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더럽게 빠르군!’
“크오오오오오!”
거대한 붉은 용인은 거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달려와서는 날렵하게 뛰어서 그대로 베오날드를 후려쳤다.
저 분노의 권속 용인들은 모두 격투 타입인지 투기를 두르고는 발로 후려 차는데, 민첩하니 기가 막히는 베오날드였다.
그리고 그는 땅에 떨어졌으나 ‘성검’의 가호 덕인지 다행히 자세를 바로잡은 채로 착지할 수 있었다.
‘충격에 대한 대비는 갖춰 놨는데 말이지.’
“재주가 제법이군! 그러니 용사라 할 수 있겠지! 크오오오오!”
‘제길! 생각할 시간이 없군.’
채애앵!
놈은 그대로 떨어져 내려오면서 베오날드를 쫓아왔고, 베오날드는 성검에 오러를 집중하여 휘둘러서 맞대응하고자 했다.
‘피의 강’이라 불리는 놈은 이름의 유래를 보여 주려는 건지 전신에서 핏빛 오러를 뿜어내며 베오날드를 매섭게 덮치면서 그의 공격을 쳐 내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할 수 없기에 베오날드는 다른 한 손으로 ‘볼트 슈터’를 꺼내 ‘피의 강’의 면상에 맞혀 버렸다.
‘좀 뒤지라고!’
“크억! 이게 뭐야?”
‘젠장! 보통이라면 대가리가 뚫려야 정상인데!’
하나 놈은 ‘볼트 슈터’를 근거리에서 정통으로 머리에 맞고도 고개만 흔들릴 뿐,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한 호흡을 번 베오날드는 물러날 찬스를 얻었고, 계속해서 사격을 지속한다.
아무리 딸이 알려 준 오의와 성검의 힘으로 검술 실력이 늘었다곤 하지만 저건 그냥 맞대응하기엔 너무나 괴물 같은 놈이었기에 물러나려던 베오날드는 번뜩하고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니, 이걸 피해선 안 되지. 내 목표는…….’
이놈을 넘어서! 마왕의 모가지를 따는 것이었기에 베오날드는 투지를 되살리고, 자세를 다잡고 ‘피의 강’에게 돌진했다.
이놈을 넘어서 마왕까지! 싸우고 싸워서 자신을 담금질해야만 했다.
불가능에 도전하고, 역경을 뛰어넘는 것이 ‘용사’의 사명. 의지와 용기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베오날드는 불합리한 것을 알면서도 라라를 생각하여 이를 악물고 저 ‘피의 강’에게 검을 휘둘렀다.
[내 목표는 마왕의 목이니 말이다!]
“네깟 놈이 그분을 당해 낼 성싶으냐!”
[우오오오오!]
“크오오오!”
‘볼트 슈터’를 쏘면서 다시 전진, 성검을 휘두르지만 핏빛 투기를 두른 ‘피의 강’은 막강했다.
심지어 조금 있자 ‘볼트 슈터’에서 쏘아 낸 탄환을 잡아 버리는 기예까지 보여 주니 마왕의 직속 부하라고 할 만한 무력이 제대로 느껴졌고, 그대로 일권을 날리자 베오날드는 성검으로 막으면서도 뒤로 날아가면서 밀리게 된다.
“약해! 약해! 이게 용사의 힘인가? 크하하하하!”
‘네놈이… 무식하게! 강한 거야! 큭!’
투콰아앙!
공격에 베오날드는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면서 명백하게 느꼈다.
지금 자신의 수준에서는 저 ‘용인’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싸워야 한다는 일념뿐. 강해지지 않고선 딸인 ‘라라’의 영혼을 되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베오날드의 머릿속에 가득 차면서 그는 이 무모한 전투를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큭!]
“크흐음!”
[크헉!]
콰득!
일격을 허용하자 마갑주 안에서도 충격이 느껴질 정도로 고통이 몰려오는 베오날드였다.
