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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249화 (249/259)

[249화]

[으으음… 역시 그렇겠지.]

즉시 북쪽 성벽 위로 올라온 베오날드는 지평선 저편에서 무시무시한 투기를 느꼈다.

이때까지와 다른 레벨의 투기. 또한 멀리서도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형태의 새로운 마족들이 하나둘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용사님, 저 괴수는 어떻게…….”

‘하여간 서류 처리할 것도 많은데… 이젠 검까지 들어야 하다니 말이야.’

오크나 오우거 같은 몬스터들도 나름 대형종이라 할 수 있었지만,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거대한 몬스터는 그 레벨이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산만큼이나 거대한 붉은 거북이 같은 괴수. 그리고 거기엔 다른 레벨의 투기를 가진 자들의 그림자가 각각 자신을 쳐다보는 게 느껴지는 베오날드였다.

그 투기에서 베오날드는 이전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라미엘이었나? 그년이 떠오르는군. 설마 저기에… 있으려나? 뭐, 일대일에선 처참하게 깨졌지만 지금은… 다르지.’

그리고 베오날드는 ‘성검’을 꽉 쥐고서 마족의 파도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전에는 자신 혼자라서 당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군과 국가를 다루는 입장에서 싸운다면 모든 역량을 다해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제 필요한 권력을 모두 얻었으니 시간만 끌면 승리한다고 확신하는 그였다.

‘아무튼 그때까지는 지금은 내가 검을 들어야겠지. 그래도…….’

“와, 저거 발데리안군인가? 뭐야? 저 커다란 건…….”

“용사님과 비슷한 모습인데?”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

철컥!

베오날드의 명에 달려온 1만의 발데리안 가문의 군대. 일단 서류상으로는 발데리안군 파견 군대였지만 그 안에는 마갑주를 입고서 이전에 가르칸 공화국과 싸웠던 역전의 용사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 숫자도 늘어서 어느새 500명. 심지어 전쟁 경험으로 성능과 각종 무장 모두 아르젠에게 부탁해서 개선한 사양이었다.

‘어디 놀라는 건 우리일지, 아니면 저 마족들일지 곧 밝혀지겠지.’

베오날드는 속으로 미소 지으면서 마갑주를 입은 기사들을 각 성벽에 배치하며 오늘 열릴 수성전을 준비했다.

아마 저 마족들은 자신들이 비장의 카드를 준비해 왔으니 의기양양할 테지만, 그것이 큰 착각이라는 걸 곧 알게 될 것이라 예상하며 베오날드는 자신에게 전해져 오는 또 다른 행정 서류에 사인을 마치고 전투의 시작을 바라보았다.

***

예로부터 드래곤은 분노를 상징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었다.

자연의 분노로 알려진 뇌운, 홍수, 용암의 폭발, 그리고 진짜로 존재했던 과거의 드래곤들이 인간에게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모두 ‘분노’했을 때뿐이었기에 ‘분노의 마왕’은 자연스럽게 드래곤의 형상과 유사해졌고, 그 자손들인 ‘분노’의 수하들 또한 용인의 형상인, ‘블러드 레이징 드래곤’이라는 형태의 종족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모두 없애라. 분노로 불태워! 세계를 침묵으로!”

“침묵으로!”

“그분이 원하시는 것이다! 더 노하라! 더 불태워라!”

그오오오오오오오!

분노의 마왕 직속 부하인 ‘피의 강’의 포효와 함께 진군을 시작하는 마왕군. 붉은 용인들이 주축이 되어서 베노피스의 성맥에서 소환한 마족들과 몬스터들이 파도처럼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있는 암흑신교의 간부들은 내심 이런 무식한 돌격 전법만 쓰는 저 ‘분노’의 마족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이나라든가 발데리안 쪽으로 들어가도 되는 것을 왜… 굳이 여기만 고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신관님.”

“분노의 마왕님은… 말 그대로 ‘통제할 수 없는 분노’를 상징하신다. 우리가 저 성벽을 넘지 않고 돌아간다면 그것은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분노’가 아닌 것이지.”

“하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마왕님을 부르거나 깨웠어야 했을까요?”

“그러고 싶어도… 지금 우리가 아는 마왕님의 흔적은 500년 전에 깨어나셨던 ‘분노’ 님의 것뿐이었으니 말이지. 그 이전의 자료와 기록, 유적은 모두 망할 ‘베오날드 폰 노이멀’이라는 막돼먹은 자식이 모조리 압수하거나 폐기해 버리는 바람에… 크윽!”

“아, 그 500년 전의 ‘간신’ 말입니까?”

