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여유로운 입장에서 단숨에 쫓기는 입장이 되어 버리다니… 젠장! 게다가 이걸 3년 동안 못 깨달은 게 가장 멍청하게 느껴져!’
쿵쿵쿵!
베오날드는 자책하면서 가느라 걸음 조절을 못해서 마갑주의 무게가 그대로 땅에 전해지면서 도로와 성의 바닥에 깔린 대리석들을 무자비하게 부수면서 황제의 어전으로 향했다.
“오… 왔소? ‘용사’여. 방금 전 승전 소식은 잘 들었…….”
[큰일 났습니다, 폐하.]
“큰일이라니, 갑자기 무슨 말이오? 전쟁은 이기지 않았소?”
[수도의 싸움보다 더 큰 위기 상황이 지금 닥쳐왔습니다. 우린 마족 놈들의 진짜 계획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진짜 계획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지 차분히 설명해 보시오.”
베오날드는 우선 호들갑을 떨면서 황제가 집중하도록 만든 다음에 설명을 시작했다.
‘베노피스’에 존재하는 ‘성맥’이라는 것과 그곳의 마력으로 마족 놈들은 계속 소환되고 만들어지고 있으며, 자신들이 놈들을 쓰러뜨리는 속도가 올라가면서 더 많은 마력이 소모된다는 것까지 말하고, 결국 ‘성맥’이 고갈되면 이 ‘별’은 죽을 것이라는 것까지 이야기한다.
“별이… 죽는다는 건?”
[우리에게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뜻이지요. 물론 한두 세대 정도는 문제없을지 모릅니다. 하나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닙니다. 해결하지 않는 이상은 모든 역사와 인간은 사라지게 될 겁니다.]
“흐으음… 그렇다면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없겠군. 소집할 수 있는 모든 중신들을 모아야겠어.”
이해력이 나쁘지 않은 건지 황제는 이 심각한 사태를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제국 전체에서 대응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을 빠르게 눈치채고 곧바로 대부분의 귀족과 중신, 신관 등등… 제국의 중요 인물들을 모두 소집한다.
그동안 베오날드는 더 상세한 설명을 위한 준비, 그리고 다이나 왕국 쪽에도 연락을 넣기 위해 아르젠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마왕이 성맥을 고갈시키려고 한단 말입니까? 선조님!』
“그래. 원래라면 진작 눈치챘어야 하는데… 제길!”
『그거 큰일이군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오랫동안 이룩한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단 이야기지. 인류가 멸망하기 전에 마법이 먼저 사라지게 되니 말이지.”
『그건 절대 안 될 이야기입니다.』
마법이 사라진다는 소리에 목소리의 무게가 확 달라지는 아르젠이었다.
연금술 또한 엄연히 마법의 한 분야이기도 했고, 마탑의 기둥 중 하나인 연금학부장인 아르젠으로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겠지. 흑마법사들도 들고일어날 일일걸?”
『당연하지요. 흑마법사라고 다 같은 마왕이나 악마와 어울리는 건 아니니까요.』
“마왕이… 아마 수도 없이 많다고 했었나?”
『예. 그리고 그 안에서도 다양한 마왕들이 서로 다투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전공자가 아니라서 이런 곁다리 지식밖에 없지만요.』
“그렇군. 그런 우주적 레벨의 스케일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지. 지금은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니 말이야.”
『예. 그리고 우리의 마법도 잃을 수도 없습니다. 시급히 다이나로 돌아가서 대책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지요. 공장은 다른 자들에게 맡겨야겠습니다.』
다이나 왕국은 마법을 위주로 돌아가니 ‘성맥’을 사용해 마력을 고갈시키려는 마왕의 계획을 막기 위해서 예상한 대로 적극적으로 나섰다.
남은 건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였다.
회의에 들어가는 건 들어간다고 해도 일단 구체적으로 자신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했다.
‘너무 급작스럽지만… 일단 결국 용사로서 마왕 토벌을 진행해야겠군.’
본래라면 제국 수도와 제국을 지키면서 국력을 길러서 압도적인 힘으로 짓밟을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결국 ‘마왕 토벌’을 진행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물론 우선 해야 할 일은 지금 성맥의 상태가 어떻냐는 것과 앞으로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인데… 문제는…….’
