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으잉? 저건 뭐야?”
카르탄 볼레아는 뒤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올려다봤다.
그러자 그곳에 있는 것은 자신보다 더 거대한 체구를 가진 강철로 된 기사였고, 카르탄 볼레아는 급히 도끼를 휘두르면서 주변을 밀어내고 그를 상대할 준비를 했다.
“크하하! 그래! 이제야 좀 해볼 만한 상대가 왔구나. 강한 적수가 나타난 것에 감사…….”
“크멜 가문 검법, 제7의 형(形)-뿌리는 깊게 내린다.”
녹색 오러가 거대한 검에 모이기 시작했고, 크멜 공작은 그것을 착지와 동시에 카르탄 볼레아를 향해서 휘둘렀다.
무지막지한 힘이 느껴짐에도 그는 호기롭게 붉은 오러로 물든 도끼를 휘두르면서 그 막강한 힘에 맞서고자 했다.
용맹과 투지, 그리고 강적과의 싸움! 모두가 분노의 마왕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이 도끼도 더 강한 자의 피와 살을 먹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쿠과아아아앙! 쿠르르릉!
녹색 오러와 붉은 오러가 충돌하면서 성벽이 진동하며 흔들려 일부가 무너질 정도의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하나 힘의 차이는 명백했는데, 카르탄 볼레아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그대로 무릎을 꿇고 간신히 버티는 반면 마갑주를 입은 크멜 공작은 꽤 신이 난 상태였다.
‘호오? 이거 참 기가 막히는군.’
분명 이 카르탄 볼레아라는 자의 역량은 자신도 만만치 않을 거라 생각할 정도로 강하다고 판단했는데, 이 갑주를 입고 상대하니 압도적으로 제압할 자신이 생길 정도로 역량이 크게 오른 것을 느꼈기에 그는 놀라운 것이었다.
“크으으윽……! 그으으으으으으윽! 암흑신이시여! 나에게 더 큰 힘을! 힘을!”
‘발악을 하는 건가?’
“그아아아아아아아앗!”
‘하지만…….’
괴성을 지르고, 오러의 힘을 더욱 증폭시키면서 크멜 공작의 검을 밀어내려고 용을 쓰는 카르탄 볼레아였지만, 크멜 공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급해진 카르탄 볼레아는 계속해서 힘을 원한다면서 발악했지만 오히려 크멜 공작의 검이 더욱 그의 얼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녹색 오러가 다가옴에 따라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느낀 카르탄 볼레아는 더 강한 힘을 위해 결국 비장의 수단을 쓰기로 한다.
그는 그대로 한 손을 잠시 떼어서 자신의 도끼날에 손가락을 그어서 피를 먹였다.
“볼레아 가문의 전설인 ‘혈왕의 도끼’여! 내 피와 살을 먹어도 좋다! 나에게 힘을! 최강의 힘을 다오!”
[난 언제나 먹은 만큼… 너에게 베풀 것이다. 크흐흐흐… 크흐흐흐흐…….]
“그래! 빨리! 빨리 하라고!”
스산하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들리면서 도끼에서 붉은 오러가 점점 더 기세가 오르기 시작한다.
압도적으로 짓누르던 크멜 공작이 순간 놀랄 정도로 기세가 오르고, 어느샌가 점점 크멜 공작이 뒤로 밀려나는 형세가 되었다.
놀란 크멜 공작은 자신도 오러의 힘을 더욱 끌어 올리면서 맞서려고 했지만, 놈의 파도처럼 뿜어져 나오는 오러에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크흐흐흐… 이 망할 고철 따위! 내가 모조리 벗겨 내 주마!”
‘저 무기가 힘을 증폭시키는 건가? 정말 놀랄 지경이군.’
“크하아아아아아아아앗!”
콰르르르릉!
붉은 오러가 점점 더 짙어지더니 진홍빛으로 넘실거리면서 카르탄 볼레아의 주변을 모조리 분쇄해 버리고 있었다.
보통의 기사들에겐 갑옷을 넘어서 피부를 찌르고, 혈류가 막힐 것 같은 강력한 압박이었지만 다행히도 크멜 공작은 마갑주로 보호를 받은 덕분에 그 압박에서 자유로이 벗어나 무기와 힘에 온전히 오러를 집중시킬 수 있었다.
‘허어, 이거 보면 볼수록 굉장하군. 저 무기가 힘을 증폭시키는 것에 대응할 정도로 만들어 주다니…….’
“모자라! 모자라! 더! 더! 더어어어어!”
‘저 무구는 아무리 봐도 위험한 유물 같지만 이건… 그놈이 손으로 만든 작품이라는 차이가 있지. 그리고…….’
“더어어어어어어어!”
카르탄 볼레아는 계속해서 더 많은 강력한 힘을 달라고 절규하듯 조르면서 무서운 눈빛으로 크멜 공작을 쓰러뜨리는 데 전력을 쏟고 있었다.
