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오, 드디어 오셨습니까? 베오날드 님.”
“그래. 오랜만이군, 다리온.”
그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는 마법사 로브를 입은 거구의 남자. 마법사라기보단 전사가 어울릴 것 같은 그의 이름은 다리온 다이나로 현재 이 다이나 왕국의 지배자이자, 마법사 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자였다.
본래 달켄 다이나의 ‘신마법’ 프로젝트를 돕다가 그가 실패한 이후 베오날드에게 항복 선언을 하고 이제는 다이나 왕국 통째로 베오날드와 협력 관계인 상태였다.
“이야기는 아르젠에게 대강 들었을 거라 본다만? 대책과 현황은?”
“오랜만에 모든 학부에서 동의가 나왔을 정도로 마왕의 계획을 전부 파악하고는 이미 대책을 세우고 실행 중에 있습니다.”
“대책? 어떻게?”
“다이나 왕국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베노피스’를 지도에서 지워 버리려고 합니다. 인류를 절멸시키는 문제는 둘째 치고, 감히 ‘성맥’을 건드려서 세계의 마력을 없애려고 한 건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거야 그렇지.”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배우고 익히고 전수한 학문이 모두 폐지가 되어 버리는 상황이 온다고 하니, 그토록 각 학부별로 갈려서 싸우던 마탑도 하나가 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이었다.
다리온 다이나는 계속해서 베오날드에게 이 다이나 왕국이 펼치고 있는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일의 진행은 우선 조사팀과 다른 마왕의 수하들과 계약한 흑마법사들을 통해 진상 확인을 했고, 실제로 베노피스를 보니 확실히 엄청난 마력이 소모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고, 곧바로 모든 학파에 연락을 넣어서 대책위원회를 설립해서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설마… 이미 뭔가를 한 건가?”
“예. 이미 하고 있는 중입니다, 베오날드 님. ‘용사’로서 활약하신다고 들었지만 아마 활약하실 수 없을 겁니다.”
“호오? 그것참 좋은 소식이군. 구체적으로 뭘 하는 거지?”
“지금 모든 학파의 마법사들이 모여서 ‘베노피스’를 날려 버릴 ‘유성우 낙하(Meteor Swarm)’를 시전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오……! 그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대주문 말인가? 유실된 줄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비장의 무기에 베오날드도 깜짝 놀랐다.
500년 전에도 주문이 있긴 했지만 사용할 일이 없어서 봉인되어 있었는데, 그때보다 쇠락한 지금은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선조이신 달켄 다이나 님이 잘 챙겨 두셨습니다. 이게 있으면 다이나 왕국을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 하시면서 말이죠.”
“그랬군. 그래서 그걸 시전한다고?”
“예.”
‘유성우 낙하(Meteor Swarm)’. 베오날드도 실제로 본 적은 없고 그저 들어 본 것이 전부인 대마법으로, 도시 혹은 국가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궁극의 마법이었다.
게다가 사용하려면 조건도 무시무시하게 복잡했는데, 마법적 능력과 마력의 양은 기본이고 고도의 천문학 지식과 계산 능력, 섬세한 조작 능력 등등… 엄청난 역량이 필요해서 거의 전설의 드래곤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걸 지금의 다이나 왕국이 할 수 있나?”
“원래라면 달켄 다이나 선조님 정도가 아니면 시전이 불가능한 대주문이지만, 지금은 모든 학부에서 지식과 인원을 제공할 수 있는 ‘대의명분’이 생겼기에 학부장급 인사들이 모두 모여서 이 대주문을 분석하고 각자 부분을 나눠서 협력해서 하는 중입니다.”
“하, 그 서로 싸우고 비방해 대고 자신의 학문이 제일이라고 하던 마탑의 마법사들이 협력이라! 기가 막힐 노릇이군.”
“500년 전 이야기 아닙니까?”
“인간의 욕망과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이지.”
