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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248화 (248/259)

[248화]

그리고 제5부대를 진압한 베오날드는 즉시 창고의 물자를 대조하고, 그들의 비밀 장부까지 탈탈 털고서 손이 잘린 크리단 로켈을 고문해서 정보를 더 얻어 내는 일을 황실 기사들에게 맡긴 뒤, 황궁으로 돌아가서 황태자와 레기온 경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예상한 대로 로켈 가문의 부정이 담긴 증거인 장부를 확보했습니다. 보낸 위치와 물자들의 보급로가 암호화되어 있지만, 한 시간 정도만 주시면 풀어내겠습니다.]

“…그, 그런가?”

[그리고 계속해서 ‘성물’을 명분으로 이 장부에 나온 보급품 창고와 루트를 지금 당장 파헤쳐서 증거들을 더 수집하겠습니다. 황태자 전하, 국가를 운영하는 데는 마족 같은 외적보다도 바로 이런 기생충들이 더 치명적이고 무서운 법입니다. 그러니 일벌백계를 통해서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불태워야 합니다.]

“그, 그러면 제5부대가 맡은 영역은 누가 맡나? 아니, 로켈 가문을… 불태운다면 그들이 맡은 영역은?”

오랫동안 이렇게 대놓고 비리를 저지르면 황실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 그럼에도 처리하지 못한 것은 북방에서 지속되는 마족들의 공세에 경험 많은 군 간부가 다수인 로켈 가문의 인원들이 모두 축출되거나 반항하게 되면 제국 수도의 방비에 심각한 타격이 올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들을 처리하려면 적어도 대안이 있어야만 했다.

[일단 임시로 타 부대의 예비 전력을 끌어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만 더 기다리시면 곧 발데리안 가문과 크멜 가문에서 지원이 올 겁니다.]

“지원이… 온다고? 미리 협상이라도 했나?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이미 전서구로 온다는 확신을 받았습니다. 그럼… 로켈 가문의 정리에 대한 재가를 부탁드립니다.]

“으으음… 세상에나.”

황태자는 베오날드가 내민 확신의 서류를 보면서 진품이라는 걸 확인했지만, 그렇게 보니 더 기이한 것이었다.

대귀족, 그것도 발데리안 가문과 크멜 가문의 위상은 제국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급이라서 황실에서도 어지간한 대가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쉽게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물론 충성심은 부정하지 않아도, 각자 전선이 있고 근래 전쟁까지 치러서 여력도 없을 텐데, 어떻게 지원을 얻어 낸 것인가? 궁금할 만한 일이었다.

“…뭐, 틀림이 없으니 문제없겠지. 하도록 하게.”

[명대로 하겠습니다.]

황태자의 재가를 얻은 베오날드는 즉시 레기온 경을 동원하고, 각 제국군 부대에 공문을 보내서 로켈 가문의 혈족 및 영향을 받는 모든 인원을 즉시 체포하여 구금, 이어서 수도 내에 존재하는 로켈 가문의 저택으로 가서 즉시 진압하고자 했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옵니까? 제국을 수호하는 것에 검과 피를 바치는 저희 가문에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당연하지만 로켈 가문으로선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상황. 수도에 거주하는 가주인 로켈 남작이 직접 황궁으로 들어와서 항의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악수였다.

베오날드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와 비리 사실을 내밀면서 압박했고, ‘성물’의 소재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그 또한 구속했다.

“이거 놔! 감히 날 구속하고 무사할 것 같으냐? 놔! 지금 수도가 이 모양인데! 이렇게 해서 좋을 게 있나?”

당연하지만 로켈 남작은 감히 제국군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것에 반항했고,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엄포를 놓으면서 협박 비슷한 것을 한다.

심지어 자신이 구속된 것을 알면 로켈 영지에서 나설 것인데, 제국 수도 북쪽에서 계속 공격받는 와중에 남쪽에서 이 난리까지 나면 어떻게 할 건지 묻는 듯한 눈빛이었지만…….

[좋을 게 있으니까 이러는 거지.]

“뭐, 뭐라고?”

[끌고 가서 수감시켜라. 다른 로켈 가문의 인원과 접촉하는 것을 특히 철저히 막고. ‘성물’이 도난된 사건이다. 신성국의 지원도 받을 수 있을 거다.]

“자, 잠깐 기다려!”

[아니, 기다릴 수 없다. 애초에 대응할 틈도 안 줄 거다.]

대응을 하게 되는 순간, 균열이 생기면서 사태의 해결은 깔끔해지지가 않기 때문에 베오날드는 가차 없이 일을 집행했다.

