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그럼 ‘대원정’을 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 걸로 보겠소. 이 계획은 ‘용사’의 사명이니만큼 당연히 대신의 자리에 있는 용사를 중심으로 진행할 것이오.”
가문의 명예와 존립이 걸린 대명분에 결국 ‘대원정’ 제안은 아주 손쉽게 통과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황제의 지시 아래 베오날드를 중심으로 원정 계획이 준비되었고, 그는 우선 신전의 기사단장, 황실 기사단장 레기온 경, 크멜 공작, 발데리안 백작을 불러서 지휘부를 결성하였다.
[다들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지휘부부터 편성해야 하기 때문에 제국 내에서 가장 강한 군권을 가지신 분들을 먼저 소집했습니다.]
“어차피 대신이 편성하는 것에 병력과 기사들만 보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아뇨. 여기 계신 분들에게만 이야기하는 거지만, 전 ‘대원정’을 제대로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게… 또 무슨 소리인가?”
[계산을 해 보면 정말 무모한 계획이 맞으니까요. 지도를 보십시오.]
촤라락!
베오날드가 펼친 거대한 지도. 제국 수도에서 베노피스까지의 장대한 거리와 주요 지형이 다 그려진 것이었다.
이곳 제국 수도에서 베노피스까지 북방으로 올라가는 먼 길, 상당한 거리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더욱 문제는 기존에 제국이 점령하던 지역 외에는 어떤지 현재 내용이 거의 없었고, 그 위로 베노피스까지 정확한 거리도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일단 과거 제국의 북부 경계까지 수복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보도 있지만, 중요한 건 기존에 제국이 만들어 두었던 길과 성의 잔해들이 남아 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하나 그 경계를 넘어서는 아무것도 없지요. 심지어 길까지…….]
“으으음… 확실히 불길한 땅이랍시고 전혀 전진하지 않았으니까.”
[거기다 아직 볼레아 왕국의 공세를 완전히 제압한 것도 아니기에 만약 우리가 북부로 진격할 시, 놈들이 옆구리를 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다이나 왕국은 우릴 도울 것이라서 이 부분은 해결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 두십시오.]
“하긴 볼레아의 공세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느낌이 들기 시작하던 참이지. 하나 진군하는 중에 추가적인 적이 생기는 건 부담스럽지. 한데… 어느새 다이나 왕국과 이야기를 끝낸 건가? 사절을 보낸 것도 아닌데?”
[개인적인 연락망이라고 해 두지요.]
그러곤 베오날드는 베노피스로 북진하는 ‘대원정’이 실제로 행하기엔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지 계속해서 설명해 나갔다.
[거기에 일단 앞의 조건들을 해결해서 저희가 베노피스 쪽에 가더라도 문제입니다. 정보가 너무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까지 많은 마족들을 상대했지만 그곳은 인외의 마경,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왕이 있는 처소입니다. 그냥 간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기에 사람을 또 보내서 조사단을 꾸려야 합니다.]
“구구절절 다 맞는 이야기군. 근데… 이럴 거라면 자네는 반대를 하지 그랬나? ‘대원정’에 대해서 처음엔 다 반대를 했을 텐데…….”
[그럼에도 하는 움직임을 적들에게 보여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호?”
[어쨌든 마왕과 베노피스는 처리해야 할 일임은 분명합니다. 하나 그 수단으로서 ‘대원정’은 부적합.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연막을 치기엔 적합한 수단이지요.]
“즉, 대원정은 위장으로 진행하고, 자네가 별도로 움직인다는 거군.”
끄덕.
베오날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한다.
크멜 공작의 그 말대로 베오날드는 일단 보여 주기식으로 ‘대원정’을 표면적으로 진행하고, 자신이 몰래 암약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위장도 어설프게 하면 안 되니, ‘대원정’의 현실적인 목표치를 정해야겠지요. 목표는 북부의 제국의 영토 회복 정도로 일단 기초를 잡고 병력을 모아서 작전을 전개해 나갈 겁니다. 현재 내부는 안정화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럼 용사님은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다이나 왕국으로 가서 그쪽과 협력해서 베노피스의 정보를 모으고, 마왕을 칠 생각입니다.]
“흠…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
[원래 용사의 사명이 그것이니 어쩌겠습니까?]
철컥.
허리에 찬 성검을 만지고 바라보면서 결국 일이 이렇게 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기껏 계획대로 일을 잘 진행시켰고, 마왕의 운명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 분노의 마왕이라는 놈에게 한 방 먹은 것 같아서 더 짜증이 나는 베오날드였다.