그 조사를 위해선 일단 문제는 북쪽에 있는 ‘베노피스’까지 직접 가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 그곳은 마족들의 소굴이고 마왕의 본거지가 된 상황이었다.
상황을 알려면 결국 그 마왕의 본거지를 때려야 하는 것.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가 없었다.
‘물론 아르젠과 마탑의 인원을 동원해서 원거리에서 아는 방법도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시간이 관건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조사하면 분명 머리 아플 일들이 한가득 다가올 터였다.
우선 할 수 있는 준비부터 진행하는 사이, 황궁 내에서 일하는 하인들이 회의가 소집된 것을 알려 왔고, 베오날드는 즉시 황실 기사단, 고위 귀족을 비롯한 중신들이 모인 대형 회의장으로 향했다.
[아, 레기온 경이시군요.]
“긴급히 불렀다고 해서 놀랐네만. 대체 무슨 일인가? 오늘 전투는… 무사히 이기지 않았나?”
[그렇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이라면?”
[마족들의 진짜 목적 말입니다. 그냥 꼬라박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가온 레기온 경에게 간단히 설명하면서 회의장으로 들어간 베오날드. 거기엔 황제의 긴급한 호출에 중신들 및 제국 수도에 거주하는 주요 인물들이 모두 다 모여 있었다.
황제는 용사인 베오날드를 보자마자 곧바로 회의장의 인물들의 시선을 모아 주었고, 즉시 베오날드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폐하 덕분에 이 시급한 상황에서 거두절미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럼 다른 분들은 지금부터 집중해서 들어 주십시오. 오늘 새롭게 밝혀진 마족들의 목표는…….]
그리고 곧바로 황제에게 설명한 것을 그대로 보고하기 시작, 중신들은 당연히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사실 베오날드가 대신의 자리에 들어간 이후 점점 안정되고, 마갑주라고 하는 새로운 무구 덕분에 새로운 시대가 되어서 이제 희망이 가득한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어떻게 그런 일이……. 그럼 우린 이때까지 멸망하는 것도 모르고 그저 기뻐하고만 있었단 말인가?”
“마왕의 손아귀 안이었다니…….”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 겁니까? 용사님.”
[당연히 동요가 큰 줄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지요. 하나 정신이 드니 결국 답은 하나입니다. 언제가 되었든 간에 ‘대원정’을 통해서 이 ‘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전쟁을 해야 합니다.]
웅성웅성…….
충격적인 소식에 이어서 ‘용사’의 입장에서 대규모 원정에 대한 선언이 나오니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성맥’의 마력이 고갈되기 전에 싸워야 한다는 논리는 완벽했지만, 다들 이 ‘대원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었다.
제국 수도를 지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야 해서 다들 순순히 협력했지만, 공격전은 이야기가 다른 것이었다.
“공격전, 즉 북부로 원정을 간다는 건가?”
“으음, 하지만 너무 급작스럽지 않나. 물론 기존의 제국 북부를 되찾는다는 건 찬성하는 바이지만…….”
“우리 고향도 있으니 말이지.”
“하나 간다면 지금 가는 게 아니라 좀 더 전력을 키워서 가는 게 맞지 않을까?”
“간신히 안정되었는데 말이지. 당장 망하는 게 아니라면 신중히 가야 되지 않나?”
웅성웅성…….
의견이 분분할 법한 것이 지금은 3년 전처럼 제국 수도가 무너지는가 마는가를 다투는 그때와 다르게 베오날드의 뼈를 깎는 운영과 정치로 상당히 안정화되어서 군사, 경제, 농업 모든 분야에서 이전보다 더 성과가 많을 정도였다.
하나 사람의 본능이라는 게 간사한 것이 결국 가진 것을 포기하기란 어려운 법이었다.
“그, 그러면 용사님, ‘대원정’은 언제 갈 겁니까? 설마 지금 당장 가신다는 건 아니시겠지요?”
“마, 맞습니다. 적어도 대수로 사업은 끝나고 생각을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성맥’의 마력이 고갈된다는 건 물론 심각한 위기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런 풍경도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군. 에휴…….’