땅을 구르고 일어난 베오날드는 갑주의 손상을 확인하면서 자신을 노려보며 걸어오는 ‘피의 강’의 모습에 전율을 느낀다.
‘…말도 안 되는군. 내가 용사 코스프레하려고 쓴 것이라 술식도 최고급 소재로 때려 넣고, 아다만티움과 오리하르콘으로 이중으로 도배를 했는데… 이게 파먹힌 것처럼 뚫리다니, 대체 오러의 밀도가 얼마나 높은 거야? 마갑주가 아니었으면 진작 배가 뚫려서…….’
“손맛이 꽤 있는 놈이군. 그래야 용사지!”
‘제길! 목숨 하나 건졌군. 하지만 이대로 파손된 채로 계속 싸우는 건… 안 좋은데?’
“크오오오오!”
‘피의 강’으로서는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죽지 않은 베오날드를 보니 투지가 더욱 샘솟는 건지, 그는 핏빛 투기를 더욱 진하게 뿌리면서 돌진해 왔다.
베오날드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성검을 들고 다시 싸워 보려고 하지만 죽음을 직감했다.
이미 한번 사형대에서 목이 따여 죽어 본 그는 죽음의 기운이 어떤 것인지 체험해 본 것이었기에 민감하게 느끼고는 물러나면서 급하게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어쩔 수 없지.’
“죽어라!”
투콰앙!
이번에도 아까 전 가슴을 뚫은 일격에 버금가는 무시무시한 핏빛 오러의 압력이 몰아쳐 왔다.
하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베오날드는 검을 들고 여전히 물러서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대로 한번 파손으로 부서진 갑주로는 두 번째 일격을 막을 수 없겠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건?”
“용사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무능한 자식들!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아!’
아주 교묘하게도 ‘피의 강’은 베오날드의 부서진 갑주의 파손 부분을 노리고 주먹을 내질렀는데, 그 타이밍에 맞춰서 반투명한 빛의 보호막이 그의 죽음을 막아 주었고, 성벽 위에서 그를 지원해 주는 신관들이 열렬히 신성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인간은 사회, 조직적 동물이지.’
인간종은 원래부터 다수의 협력과 지혜를 사용하여 대륙의 지배자가 된 종족이었다.
그리고 그 강점을 최대로 살리기 위해서 가족, 조직, 사회, 국가에 이르는 규모가 커지게 되었고,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힘을 모아 돕고 지혜를 궁리하는 것으로 열렬히 살아남은 것이었다.
물론 ‘피의 강’은 자신의 싸움에 다른 놈이 참견한 것을 보고 노성과 분노를 터뜨렸다.
“…이 비겁한 놈이!”
[비겁? 네놈이야말로 저 파도처럼 많은 숫자의 마족들을 끌고 왔으면서 용기와 신앙으로 싸우는 우리를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크르르르르르!”
[애초부터 우리는 모두 인류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싸웠다! 네놈들은 멋대로 분노를 뿌린다면서 우리의 영토를 침략하고 모든 것을 파괴했지! 우린 그것에 맞서고 있는 것이며! 여신의 이름 아래! 지금도 하나로서 싸우고 있다!]
여기서 베오날드가 할 일은 바로 이 행위의 정당성을 선포하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는 것. 연설을 비롯한 말재주 또한 귀족의 귀감이었기에 베오날드는 아주 능글맞게 혀를 굴려서 사람들의 도움을 포장했고, 신관들뿐만 아니라 이제 기사들까지 베오날드와 합세하게 된다.
“네 이놈드으으을! 크르르르!”
[원한다면 도망쳐도 좋다. 하지만 그래서야 ‘분노’라는 이름이 울겠지. 뒤로 돌아서 도망치는 분노라. 하하!]
“크오오오오오오오오오!”
[우오오오오오!]
그래, 혼자서 한계가 있다면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면 된다.
홀로 맞서서 이기기 위해 단련을 하는 것도 포기하지 않지만, 일단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싸워 이겨서 살아남아야 실력이 늘고, 레벨도 오르는 것이었다.
