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약 10일 뒤, 제국 수도.
베오날드와 신성국의 군대는 10일간의 행군 끝에 제국 수도에 간신히 도착하게 된다.
본래 좀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지만, 군대의 사기도 그렇고 도착하자마자 싸워야 하기 때문에 제국 수도 근처쯤 왔을 때 하루를 푹 쉬며 정비를 한 뒤에 온 탓도 있었다.
하나 다행히도 늦진 않은 듯 제국 수도의 성엔 아직 제국의 깃발이 있었다.
“한데… 소리가 심상치 않군요, 용사님.”
[이건… 설마?]
성내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남녀노소의 비명 소리가 아우러져 들려오는 상황. 베오날드는 단숨에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짐작했다.
그는 즉시 성검을 챙기고서 먼저 앞으로 나아가면서 신전 기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상황이 시급해 보이니 내가 먼저 들어가겠다. 너희는 지원을 왔다고 이야기하고 용사가 먼저 들어갔음을 병사들에게도 알려라.]
“아, 예! 알겠습니다!”
[늦지 않아야 하는데…….]
파앙!
베오날드는 전력으로 땅을 박차고서 날아오르듯 하늘로 뛰어올랐고, 그대로 성벽을 단숨에 뛰어넘어 성내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제국의 병사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베오날드의 모습을 발견했지만 놀랄 새도 없는 상황으로 성의 곳곳이 불에 타고 사람들이 대피하는 행렬이 생기는 등등, 상황이 매우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벽이 밀린 건가?’
“크오오오오……! 분노를 쏟아 내라! 모든 것을 없애라! 그분의 명대로! 그분의 뜻대로! 모든 세계를 불태워! 침묵하게 하는 그날까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분노하라!”
“막아라! 막아! 빨리 성벽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 전력을 다해라!”
“크윽! 이, 이대로는…….”
베오날드가 도시 내의 건물 지붕을 가로지르면서 전투의 외침이 있는 곳으로 점점 다가가자 어떤 상황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성문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고, 성벽의 일부를 무너뜨리고서 마족의 군대가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상황. 제국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열심히 싸우면서 밀어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성벽과 원거리 무기라는 이점이 없어진 이상 막아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무너진 성벽 안으로 들어오는 분노의 마왕의 수하들 중 ‘붉은 용인’들이 엄청난 무용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기사들처럼 오러를 사용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크르르르! 모두 없애라! 더 많은 피와! 시체를! 침묵을! 우리의 분노만 가득한 세계를!”
“크오오오오오오오오!”
“분노시여! 우리의 모습을 봐 주시옵소서!”
‘…마왕의 직속 수하들인가? 저놈들도 붉은 오러를 쓰는군.’
그저 원시적으로 싸우던 다른 악마와 다르게 저 붉은 용인들은 마치 하나하나가 모두 단련된 투사이자 전사처럼 압도적인 무예를 구사하며 학살을 벌이고 있었다.
그나마 그들의 전진을 막는 것은 레기온 경을 위시한 황실 기사단으로, 명실상부한 제국 최강의 기사들이 중심이 되어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덕분이었다.
“반드시 밀어내야만 한다! 마법사들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받아라! 내가 직접 나서겠다! 이 사악한 마족 놈들! 흐음!”
“키에에엑!”
‘오, 그래도 역시 황실 기사단장이라는 이름값은 하는군.’
사실상 이 제국 수도군의 정신적 지주이자, 사기의 근원으로 그가 앞에 나서면서 용맹하게 싸우고 있는 덕분에 성벽으로 들어오는 마족들을 어떻게든 막아 내면서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 문제는 이대로 막기만 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인데, 베오날드가 정말 최적의 타이밍에 찾아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오오오오! 다들 희망을 버리지 마라! 내가 왔노라!]
“뭐?”
“저건?”
스스로 생각해도 오글거리는 대사를 뱉으며 베오날드는 검을 휘두르면서 지붕에서 높게 뛰어올라 하늘에서 멋지게 낙하하면서 등장한다.
