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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252화 (252/259)

[252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결국 어떤 자극이나 부담도 계속되면 적응하게 되어서 일상생활처럼 느껴진다.

풍전등화 같은 제국의 위기라 여겨지던 마족의 침입도 한 해, 두 해 넘어가면서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고, 대신으로 임명된 ‘용사’에 의해서 새로이 제국의 체계가 정비되고 국가의 내부를 어지럽히는 암흑신교도 토벌, 거대한 대의명분 아래에 하나로 뭉친 제국은 끝없이 성장한다.

그리하여, 마족들의 공세를 버텨 내며 내부를 정비하면서 제국을 지켜 낸 지 어언 3년이 지났다.

“벌써… 3년째 쉬지 않고 일하느라 고생이 많구려, ‘용사’ 대신.”

[아닙니다. 기꺼이 해야 할 일이지요, 폐하.]

3년. 그사이 중태에 빠진 제라도 칼레움 황제는 결국 서거하여 조엔 칼레움이 황위를 이어받아 차기 황제로 무사히 등극했고, 그동안 개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한 채 사리사욕을 일체 채우지 않고, 용사로서 제국을 수비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베오날드는 이미 중신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제 슬슬 갑옷 내부를 보여 줘도 되지 않나 싶기도 하네만…….”

[마왕을 처단할 때까지 저는 이대로 ‘용사’로서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폐하.]

“그런가……. 아쉽군. 덕분에 제국이 많이 부강해졌는데 말이지.”

‘당연히 누구 솜씨인데~’

마갑주 덕분에 으쓱! 하면서 콧대를 세우는 모습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좋은 베오날드였다.

3년, 아직 베오날드가 계획한 구상에 닿으려면 턱없는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을 해 오긴 했다.

그리고 베오날드가 더욱 놀란 것은 바로 인간의 가능성이었다.

‘예전엔 그래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면서 한 걸 빼니까 이 정도였나?’

명확한 목표와 희망, 거기에 이젠 사리사욕을 채울 필요 없으니 공정하면서도 성과에 따른 구체적인 보상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현 상황. 제국의 인간들은 베오날드의 지휘와 청사진을 따라서 무섭게 발전을 거듭했고, 방해가 될 자도 없으니 바람을 타고 바다를 질주하는 배처럼 일의 진행 속도가 남달랐던 것이다.

‘아르젠 녀석도 역시 내 후손답게 일을 아주 잘해서… 이젠 마갑주를 한 달에 100기씩 뽑아내니까…….’

‘공정을 집약해서 수정하는 건 연금술사로서 당연한 일이죠, 선조님.’

‘그 덕분에 발데리안 가문은 유례없는 부흥을 누리고 있지.’

처음엔 발데리안 가문의 기사와 크멜 가문 정도에게만 공급했던 마갑주는 제국 수도에도 판매되었고, 그 자금으로 이제 발데리안 가문은 계속 확장해 나가면서 베오날드가 지시한 ‘대수로’ 사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수로’ 사업은 현재도 진행 중이지만 그래도 이런 공사 사업이라는 건 무조건 사업이 다 완료가 되고 나서부터 효과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곳부터 뚫리는 수로와 강을 이미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음, 덕분에 돈도 돌고, 상업도 발전해서 좋군. 하지만 역시… 인구가 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해. 특히 제일 성가신 게 이 노예 제도인데, 아직도 반발하는 놈들이 많아서 문제지.’

아무리 크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 줘도 그것을 다 보지 않고 그림 속에 묻은 코딱지만 보는 인간이 있거나 혹은 자신의 밥그릇이 위협받거나 베오날드가 권력을 누리는 것이 싫어서 반대하는 자 등등… 방해하는 자 또한 매우 많았다.

‘하지만 500년이 지나도 방해 수법이 다 그대로라서 별로 신선하지도, 위기 같지도 않군.’

용사라서 정치나 암투에 무능할 줄 안 멍청한 놈들에게서 목숨을 노린 암살이나 각종 업무 방해, 또는 암흑신교와 손을 잡는 일 등등… 이미 다 겪어 본 일들이라서 대비는 쉬웠고, 이젠 대신으로서 권력, 신전에서 인정한 용사라는 감투가 동시에 있었기에 감히 그에게 손을 대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 되었다.

‘3년간 어리석은 놈들이 꽤 많았는데… 요샌 없군. 1년 전만 해도 저 수도 중앙 광장에 시체를 꽂아 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많았는데 말이지.’

물론 자신에게 대항했다고 모두 죽이거나 고문하지는 않는 베오날드였다.

수도 중앙에 죽여서 매달아 본보기로 삼은 놈들은 암흑신교 관련자라든가 혹은 자신을 건드리는 데 일정 선을 넘어선 놈들뿐이었다.

