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세상의 멸망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이런 모습일까?
끝없이 떨어지는 유성우는 계속해서 베노피스를 강타했고, 지표를 깎고 그곳 위에 있던 마족과 암흑신교 인원들을 죽이며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대재앙을 그대로 구현해 놓은 유성우를 보며 베오날드는 역시 ‘대주문’이라 생각하며 주문이 끝나길 기다렸다.
“오래도 떨어지는군. 언제쯤 끝나나?”
“이제 곧입니다.”
“마왕은 둘째 치고, 소환진은 흔적도 안 남겠구먼.”
“감히 ‘마법’에 손대려 한 죗값이지요.”
“너희가 그래서 500년 전에도 망할 뻔했다는 걸 기억하게.”
뼈가 있는 말을 하면서 베오날드와 다리온은 계속해서 유성우가 떨어지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제 거의 유성우의 떨어짐은 끝났고, 흙먼지들만이 본래 베노피스가 있던 지역을 자욱하게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호흡까지 멈추면서 그 자욱한 흙먼지들이 바람에 걷히길 기다리는 베오날드와 다리온. 마왕의 봉인은 둘째 치고 계속해서 마족들을 꺼내 오고 부활시키던 ‘소환문’과 ‘소환진’은 확실히 파괴되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자네, 혹시 불길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베오날드 님이야말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게 아닌지요.”
“마왕은 워낙 규격 외의 존재이니까… 그래.”
꿀꺽.
긴장한 건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계속해서 화상을 바라본다.
그곳엔 자욱한 흙먼지가 걷히면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불길한 생각은 어찌나 잘 맞는지 거대한 소환문이 아직 멀쩡하게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유성우 낙하’를 정통으로 맞았는데!”
“그러게 말이야. 하하, 망할 여신 같으니……. 저걸 어떻게 이기라는 건지. 이봐, 저 붉은 점을 확대해 줄 수 있겠나?”
“아! 예!”
경악하는 다리온 다이나. 마탑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시전한 ‘대주문’이었는데… 소환문이 멀쩡한 건 말도 안 되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충격에 빠져서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보던 베오날드는 화상 속에서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존재를 발견하였고, 즉시 화상을 연결하는 마법사에게 그 부분을 확대하라고 했다.
『정말… 귀찮게 하는군. 순순히 멸망하면 되는 것을 어찌 이렇게 저항한단 말이냐.』
『휘익… 쿠우웅!』
더 놀라운 것은 그 존재는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유성을 한 손으로 잡은 상태라는 점이었다.
그러곤 마치 조약돌을 던지듯 치워 버리면서 자신을 보는 자를 발견한 듯, 화면에 나오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며 말한다.
“…우리에게 말을 하는 건가? 역시 마왕!”
『모든 것은 결국 분노만을 낳는 것을…….』
“큭!”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어딘가 뒤틀린 것 같은 인간이었다.
전체적인 형태는 그가 거느린 붉은 비늘과 갑옷을 입은 붉은 용인들을 떠올리게 했지만, 몸 절반이 뒤틀린 채 용의 꼬리 같은 촉수가 여럿 나 있어서 얼굴 부분까지 그것이 차지하여 마치 문어나 오징어 같은 기괴한 형상이었다.
그런 기괴한 형상 탓일까? 거기서 일렁이는 붉은빛과 스산한 목소리는 듣는 사람의 본능 레벨에서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거기 보고 있는 자들은 들어라. 나를 성가시게 만든… 네놈들부터 없애 주마. 곧 그리로 갈 것이다. 필연을 거부하고 괴로움만 늘어나는 이런 성가신 저항을 못하게 말이다. 모두… 서쪽으로 향하라.』
촤라륵!
그대로 촉수로 서쪽을 가리키는 ‘분노의 마왕’. 그와 동시에 소환문에서 나오기 시작한 마족들과 모여드는 몬스터들이 전부 일제히 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소환문을 지키던 ‘분노의 마왕’도 한 걸음, 한 걸음 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봉인을 풀고 나오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이, 이를 어쩌지요?”