하나 마갑주의 보호와 보조 덕분에 크멜 공작은 온전히 힘에 집중할 수 있었고, 게다가 이 마갑주는 베오날드의 특제품답게 저장된 마력으로 그의 공세를 돕기까지 해 주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허어어… 하지만 이놈도 만만치 않군.’
쿠구구구!
하나 ‘혈왕의 도끼’가 미친 듯이 힘을 요구하는 카르탄 볼레아의 절규에 대답한 것일까?
그는 갑자기 다이어트라도 한 것처럼 아까 전보다 훨씬 마른 모습이 되었지만 오러의 기세는 더욱 거세졌고, 이젠 크멜 공작이 완전히 밀리기 시작했다.
크멜 공작은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공격을 흘리면서 거리를 유지하며 그의 공세를 받아 냈다.
“죽어! 죽어어어! 네놈의 피를! 살을! 마시고 말 거다!”
“가능하다면 해 봐라.”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 …컥!”
크멜 공작이 밀려나자, 더욱 기세를 올리려던 카르탄 볼레아는 갑자기 호흡을 멈추며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마치 꺼져 버린 촛불처럼 화려하게 불타올랐던 붉은 오러가 한순간에 증발해 버리고, 새까만 연기만이 남아 버림과 동시에 카르탄 볼레아는 들고 있던 ‘혈왕의 도끼’를 그대로 놓아 버리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크억… 어어억…….”
[그저… 힘에만 몰두하니 이런 결말을 맞이하는군.]
크멜 공작은 어느샌가 건장하고 근육질이던 카르탄 볼레아가 변한 모습을 보며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마치 마른 나뭇가지처럼 삐쩍 마르고 피골이 상접해서 본래 입고 있던 야만스러운 가죽 옷이 흘러내리면서 그의 피와 생명이 모두 메말라 버렸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어어억… 더… 힘을…….”
‘이런 몹쓸 무기는 당장 파괴해 버려야…….’
[모자라군. 키키킥, 날 다룰 역량도 안 되면서 힘만 요구하다니 가당치도 않다. 정말이지, 500년 이후로 영… 배부르게 먹은 적이 없군. 키키키키킥… 그럼 돌아가 볼까?]
이런 무서운 무기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크멜 공작은 부숴 버리려고 했지만, 바닥에 떨어진 ‘혈왕의 도끼’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스스로 움직이면서 성벽 너머로 멀리 날아가 버렸다.
결국 남은 것은 혼자 말라비틀어져서 죽음을 기다리는 카르탄 볼레아와 크멜 공작의 완전한 승리뿐이었다.
‘저리 도망가다니 어쩔 수 없군.’
“설마… 주군? 틀림없다. 우리의 주군이신 크멜 공작님이시다!”
“역시 대, 대단하십니다, 공작님! 한데… 그것은?”
승부가 끝나자 금세 주변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모여들었다.
크멜 공작은 아직도 전쟁이 벌어지는 현 상황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서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지시부터 내렸다.
[으음, 아무래도 놈들은 엄청난 것을 만든 모양이더군. 아무튼 지금은 설명할 때가 아니다. 이 망할 놈을 장대에 매달아서 적들의 사기를 꺾어라. 강한 자를 숭배하는 볼레아 놈들이니 왕국 최강의 전사가 저렇게 추하게 매달린 걸 보면 두려워할 것이다.]
“아! 예! 알겠습니다.”
[우선은 전쟁이 먼저다. 다들 외쳐라! 적장은 쓰러졌고! 우리는 승리할 것이며! 크멜 가문은! 앞으로도 굳건한 나무처럼 계속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예!”
“와아아아아아아아!”
크멜 공작의 지시와 함께 전장 곳곳에 ‘카르탄 볼레아’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사기가 치솟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증거로 바싹 말라 버린 카르탄 볼레아가 산 채로 장대에 매달려 성문 위에 걸리자, 한참 달려들던 볼레아 왕국의 야만족들이 두려움을 느꼈는지 공세가 점점 줄어들었고, 사기가 너무나 낮아진 것을 안 그들은 물러나게 된다.
“오… 놈들이 물러나기 시작합니다, 공작님.”
“방심하진 마라. 저놈은 무기의 힘에 의존했지만 결국 그 악마 같은 무기가 새로운 숙주를 구해서 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발데리안 가문에서 온 갑옷, 총 몇 벌이라고 했었지?”
“공작님 것까지 포함해서 총 다섯 벌입니다.”
“그렇군. 그럼 로이드를 비롯해서 가문의 상급 기사들에게 우선적으로 지급해라. 직접 써 보니 상당히 좋더군. 가능하면 몇 대… 아니, 한 100대쯤 사 두고 싶을 정도야. 아주 기가 막혀.”
“그, 그렇습니까?”
“어쩌면 대륙 전쟁사에 혁명이 될 물건일 수도 있네. 그러니 내가 직접 편지를 쓰지. 으으음… 전쟁은 자네들이 마무리하게나.”