착지 위치는 한참 몰려오는 용인들의 진형 한가운데. 내려오면서 베오날드는 오러를 끌어 올리면서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황실 기사단의 무(武), 일식(一式)-사자분신(獅子奮迅)!]
“크아아악!”
“이, 이건?”
콰아아아아아아!
베오날드의 주변으로 오러의 투기가 퍼지면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사방으로 보랏빛 오러가 퍼져 나가며 붉은 용인들과 마족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현재 그가 사용한 것은 ‘통일 제국 황실’의 검술. 딸의 희생 덕분에 ‘노이멀식’을 완전히 익힌 베오날드는 ‘통일 제국 황실’의 검술을 익히기 시작했고, 하나의 검술에 일정 이상 경험이 쌓인 만큼 익히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용사로서 위장하려면 이 검술 쪽이 더 유리하기도 하고! 내 검술은 이미 레기온 경에게도 드러났으니……!’
“죽어라! 커어억!”
‘음, 역시 성검의 힘인가? 확실히 내 역량 이상으로 싸울 수 있으니 좋군.’
붉은 용인들을 검으로 베어 넘기면서 베오날드는 역시 성검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붉은 용인들의 무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 봐야 베오날드에겐 적수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베오날드의 활약 덕분에 드디어 안으로 들어오려던 마족군의 군세가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게 되었고, 황실 기사단장인 레기온 경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적극적인 공세로 더욱 밀어붙였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 우군이 왔다! 다들 이때 밀어붙여라! 그리고 후방에선 어서 성벽을 보수할 부대를 준비하라!”
“예!”
“참호와 임시 첨탑을 만들 도구도 준비하고서 앞이 밀리는 대로 곧바로 설치한다! 알았나?”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아는 레기온 경의 조치. 싸우면서 슬쩍 후방을 본 베오날드는 그의 조치가 우수한 것에 만족하곤 모든 신경을 전투에 집중하면서 마족들을 베어 넘겼다.
그리고 ‘통일 제국 황실 기사단’의 검술을 쓰면서도 어느 정도 한 번에 밀어붙이기 위해선 큰 위력이 필요하다고 느낀 그는 놈들을 엿 먹이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서 오의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황실 기사단 아류 노이멀식 오의-우로보로스!]
노이멀식을 드러내지 않는 게 좋았지만 어차피 ‘오의-우로보로스’와 ‘최종 오의-에키드나’를 아는 것은 이제 자신밖에 없었고, 처음 꺼낸 카드였으니 용사의 검술이라 해도 좋은 것이었다.
라라에 대한 생각을 하며 베오날드가 휘두른 검은 무한의 원을 그리면서 용인과 마족들을 절단 내었고, 단숨에 베오날드는 부서진 성벽까지 밀어붙일 수 있게 된다.
‘성검 덕분에 수월하군. 본래 내 역량이었으면 펼치지 못했을 건데…….’
“호오오… 대단하구나. 한데… 대체 저 친구는 뭐지? 오, 저 깃발은?”
“늦어서 죄송합니다. 신성국의 신전 기사단장 미라엘이라고 합니다. 지금 먼저 싸우시는 저분은 바로 여신님의 용사님입니다.”
“용사? …그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예, 맞습니다, 레기온 경. 어두운 시대를 끝내고 새벽을 부르기 위해 강림한 여신의 검, 마왕이 나타난 이 시대에 강림한 우리 시대의 용사입니다.”
“허어어…….”
“와아아아아아!”
그리고 타이밍 맞춰서 남쪽 성문으로 베오날드와 함께 도착한 신성국의 군대 1만이 합류, 그들의 깃발과 울려 퍼지는 성가, 신전 기사들의 용맹 속에서 희망을 본 제국군의 사기는 끝없이 올라갔고, 동시에 베오날드가 용사라는 사실이 전해지자 절정에 이르게 된다.
[좋아, 드디어 나왔다!]
“더 밀어붙여라! 그리고 복구반과 전투 마법사 부대는 즉시 공사를 시작하고, 수비 진영으로 바꿔라!”