‘게다가 졸지에 진짜로 용사 같은 모험질을 하겠군. 제길!’
다이나 왕국에서처럼 직접 몸을 쓰고 치고받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었고, 성검 따위 좀 더 적합한 다른 신전 기사에게 넘기고 내정만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베노피스’를 공략하는 일이라면 지금 자신밖에 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비밀 통로라든가, 시설이라든가… 아무튼 이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의 위치를 다 알고 있으니 내가 갈 수밖에…….’
마족들의 거처가 된 ‘베노피스’이다 보니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그 베노피스의 지하에 남겨 둔 자신의 유산들도 무사할지 걱정이 되는 베오날드였다.
하나 그럼에도 베노피스를 설계하고 만든 그였기에 남아 있는 지하 하수도라든가 각종 통로를 이용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기에 우위점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가야만 했다.
‘…게다가 빈틈을 노리는 건 처음 한 번이 유효하지, 두 번째부터는 위험성이 배가된다. 게다가 내가 한번 이용하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마족들도 경계를 철저히 하게 되고, 베노피스 지하에 만든 내 유산들을 찾으려고 하겠지.’
그러니 기회는 단 한 번. 베노피스에 침투하는 처음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만 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베오날드의 임무였다.
아무튼 자신의 사명을 알리고, 그것을 위해서 다이나 왕국으로 가겠다고 한 베오날드는 발데리안 백작과 크멜 공작에게 ‘대원정’을 할 군의 조직과 구성 준비를 맡기고, 레기온 경에겐 이제부턴 황제가 직접 내정을 하게 될 테니 잘 보필해 주라고 이야기했다.
“한데 그동안 자네가 사라지면 암흑신교 놈들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나?”
[물론 그것의 방안에 대해선 준비해 놨습니다. 정석 중의 정석이 있지요.]
“정석이라면?”
[다들 읽으셨던 용사 전설에… 꼭 한 번씩 나오는 이벤트가 있지 않습니까? ‘수행’이지요.]
“아하……!”
수행. 그래, 용사 전설에서 꼭 한 번씩 나오는 파트. 진중한 스토리를 이어 나가다가 쉬어 가는 부분이기도 하고, 또 점점 강력해져 가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파워 업 이벤트. 베오날드는 ‘대원정’ 준비를 하는 동안 마왕군과의 결전을 위해서 이것을 한다고 하고 숨어서 공작을 할 생각이었다.
[적어도 암흑신교 놈들을 속이기엔 충분할 겁니다.]
“흠, 그러면 문제없겠지.”
“의심할 여지도 없겠죠. 게다가 용사님은 저 갑옷으로 계속 모습을 감추고 계시니, 갑옷만 벗으면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끄덕.
그렇게 방안이 다 마련되자 다들 납득하게 되었고, 베오날드는 곧장 다이나 왕국으로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 그 준비라는 게 꽤 만만치 않은 일이었는데, 지금 그가 혼자서 맡고 있던 행정 일과 전담해서 진행하는 ‘대수로 사업’ 등등… 많은 것을 현 황제와 다른 대신들에게 설명해 주고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일단 대강 국정 운영에 대한 자료들은 여기 있으니 필요한 대로 찾아서 보시면 될 겁니다. 200권 정도 되는데, 제가 하는 것을 지켜보신 황제 폐하라면 문제없을 거라 믿습니다.]
하나 모든 것을 가르치는 건 무리였기에 황제에게 스스로 공부하면서 찾을 수 있도록 자료들을 만들어서 준비해 준 그였다.
어차피 지난 3년, 갖가지 일을 하면서 승인을 받기 위한 보고를 할 때 황제에게 강의를 한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남은 건 그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음… 3년간 정말 고마웠네. 제국을 지키고 여기까지 정비시켜 준 용사의 공, 절대 잊지 않을 걸세.”
[앞으로 잘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부디 훌륭한 황제가 되시길…….]
“그대의 무운도 빌어 주겠네. 반드시… 성공하게. 가능하면 갑옷 안의 모습도 한번 보고 싶었지만, 마왕을 쓰러뜨리는 사명을 위해서 숨어야 하니 어쩔 수 없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황실에 할 수 있는 일을 마친 베오날드는 그렇게 물러났고, 황궁을 나가서 신전으로 들어간 그는 자신 혼자 있도록 마련된 밀실 안에서 용사 코스프레용으로 입고 있던 ‘마갑주’를 드디어 벗는다.