게다가 ‘성검’을 가진 ‘용사’가 ‘성물’이라는 명분을 강조했고, 실제로 크리단 로켈이 군수품을 몰래 빼돌린 사실이 확실히 밝혀진 이상 거칠 것 없이 제압이 가능했다.

그렇게 고작 반나절도 안 돼서 수도에 있는 로켈 가문의 구성원들은 모두 구속되거나 반항하는 몇몇은 황실 기사단과 신전 기사들의 검에 가차 없이 숙청된 상황이었다.

“하나, 문제는 이제 로켈 가문의 영지이네만… 이건 어떻게 할 건가?”

[문제없을 겁니다. 이미 가문의 중요 인원을 구속했고, 그리고… 로켈 가문은 크멜 가문의 지지였지요? 그럼 서찰 두 장이면 충분합니다.]

제국군 쪽에 가까운 만큼 로켈 가문은 크멜 가문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여차할 경우 크멜 가문으로 가서 성토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베오날드가 먼저 크멜 가문과의 관계를 더 우호적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그들의 시도는 실패로 끝날 터였다.

“아무리 명분이 좋다곤 하지만, 어떻게 크멜 가문을 움직일 수 있는 건가?”

[그건 ‘용사만의 비밀’입니다. ‘용사’가 되기 전에도 전 열심히 살았다는 걸 알려 두지요.]

“으으으음…….”

레기온 경은 도저히 상상도 안 되는 일을 태연하게 저질러 버리고 실현시키는 이 용사의 능력에 순수하게 감탄하면서도 내심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상 발데리안 가문과 크멜 가문에 이 정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데다 이미 황궁 내에 잠입해서 ‘대신’으로서 권력을 누리고 있으니,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제국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량이 있는 자였다.

‘역시 위험한 놈인데…….’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저는 ‘용사’로서 일하고자 해서 이 답답한 갑옷 안에 본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지금 그 무엇을 하든, 무슨 짓을 당하든 ‘용사’가 죽고 사는 것임을 깨달아 주십시오.]

“용사답지 않게… 간교하군.”

[‘펜’으로 제국을 다스리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니까요. 아무튼 서류엔 ‘성물’을 찾아서 반납만 하면 잡아 놓은 로켈 가문의 일원들을 풀어 준다고 하겠습니다. 크멜 가문에도 이렇게 알려 두면 중재할 맛이 나겠지요.]

물론… 그 ‘성물’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말이다.

설마 ‘용사’가 없는 것을 거짓으로 있다고 할 거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결국 로켈 영지에 있는 본가는 ‘애초부터 없는’ 성물을 찾기 위해 자신들이 비리로 저지른 물건을 열심히 뒤적거리겠지만 소용없을 것이고, 구속된 로켈 가문의 일원들은 그 누구도 해방시킬 수 없게 된다.

‘그럼 사실상 암흑신교에게 넘긴 것이라 봐도 된다고 압박을 넣을 수 있고, 그러면 이제… 크멜 가문 안에 있는 그놈의 이름을 흘려 넣으면 크멜 가문에서도 깜짝 놀라서 그놈을 처리하겠지.’

에스칼 크멜. 아주 오랜만에 언급하는 이름으로 암흑신교의 끄나풀로 크멜 가문의 일원이었던 자를 기억하는 베오날드는 딱 맞춰지는 퍼즐 조각에 즐거워하면서 이제 다음 업무를 해 나간다.

***

그리고 2주 뒤, 지속적으로 제국군의 물자를 부정 축재해 온 사실과 함께 성물 도난 사건에 연루된 로켈 가문은 그대로 해체 수준으로 개박살이 나게 된다.

게다가 크멜 가문에도 암흑신교의 끄나풀이 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신성국과 제국 황실의 비난이 이중으로 쏟아지자, 크멜 가문에서는 자신들은 무관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직접 영지에 남은 로켈 가문의 일원들을 붙잡아서 알아서 제국 수도까지 배달을 해 온 것이었다.

[끝났군요. 이제 귀족들은 황실의 위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겠지요.]

“…….”

“…….”

[아, 형벌은 어떻게 할 거냐면 다른 귀족들이 긴장하도록 모두 처형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재가를 부탁드립니다.]

“처형은… 너무 과하지 않은가? 모든 가문의 일원들이 관련되었을 리가 없는데…….”

[제국의 위기가 경각에 달렸는데, 그동안 제국군 내에서 물자를 빼돌려 자기 뱃속을 채우던 이 기생충들을 살려서 다시 쓰시겠다고요?]