“당황하지 마라. 결국 저렇게 직접 행차하신다는 건 그만큼 저 마왕님도 이번 수에는 쫄렸다는 증거다. 게다가 보아하니… 저 모습, 딱 봐도 제대로 부활한 게 아닌 것 같지 않느냐?”
두려워하는 다리온과 다르게 베오날드는 이미 라라와의 싸움 이후 저 마왕의 진짜 모습을 보았기에 태연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때 라라의 영혼을 거둔 마왕의 모습과 비교하면 지금 저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아마 ‘유성우 낙하’로 인해서 소환문과 진이 깨질 것을 두려워해서 직접 봉인을 깨고 나타난 것이라 추측하는 베오날드였다.
“즉, 잡으려면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는 거다. ‘유성우 낙하’는 헛수고가 아니었어!”
“정말… 입니까?”
“그래, 그러니 정신 차리고 대응할 준비를 해라. 나는 우선 해야 할 일을 하지.”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딱 봐도 지금 저기에 주인이 움직였는데, 그 틈을 노려야지.”
‘베노피스’의 폐허에서 마왕이 자리를 비운 이 타이밍. ‘유성우 낙하’로 파괴하지 못한 저 소환문과 마법진을 파괴할 유일한 찬스였다.
베오날드는 즉시 아르젠에게 향했고, 베노피스로 떠날 채비를 한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아르젠.”
“대주문이… 실패한 겁니까? 선조님?”
“실패한 건 아니지. 다만 마왕의 방해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에게 좀 더 좋게 된 셈이다. 자세한 건 나중에 다리온에게 가서 들으면 된다.”
“저기, 선조님은… 달켄 다이나 님과 같은 세대이자, 전설이셔서 마탑의 존중을 받는 몸이시지만 저는 이곳의 마법사 왕, 다리온 다이나 님에게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너는 엄연히 알테리오의 피를 이어받았고, 나 베오날드 폰 노이멀이 인정한 정통 후예다. 다이나 가문의 후예에게 밀릴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이미 네겐 내 유산도 건네지 않았더냐?”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노이멀이라는 걸 자각하지 않고 산 지 너무 오래되었고, 솔직히 베오날드 선조님이 되살아나서 복권시켜 주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 말입니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베오날드의 말에 답하는 아르젠 학부장. 하지만 베오날드는 그 태도가 영 탐탁지 않았다.
노이멀의 이름도 복구시켜 줬고, 지금까지 ‘마갑주’ 개발과 자신의 유산들에 대한 지식까지 줬으면 알아서 다이나 왕국에서 입지를 올려야지, 너무 성실하게 일과 탐구에만 힘쓰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지금 베오날드로 살곤 있으나 ‘노이멀’의 이름을 가진 채는 아니니까… ‘노이멀 가문’을 살리는 것은 네 역할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어라.”
“그럼 그 발데리안 영지 쪽에…….”
“그쪽은 그쪽대로 새로이 태어난 ‘베오날드’와의 인연이다. ‘노이멀’은 정통 후계자인 너의 것이고, 네가 이어 나가야 한다. 뭐, 어려운 일을 도와주거나 조언을 해 줄 순 있으니 걱정 마라. 아무튼 확실히 말하마. 너는 노이멀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다.”
당부하듯 다시금 알려 주면서 베오날드는 굳게 말했다.
다이나 왕국에서 만난 뒤, 그저 일적으로만 어울렸지만 베오날드는 이 알테리오가 남긴 후손에 대해서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있는 것만으로도 되찾은 자신의 유산을 후세에 맡기고 노이멀의 이름을 모두 살릴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기특하지 않을까?
“예. 아, 알겠습니다.”
“그럼 가도록 하지. 마왕이 ‘베노피스’를 나온 틈을 타서 소환문을 처리하고 돌아와야 하니 말이다.”
“부디 무사하시길 빕니다, 선조님.”