그렇게 다리온 다이나와 떠들면서 이동을 마치게 되고, 예전 그대로 ‘다이나 가문’의 저택 지하에서 대주문은 준비 중이었다.
본래 ‘신마법’을 사용하려고 했던 그 의식의 장소, 설비, 술식의 새김, 마력 요소 등등… 대주문을 사용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장소는 없었다.
학파가 다르다는 것을 알려 주듯이 로브 색이나 문양이 다른 마법사들 약 200여 명이 각자 자리를 잡은 채 술식을 고치고 있었다.
“오… 생각보다 사이좋게 일하고 있군. 보통은 이런 공동 프로젝트에서는 ‘내가 더 잘해!’ 하면서 싸울 텐데 말이지.”
“분쟁이 없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비상시라는 것을 강조하니 결국 서로 이미 다 아는 건지 분야가 척척 나뉘더군요.”
“마탑 전체의 위기이니… 알아서 의기투합하게 된 건가?”
“그런 거겠지요. 자칫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선조들이 이룬 모든 것을 잃을 상황이니 다들 일단 개인적인 감정은 접어 둔 상태입니다.”
“그건 좋군. 한데 엄연히 ‘분노의 마왕’을 섬기거나 그 권속과 계약한 흑마법사들도 있을 텐데… 그건 어떻게 했나?”
“당연히 모조리 처형했습니다. 지극히 합당한 조치이지요.”
끄덕.
베오날드 또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한다.
놈들은 이미 분노의 마왕의 편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런 대주문을 시전하는 대의식에 혹시나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처리해 두는 게 당연한 조치였다.
어쨌든 ‘유성우 낙하’라는 대주문이 발동되어 베노피스를 초토화시킨다면 자신이 나설 일이 없기에 안심이 되는 베오날드였다.
“한결 마음이 놓이는군. 부랴부랴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차라리 그렇게 날려 버리면 훨씬 낫지. 흐음~ 그럼 나는 돌아가도 되려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베오날드 님께서는 미리 차선책을 준비하셔야지요.”
“차선책? 설마… 마왕이 ‘유성우 낙하’를 막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저희는 저희대로 최선의 수를 쓰고 있는 것이지만, 애초에 ‘마왕’이라는 존재는 격이 다른 존재. 만일을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습니까?”
“…음, 생각해 보니 그렇군. 상대는 상식으로 잴 존재가 아니긴 하지.”
다리온의 말에 베오날드는 정신을 차리면서 그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만일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상대이기도 했고, 어찌 되었든 절대 싸워서 실패해선 안 되는 적수였다.
‘유성우 낙하’로 처리가 되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지만, 그렇지 않게 되면 그때부터 무언가 대처하려고 하면 너무 늦을지 모른다.
“대주문은 언제 완성되나?”
“약 한 달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대원정’의 군세가 준비하고 올라가는 거랑 유사하군. 음, 좋아. 그럼 나는 그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준비를 하도록 하지.”
“그러십시오. 머무시는 건 연금학부로 가실 겁니까? 아니면 이곳 저택으로 하실 겁니까?”
“연금학부로 가지. 귀여운 후손님과 준비해야 하니……. 아무튼 기대하지. 부디 그 마왕 놈을 처단해 주길 바라지.”
무운을 빌면서 베오날드는 물러났고, 즉시 연금학부로 가서 현 상황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아르젠을 만나서 ‘대주문:유성우 낙하’ 이후의 비상 대책을 자신들이 맡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그와 만일을 대비한 대책 마련에 나서게 된다.
***
한 달 뒤, 베노피스.
여전히 붉은 크리스탈 속에 봉인된 마왕과 그 아래 마왕의 군단들은 같은 일정을 반복하면서 ‘성맥’의 마력을 소모하는 것을 체크하며 계속 소환과 파병을 반복하고 있었다.