“…….”

베오날드의 강렬한 말에 황태자는 더 할 말이 없었고, 결국 재가를 내렸다.

로켈 가문은 너무 오랫동안 제국군 내에서 자기 잇속을 채우던 일이 명백하게 밝혀진 만큼 지금 어설픈 온정을 베풀면 제국군이 붕괴할 위험이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레기온 경도 베오날드를 지지해 준 것이었다.

고작 하루하고도 2주 만에, 제국 수도에서 영향력 있는 가문이 모조리 처형당하자 귀족들은 충격을 받았으며 ‘대신’의 자리에 있는 ‘용사’를 모두 경계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고 보니 크멜 가문에서는… 그 ‘에스칼’이라는 자를 처단하셨는지요?]

“예. 직접 처단했고, 가문 내에 존재하는 망할 암흑신교 놈들을 모조리 처단했습니다. 정말이지… 언제부터 그런 놈들이 있었던 건지.”

‘오래전부터 있었지.’

아주 옛날 베오날드가 처음 제국 수도에 왔을 때부터 그놈은 존재하고 있었을 테니, 실제 기간은 더 길 것이라 예상하는 그였다.

하나 이제 한번 내부에 그런 자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크멜 가문에서도 당분간은 안심할 수 있을 터였다.

“그나저나 용사님, 약속하신 물건은?”

[이미 ‘베오날드’ 님에게 이야기해 두었습니다. 약속한 마갑주 10대. 곧 배달이 갈 겁니다. 그나저나 그 물건의 덕을 조금은 보신 모양이군요?]

모든 일은 크고 작게 거미줄처럼 연계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 이전에 크멜 가문에 선물로 주었던 마갑주 덕분에 베오날드는 용사의 입장에서 마치 베오날드를 다룰 수 있는 것처럼 이름을 써서 약속을 했고, 크멜 가문에서는 베오날드와 어떻게 연계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마갑주를 얻고자 그에게 전면적으로 협력한 것이었다.

“예. 공작님이 아주 만족하셨습니다. 덕분에 저희 전선에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그래서 이번에 5천 명을 파병할 수 있게 된 것이었죠.”

[발데리안 가문은 1만을 파병했던데…….]

“물론 전황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볼레아 놈들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이후에 추가 파병을 할 수도 있다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공작님께 전할 말이 있어서…….”

‘이래서 가면은 여러 개 쓰는 게 편하다니까~’

이렇게 용사로서 신분을 감추고 공인 활동하는 덕을 톡톡히 보는 베오날드였다.

때로는 베오날드로서, 때로는 용사로서… 또 어느 때는 500년 전의 귀족인 베오날드 폰 노이멀로서.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일하니 편리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황권 강화와 지원 온 병력으로 수도의 방비까지 다잡게 되고, 이제 내부의 변화를 시작할 수 있게 된 베오날드였다.

‘그럼 우선은 역시 크멜-제국 수도-발데리안을 잇는 대수로 공사부터 해 볼까? 빠르게 서로 지원을 하고 무역을 할 수 있게 하는 대공사. 완성만 되면 이제 다이나 왕국에서 크멜 가문까지 대륙의 절반이 이어지게 된다.’

지상의 마차로 옮기는 것보다는 역시 강을 통한 물길의 운송 능력이 더 뛰어난 만큼 베오날드는 그것을 구상하면서 강의 길을 연결할 생각이었다.

보통 상식적으로 지금 북부에서 대전쟁을 치르는 중인데 대공사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역으로 물류와 교통을 잇고 병력 수송과 방어전을 치르기 위해서는 오히려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일단 급하게 진행하려고만 안 하면 되고, 미리 이어 놓은 발데리안과 다이나 왕국의 수로를 확장해 가는 식이면 충분하다. 우선시할 것은 바로 마족의 공세를 버티는 일이니 말이야. 지금 필요한 건 큰 그림을 통한 희망이다.’

미래의 희망, 앞으로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이정표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정원을 가꾸는 자의 의무나 마찬가지였다.

“용사님, 큰일 났습니다! 마족들 군대에 갑자기 엄청난 놈들이……!”

[…자세히 보고하라.]

하나 그 비전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현재’를 지켜 내야 이루어 낼 수 있는 것. 늘 몰려오는 마족들과 다른 움직임이 보고되자 베오날드는 즉시 펜을 놓고 직접 성검을 들고서 전장으로 나서고자 한다.

그리고 이내 같은 방식으로 꼬라박기 만하는 전쟁을 지루해한 ‘분노의 마왕’이 다른 수를 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베오날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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