왜냐하면 아직도 제국 전체의 인력은 여러모로 부족한 상황이기에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재활용하고자 한 것. 그러나 그럼에도 베오날드를 선을 넘어서 노리는 자들은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보고드립니다, 용사님. 오늘 또 ‘피의 강’이 쳐들어왔으나 무사히 격퇴했습니다.”

[희생은?]

“마갑주 33기 파괴, 사상자 211명입니다. 그 외에 다른 쪽 전투 피해는 전무합니다. 원시적인 마족 놈들이라서…….”

[흠, 그놈은 이전보다 강해지긴 했군. 알았다. 격퇴에 공을 세운 자들에 대한 포상과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과 예우를 지금 준비하지.]

“예.”

‘흠, 그나저나 그놈들도 참 미련하군. 슬슬… 이젠 안 된다는 걸 인식 못하는 건가? 분노에 머리가 돌아 버린 건가? 흐으음…….’

사각사각…….

마족 중 최강이라는 ‘피의 강’의 공세도 이제는 그저 이민족 침략 같은 전투 일상의 하나가 되어 버린 베오날드는 분주히 서류 작업을 진행해 가며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3년 내내 ‘피의 강’이라는 그 거대한 용인은 약 3~4개월가량 간격으로 쳐들어와서 계속 전투를 했고, 때론 단독이 아니라 다른 간부급 마족과 암흑신교의 신관들과 함께 쳐들어왔었다.

‘예전엔 물론… 치열하긴 했지.’

솔직히 지금은 일상이었지만 그땐 엄청난 위기였다.

병사, 기사들의 사상자도 심각했고, 베오날드도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겪었을 정도로 치열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베오날드는 끝까지 의지를 다지고서 지혜를 동원하고 크멜, 발데리안을 비롯한 남쪽 가문의 지원까지 끌어모으고, 때론 아르젠을 비롯한 다이나 왕국의 마법사들까지 호출해서 어떻게든 막아 내며 지금까지 버텨 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데, 놈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정말 머리가 없는 걸까? 아, 여기 실수할 뻔했군. 나답지 않게…….’

“용사님, 우, 우선 여기 서류 승인 부탁드립니다!”

[두고 가게.]

“예!”

사각… 사각…….

3년이 지나서 꽤 인력을 보충했음에도 지금 이 행정부는 여전히 바쁜 지옥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베오날드는 무언가 집중하고 싶어도 이렇게 금방 일이 들어오기 때문에 바로 넘어가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중요한 것을 계속 잊어버리고 우선 제국을 유지하는 업무를 지속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다시 몇 달이 더 지났다.

추운 겨울, 해가 넘어가기 직전의 12월의 마지막 주. 새해를 축하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또 ‘피의 강’을 비롯해서 암흑신교의 간부들과 마족들이 한차례 쳐들어왔다.

물론 이제는 침략이 예전 같은 침략이 아닌지라 전원이 마갑주로 무장한 황실 기사단에 연금술로 개발된 신무기들까지 있어서 다소 희생은 있었지만 싹 쓸어버리는 데 성공하게 된다.

[징한 놈들… 오려면 새해나 지나고 오지.]

“크르르…….”

[나는 네놈들만 상대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붉은 투기를 뿜으며 자신을 노려보는 ‘피의 강’. ‘용사’의 모습을 한 베오날드는 버럭 성질을 내며 포효하며 검을 휘둘렀다.

정산과 각종 황실 행사 등등으로 보통 때보다 일이 훨씬 많은 연말에 쳐들어온 데다, 이번엔 상당히 많은 군세를 모은 것이라서 그런지 베오날드까지 직접 ‘성검’을 들고서 전장에 나서야만 했다.

“크르르르르르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인간!”

[젠자아아아앙!]

콰아아아!

베오날드의 오러와 ‘피의 강’의 붉은 투기가 서로에게 용솟음치면서 격렬히 다툰다.

그러고 보면 힘들게 상대하던 이전과 다르게 이제는 상당히 잘 버티는 베오날드였는데, 밤낮 없이 업무에 바쁜 그가 따로 수련을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전투에 지속적으로 나선 것이 단련이 되었고, 거기에 베오날드가 지금 입고 있는 마갑주의 성능도 계속 올렸기 때문이었다.

‘부서진 걸 그대로 둘 수 없으니 아르젠에게! 요구 사항을 주고 보강해 달라고 했지. 아무튼 빨리 이놈을 처리하고 마저 일을…….’

“크와아아아! 네놈, 제법 강해졌구나.”

[누구 덕분에! 그리고 강해진 건 나뿐만이 아니다. 봐라! 너희가 불로써 단련시켜 강해진 제국의 군대를!]

“크르르르르르르! 장난감 같은 것에 의존하는 주제에!”