“예, 예! 알겠습니다.”
크멜 공작은 마갑주가 상당히 마음에 든 듯, 전쟁의 상황을 부하들에게 맡기고 빠르게 베오날드에게 전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단순히 몸을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육체를 쓰는 것보다도 훨씬 편하고 강하기까지 하니 이건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무기조차도 대형이다 보니 저 야만인 놈들을 상대하기에 최적의 무구이기도 했다.
‘가능하면 직접 만들고 싶긴 한데… 발데리안 놈들이 넘겨주지 않겠지? 흐흐흠, 소문으로만 얼핏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정말… 정말 더 갖고 싶군.’
이미 자신의 처소에 있는 오늘 사용했던 선물받은 마갑주를 보면서 크멜 공작은 베오날드를 어떻게든 구워삶는 것은 물론 가문이 보유한 각종 장인과 마법사들을 불러서 분석해서 자체적으로 만들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자고 생각하며 베오날드에게 보낼 편지를 마저 쓴다.
그리고 편지가 다 써질 무렵, 오늘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한 함성이 퍼지게 된다.
그 뒤로, 크멜 가문의 볼레아 왕국 전선은 빠르게 안정화되었다.
베오날드가 보낸 마갑주 5개로 볼레아 왕국의 군대에서 사기의 중심이 되는 ‘전사장’급 적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던 덕분에 순식간에 오합지졸이 된 상대들은 도저히 성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무모한 공격을 해 댔지만 무의미한 희생만 가득해진 볼레아군은 결국 공격을 멈추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이 무능한 놈들 같으니! 우리 보물인 ‘혈왕의 도끼’를 가지고 가서 죄다 패배해? 이런 썩을 것들이!”
그리고 이곳 볼레아 왕국군의 진영에서는 키가 3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노령의 남성이 자신만큼이나 거대한 쇠로 된 곤봉을 쥐고 신하들에게 불호령을 내리고 있었다.
현 볼레아 왕국의 왕, 그것도 ‘전사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카라테인 볼레아 왕으로서 그는 암흑신교가 날뛰고, 마족들이 제국 중앙을 찍어 누르는 이번에야말로 크멜 가문의 성벽을 넘어서 그들을 드디어 유린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하, 하지만 왕이시여, 크멜 놈들 중에 이상한… 갑옷을 입고 싸우는 놈들이 나타나서는 우리 ‘전사장’들을 모조리 죽이니 어쩔 수가…….”
“닥쳐라! 약한 놈의 변명 따위 듣기 싫다!”
콰직!
그는 들고 있던 거대한 곤봉을 휘둘러서 변명하던 전사를 그대로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이미 노년에 접어든 나이였지만 체구만큼이나 뛰어난 용력을 자랑하던 그는 핏발이 선 눈으로 자신의 앞에 엎드려 있는 전사들과 부하들을 바라보면서 노성을 질렀다.
“마족들과 암흑신의 부하들이 암약해 주는 지금만큼 저 풍요로운 땅을 얻을 좋은 기회는 없다! 우리 왕국과 후손을 위해서! 네놈들 모두 목숨을 내놓고 싸워라! 싸워라! 싸워라아아아! 약한 놈들은 살 필요 없다! 알았나?”
“예, 예! 알겠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저 성벽을 넘어야 한다!”
카라테인 볼레아 왕은 부하들을 질책하며 벼락같은 목소리로 분노했지만 부하들의 표정이나 상태는 그리 크게 바뀌지 않고, 이미 반쯤 전의를 잃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무언가 뾰족한 대책이나 전략을 바꾸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지금처럼 전사장급들이 하루에 수십씩 죽어 나가는 일이 반복될 것이기에 볼레아 왕국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생각하며 절망할 뿐이었다.
‘…볼레아 왕국은 이제 끝인가?’
‘저 망할 가보인 도끼를 얻었다고 계속 밀어붙이라니……!’
‘하지만 그렇다고 저 망할 크멜 놈들에게 머리 숙일 순 없지 않은가? 우리 민족의 생활 방식을 바꿀 게 뻔한데…….’
‘누군가… 왕의 폭주를 멈춰 줄 전사가 없을까? 하아아아…….’
하나 이미 그들의 문화나 생활 방식엔 다른 수나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결국 그들은 끝까지 싸우거나 정 안 된다면 저 강력한 카라테인 볼레아 왕을 힘으로 멈추게 하는 자가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그런 자가 나오기 전에 이미 ‘볼레아 왕국’이 펼칠 수 있는 힘과 기력이 모두 다해 버리든가 말이다.
결국 견제되지 않는 절대적인 권력을 쥔 전쟁에 미친 폭군이 왜 국가에 위험한지 알려 주는 역사 속 사례가 되어 후세에 전해지게 될 예정인 볼레아 왕국의 미래였다.