“그래. 놈은 이민족 토벌부터 시작해서… 우리 근거지를 이 잡듯이 뒤져서 모조리 소멸시켰다. 옛 사원, 던전을 샅샅이 뒤지는 한편 밝혀지지 않은 곳이 있으면 그냥 폭파해서 붕괴시켜 버리고 사람 손이 닿지 않게 만들었지. 크으으으으! 그나마 다행히 ‘분노’의 사원 하나는 무사한 덕분에 그놈이 죽고 분노의 마왕님을 부를 수 있던 것이지만 말이야.”

대신관이라 불린 암흑신교의 사제는 지팡이를 쥐고 부르르 떨면서 이를 갈았다.

500년 동안 살아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그는 대대로 암흑신교의 대신관들에게서 이 원한 어린 이야기를 전해 들은 자였고, 이번에 다시 분노의 마왕을 깨우는 데 성공했던 것이었다.

물론 ‘분노’의 마왕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는 분노의 마왕이 패배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튼 우리에게 선택지가 없었긴 했다. 그러나 ‘분노의 마왕’의 힘은 진짜이며, 무한 앞에선 그 어떤 수를 써도 패배뿐이다. 성맥의 무한한 마력에서 끝없이 소환되어 몰려오는 저 악마들을 보라. 반면 인간은 못해도 태어나서 15년의 세월이 지나야 무기를 들 수 있다. 하하핫! 그러니 그분의 말대로 우리는 즐겁게 쳐다보고 종말을…….”

크오오오오오오오오오!

콰아아아앙!

종말을 찬양하면 된다고 말하려는 타이밍에 갑자기 거대한 괴수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냥 포효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에 괴로워하는 절규. 암흑신교의 간부들과 마왕의 간부들을 태운 이 거대한 거북이 형태의 괴수의 머리에 폭발이 일어난 것을 발견한 그들은 깜짝 놀랐다.

“뭐지? 이건?”

“이런! 넘어진다!”

“우, 우리의 마수가… 이렇게?”

꾸어어어어어어!

머리 부분에 일어난 폭발이 걷히고 보인 것은 흉물스럽게 머리 절반이 폭발해 버린 마수의 모습이었다.

생명을 통제하는 두뇌 부분이 완전히 터져 버려서 흉한 모습이 된 이 거북이형 마수는 생명을 잃어버리고 그대로 거대한 나무처럼 서서히 땅으로 쓰러졌다.

위에 타고 있던 마족과 암흑신교의 간부들은 착지하면서 마치 탑이 붕괴하는 것 같은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인간 놈들, 무슨 짓을 한 거지? 저 마수의 갑주는 웬만해선 안 뚫릴 거고, 마력에 저항도 있는데…….”

“저, 저길 보십시오.”

“뭐지, 저건?”

그리고 마족들과 붉은 용인의 우두머리인 ‘피의 강’은 자신들이 아끼던 이 거대한 마수가 어떻게 쓰러진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성 쪽을 바라보았고, 원인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곳엔 보통 인간보다 거대한 강철의 기사들이 그들보다도 훨씬 길고 거대한 대포 같은 것을 들고서 자세를 고정하고 있었다.

“적, 침묵했습니다!”

[오, 성능이 좋군.]

“하지만 결계에다 방어 마법까지 썼는데도 화력의 충격을 완전히 흡수하지 않아서 성벽이 엉망입니다.”

[어차피 저 괴수와 공성전을 하다가 부서질 걸 생각하면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거지. 우리 후손님도 역시 똑똑해서 다행이야.]

베오날드는 발데리안 영지를 떠나올 때 자신이 나서서 싸울 준비도 했지만 남아 있는 이들에게 앞으로 더 싸울 준비 및 가르칸 공화국과의 전쟁에서 사용하던 무기들을 개량하고, 또 다른 노이멀의 유산에 있는 실패작 중에서 개선할 물건들을 찾아서 개선하라고 아르젠에게 지시를 해 놓았다.

지금 이 작품은 그 성공작으로 이전에 ‘탈피의 무덤’에서 건져 올린 ‘공성용 마력포’를 개선한 것으로, 쏘는 것은 마력으로 하는 ‘볼트 슈터’와 ‘볼트 라이플’의 대형화 작품이었다.

“탄환 재장전 거의 다 됐습니다. 어디다 쏠까요?”

[우선 자리를 옮기고 쏘게. 대충 오우거나 트롤 같은 게 몰려 있는 곳에다 쏴 버리면 재생할 새도 없이 육편이 되어 버릴 걸세.]

“예! 알겠습니다. 베오… 크, 크흠! 용사님!”

[그렇지. 지금 내 입장에 대해서 잘 알고 있군. 그래, 입조심해야 목이 안 날아가니 조심하게.]

“네!”

발데리안 가문에서 온 기사들은 대략 베오날드의 갑주가 마갑주인 것을 알고 용사라는 것을 감 잡고 있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도록 함구시켜 둔 상태였다.