[이건 지혜의 결정체라는 거다!]

터엉! 채애앵!

계속되는 격렬한 전투. 하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국을 발전시키고, 무장을 튼튼히 한 제국군의 압도적 승리가 다가오게 된다.

마족들은 더 이상 제국의 위협이 아니라 그저 위험한 사냥감 정도로 취급해도 될 만큼 압도적인 제국군의 전력에 도로 사출되는 마족의 시체와 그들에게 끌려와서 죽는 몬스터의 시체가 한가득 쌓인다.

“크으으으으… 또… 실패라니…….”

[흐음, 이젠 슬슬 혼자서도 잡을 것 같군. 실전이야말로 최고의 경험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었어.]

성능이 오른 마갑주에다 베오날드도 주기적으로 참전하면서 계속 실전 경험을 늘려서인지 이전보다 실력이 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베오날드는 일대일로 싸운 자신에 의해서 양팔이 완전히 잘리고 피를 흘리는 ‘피의 강’이 그대로 검은 연기를 뿜으며 괴로워하는 걸 보고 계속 비아냥거렸다.

돌아가면 또 가는 대로 씻지도 못하고 서류 더미에 파묻혀야 할 판국이니 말이다.

[이제 너희는 계속 실패할 거다. 적어도 내가 죽어서 사라지기 전까진 말이야! 하나! 나는 죽기 전에 반드시! …빼앗긴 북방을 되찾고, 너희 마왕님을 완전히 세상에서 묻어 버리고 안심하고 여신의 곁으로 돌아갈 것이다.]

“크흐흐흐흐!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물론이지. 절망 속에서 우린 빛을 만들어 내었고, 지금 너희의 파도는 이겨 낼 정도로 성장했으니 말이야!]

“그래, 그렇게 생각해라. 크흐흐… 크흐흐흐흐흐…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되어 갈 뿐이니 말이야. 크하하하하하!”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져 가는 ‘피의 강’은 베오날드를 비웃으며 그렇게 사라진다.

베오날드는 그의 기분 나쁜 미소와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을 한두 번 보는 것이 아니었기에 평소엔 기이함을 느끼지 않았지만, 오늘따라 뭔가 싸늘한 느낌이 목 뒤를 스치고 지나갔다.

‘…뭔가 찜찜하단 말이지. 뭔가…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용사님! 승전 축하드립니다!”

[승리라곤 하나… 전투가 일어난 것은 좋은 일이 아니네. 놈들은 끝없이 몰려오는 반면 우리 쪽은 희생자가 생기니 말이야.]

“하나 계속해서 사상자는 줄고 있습니다. 용사님의 말대로 우리는 이겨 나가고 있습니다. 저 무한정으로 내려오는 마족들을 상대로 싸우고 적응했으니 말이죠.”

[무한이라. 사실 아마 무한은 아니고 베노피스의……!]

그 순간, 베오날드의 머릿속에 천둥이 치고 지나간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예전에 언급했던 일이었다.

‘베노피스’에 자리 잡은 마족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은 다 알고 있었다.

그저 다른 일과 우선 이겨 내야 할 위기가 많았기에 머릿속에서 잠시 떠났을 뿐이었다.

‘성맥의 마력, 그리고… 놈들은 마계의 존재! 젠장!’

‘성맥’, 자신들이 사는 이 별의 생명점 같은 곳. 그렇기에 엄청난 양의 마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땅으로 베오날드가 전생에 자신의 거처로 삼은 곳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연구를 했었고, 그 ‘성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엄청난 양이었지만 아주 무한한 것은 아니며 생명의 순환을 지키기 위해선 한계치를 알아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까지 알아낸 상태였다.

‘하지만 마족 놈들이 강림하는 방법은 흑마법 같은 것으로 이곳의 ‘마력’ 혹은 인신 공양의 ‘영혼’ 같은 제물을 사용해서 오지. 즉, 마족들을 소환하는 데에… 마력을 쓴다. 그걸로 무한에 가까운 이 병력들을 공급하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 ‘피의 강’ 같은 고위 마족을 소환하는 데 마력 소모량이 더 많았다면?’

여기까지 생각한 시점에서 베오날드는 드디어 마왕의 계략을 눈치챘다.

이 싸움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피와 살을 베는 자살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마족들은 여기서 싸우다가 쓰러져도 마계로 돌아가는 존재들. 자신들이 놈들을 잘 막아 내서 고위 마족들의 소환을 반복하게 되면 성맥의 마력 소모량은 더 많아지고, 점점 성맥의 마력이 고갈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대로 여유 부리면서 막는 것에 만족할 때가 아니야!’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공식이 바뀌어 버리니 역으로 시간은 마왕군의 편이라는 것을 깨달은 베오날드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갈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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