“그래. 돌아오면 모두와 함께 베노피스로 가서 이야기하자꾸나.”
그리고 베오날드는 즉시 각종 장비와 마갑주를 챙겨 아르젠이 직접 제작한 군마형 골렘을 타고서 떠났다.
마정석만 공급하면 생물의 한계를 넘어 달릴 수 있는 이 말 형태의 골렘은 산과 강을 돌파해서 베오날드가 빠른 속도로 베노피스에 도달할 수 있게 아르젠이 만든 것이었다.
단점은 역시 마정석의 마력을 소모하는 형태라서 기존의 말을 이용하는 것보다 코스트가 비싸다는 점이지만, 지금은 시간이 그 무엇보다 소중했기에 베오날드에겐 최적이었다.
[히이히히히히힝!]
“그렇지만 엄연히 말 형태의 골렘인데, 왜 굳이 말 울음소리를 내는 기능을 넣은 건지 이해가 안 가는군. 이랴!”
[이히이잉!]
“…아, 나도 모르게 그만. 제길! 아르젠 녀석… 그놈도 누가 노이멀 아니랄까 봐 이상한 면이 있다니까!”
채찍질을 하든 안 하든 이 골렘 말은 일정한 속도로 계속해서 달리는데, 자신도 모르게 채찍질을 하곤 혼자 어색해하는 베오날드였다.
그렇게 그는 식사와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말 위에서 보내면서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수면 시간도 없이 꾸준히 달리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베노피스에 도달했을 때 전투를 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마음만 조급해서는 안 되는 법. 그리고 마족들의 군세도 조심해야 해.’
베오날드는 그렇게 철저히 조심하면서 질주했고, 어언 4일째 되는 날 베노피스의 경계에 도달하게 된다.
“드디어 베노피스인가?”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거늘, 500년이나 지난 뒤 자신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내었던 영지에 도착해서 보니 생각 이상으로 익숙한 광경들이 보여서 감정이 울컥해지는 베오날드였다.
“변하지… 않았구나.”
사실 500년이나 지났고, ‘대주문:유성우 낙하’가 작렬한 만큼 베노피스의 자취라고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베오날드는 엄연히 베노피스를 맨땅에서부터 일궈 낸 자. 모든 문명의 흔적이 사라진 산맥과 강만 남은 베노피스의 풍경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아무것도 없는 베노피스의 땅에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이렇게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지. 정신 차리고 움직여야 한다.”
‘유성우 낙하’로 소환문을 처리하지 못했기에 마족들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고, 그리고 이곳으로 몬스터들도 계속 찾아오니 베오날드는 한껏 더 조심해야만 했다.
그래도 아직 베노피스 외곽인 만큼 그는 조심스럽게 남쪽을 크게 돌아서 내부로 진입하고자 한다.
‘확실히 비밀 통로 위치가… 이쯤 어딘가에 있을 텐데…….’
베오날드는 현재 베노피스 남쪽 강가를 거닐면서 열심히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가 찾는 것은 바로 베노피스의 지하로 갈 수 있는 하수도로, 그것을 통해 유적 내부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5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도 무시 못할뿐더러 일전의 ‘유성우 낙하’로 인해 강가도 엉망이 되고 흙이 쌓인 통에 찾기가 힘들었다.
‘대강 위치만이라도 잡으면 좋은데… 베노피스의 지도는 베노피스에만 보관한 내 잘못이지만. 제길!’
[뭘 하려고 그리 열심히 찾고 있나?]
“예전에 만들어 둔 지하 하수도를 찾는데……! 큭!”
열심히 지하를 찾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리자 베오날드는 재빨리 성검을 뽑아서 휘두르며 빠르게 몸을 돌려 물러난다.
성검은 결국 허공을 갈랐고, 베오날드는 자세를 다잡으면서 자신의 뒤에 선 그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붉은 갑옷을 걸친 용인의 몸에 몸의 절반이 뒤틀린 꼬리와 촉수가 가득한 기괴한 자. 불안전한 상태로 부활했던 ‘분노의 마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