“예!”
그 힘으로 성벽을 넘어 나오자마자 곧장 부서진 성벽의 보수가 시작되었고, 그 성벽이 복구될 때까지 막는 부대가 진을 치고서 수비 진영을 갖추어서 적을 상대하기 시작한다.
본래라면 며칠이나 걸릴 공사였지만 이럴 때 중요한 것이 바로 전투 마법사들로, 그들의 마법 덕분에 단 4시간 만에 성벽이 복구되자 이제 사다리를 타고서 도로 올라가게 되었고, 베오날드가 그 전투의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병사들이 모두 올라가는 것을 돕고 마지막에 성벽 위로 올라갔다.
[후우우… 이제 좀 쉴 수 있겠군요.]
“정말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큰일 났을 게야. 황제 폐하와 제국을 대신해서 감사를 표하지.”
[별말씀을……. 용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아무튼 지금은 저놈들이 물러나니 한숨 돌리겠군요.]
“그렇지. 하나 지금 잠시 물러나도 놈들은 또 몰려올 걸세. 놈들은 죽어도 죽어도 계속 몰려오더군. 그 한계가 보이지 않아. 우리는 점점 죽고, 지쳐 나가고 하는데 말이지. 후우우우…….”
[그나저나 황제 폐하께선?]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계시지. 황태자 전하께서 섭정을 하고 있지만 폐하의… 능력에 한참 못 미치니 말이지. 하아아아아아…….”
레기온 경은 깊은 한숨을 쉬면서 베오날드에게 성토했다.
그의 말대로 인간과 하는 게 아닌 이 전쟁엔 끝이 존재하지 않았고, 가면 갈수록 싸울 수 있는 인간은 죽어 나가는데 자신들은 이길 방안이 뾰족하게 나오지 않고 있었다.
보통 다른 인간들에겐 이런 점을 성토하지 않는 레기온 경이었지만, 상대가 용사라면 무언가 방안이 있을 것 같아서 하는 것이었다.
“물론 황태자 전하는 경험이 부족하신 거지 모자라신 건 아니니……. 하나 결국 지금 이 전쟁이 문제지. 뭔가… 뭔가가 필요해. 그래.”
[방안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그렇지. 이 망할 전쟁을 끝낼 방안 말일세.”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역시 이 일의 주원인인 ‘마왕’을 처단하는 것이지요.]
“그건 어린애들도 알 방법이군. 하지만 그게 쉽진 않겠지. 저길 보게나. 저 멀리 산 뒤까지… 마왕의 부하들로 가득하네. 어느 세월에 저길 뚫고 마왕을 직접 칠 수 있겠나?”
[사실 저도 그 문제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도… 마왕뿐만 아니라 그 아래 간부들을 비롯한 고위 마족들이 득실거리는데, 저 혼자의 무력으론 무리겠지요.]
보통 용사라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반드시 제가 마왕을 처단하겠습니다!’라고 밝게 말했겠지만 베오날드는 그러기엔 너무나 어른이었다.
아니, 실제 연령은 이미 100살도 넘은 노인인 데다 세태에 찌들다 보니 그런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막 할 체면도 되지 않았고, 그럴 성격도 아니었기에 아주 냉정한 발언이 나온 것이었다.
본래 들어올 대답이 아닌 것을 들은 레기온 경은 충격을 먹은 얼굴로 그를 멀뚱멀뚱 보며 말을 잃어버렸다.
“어… 어어… 그럼 어쩌나?”
[방금 방법이 두 가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렇지. 맞네. 그럼 마왕을 처치하는 게 아닌… 다른 방안은 뭔가?”
[그건…….]
베오날드는 천천히 입을 열어 두 번째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나 그것을 듣는 레기온 경의 표정은 점점 안 좋아졌는데, 아까 전 마왕을 토벌하는 것에 대한 걸 들었을 때보다 더 황당한 것을 들은 듯했다.
그리고 베오날드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버럭 성을 내면서 반박했는데, 베오날드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다시금 차분히 말을 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