어차피 설사 알려지더라도 자신은 이 갑주를 입은 상태에선 개인적인 인격체로 대하는 걸 거부하고 있었기에 큰 문제 없었으며,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서 베오날드는 현재 발데리안 영지에서 내정 중이라는 것으로 알려 정보의 위장까지 했다.

[흠, 역시 놈들이 꽤 놀란 모양이군.]

“더 놀랄 게 남았는데 말이죠.”

[그래, 더 놀라게 해 줘야지. 우리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 종족인지 지금부터 보여 줘야겠지. 저 분노의 파도를 우리가 뒤집을 수 있다는 걸 말이야. 제2파 사격 준비! 그리고 마갑주를 입은 기사들은 모두 중대형 몬스터는 물론이고, 원거리에서 마법을 부리는 몬스터들부터 저격하라.]

“예!”

그리고 베오날드의 명령에 의해 응전을 시작한 제국군은 이때까지 방어에 급급한 모습을 넘어서 막강하게 반격하는 공세를 취한다.

본래 제국군뿐만 아니라 발데리안 영지에서 온 마갑주를 입은 베테랑 기사들, 볼레아의 습격을 막아 내던 크멜 가문에서 지원 온 역전의 용사들, 거기에 신성 기사들의 지원까지 모든 힘이 모이게 되니 성벽을 기어 올라오는 마족들은 거의 없어질 정도였고, 역으로 뛰쳐나가서 때려잡아도 될 정도로 잘 대응하고 있었다.

“인간 놈들의 저력이 생각 이상이군. 그렇게 오래 싸우고 했는데 말이지. 암흑신교 놈들, 적 내부에서 일하고 있는 거 맞나?”

“신성국 쪽의 지부가 붕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시원찮아졌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제국 수도는 황제가, 발데리안 가문은 원래부터 교단과 사이가 안 좋았고, 크멜 가문엔 지부가 있었는데…….”

“킁! 역시 인간 놈들은 제대로 하는 게 없군. 말만 번지르르하고……. 하긴 결국 잔꾀나 부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종족이니 말이지.”

“어디 가십니까?”

“슬슬 우리도 진면목을 보여 줘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분께서 그냥 이긴 전쟁이라고 하여도 이렇게 모욕을 당해선 재미가 없지. 흐으음!”

다른 용인들보다 훨씬 거대한 용인, ‘피의 강’이 주먹을 쥐고서 앞으로 나아간다.

자신들을 태운 마수가 당한 것에 꽤 화가 난 듯 그의 눈은 커지면서 용안의 눈동자가 더욱 날카로워지고 투기가 끓어오른다.

마왕의 직속 수하, ‘분노의 마왕’의 직속 마족들인 ‘블러드 레이징 드래곤’의 대장인 그가 종족과 마왕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직접 나선 것이었다.

“다들 비켜라! 내가 직접 나서겠다! ‘피의 강’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지금 보여 주마!”

투기를 끌어 올려 발을 한 번 박차고, 하늘로 높게 날아오른 ‘피의 강’은 아군 몬스터들을 짓밟으면서 무섭게 전진하여 성문 앞에 도달했고, 주먹을 쥐고 자세를 잡더니 그대로 성문을 향해 휘둘렀다.

“흐으음! 쳐부숴 주마!”

투우우우우우웅!

내질러진 주먹은 그대로 성문을 강타, 마치 거인이 거대한 망치로 두드린 것 같은 충격파와 진동이 성문과 성벽 전체를 뒤흔들어 마왕의 직속 부하의 힘을 증명해 낸다.

본래 이 정도 충격량이라면 어김없이 성문은 부서지고, 주변의 성벽까지 무너져야 정상이었지만 이미 놈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챈 베오날드가 성직자들과 성벽에서 지원을 하던 제국 수도군의 전투 마법사들에게 방어를 지시해 놓은 것이었다.

[괴물 같은 놈이 있군.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어. 성문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니 말이야.]

“하지만 저대로 계속 성문을 두드리게 두면…….”

[당연히 가만히 안 두지. 직접 갈 거니 지원 부탁하네. 그리고 레기온 경에게도 이야기해 두게.]

“예!”

딱 봐도 다른 마족들이나 붉은 용인들보다 강한 상위종이 나타난 것을 눈치챈 베오날드는 성검을 쥐고서 곧바로 그 거대한 붉은 용인인 ‘피의 강’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피의 강’ 또한 남다른 기백과 화려한 마갑주로 인해서 알아보기 쉬운 베오날드를 발견하고는 자신의 적수가 나타났음을 즐거워하며 주먹을 쥐고 포효하면서 성벽을 타고 달려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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