베오날드는 다른 신관들과 기사들의 지원을 받아서 ‘피의 강’을 상대하게 되었고, 다른 군세 쪽에 여유가 생기자 마갑주를 입은 다른 기사들도 도우러 왔다.
“크르르르르! 네 이노오오옴들!”
[질기구나! 망할 도마뱀 같으니!]
“크오오오오오오!”
다른 이들의 도움과 신관들의 지원 마법 덕분에 베오날드는 한층 더 수월하게 싸울 수 있었고, 빈틈을 노린 아군의 지원으로 ‘피의 강’의 몸엔 점점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혹시나 다른 마족이 도움을 주러 오지 않을까 경계했지만, 놈들은 자신들의 대장이 싸우는 것을 도우러 오지 않고 단독으로 다른 곳으로 싸우러만 갈 뿐이었다.
‘예상대로… 저놈들에겐 조직력이라는 단어가 없군. 윗놈이 죽으면 아랫놈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서 그런 걸까?’
“크르… 크르르… 감히 네놈드을……!”
[후우… 후우…….]
상당한 희생이 있었지만 그래도 베오날드가 성검을 들고 전위를 맡아 주고, 아군 기사들과 신관들이 보조 마법을 지원하고 거기에 화살을 비롯한 마법에 사격의 도움까지 받으니 그 무섭던 ‘피의 강’도 결국 조금씩 피해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고, 오러의 소모도 소모였고, 피를 흘리니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크오오오오오오!”
‘진짜 뒤를 모르는 짐승이군. 이놈은……!’
하지만 ‘피의 강’은 그렇게 쓰러질 듯 휘청거리면서도 전혀 물러나지 않고 미친 듯이 공세를 이어 나간다.
마치 목숨이라는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 미치광이 짐승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계속 핏빛 오러를 퍼뜨리고, 터뜨리면서 날뛰는 놈은 이 지경이 되니 오히려 상대하기 쉬울 것 같은 베오날드였다.
‘지금이다!’
그리고 틈이 커지니 기어이 놈의 목을 딸 절호의 찬스를 잡아냈다.
결국 오러를 집중해서 내지르는 베오날드의 성검에 의해 ‘피의 강’의 목은 꿰뚫렸고, 혹시나 싶어 그대로 베어 내자 놈의 목이 바닥에 굴렀다.
[잡았나? 아니, 방심해선 안 된다.]
“크흐흐… 그르르르…….”
[…말하는군. 역시 육체를 산산조각 내야…….]
“크흐흐흐… 이번엔 네놈들이 이겼다.”
잘려 나간 목에서 목소리가 나오자 베오날드는 검을 들어 육체를 마저 끝장내려 했지만, 이내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는 ‘피의 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육체가 서서히 검은 가루로 변해서 하늘로 흩어지는 것이 보이자, 베오날드는 놈이 쓰러진 것을 그제야 실감하게 된다.
“…하나… 나에겐 죽음이 없다. 그리고 나는 돌아올 것이다. 다음엔… 반드시 내가 네놈들을 넘어 보이지.”
[…다음?]
“크흐흐… 기다리면… 알 것이다.”
그 말만을 남기고 결국 ‘피의 강’의 몸과 머리는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흩어져서 사라진다.
그가 말한 뉘앙스로 판단하자면 ‘마족’이라는 존재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며 다시 부활해서 내려올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하긴 결국 마왕의 권속이었기에 그러했겠지만, 베오날드는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다.
‘시간이 있으면 유리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이지. 놈들은 그대로 부활하지만, 우리는 그 시간 동안 더 나아갈 테니 말이다.’
놈들은 그대로 부활해서 돌아오는 걸로 끝이지만 베오날드는 자신의 ‘정원’은 지금보다도 더 강하고 튼튼해질 것을 의심치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함께 싸운 병사와 기사들에게 강력한 적을 쓰러뜨린 것을 알리고, 환호하며 사기를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