마갑주 안에서 한숨을 푸욱 쉬며 귀족들의 대화를 듣는 베오날드였다.
물론 베오날드가 말한 것에 찬동해서 ‘대원정’을 당장 해야 한다고 긍정하는 자들도 꽤 있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숫자로 보면 역시 회의적인 인간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었다.
‘뭐, 이해 못할 건 아니야. ‘성맥’의 고갈로 멸망한다고 한들… 그건 나중 일이라고 생각해서 죽고 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놈도 있을 거고, 거기에 직접 마왕을 향해서 다가가는 건 두려운 일이기도 하니까…….’
“어허! 다들 부끄럽지도 않소?”
“하지만 이를 어찌한단 말입니까? 당장 전쟁을 일으킨다는 건…….”
[자, 다들 진정하십시오. 그 말대로 우선 지금 당장 막 병사를 모아서 곧바로 전쟁을 일으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정찰대를 보내서 수색을 해야 하고, 또 군사를 모으고 작전을 짜는 과정도 꽤 걸릴 테니 말이죠.]
베오날드가 급히 수습하는 말을 하자 그제야 조금 진정되는 회의장이었다.
그 말대로 전쟁을 하기 위해서 사전에 검토하고 확인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 만큼 시간적 여유는 준다고 하자 귀족들의 반발심은 그제야 조금 잦아들었다.
하나 그렇다곤 해도 결국 ‘마왕’을 상대하는 대원정인 만큼 그 규모는 컸기에 웬만해서는 빠질 수 없다는 것을 다시 각인시켜야만 했다.
[하나 그래도 모두 각오는 하셔야 할 겁니다. 이 ‘별’을 지키는 숭고한 싸움엔 우리를 비롯해서 자식들과 후손들의 존망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지 않고 시간만 허비하게 되면 이 ‘별’은 곧 죽어서 씨앗을 뿌려도 자라지 않는 땅이 될 것입니다.]
“으으음…….”
“그건 심각한 일이지만…….”
[그리고 저기 모아 놓은 깃발들을 보십시오. 제국의 깃발도 있지만 이 제국을 떠받치는 수많은 가문의 깃발들도 같이 있지 않습니까? 저 깃발들이 무엇입니까? 제국의 역사이자 긍지, 그리고 마찬가지로 귀족 가문들의 역사이자 긍지이지 않습니까?]
베오날드는 회의장 벽에 걸려 있는 수많은 깃발들을 가리키면서 한 번 더 강조한다.
그래, 귀족 가문의 깃발. 각기 다른 문양과 상징이 새겨진 깃발이다.
어떤 것은 동물, 어떤 것은 검과 문양 등등… 귀족들이 왜 귀족인지를 알려 주는 가문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다.
물론 어떻게 보면 그저 상징이겠지만 저것에 담긴 역사와 긍지, 자존심은 귀족에게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후세에 저것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아니면 사라져서 그저 이름이 남지 않아서 ‘그런 가문이 있었나?’ 하고 여겨진다면? 여러분 모두 각 가문의 가주로서 가문의 긍지와 역사를 이어 나가는 자들 아닙니까? 500년 전, 이름이 사라진 어떤 간신의 가문의 경우를 모르십니까? 지금 싸울 준비와 시도를 하지 않으면 이제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될 겁니다.]
“…그건 큰일이지.”
“그래, 가문의 이름. 그것은 반드시 지켜야지.”
웅성웅성…….
눈높이에 맞춘 연설 덕분인지 회의장의 분위기는 단숨에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귀족에게는 자신의 ‘정원’인 가문과 영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고, 그것의 인식을 중심으로 설득하니 잘 먹히는 것이었다.
다만 베오날드로선 그 예시로 든 것이 500년 전에 멸망한 자신의 가문이라는 게 살짝 씁쓸하긴 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있었기에 더 잘 먹힌 것일 수도 있지 않나? 노이멀이라는 이름은 없어져도 ‘사라진 가문’이라는 건 존재는 하니까 말이야.’
멸망해서 사라진 자신의 가문의 운명도 이렇게 도움이 되는구나 싶은 베오날드는 마갑주 안에서 피식 웃으며 점점 알아서 ‘대원정’ 찬성의 분위기로 변해 가는 회의장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