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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도 쓸데가 있다-244화 (244/259)

[244화]

베오날드는 그렇게 ‘용사’로서 마갑주를 입은 채로 그 장소에서 곧장 제국군 사령관에 임명, 자신의 군단을 인수하기 위해 성 밖을 나섰다.

황실 기사들의 인도 아래 그는 이 제국 수도를 지키는 군단들에 대한 소개를 받는다.

“아, 혹시 신성국에서 온 부대 쪽에 합류시키려고 하는 것이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용사라곤 하지만 전 엄연히 개인. 신성국의 부대는 신전 기사들이 운용하는 것이지요.]

“그렇군. 알았소. 바로 소개하지.”

용사라서 어떻게 보면 신성국의 대표 같은 느낌이었지만 베오날드는 여신에 대한 신앙심과 예배, 기도 같은 것을 신경 쓰는 그들을 다루기가 썩 좋지 않아서 미루어 버렸고, 일반 부대를 받길 원했다.

그리고 베오날드가 인수한 군단은 바로 수도군 제11부대로 병력 수는 본래 편성이 2천이었지만 지금은 970명밖에 남지 않은 너덜너덜해진 군단이었다.

심지어 그중 일부는 부상자도 많아서 차라리 해체해서 다른 부대로 편입시키는 게 나을 지경이었다.

“여기가 수도군 제11부대의 진지입니다. 그리고 임무 범위는 북쪽 중앙 성벽 12시에서 2시까지이며 그 외에 치안 유지 구역은…….”

‘…뭐, 대충 이런 군대를 줄 거라고 예상했지.’

황실 기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베오날드는 역시 황태자를 비롯해서 제국이 순순히 자신에게 제대로 된 것을 주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본래 병력 수의 절반도 되지 않고 그마저도 부상자가 많은 부대. 거기다 부대원들이 입고 있는 군복이나 신발을 보니 보급도 제대로 되지 않아 보였다.

‘보통… 지휘관으로 들어오는 귀족의 신분이나 파벌에 따라서 보급도 갈리곤 하니 말이지.’

“이상입니다. 질문이 있으신지요?”

[없습니다. 곧바로 일에 들어가지요. 병사들을 모아 주시길.]

제국의 중추에 있던 베오날드는 이 부대가 왜 이런 꼴을 당하는지 단숨에 간파해 내었고, 즉시 할 일을 시작했다.

우선 황실 기사에게 말해서 자신이 새로이 이 부대의 지휘관이 된 것을 알리는 게 첫째로 할 일이니 병사들을 모아 달라고 했고, 베오날드는 그 병사들이 모이기 전에 필요한 것을 조달하기로 했다.

“후우… 아무도 없으니 잠시 벗고 있어도 괜찮겠지. 아아, 아르젠, 나다. 들리는가?”

『들립니다, 선조님.』

베오날드는 이전 라라와 연락을 할 때 사용했던 반지를 이용해서 아르젠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유일하게 서로 ‘노이멀 가문’이라는 사실을 공유하는 사이였기에 베오날드의 지시를 완벽하게 실행할 수 있는 자이며 동지였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물건들을, 지금 스크롤로 마법진을 설치할 테니 신속하게 가방으로 보내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베오날드는 전송 술식이 담긴 스크롤과 배낭을 꺼내어 바닥에 설치했고, 아르젠에게 전송을 부탁한다.

아무리 ‘개선된 아공간 보관 배낭’이 있다고 한들, 그에게 없는 물건이나 혹은 사용해서 떨어진 물건을 보급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으며, 베오날드는 엄연히 신성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모험을 하는 것을 상정했기에 이렇게 발데리안 영지와 다이나 왕국에서 언제든 보급받을 수 있게 방안을 준비해 둔 것이었다.

‘물자가 부족해서 비굴하고, 궁핍해지는 건 딱 질색이니 말이지.’

베오날드는 천생 귀족이었기에 모험 같은 것에서 오는 불편한 점을 아주 싫어해서 이렇게 방안을 마련해 두었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베오날드가 설치한 술식 위로 주문한 물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아르젠에겐 ‘둥지’의 곳곳으로 이동하는 방법과 시설 이용법을 어느 정도 알려 주었기에 빠르게 보급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따로 일을 안 하도록… 가방으로 직접 보내게 해 두었지. 아~ 정말 편하군.’

