀어내고 쓰러뜨리기 위해서 계속 자신을 불태운다.
하나 마왕은 그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오의-우로보로스’에 나름 감격을 한 건지 붉은 오러를 끌어 올리고 양손을 써서 막아 내고 있었다.
[날 이 정도로 밀어붙이다니, 500년 전의 용사보다 훨씬 낫군. 내게 두 손을 쓰게 한 걸 영광으로 알아라.]
‘젠장……! 이걸로도 안 된다는 건가?’
[좀 더 노력하면… 어쩌면 지금의 나를 쓰러뜨릴지도 모르겠군.]
‘놀리는 것도 아니고!’
[하나 직접 휘두르는 그 거대한 힘의 여파는 잘 생각하고 있나?]
거대해진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오의-우로보로스’를 막아 내면서 하는 마왕의 지적. 그 말대로 붕괴되어 가는 이 유적지로 인해서 지하의 설비가 무너지면서 자연스럽게 베오날드의 몸과 마갑주에 연결된 선과 시설 구조물도 손상되었고, 자연히 더 이상 힘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서서히 약해져 가는군. 재미있는 발악이었다.]
그리고 결국 한계가 찾아온 듯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오의-우로보로스’의 맹렬한 기세가 점점 사그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는 마왕이었다.
즉, 베오날드는 이제 곧 죽을 것이고, 여기가 한계이니 자신을 여기까지 밀어붙인 것도 대단하다고 순수하게 칭찬하는 것이었다.
“…아… 직… 끝… 나지… 않았는데?”
마갑주의 외갑도 거의 다 사라지고, 안에 드러난 몸도 군데군데가 불타 버려서 흉한 뼈와 내부의 살과 장기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었고, 그것도 서서히 타올라 사라지는 중이었으며, 왼쪽 눈은 이미 다 타서 없어졌다.
그러나 아직 남은 흐려진 오른쪽 눈빛에서는 투지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또 무슨 발악을 하려는 거지?]
“무식한… 마왕 같으니…….”
베오날드는 아주 힘겹게 거의 다 무너져서 잔해 속에 파묻힌 잘 보이지 않는 설비 사이의 마법진으로 한 발 내디뎠다.
그러곤 바닥의 술식을 만지며 거기에 마력을 흘려 넣었고, 그러자 바닥의 마법진이 빛나면서 베오날드의 모습을 사라지게 했다.
원래 이 마법진들은 곳곳에 있는 베오날드의 유적에 물건들을 보내는 마법진으로 목표 위치만 바꾸면 즉시 이동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도망칠 생각인가?]
“그럴… 거였으면… 진작 했지.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으니까…….”
도망칠 생각도 하긴 했었다.
하나 지금 도망치면 두 번 다시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고, 마왕은 ‘성맥’을 고갈시켜 멸망시킬 게 뻔했기에 지금 여기서 끝장을 봐야만 했다.
[……!]
그 순간 마왕은 베오날드가 무언가 다른 속셈을 품고 있음을 눈치채고, 급박하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이미 마법진은 가동해서 그의 모습이 거의 다 사라진 뒤였다.
대량의 화물을 옮기는 것이니 갑옷을 입은 인간 하나쯤 사라지게 하는 건 순식간. 그것도 몸의 절반가량이 타 버려서 사라진 인간이라면 더욱 쉬울 만했다.
“…빙고.”
그리고 이제 흐릿해져 가는 베오날드의 눈앞엔 마왕은 사라지고, 얼마 전 ‘유성우 낙하’로 폐허가 된 대지와 여전히 마족들을 뱉어 내는 소환문과 마법진들이 보였다.
‘당연히… 지하에서 일일이 올라가지 않게, 지상의 저택 곳곳의 좌표가 미리 등록되어 있지.’
500년의 세월 동안 폐허로 남은 본래 1층의 영역은 땅에 묻혔고, 지하에 도착해서 중앙 시스템을 살린 베오날드는 1층으로 가는 좌표와 마법진이 살아 있다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자, 그럼 끝내 볼까?”
자신의 의식과 시야가 끊어져서 이대로 쓰러지기 전에, 남은 모든 것을 쏟아붓기 위해서 베오날드는 성검을 들어서 검을 휘두를 자세를 취한 다음 휘두른다.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 최종 오의-에키드나!”
베오날드의 몸에 남은 모든 힘과 마력, 그리고 생명까지 모두 불사른 마지막 검이 휘둘러졌고, 그의 시야는 그대로 새까만 어둠으로 물들고, 동시에 자신의 모든 것이 불타 버림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