그다음엔 우선 이곳을 벗어나야 했기에 급히 비상용으로 만든 스크롤을 찢어서 근거리 순간 이동을 시전, 제국 수도를 관리하면서 비밀 기지로 사 둔 지하 창고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갑갑했는데, 이제야 좀 살겠군. 끄으으으으응!”
뚜두둑!
마갑주를 입고 용사 행세를 하는 사이사이 몸 관리를 위해 자주 나와서 몸을 풀긴 했었는데, 이제는 전투 외에 입을 필요가 없으니 상당히 편해진 베오날드였다.
그리고 베오날드로 돌아온 그는 창고 밖으로 나와서 인파에 섞여서 곧장 발데리안 영지로 향했다.
발데리안 영지에 도착만 하면 그곳에 있는 ‘알의 둥지’로 가서 단숨에 다이나 왕국으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가는 동안 베노피스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볼까?’
지금은 마왕군의 터전이 되었지만 본래 풀밭만 가득했던 땅, 베노피스. ‘성맥’의 발견으로 그곳에 자리 잡기로 한 그가 노이멀의 땅을 버리고서 평생을 바쳐서 가꾸어 낸 도시였다.
그리고 베오날드가 살던 저택은 지표만 해도 화려한 것이었는데, ‘둥지’ 시리즈들을 보면 알겠지만 그곳의 땅 밑엔 다른 둥지들만큼이나 감춰 둔 비밀이 많았다.
‘암, 애초에 둥지를 만든 게… 베노피스에 모두 보관이 안 되었기에 퍼뜨리기 위해서 만든 창고들이니 말이지. 나 죽을 때도 절대 공개되지 않게 조치해 둔 곳이었는데… 과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군.’
하나 다른 둥지들의 상태를 보았을 때, 베노피스 또한 무사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마족들이 있긴 하지만 놈들이 만약에 그곳을 파헤쳐서 캐냈다면 그곳에 있는 보구들을 들고 오거나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마왕의 간부라고 하는 ‘피의 강’을 비롯해서 다른 놈들 모두… 그 안에 있는 보물을 쓰지 않았다. 거기에 암흑신교 놈들도 그다지 부유해 보이지 않았고 말이지. 거기에 있는 재보를 손에 넣었으면 활동 방향성이 달랐을 텐데 말이지.’
그렇게 놈들의 지금까지의 움직임과 활약을 통해서 사정을 파악한 베오날드였고, 그것을 통해서 베노피스의 지하 아래에 있는 최초의 둥지이자 모든 둥지의 중심인 ‘노이멀의 둥지’가 무사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다이나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에 갈 방안을 찾아봐야겠군. 그나저나 드디어 결전인가…….’
생각을 하다 보니 전생에 자신이 직접 가꾸고 일구었던 제2의 고향이 결전의 땅이 되는 것에 베오날드는 무언가 형언하기 힘든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어쩌면 전생에 그곳에서 죽었는데 이번에도 그곳에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서였고, 베오날드는 불길해하면서도 결국 자신이 죽는 곳은 똑같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2주 뒤, 다이나 왕국.
본래 제국 수도에서 발데리안 영지까지의 거리는 2주나 되지 않으나, 발데리안 영지에 도착한 베오날드는 곧바로 다이나 왕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죽을지 모르는 이 마지막 결전 전에 이번 생에서 만든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와 자신이 죽고 난 뒤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 유언과 방안을 마련해 주고 발걸음을 옮긴 탓에 시간이 늦어진 것이었다.
“늦어서 미안하군, 아르젠. 발데리안 영지에서 뒤처리할 게 많아서 말이지.”
“아닙니다, 선조님.”
“좋아, 그럼 바로 일을 시작해야겠지. 우선 각 학파의 학부장들의 반응은 어떻지?”
“예상하신 대로 마왕의 목적을 알게 되자 다들 분노하고 있습니다. 선조님이 오시면 바로 같이 베노피스를 공략할 방안을 짜겠다고 이전부터 난리입니다.”
마법이 사라지고, 이 세계의 법칙이 바뀌게 되면 그들의 모든 것은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에 당연히 일어날 반발이었다.
예상하던 반응이 그대로 나오자, 베오날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르젠과 함께 각 학부장들을 만나기 위해서 모두가 모인 다이나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