베오날드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마력광으로 된 그림으로 가방 내에 무엇이 들어오는지 상황을 지켜보면 될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느 정도 물건이 담긴 것이 확인되었을 때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낀 베오날드는 급히 마갑주를 다시 차려입고 아르젠에게 이야기한 후 술식을 해제했다.

그다음 다시 엄근진한 용사의 모습으로 황실 기사를 맞이한다.

“다들 모여 있습니다, 용사님.”

[알겠습니다. 바로 가지요.]

기사의 안내를 받아 부대 연병장에 도달한 베오날드는 일단 성벽에서 근무 중인 인원을 제외하고 전원이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들은 갑작스럽게 지휘관이 된 용사를 보면서 기이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언제 해산해서 다른 부대로 편입될지 모르는 게 바로 이 11부대인데 갑자기 새로운 지휘관이 생기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저거 대체 뭐라니?”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냥 위에서 까라는 대로 까는 거지.”

“이젠 하다 하다 골렘 새끼가 지휘관이 되는 건가?”

“갑옷… 이겠죠?”

“알까 보냐.”

웅성웅성…….

다들 집중하지 않는 가운데 베오날드는 대충 어떤 부대인지 금방 파악하였다.

사기도 낮고, 지휘관이나 기사급에서 연줄이나 인맥이 없어서 제대로 된 지원과 병력 보충도 없고, 언제든 죽거나 다른 부대로 팔려 나갈 각오를 하고 있는 막장 부대. 정말 이게 제국 수도를 지키는 군대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뭐, 어떤 상황에서든 해 처먹는 놈도 있기 마련이니까……. 아, 나도 해 처먹는 놈이었지? 하하.’

대륙 단위로 해 처먹었던 베오날드는 자신이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아무튼 이 부대의 마음을 휘어잡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지금 이 병사들에게 필요한 건 멋진 연설이나 미사여구가 아니었다.

[자, 11부대 제군들… 나는 ‘용사’다. 여신의 명을 받고 이 땅에 내려온 자이지. 하나 지금 제군들은 이야기를 들을 상태가 아닌 것 같은데…….]

“……?”

[혹시 제군들은 여신교의 성자가 이룬 ‘기적’을 알고 있나? 그러니까… 빵 5개와 고깃덩이 2개로 5천 명을 배불리 먹였다고 했던가? 그 ‘기적’의 전설 말일세.]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웅성웅성…….

그냥 지휘관으로서의 이야기나 대충 하고 끝낼 것이지, 갑자기 뜬금없는 전설이니 기적 같은 이야기를 하니 어리둥절해하는 병사들이었다.

다들 미친놈이 대장으로 와서 자신들의 미래가 암담해질 거라고 예감하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엄청난 빛이 모두가 모인 연병장을 뒤덮었다.

“윽! 이게 뭐야?”

“아니, 무슨…….”

“눈부셔! 으으윽!”

“아아악! 내 누운! 이게 무슨 미친 짓인지!”

“진짜 미친놈 아니야?”

갑작스러운 빛 공격에 병사들과 기사들 모두 괴로움을 호소하면서 베오날드에 대한 험담을 아주 대놓고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망한 부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고 또 마족들이 늘 쳐들어오는 일상 속에서 귀중한 인력을 함부로 죽이진 않을 거라 생각한 점도 있었기에 다들 제멋대로였다.

그리고 잠시 후, 병사들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게 뭐야?”

“세상에…….”

[그동안 이곳의 보급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다들 배불리 먹고 난 다음 이야기를 듣는 게 좋겠지. 아, 이미 소리가 안 들리나?]

빛이 사라지고 난 뒤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식량의 산이었다.

밀가루가 든 포대, 건조시킨 야채와 과일, 마른 고기 및 소시지, 그리고 맥주 통까지. 여기 있는 1천 명쯤은 능히 배불리 먹이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같은 수도의 부대라곤 하지만 상부의 부정과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식량 사정도 열악했는데, 눈앞에 음식의 산이 있으니 휘둥그레질 만했다.

“이, 이건… 대체?”

“세상에…….”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이거 밥이지? 꿀꺽…….”