다만 살짝 바뀐 것은 암흑신교 놈들의 제안으로 무작정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숫자와 규모의 편성을 모아서 보내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상입니다, 마왕님. 계획대로 ‘성맥’의 마력은 쭉쭉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히히… 소환 의식도 순조롭고, 죽은 ‘피의 강’ 님을 비롯해 이번에 드디어 소환 마법진을 더 크게 만들어서 마왕님의 권속들 중 거대한 자들도 소환이 가능해졌습니다.”
[…알았다.]
무덤덤하게 말하는 마왕. 크게 만들거나 작게 만들거나, 소환이 되거나 말거나 그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곳 ‘성맥’의 생명만 끊어 내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되는 만큼 그는 부하들의 보고를 대강 듣기만 하고, 그저 가만히 멸망의 때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던 중 봉인 안에 있던 ‘분노의 마왕’은 하늘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낀다.
[잠깐…….]
“예?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하늘에서 별이 다가오고 있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무언가 계시입니까? 마왕님?”
[아니, 나는 진실만을 말한다.]
슈우우우! 콰아아아아아아아!
마왕의 말과 동시에 이곳 베노피스에 자리 잡은 마왕군의 주둔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운석이 하나 떨어지고, 거대한 불기둥과 후폭풍을 만들어 냈다.
그제야 알 수 없는 마왕의 말을 기이하게 여기던 암흑신관은 벌떡 일어나서 난리를 쳤다.
“우, 운석이? 가, 갑자기 마른하늘에 이 무슨…….”
[아직 끝이 아니다. 하늘을 봐라.]
“허, 허억!”
마왕의 말대로 하늘을 보자, 밝은 대낮에도 볼 수 있을 만큼 붉은 화염을 머금은 수많은 별들이 낙하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시시한 예언서 같은 곳에 나올 법한, 세상이 멸망하는 순간에 보인다고 하는 유성들의 낙하.
그것이 현실로 일어나서 지금 이곳 베노피스에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마법이군. 떨어져 내린 유성에서 희미하지만 인위적인 마력의 조작이 느껴진다.]
“마법? 그렇다는 건 다이나 왕…….”
콰아아아!
기어이 유성은 앞에서 경악하던 암흑신관에게 정통으로 들어갔고, 그의 목숨을 순식간에 끊어 내는 것은 물론 시체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몬스터들은 갑작스럽게 떨어져 내리는 ‘유성우 낙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어떻게든 살려고 발악하며 주변으로 흩어지기 시작했고, 다른 암흑신교와 마족들은 소환문과 마법진을 수호하기 위해 다급하게 움직였다.
“도, 도망치지 마라! 소환문을 수호해라!”
“마왕님의 봉인은?”
“그 봉인은 어지간해선 부서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저 상태가 더 안전하지!”
“젠장! 망할 다이나 왕국 놈들 같으니!”
다른 마족들의 입으로 이 유성우가 인위적인 조작이라는 것을 들은 암흑신관들과 흑마법사, 마족들은 이를 갈면서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이 유성우에서 소환문을 지켜 내기 위해 발악했다.
하나 유성우는 고작 한두 발, 아니 열 번, 스무 번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베노피스를 날려 버리겠다는 다리온 왕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듯 백 발 단위가 넘는 유성우가 계속해서 베노피스에 쏟아지며 폭발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흠… 아주 잘되고 있군요.”
“직접 보는 게 아니더라도 굉장하군. 그나저나 저놈들이 저리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면 보안… 엄청 잘했나 보네.”
“베오날드 선조님에게 당했던 교훈도 추가했지요.”
그리고 같은 시각, 다이나 왕국에서 마법으로 이 광경을 실시간으로 관전하는 다리온 왕과 베오날드였다.
500년 전에도 보지 못한 ‘대주문:유성우 낙하’이기도 했고, 마왕의 야욕을 꺾을 찬스였기에 기꺼이 시간을 내서 이것을 보러 온 베오날드는 쿠키를 먹으면서 과연 어떻게 될지 생각하며 계속해서 마법 속에 초토화되어 가는 눈앞의 베노피스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