“킁킁… 크… 오랜만에 맡아 보는 맥주의 향기… 크으으으……!”

눈앞에 기적이 나타나자 병사들과 기사들의 베오날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단숨에 바뀌었다.

수많은 명장, 뛰어난 기사, 지휘관들이 있다곤 했지만 이렇게 단숨에 보급을 해결하는 지휘관은 듣도 보도 못했을 테니 말이다.

말 그대로 ‘기적’ 같은 광경에 모두의 시선과 귀가 자신에게 모이자 베오날드는 성검을 집어넣으면서 차분히 말한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을 거다. 제군들… 내가 온 이상 더 이상 그대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싸우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은 내 명령에 따라 검과 창을 휘두르며, 그대들의 고향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 나는 그 승리를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하겠노라. 자, 연설은 여기까지 하고… 취사 담당이 누구지?]

“저, 접니다아아아아!”

[우선은… 밥부터 배불리 먹고, 그다음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그래서 첫 번째 명령이다. 여기 있는 식량을 다 써도 좋다. 모두들! 배부르게 식사할 준비를 하도록 해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두두두두!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제11부대는 그 어떤 최정예 부대 못지않을 정도로 무서운 속도와 조직력으로 식사 준비를 해 나갔다.

눈앞에 식량이! 그것도 여기저기서 떼먹히고 내려와서 형편없는 것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식량이 나온 것이었다.

야전 부대는 아니지만 이들 부대 또한 원정을 대비해서 솥과 간단한 조리 도구는 본래 부대원 수에 맞게 갖춰져 있었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으헝헝헝… 밥이다, 밥! 엉엉! 밥!”

“냠냠, 쩝쩝… 흐흐흐…….”

“이것들아! 좀 익으면 먹어! 스튜가 다 끓지도 않았는데 퍼먹냐?”

“우우우움! 우움! 꿀꺽! 시, 시끄러!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있을지 몰라.”

“우걱저걱! 우걱! 꿀꺽꿀꺽꿀꺽! 크으으으으으! 진짜 살 것 같다! 용사님 만세!”

베오날드가 제공한 식사에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리며 먹는 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병사들의 인심은 베오날드를 칭송하기 시작했고, 이 부대에 근무하는 기사와 백부장 병사들까지 나와서 다들 감격하여 베오날드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예를 갖추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용사님.”

“그동안 정말… 똑같이 싸우는데도, 우리 부대엔 대귀족이나 귀족 친척분이 없어서 괄시당했었는데…….”

“상부엔 요청을 해도 들어주지 않았고…….”

‘나라가 혼란스러울수록 제 잇속을 챙기려는 자가 늘기 마련이지.’

통일 제국 시절 자신이 지배할 때는 자신이 권력을 쥐고서 혼자서 챙겨 먹었지만, 자신이 죽자 자신의 유산을 노리고 사방에서 들쥐 같은 놈들이 튀어나와 난리 치던 것을 떠올리는 베오날드였다.

그리고 아직 그들이 감격하기 이른 것이, 베오날드의 베풂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이걸 위해서 발데리안 영지와 다이나 왕국을 엄청 쪼았으니 말이지.’

전쟁이 터지기 전 5년간, 베오날드는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서 발데리안 영지와 다이나 왕국을 미친 듯이 발전시켰고, 그곳에서 물자와 식량 생산의 개혁을 엄청나게 이룩해 놓았다.

골렘을 이용한 무인 농장, 마갑주를 통한 사냥으로 발데리안 가문의 영역을 넓힌 것, 거기에 자신의 유산을 필요에 따라 개방해 가면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푼 것. 지금 여기 식량을 제공한 것은 아주 티끌에 불과했다.

[식사가 끝나는 대로 부대의 행정, 보급, 병기 담당과 기사, 백부장급 이상은 모두 내 앞에 집합하도록……. 우선 필요한 조치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베오날드의 말에 마치 원래부터 그의 부대인 것처럼 병사들과 부대의 간부급 병사들은 모두 우렁차게 대답하면서 복종하게 된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뒤, 베오날드는 그의 주특기인 운영을 통해 부대를 빠르게 정상화시켰고, 필요한 물자를 곧바로 아르젠을 통해 배달하여 보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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